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오세곤(극단 노을 예술감독)
최근 연극계에서는 두 가지 커다란 이슈가 등장했다.
그 하나는 ‘연극진흥법 추진’이고, 또 하나는 ‘보조금법 개정 및 지원금법 제정 운동’이다.
그중 후자는 운동의 계기가 됐던 ‘한국극작가협회 제5대 이사장 외 3인에 대한 사면 청원’과 함께 진행되고 있으므로 그 추이를 보아가며 다음 호에 다루기로 하고, 이번 호에서는 ‘연극진흥법 추진’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연극진흥법 추진 현황
애초 연극계에서 연극진흥법 얘기가 나온 것은 한국연극협회 이전 집행부 시절이었던 2021년도이다. 당시 법안에 대해 본 필자도 의견서를 냈고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홍완식 교수도 의견서를 냈었다. 그러나 그 상태에서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는데, 올해 들어 다시 추진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확인해 보니 2021년도 법안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안(이하 ‘제1안’)이 있었고, 현 집행부의 손정우 이사장이 새로이 제시한 안(이하 ‘제2안’)이 있었다. 그런데 2025년 7월 6일 인천에서 ‘제43회 대한민국연극제 인천’의 부대 프로그램으로 열렸던 ‘연극인 100인 토론회’에서는 손정우 이사장의 발제문과 함께 위의 제2안만 제시되었다. 그래서 추측하기로는 제2안이 현 한국연극협회의 공식 법안이 아닐까 싶다.
두 법안의 존재
사실 제1안에는 정부로서 부담을 느낄 만한 내용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담겨 있다. 그에 비해 제2안은 국악진흥법 등 비슷한 취지의 다른 장르 진흥법들과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아마 비용 추계 등 법안 발의 및 심의 과정에서 어려움이 예상되는 내용을 빼거나 축소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비록 거칠어 보이기는 하지만 제1안에는 연극인들이 실감할 만한 내용이 좀더 자세히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제2안으로 추진하더라도 이후 시행령과 규칙 마련, 나아가 중앙과 지자체의 실행 계획 수립에 그러한 내용이 반영되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감시해야 할 것이다.
두 법안의 비교
그래서 두 가지 안을 좀더 자세히 비교해 보자면 제1안에서는 연극진흥위원회, 한국연극원, 국공립극단, 민간극단 육성지원, 대한소극장협회 등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제2안에서는 국립연극원과 지원기관 지정으로 단순화하고 있다. 물론 제2안의 국립연극원은 제1안의 한국연극원보다 훨씬 많은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 즉 제1안의 한국연극원이 연극박물관을 포함하여 주로 자료원이나 기록원, 연구 기관의 역할이라면, 제2안의 국립연극원은 상당 부분 제1안에 포함된 연극진흥위원회의 성격까지 띠고 있다.
이는 아마도 2023년 통과되어 2024년 발효된 국악진흥법 상의 국립국악원이나, 최근 추진되고 있는 무용진흥법(안) 중 국립무용원의 내용을 참고했을 듯하다. 마찬가지로 제2안에는 제1안에 있던 연극진흥위원회 조항이 없어진 대신 지원기관 지정이 들어간 것도 인접 장르 진흥법과 유사하게 조율한 결과로 보인다. 지원기관 지정은 특히 연극 관련 협·단체들이 관심을 가질 법한데 정부의 지원과 간섭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연극진흥위원회는 예술계 전체와 연동된 사안
사실 제1안에 포함된 연극진흥위원회는 현 문화예술위원회에 대한 개편을 전제로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각 예술 장르별 위원회를 만든 뒤 그 위원장들을 당연직 위원으로 하는 국가예술위원회를 구성한다든가, 현 문화체육관광부 업무에서 예술을 따로 떼어내 독립적인 국가예술위원회를 설치하고 그 세부 조직으로 장르별 위원회를 둔다든가 하는 등의 여러 방안을 놓고 상당히 깊은 논의를 거쳐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 동안 이와 관련한 논의는 여러 차례 있었다. 20여 년 전 과거의 문화예술진흥원을 현재의 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도 영화진흥위원회를 모델로 하는 각 장르별 위원회를 두자는 의견도 있었고, 또는 조금 더 넓게 전체 예술을 문학, 시각, 공연 정도로 나눈 뒤 각각의 진흥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므로 만약 연극계에서 독자적인 진흥위원회 설치를 주장하고자 한다면 다른 장르들과 긴밀하게 상호 소통·협조해 가며 추진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세밀한 법안의 전제
보통 국회에서 제정하는 법에는 너무 상세한 내용을 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뒤 실행과 관련되는 세밀한 내용은 국무회의를 거치는 시행령이나 주무부서에서 주관하는 시행규칙, 운영세칙 등에서 다루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그러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부가 법의 제정 취지를 충실하게 따라 준다는 전제가 없으면 상당히 불안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종종 법에서부터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을 명시하는 경우가 나타나고는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제1안에서 국공립극단, 민간극단 육성, 대한소극장협회 등을 거론한 것도 나름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극장과 극단, 연극예술인을 연계하여 체계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는데, 우선 국공립 공연장은 언급이 안 되고, 민간극장도 소극장으로 한정하고 있으며, 연극예술인도 단순히 단체 소속원으로만 제한하여 거론하고 있다. 앞으로 연극이 활성화되면 민간에서도 중극장, 대극장이 나올 수 있고, 국공립극단이 늘어나고 민간극단에 대한 지원이 자리 잡더라도 자유로운 활동을 선호하는 연극예술인이 존재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민간극장 협의체의 법정 법인화
