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한’ 선녀님, 혼란스러울 아이들! 어린이 연극의 교육적 효능을 생각하다

글_이연심(호서대학교 공연예술학부, 한국연극교육지원센터, 오늘의서울연극 편집위원)

 

2024년 3월에 폐관했던 ‘학전(學田) 소극장’이 올해 7월4일 ‘아르코 꿈밭극장’이 되어 재개관하였다, ‘배움의 밭’이 ‘관객과 창작자의 꿈이 움트는 공간’으로 재탄생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꿈밭’이라는 이름 역시 대국민 공모와 투표로 선정되었다고 하니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이 극장은 33년간 어린이 창작극의 터전을 일구어 온 공간의 역사적 정체성을 고려하여,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창작의 장이자 젊은 뮤지션을 위한 공간으로 운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 첫 공연 작품은 가족 뮤지컬 <사슴 코딱코의 재판>이다. 제31회 어린이 연극상 단체 부문 특별상을 받고, 제19회 아시테지 겨울 축제 대표 공연으로 선정된 작품이니 ‘꿈밭극장’의 재개관기념 공연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선택으로 보인다.

 

<사슴 코딱코의 재판>의 모티브가 흥미롭다. 전래 동화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를 기본 골격으로 하여, 동물과 식물이 말할 수 있는 ‘잠꼬대 동산’에서 선녀의 목욕 장소를 알려 준 사슴 코딱코에 대해 재판을 하며, 관객은 모두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이 되어 사슴의 유무죄를 심의하고 판결한다는 설정이다. 흥미로운 발상에 뮤지컬, 이머시브, 접근성 공연 형식을 결합하여 관객의 관심과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하다. 티켓을 수령하고 예매하는 극장의 ‘꽃밭 라운지’에는 커다란 판사봉(정의봉)과 변호사, 검사, 판사의 말풍선을 비치하여 어린이 관객이 작품의 소재와 인물에 친해질 기회를 제공한다. 극장으로 들어서면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배우들이 어린이 관객들과 ‘휙휙팍’게임을 하며 경계심을 허물고 관심을 집중시킨다. ‘휙휙팍’게임은 이 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휙휙팍’은 아빠 사슴이 어린 사슴 코딱코에게 가르쳐 준 사냥꾼으로부터 멀리 도망치는 방법이자 놀이이다. 따라서 ‘휙휙팍’ 게임은 공연 전에는 주의 집중 놀이로 활용되지만, 공연 중에는 코딱코의 ‘딱한’ 상황에 몰입하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극이 시작되고 객석은 옆에 앉은 엄마나 보호자를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어두워진다. 어둠을 무서워하는 어린 관객을 위한 배려이다. 설사 객석이 조금 더 어두워진다 해도 이미 배우들과 친숙해진 어린이 관객은 어둠보다는 무대 위의 배우에게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4명의 배우와 4명의 수어 통역 배우들은 극이 진행됨에 따라 어린이 관객의 몰입을 끌어내는 다양한 시도를 한다. 사슴의 동물 친구들과 다이어트 운동을 하기도 하고, 낼름낼름 뱀 사냥꾼은 사슴이 어디에 숨이 있냐며 관객에게 말 걸기를 한다. 재판 과정에서는 이미 하늘나라로 올라가 버린 선녀님을 소리 높여 함께 부르고 핸드폰 영상 통화를 시도한다. 또 사슴의 유무죄에 대해 배우와 관객은 자유롭게 토론한 후, 배심원으로서 각자의 의견을 빨강(유죄), 파랑(무죄), 노랑(기권) 공으로 투표한다. 공의 숫자를 세는 어린이 관객의 표정이 실시간 영상으로 무대 위에 투사되며 재판의 결과를 확인한다.

 

사진 제공: 문화예술위원회, 엠제이플래닛

 

어린이들은 극적 상황이나 놀이 쉽게 빠져드는 반면 집중하는 시간이 짧으므로 70분 공연 시간 내내 어린이 관객의 몰입을 끌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다수의 어린이 연극이나 뮤지컬은 집중력의 발달 단계를 고려하여 음악이나 청각적 효과, 눈에 띄는 색감의 의상과 소품, 확장된 배우의 움직임 등 다양한 감각적 자극을 제공하고 율동과 함께 노래하거나 소리 지르고 말하게 하여 집중과 환기 효과를 만들어 낸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사슴 코딱코의 재판>의 이머시브 공연적 특성은 배심원 관객들의 토론에 집중된다.

