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은미 <춤추는 립스틱>

글_우수진(연극평론가)

 

<춤추는 립스틱>은 지난 7월 4일에서 6일까지 대학로 이음센터 이음홀에서 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주연을 맡은 김진옥 배우가 직접 쓴 자전적 내용의 희곡을 김은미 연출이 무대화한 것이다. 작년에 서울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성북마을극장에서 낭독극으로 처음 공개되었으며, 올해에도 역시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창작활동 지원을 받아 공연되었다.

동시대 한국연극에서 장애는 이제 도전적인 화두를 넘어 하나의 의미 있는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의 장애연극은 2000년대 초반 장애인단체들의 커뮤니티 연극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2019년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되었던 <7번 국도>를 시작으로 일반 연극계에 배리어프리가 점차 도입되었으며, 같은 해에는 이연주 연출이 ‘극단 애인’과 협업한 <인정투쟁>이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되었다. 이후 최근에는 일반 배우와 장애인 배우가 무대 위에서 함께 협업하는 작품을 만나는 일이 점차 잦아졌으며, 종종 그것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연극 미학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23년에 미아리고개예술극장에서 초연되었던 극단 청년단의 <생활의 비용>이 그러했고, 이번에 공연된 <춤추는 립스틱>도 그러한 경우였다.

 

사진 제공: 김은미

 

발랄한 그녀, 사회적인 주체

<춤추는 립스틱>의 주인공 진옥은 기존의 장애인 서사에서 일반적으로 보여지는 유형에 정면으로 반한다. 통속적인 장애인 서사 안에서 장애는 동정과 혐오의 대상이며 헤어날 수 없는 불행의 근원으로 여겨지고, 이러한 환경 안에서 장애를 지닌 인물은 일반적으로 사회와 단절되어 수동적이고 자기연민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약자로 재현되곤 한다.

반면에 진옥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인물이다. 여기에는 아버지의 역할이 컸다. 어린 시절 진옥의 아빠는 남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주말마다 예쁜 원피스에 구두를 신겨 주며 바깥세상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리고 아빠가 일찍 돌아가시고 난 후, 엄마는 자신을 남 부끄러워하고 작은 방 안에 그저 방치해 버리지만, 그런 엄마를 향해 진옥은 당차게 요구한다. “나 교과서 사 줘.” “나 휠체어 사 줘.”

사회적 관계를 통해 진옥은 자신의 장애를 극복해 나간다. 그리고 주체적으로 자아를 실현해 나간다. 엄마의 냉소적인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유쾌한 성격으로 스스로 동네 친구들을 만들고, 이들의 도움으로 한글을 깨치며 윤동주의 시를 읽고, 휠체어를 타고 대문 밖 세상으로도 나아가기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의 교육권과 이동권, 노동권 보장 등을 촉구하는 각종 집회에도 참가하는 등 사회운동에도 앞장선다. 이쯤 되면 관객에게 진옥의 장애는 정상과 구분되는 비정상적인 결여가 아니라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 놓인 통념적 구분의 벽에 균열을 가하는 하나의 장치가 된다.

 

사진 제공: 김은미

 

발칙한 그녀, 욕망하는 주체

 

사회적 관계를 통해 자아를 실현해가는 진옥을 추동하는 근원적인 힘은 섹슈얼리티의 욕망이다. 그리고 이는 삶에 대한 강한 원초적인 욕망이기도 하다. 진옥은 어려서부터 바지만 입히려고 하는 엄마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치마를 고집하며 외모 치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구나 아름다울 권리가 있”다는 마음으로 장애인 패션쇼를 기획하기도 한다. 운전봉사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온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에도 진옥은 배꼽티에 나팔바지 차림이었다.

립스틱은 무엇보다도 그의 섹슈얼리티를 환유하는 오브제이다. 연극의 시작은 외출하기에 앞서 남편이 진옥에게 화장을 해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화장을 끝내고 만족한 듯 거울을 비춰 주는 남자에게 진옥은 못마땅한 얼굴을 하며 말한다. “삐뚤어졌어.” 그리고 아니라는 남편에게 불만을 쏟아낸다. “어떻게 매번 그래?” 화장뿐만 아니라 이동의 문제, 육아와 살림 등 모두 남편의 도움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잘못 그려진 립스틱에 대한 진옥의 타박은 너무나 당당해서 유쾌하다.

이 첫 장면은 진옥의 성격뿐만 아니라 남편을 포함한 타자들과의 관계 방식을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선보러 가는 진옥을 아까워하는 남편에게 용기 있게 먼저 손을 내민 것도 그였다. “아까우면 붙잡아 보라고요.” 그리고 결혼 후 아이가 생기자, 정작 의사와 엄마는 장애인 여성의 출산과 육아를 우려하고 만류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지만, 그는 역시 개의치 않고 예쁜 딸을 출산한다. 진옥의 섹슈얼리티 안에서 장애와 여성, 그리고 모성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통합적인 것이었다.

 

사진 제공: 김은미

 

긍정의 장애 서사, 그리고 가족 서사

 

연극은 현재에서 과거로 플래시백하였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방식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현재의 이야기는 진옥의 장애가 뇌병변이 아닌 세가와 병에 의한 것이어서 다시 걸을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면서 과거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 세가와 병으로 판명이 나서 드디어 장애에서 벗어난다는 사실에 기뻐하지만, 그것은 다시 오진으로 판명된다. 이러한 서사는 장애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곧 해피엔딩이라는 가볍고 무책임한 결말을 피하는 한편, 장애에 대한 긍정성 이면에 놓여 있는 깊숙한 삶의 무게를 드러내준다. 진옥을 비롯한 가족들은 남편의 말처럼, 그리고 마치 체홉의 인물들처럼, 그저 삶을 이어나간다. “그냥 이렇게, 저렇게, 같이 흘러가며 살면 돼.”

과거의 이야기는 부모와 자신의 출생, 성장에 관한 이야기로, 그 주축은 엄마와 딸의 서사이다. 엄마인 희정은 사실상 진옥이 현실에서 마주하고 극복해야 하는 가장 큰 사회적 편견을 극 중에서 대표적으로 체현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부유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무엇보다도 첫딸인 진옥의 장애로 인해 평생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진옥과 달리 스스로를 작은 방 안에 가두어버린 인물이다. 다소 환상적으로 처리된 마지막 장면에서 희정은 진옥에게 사과하고 진옥이 엄마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이것이 화해를 의미한다고 손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위기의 순간에 가장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관계도 가족이지만, 가장 치열하게 대립하는 관계도 가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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