그런데 제1안의 대한소극장협회는 현재 민간단체로 있는 한국소극장협회를 승계하도록 함으로써 자칫 특혜로 오해받을 소지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1996년 국공립 공연장 협의체 성격의 사단법인으로 출발한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가 2012년 문화예술진흥법에 포함된 법정 법인으로 전환된 일을 생각한다면 민간극장의 협의체가 법정 법인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다만 앞서도 지적하였듯 소극장으로 범위를 한정하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보며, 아예 문화예술진흥법을 개정하여 그 안으로 들어가는 방안도 염두에 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배우에 대한 독립 조항
연극인 100인 토론회에서는 협회안(제2안)이 배우에 대해 독립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은 데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물론 연극예술인에는 배우 외에도 많은 직종이 포함될 수 있으므로 얼핏 너무 편협한 주장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적인 비중이 높은 것은 차치하고라도 배우는 연극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필수 요소이다.
배우는 최종적으로 관객을 만나는 존재로서, 연극 관련의 여러 직종을 도맡아 무대에 서는 배우는 가능하지만, 반대로 연극 관련의 어떤 직종도 배우를 통하지 않고는 연극에 기여할 수 없다. 이런 현실을 생각할 때 연극진흥법에 배우에 대한 독립 조항을 넣는 것은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하다.
그렇게 연극배우의 작업 형태를 고려하여, 작업에 대한 적정한 사례의 기준, 연습 시간의 작업 시간 인정, 배우 역량의 유지 및 강화를 위한 투자의 보장, 몸을 수단으로 하는 데 따른 보호 장치 등을 명시한다면, 배우 이외의 직종까지도 참여 방식 및 정도에 따른 상식적인 기준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처벌 조항 등의 삽입
사실 연극진흥법이 제정되어도 현재의 예술 정책의 기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연극 현장은 별로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실태 조사나 진흥 계획 수립은 이미 예술 관련 여러 법에 들어가 있다. 따라서 연극만을 따로 분리해서 실태를 조사하고 계획을 짠다고 갑자기 연극이 진흥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그렇게 법에서 강제하고 있는 조사나 계획 수립마저도 몇 년이 지나도록 시작조차 안 하는 지자체가 허다한 실정이다.
따라서 법안의 통과를 목표로 구체적인 내용을 최소화하고 이후 실행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좋을지, 과정이 힘들더라도 아주 세세한 내용까지 포함하는 안을 마련하여 추진하는 것이 좋을지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후자를 선택한다면, 기존의 예술 관련 법령들의 문제점을 세세하게 지적하면서, 기본 전제로 ‘팔길이 원칙’이나 ‘보편지원, 발굴지원, 맞춤지원’과 같은 예술 지원의 기조를 명시하는 것은 물론, ‘적극 행정’과 같은 예술에 대한 태도도 강조하고, 또한 어렵게 만든 법이 단지 문서로만 존재하지 않도록 구체적인 처벌 조항까지 집어넣을 정도로 강한 자세와 집요하고 끈질긴 추진력이 필요할 것이다.
전체 단계에 대한 정확한 인식
마지막으로 바라기는 지난 호에서도 언급하였듯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연극 동네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확인한 뒤, 그 실현을 위해 밟아갈 단계 중 하나로서 연극진흥법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며, 그 법안의 통과를 위한 노력의 방책과, 통과 이후 차근차근 넘어가야 할 단계들에 대해 미리 정확하게 연극계 모두가 공유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물론 평소 정책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었다면 모를까, 일반적으로 연극인들은 각자 작업에 몰두하느라, 또 어렵게 생활을 유지하느라 이런 이야기가 나와도 그게 자신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연극진흥법이 충실한 내용으로 채워 제정되고, 또한 법의 취지대로 제대로 작동되기만 한다면, 모든 연극예술인들의 작업 환경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크게 달라질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모두 깊은 관심을 갖고 활발하게 논의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