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11)

글_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연출가(총체극단 여집합), 클래식 연주회 기획

 

 

지난 4년 동안 괴테의 파우스트와 관련된 수많은 음악과 음악적 연출을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90% 이상이 심각하고 무거운 음악이었다. 그럴 만하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비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학자 파우스트를 주제로 한 음악은 어두웠고,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주제로 한 음악은 기괴했으며, 여주인공 그레트헨을 주제로 한 음악은 비극적이었다. 음악과 글의 깊고 심오한 맛도 좋지만, 지나치면 질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듣는 이의 고막과 읽는 이의 정수리를 짓누르는 무거운 쇳덩이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음악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스트리아 왈츠의 왕족인 요제프 슈트라우스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가볍고 신나는 파우스트다.  

 

 슈트라우스 가문이 왈츠라는 영지에 왕이 된 것은 요한 슈트라우스 1세(1804~1849)의 공이 크다. 빈 군악대 악장으로 근무하다 궁정 무도회 음악감독을 맡았던 그는 왈츠, 폴카, 카드리유 등 수많은 춤곡을 작곡했는데 그중 가장 집중한 음악이 왈츠였다. 왈츠의 대유행에 크게 이바지한 그는 왈츠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얻었고, 대표작 라데츠키 행진곡은 매년 빈 신년 음악회의 마지막 앙코르곡으로 연주된다. 

 아버지가 닦아놓은 탄탄대로 위에서 장남 요한 슈트라우스 2세(1825~1899), 차남 요제프 슈트라우스(1827~1870), 사남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1835~1916)는 왈츠 작곡가로 승승장구했다.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장남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빈 기질’, ‘봄의 소리’ 등 수많은 왈츠 곡으로 가문의 전성기를 이끌면서 왈츠의 왕이 되었다. 두 동생 요제프와 에두아르트도 형과 경쟁하며 아름다운 왈츠로 빈을 넘어 유럽 전체를 춤추게 했다.  

 이중 장남 요한 슈트라우스 2세와 차남 요제프 슈트라우스가 파우스트와 관련된 음악을 작곡했는데, 제목이 파우스트 카드리유(Faust Quadrille)’로 동일하다. 

 

 

 카드리유(Quadrille)는 무엇인가? 프랑스어 카드리유라는 단어에는 왈츠, 미뉴엣, 탱고처럼 춤의 뜻과 음악의 뜻이 함께 있다. 

 어원상 이라는 의미인 quad’가 눈에 띄는데, 카드리유 춤이 총 네 명(남자 두 명과 여자 두 명)이 사각 대형으로 추기 때문이다. 19세기 프랑스에서 크게 유행했지만, 춤의 기원은 이탈리아의 연극 코메디아 델라르테 (Commedia dell’arte)’에서 배우들이 추는 춤, 영국에서 건너온 콩트라당스 (Contredanse)’가 한 데 섞였을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으로부터 춤의 지분을 받은 카드리유지만, 음악으로서 카드리유는 오스트리아의 지분이 가장 크다. 왈츠의 왕가 슈트라우스 가문이 왈츠 외에도 수많은 카드리유를 작곡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19세기 유럽의 무도회에는 카드리유를 들으며 카드리유를 추는 흥으로 가득 찼다. 

 음악 카드리유는 6개의 개별적인 곡이 연달아 연주되는 구성인데각 곡마다 고유의 이름과 악곡 형식이 있다. 

 제1곡 팡타롱(Pantalon)은 이탈리아의 연극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영향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연극에서 욕심쟁이 늙은이로 등장하는 전형적인 인물 판타로네(Pantalone)가 그 어원으로, 음악은 세 개의 짧은 주제를 엮어 쾌활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제2곡 에떼(Été)는 여름이란 뜻이다. 팡타롱의 쾌활한 분위기는 이어가지만, 여성이 치마끝을 들고 넓은 공간을 쓰며 움직이기 때문에 단순하고 우아한 멜로디가 주를 이룬다. 

 제3곡 풀(Poule)은 암탉이란 뜻으로 6/8박자의 빠른 론도 형식이다. 

 제4곡 트레니스(Trénis)는 가장 춤곡의 색이 두드러진다. 당시 유명했던 안무가 트레니츠(Trenitz)가 2/4박자에 맞 춤을 추기 위해 삽입한 부분이다. 

 제5곡 파스투레유(Pastourelle)는 양치기 소녀라는 뜻으로 비교적 목가적이고 다소곳한 분위기의 음악이다. 

