연극 감상과 비평

글_오세곤(극단 노을 예술감독, 순천향대 명예교수)

 

연극에서 관객은 배우와 함께 작품을 완성한다. 객석에서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내는 관객이 없다면 배우의 연기는 달라질 것이다. 물론 연극은 영화, 텔레비전과 같이 연기의 기본은 같다. 그러나 연극배우의 연기는 관객의 존재라는 커다란 이유로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의 배우들과 분명히 구분된다.

그런데 관객의 반응은 즉석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터넷 환경의 변화와 함께 개인적인 활동도 동시에 많은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래서 자신이 느끼고 이해한 것에 근거하여 나름대로 평가하는 감상이나, 그것을 더욱 깊이 분석하여 논리적으로 평가하는 비평은 공연이 끝난 후에도 계속된다.

물론 감상은 주관적이며 사적인 경험이고, 비평은 객관적이며 공적인 담론이지만, 앞으로 다음 공연을 볼 다른 관객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차이점이 있다면, 감상은 연극을 즐기면서 작품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준 높은 관객 형성에 의의가 있고, 비평은 작품의 전 과정에 대하여 진단을 하여 조언을 하거나 미적 가치 판정으로 작품에 대하여 적절한 예술적 지위를 부여하는 데 중점을 둔다.

그중에 특히 비평이 평론의 형식으로 대중 매체를 통해 전파될 때, 그 파급력은 상당히 커질 수밖에 없다. 즉, 비평은 작품의 장점과 아름다움을 평가하고, 연극적 지식을 바탕으로 사회, 문화적 환경 등과 연관하여 작품의 주제와 표현 방식의 타당성, 설득력, 기술적인 부분의 조화 등을 통해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평가한다. 그래서 비평은 작품에 대하여 대중적인 관심을 촉발하기도 하고, 작품을 만든 사람들에 대하여 예술가로서의 검증을 받게도 하며, 관객에게 풍요로운 예술적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또한 비평은 일회성의 예술인 연극에 영속성을 부여하는 행위로서, 어떤 작품에 대하여 현재와 미래의 관객에게 말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1. 연극 감상의 자세

연극을 보러 가기 전 당연히 파악해야 할 것이 있다. 공연장의 위치와 공연 시작 시간을 알아보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작가와 공연 단체, 또 연출가와 배우가 누군지도 미리 알면 작품 관람에 도움이 된다. 물론 일부러 사전 정보 없이 즐기는 것도 가능한 선택이다.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듯이, 사전 정보가 없을 경우 관람의 초점을 못 잡고 즐거움을 느끼는 데 실패할 수도 있다.

희곡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평론가들은 희곡을 먼저 읽지 않고 관람 후에 읽는 것을 원칙으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 관객들은 가능하면 미리 읽는 것이 좋다. 그러면 적어도 줄거리를 따라가느라고 공연 작품이 보여 주려고 하는 그 이상의 것들을 놓치는 일은 없다. 또 희곡을 읽으며 상상했던 장면을 확인하면서, 또 자신의 상상력과 연출가의 표현력을 비교하면서 다양한 극적 재미를 찾을 수 있다.

제작 의도나 연출 의도 등이 담긴 공연 홍보 전단이나 인터넷 사이트의 홍보용 글들, 그리고 팸플릿 등도 미리 보면 관람의 초점을 잡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너무 많은 정보로 불필요한 선입견이 형성되면 곤란하다. 따라서 사전에 접한 공연 관련 기사나 평을 절대화시키지 말고, 하나의 상대적 관점으로만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전 준비는 관람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사전 정보와 상관없이 관람을 할 때는 감각과 감정을 완전히 열고 편하게 작품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사실 사전 정보가 선입견으로 발동되는 것도 이런 열린 자세를 갖게 되면 대부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느끼고 이해하고 즐기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 감상은 미완성이다. 느낌과 이해를 넘어선 주관적 평가야말로 관람의 결과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단계이기 때문이다.

 

  1. 연극비평의 자세

감상은 주관적이고 사적인 경험이지만, 감상으로부터 출발하는 연극비평은 그 말 자체가 의미하듯이 연극에 대한 평가를 이론적으로 피력하는 전문 영역이다. 따라서 연극비평에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세가 있다.

 

. 연극비평은 연극 작품을 올바르게 평가해야 한다.

