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승훈 (연극연출가)
<두 번째 빅뱅>
대학로의 거리 풍경은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여기저기 큼직큼직한 빌딩들이 들어섰고, 거의 모든 건물에 카페나 음식점, 술집, 상점들이 입점해있다. 과거에는 뒷골목이라 불리던 길가엔 7, 8층짜리 대학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저녁만 되면 네온사인이 명멸하고 지하철 입구에선 시민들이 쏟아져나온다.
큰 건물이나 대학 건물들에는 예외 없이 거의 다 공연장들이 들어서 있다. 거기에서는 뮤지컬이라든가, 잘 알려진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기획공연, 코미디극 등의 공연물이 올라가고 있다. 대학로로 공연을 보러오는 관객들은 주로 이런 극장으로 향한다. 인기 있는 배우들이 공연 전후로 관객들과 함께 만나서 사인을 해주거나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거리 풍경도 변했지만, 공연 문화도 많이 바뀌고 있다.
비상업적 연극. 이렇게 부를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비상업적이란 말은 관객들의 관심을 도외시한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돈벌이를 최우선으로 하지는 않는다는 뜻을 내포한다. 1980년대 이후로 대학로에 자리 잡은 극단들은 대부분이 비상업적 연극의 범주에 있었다. 극장의 객석 수라든가, 제작비 등의 여건들을 따져봐도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흥행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서도 연극제작을 하곤 하였다. 초기에는 극단에 대한 정부지원금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나방처럼 대학로에서 공연을 반복하였다. 그것은 마치 죽을 줄을 알면서도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과도 같았다. 여러 난관도 있었지만, 연극의 정신과 본질을 찾고 지키기 위한 중요한 역사라고 본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비상업적 공연을 하는 공연장들은 이제 대학로 중심가에서 벗어나 대학로 변방 즉, 혜화동 로터리 북쪽이라든가, 삼선교 등으로 밀려났다. 비상업적 극단들이 대학로 중심가에서 공연하려면, 비싼 대관료로 인해 공연일수를 짧게 하거나, 지원금을 받아서 대관료에 엄청 쏟아붓는 경우밖에는 방법이 없다. 대학로 내 비싼 극장들은 극단들이 받은 지원금을 먹기 위해 입을 벌리고 기다리는 포식자와도 같다. 몇몇 공공극장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여러 복잡한 절차가 있어 대관조차 여의치 않다.
대학로는 2005년에 서울시에 의해 문화지구로 지정되었다. 문화지구로 지정되기까지 연극인들은 큰 노력을 기울였다. 또 문화지구로 지정이 되면, 좀 더 안정적으로 연극을 할 수 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극의 거리로서 특화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즈음 서울 시내의 다른 문화지역인 홍대 부근이나 인사동의 거리가 문화지구로 지정되었다. 그 거리들은 각각 문화적인 특성이 있었다. 그리고 문화지구로의 지정목표는 각각의 거리 특성을 살리고 더욱 발전시키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문화지구로 지정되고 나서는 도리어 그 특성들을 잃어가면서 급속도로 상업화되기 시작하였다.
대학로도 마찬가지다. 대학로는 1980년 전후 서울대가 관악지역으로 나간 후에 그 자리에 문화예술회관(지금의 아르코 극장)이 들어서고 난 후 연극인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소극장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세계적으로도 특화된 연극의 거리가 되었다. 당시의 연극인들은 대학로를 문화지구로 지정하여 연극과 문화의 특성을 보존하고 지원, 보호, 육성하기 위해 문화지구 지정을 계속 요청하였다. 그에 따라 2005년경에 문화지구로 지정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달리 문화지구 지정이 되고 나서는 도리어 대학로는 그 의미를 급속히 잃어갔다. 연극인 거리를 위한 조례 등이 별도로 설치되지 않아, 거리는 급속도로 상업화되기 시작하였고 지가는 상승하였다.
지가 상승에 비례하여 공연장 대관료도 비싸져서 영세한 극단들이 입주하거나 대여하는 것은 점차 불가능해졌다. 거리는 점차 상업화, 유흥화 되어 밤만 되면 네온사인이 명멸하고, 거리에는 소음이 넘쳐났다. 문화지구라는 말이 무색해진 것이다. 당시 서울연극협회는 구청이나 시청에 대학로 문화지구 지정에 걸맞는 보호, 육성, 조례 규정 등의 지원요청을 하였으나 특별한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대학로를 지켜온 극단들은 점차 대학로에서 밀려나기 시작한 것이다. 한마디로, 재주는 곰이 부리고 이익은 다른 이가 가져간, 본말전도의 꼴이 된 것이다.
대학들은 연극과, 무용과 등의 공연 관련 전공자들의 교육을 한다는 명분으로 대학로에 부지를 사들여 건물을 짓고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들의 건물에 속한 극장들은 대관료가 일일당 수십에서 백만 원을 넘기기도 한다. 실제로 대학생들은 학교에서 벗어나 다른 곳에서 교육을 받는 것은 법에 어긋난다. 그럼에도 아랑곳없이 경쟁적으로 들어서는 이유가 뭘까. 대학로는 이제 압구정이나 명동처럼 천정부지의 땅값으로 인해 교육을 빙자한 투기지역이 된 것이다.
대학로에서 비상업적극단들이 버티기는 무척 힘들다. 그럼에도 연극인들은 대학로에 대한 미련이 강하다. 정부, 지자체의 지원금이라도 받을라치면 비싼 대관료를 지불해서라도 무조건 대학로로 들어가려 한다.
그러한 이유도 이해는 한다. 일단은 관객들이 좀 더 몰리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자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도 보면 극장들에 일반 관객들은 오지 않는다. 대학로를 찾아주는 관객들은 거의 가 다 위에서 언급한 상업 지향적 극장들로 간다. 일반극단들의 연극에는 연극 관계자, 친구, 동료들만이 찾아주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가고 있다. 빨리 미련을 버리고 다른 방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본다.
연극인들은 이제 대학로에서 벗어나 대학로 변방으로 밀려난다. 그것은 마치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 역사와도 같다. 뉴욕의 연극인들이 브로드웨이에서 ‘오프 브로드웨이’,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로 밀려난 과정과 같다.
안타깝지만 이제 연극인들은 그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른 생존 방법을 찾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방법은 서울연극의 중심해체라고 할 수 있다. 즉 대학로에만 집중되어있는 연극을 25개 자치구의 연극으로 분산하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운동은 20년 전부터 시작되어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아직도 그 발전과 성과가 미흡하다.
그 이유는 지자체들의 문화, 연극에 대한 인식 정도가 매우 미흡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25개 자치구의 문화에 대한 예산 지원도 매우 부족하다. 이런 것들을 극복하기 위해선 중앙정부나, 서울시의 정책적 지원을 촉구하여야 한다. 바로 이런 일에 서울연극협회가 적극 앞장을 서야 한다.
연극인들은 7, 80년대에 대학로에 들어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시작해서 성황을 이룬 경험이 있다. 또 그런 성과로 인해 공공극장들을 설립하고 서울에 연극문화를 가져오기도 한 것이다. 이것이 서울 연극계의 첫 번째 빅뱅이라면, 서울연극의 지역화가 두 번째 빅뱅이 될 것이다. 25개의 자치구에 연극문화가 깃들어지는 시대, 시민들과 좀 더 가까이에서 함께 교감하는 연극이야말로 다음 단계의 서울연극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