 제6곡 피날레(Finale)는 두 마디의 서주 후, 강한 음이 터져 나오고 음악과 춤이 절정에 이른다. 

 

 각 곡의 마지막은 짧고 강한 총주(Tutti)로 끝나고 사이에 약간의 쉼이 있다. 그래서 다음 곡과 구분이 명확하고, 춤을 추는 사람들은 다음 동작을 준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카드리유에 파우스트를 결합한 건 동생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아이디어였다. 

 1859년, 파리에서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가 큰 성공을 거두자마자 대중은 거리와 카페 그리고 술집에서 오페라의 주옥같은 멜로디들을 흥얼거렸다. 그야말로 대유행이었다. 유행과 흥행에 기민한 촉이 있었던 슈트라우스 가문의 둘째 왕자가 이를 놓칠 리 없었다. 1861년, 요제프 슈트라우스는 구노의 파우스트에서 따온 15개의 멜로디를 편곡해 6개로 나누어 카드리유 형식으로 재편했다. (당시 카드리유는 대중에게 친숙한 멜로디와 민속 선율 등을 엮어 작곡했기 때문에 이런 도용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대유행의 음악에 대유행의 춤을 결합한 파우스트 카드리유’ (op.112)는 대성공이었다. 1년 내내 연주 요청이 빗발쳤고, 무도회장은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카드리유에 맞춰 춤을 추느라 정신없이 들썩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9oecwblR4Bs

 

 동생의 흥행 성공을 본 형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한술 더 떠 동생보다 하나 더 많은 총 16개의 멜로디로 파우스트 카드리유’(op.277)를 작곡한다. 이 중 12개의 멜로디가 동생의 작품과 겹치지만, 배치를 다르게 하여 시비를 미리 방지했다. 형의 곡 역시 1864년 러시아의 파블롭스크 연주회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이후 5개월 동안 15번이나 더 연주되었다. 두 음악을 비교해 들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FMSs6SvU8vw

 

같은 이름으로 발표한 형제의 두 작품에 가장 큰 차이는 멜로디 배치에 따른 음악의 흐름이다. 동생 요제프의 카드리유는 더 유명한 멜로디를 앞쪽에 집중적으로 배치해 음악 시작과 동시에 흥이 확 오르지만, 뒤로 갈수록 흥미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형 요한의 카드리유는 뒤로 갈수록 유명한 멜로디가 나오게 배치했다. 점점 고조되는 음악의 분위기는 제5곡 파스투레유(Pastourelle)에서 만반의 준비한 다음6곡 피날레(Finale)에서 가장 유명한 군인들의 합창으로 폭발한다. 이는 무도회장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 그리고 연주회장에서 음악을 듣는 관객들의 열광과 흥분을 계산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노련한 연출이다. 

 파우스트 콰드리유의 성공에 고무된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Potpourri aus Faust(구노 파우스트의 포푸리)’, ‘Walzer aus Faust(파우스트 왈츠)’ 및 ‘Romanze aus Faust(파우스트 로망스)를 연달아 선보였고, 세 곡 모두 20회 이상 연주되었다.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에서 파생한 파우스트 카드리유의 인기는 대단했다. 인기에 영합한 수많은 작곡가가 동명의 작품을 출판했는데, 이 중 1863년에 샤를 쿠트(C. Coote), 1864년에 헤르베르트 마르크스(H. Marx)의 작품만이 겨우 악보로만 남아 있다.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의 광풍 그리고 무도회장의 대유행 카드리유. 

 대중의 요구를 꿰뚫는 안목 그리고 유행에 민감한 촉을 물려받은 흥행의 귀재들은 이 둘을 합쳐 대성공을 거뒀다. 슈트라우스 형제의 파우스트 카드리유는 이차 창작물이다. 어찌 보면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받은 격이다. 하지만 슈트라우스 형제의 음악은 구노에게는 오페라를 더 널리 알리는 팝업 광고가 되었고, 잠시 유행했다 사라질 운명이었던 카드리유를 왈츠와 폴카의 바로 옆자리로 격상시켰다. 

 묵직한 비극 파우스트, 어둡고 심각하기만 한 파우스트 음악. 슈트라우스 형제의 밝고 가벼운 카드리유로 잠시 머리를 식혀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연극 연출에서 쾌활한 장면의 음악이 필요하다면 슈트라우스 형제의 파우스트 카드리유가 제격일 것이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