여기서 올바르다 함은 평가가 정확할 뿐 아니라 보편타당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를 위해 정치·경제·이념을 망라한 올바른 사회관과 세계관, 또한 정확한 역사관이 필요하며, 연극 전반에 대한 보편적 지식 및 성숙한 연극관도 있어야 한다. 물론 여기서 보편과 개인이라는 어휘를 얼핏 상호 모순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작가로부터 희곡을 거쳐 무대 형상화와 관객에 이르는 연극의 전 과정을 잘 알아야 함은 물론, 연극의 역사와, 현재까지 분류된 연극의 경향 및 사조, 또한 연기론과 연출론을 포함한 여러 연극 이론에 정통한 뒤, 그것을 토대로 하거나 또는 넘어서서, 나름대로 분명한 연극적 시각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 연극비평은 추상적이기보다는 구체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한다.

물론 어떤 연극 작품을 보고 느끼는 감상은 당연히 주관적이고 직관적이며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을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며 구체적으로, 타당하고 설득력 있게 전개하였을 때, 비로소 올바른 연극비평이 성립한다. 사실 주관, 직관, 추상 등의 어휘는 객관, 논리, 구체 등의 어휘와 서로 배치되며, 그러므로 연극비평은 원초적인 모순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연극비평은 필수적으로 이 두 가지 사항을 조화롭게 합성해야 한다. 왜냐면 아무리 논리적으로 정확하더라도 앞서 거론한 올바른 감상 내지 평가의 능력이 결여되었다면, 그것은 한낱 언어의 유희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으로 아무리 직관적으로 정확한 평가를 내렸더라도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해 내지 못한다면, 그 또한 연극비평으로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 연극비평은 엄격해야 한다.

물론 엄격하다 하면 얼핏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런저런 이유로 왜곡되는 연극비평을 경계하는 표현으로서, 모름지기 역사가들이 지녀야 할 바로 그런 성질의 엄격함을 의미한다. 엄격하지 않은 연극비평은 연극을 기형적으로 만든다. 예를 들면, 정당한 기준도 없이 그저 흥행에 성공하거나 유력한 인사가 개입되었으면, 그 과정과 의도가 아무리 부실하고 불순해도 호평을 하는 경우이다. 또 비록 약간의 미숙함으로 성실한 과정과 훌륭한 의도가 퇴색되긴 했어도, 그 발전 가능성으로 보아 분명히 의미가 있는 작품에 대해서까지 가혹함을 주저하지 않는, 비겁하고 비뚤어진 비평을 하는 경우이다. 그리고 그저 대세를 따라가며 서로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비판으로 변죽만 울릴 뿐, 연극의 발전이나 정립에는 전혀 기여하지 못 하는 비평의 경우도 이에 속한다.

특히 연극적으로 전혀 가치 없는 선정주의에 놀아나 반대든 찬성이든 그것에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연극을 기형으로 만드는 연극비평이야말로 연극 스스로를 해치는 암적인 존재임에 틀림없다.

 

. 연극비평은 개방적이고 미래 지향적이어야 한다.

연극비평을 할 때는 항시 마음뿐 아니라, 귀와 눈과 감정까지도 열려 있어야 한다. 연극 작품을 볼 때, 나름의 연극관과 평가 기준의 범주를 벗어나더라도,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표현 방법이 훌륭한 작품을 발견하면 곧바로 그것을 인정하고 수용할 줄 아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항상 자신의 연극관을 수정하고 보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즉, 과거만을 토대로 한 무리한 연극적 도식을 마련해, 거기에 절대 가치를 부여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 연극비평은 연극에 대한 깊은 애정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연극비평은 좁은 의미의 연극 현장에서 이루어지지는 않으며, 따라서 얼핏 연극의 외부에 놓여있는 듯도 하다. 그러나 연극비평은 연극 전체에 있어서 중요한 고리를 이루며, 연극 현장과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따라서 연극비평을 할 때는 무엇보다도 연극에 대한 깊은 애정과 책임감을 지녀야 하며, 만약 연극이 잘못될 경우 그것에 대해 자책하고 아파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마치 자신은 연극에 있어 초월적 존재인 듯, 그래서 책임은 없고 비판할 권리만 있는 듯, 최소한의 논리적 설득력도 확보하지 못한 채 꾸지람만을 늘어놓는 연극비평이라면, 그것은 연극에 기여하기는커녕, 오히려 연극 현장의 반발만 일으킨다. 나아가 연극비평 전체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을 부추기는 역효과를 빚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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