 

재판 과정을 좀 더 살펴보자. 배심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피의자, 피해자, 검사, 변호사가 된 각 인물은 각자의 주장을 피력하는데, 그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피의자 진술(사슴): 쫓기던 자신을 숨겨준 나무꾼에게 은혜를 갚고 싶은 마음으로 선녀가 목욕하는 장소를 알려 준 것뿐이며 다른 의도는 없었다. 또 나무꾼이 진짜 선녀 옷을 숨길 줄은 몰랐다. 본인의 행동이 감옥에 가야 하는 사안인 줄 몰랐다.
  • 변호인 변론(변호사): 사슴은 고조선 시대부터 언제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쫓기며 살아온 ‘딱한’ 인물이다. 그래서 이름도 코코에서 코‘딱’코가 된 것이다. 사실 가해자라고 하기엔 사슴에겐 어떤 이득도 없다.
  • 피해자 진술(선녀): 날개옷이 없어져서 너무 놀랐고, 언니들과 헤어져서 무서웠다. 매일 날개옷을 찾으러 ‘첨벙첨벙 계곡’에 갔었으며, 심지어 날개옷을 찾기 위해 사례금까지 걸었다. 덕분에 본인은 일상을 잃었으며, 그리운 하늘나라에 갈 수 없는 상황이 슬펐다. 사슴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 검사의 주장(검사): 나무꾼이 훔친 것은 선녀의 옷이 아니라 선녀의 인생이다. 은혜를 갚는 것은 옳은 일이나, 그로 인해 선녀는 분명한 피해를 보았다.

이렇게 각 인물의 주장을 청취한 배심원들은 평결을 위해 토론을 시작한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보호자인 어른들도 참여할 수 있는데, 예상외로 의견이 분분하다. 사슴은 약한 동물일 뿐이라거나 정보만 제공했을 뿐 절도는 하지 않았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선녀의 피해 상황을 예측할 수 있었으므로 분명히 유죄이며 절도 공모죄가 성립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팽팽한 의견 대립은 급기야 투표로 결정하기로 한다. 100여 명의 관객이 투표한 결과는 파랑 공이 53개가 나오면서 무죄로 결정이 되고 ‘정의봉(판사봉) 땅・땅・땅’을 노래하며 극이 마무리된다. 공연 때마다 재판의 결과가 달라지겠지만 해당 공연의 결과는 ‘무죄’였다. 물론 판사 역의 배우가 동화 속의 이야기에도 잘못된 사건이나 범죄가 숨어 있을 수 있음을 얘기하며 비판 없이 수용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을 가지고 생각하는 훈련이 필요함을 전달하기는 하지만 당황스러운 결론이다.

여기서 연극의 효능, 특히 아동극의 교육적 효능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모름지기 모든 연극은 예술적, 교육적, 치료적 효능이 있다. 연극의 종류, 양식, 목적, 대상 관객 등에 따라 교육적 효능이 강조될 수도 있고, 치료적 효능이 강조될 수도 있겠으나 모든 연극은 이러한 효능이 있다. 분명한 것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연극은 교육적이어야 하며, 이러한 전제 위에 예술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두라(Albert Bandura)는 사회학습이론(Social Learning Theory)를 통해 인간은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함으로써 학습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어린이들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타인의 행동과 그 결과를 관찰함으로써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관찰 학습’과 ‘모델’, ‘대리 강화와 대리 처벌 (Vicarious Reinforcement / Punishment)’은 이 이론의 핵심 개념이다. 보보 인형 실험에서처럼 아이가 TV에서 폭력 장면을 보고 비슷한 행동을 따라 한다거나 같은 반 친구나 형이 교사나 엄마에게 칭찬받는 것을 보고 그 행동을 모방하는 사례를 생각하면 된다. 이를 연극 관람 상황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연극 속의 배우, 어른 관객은 어린이 관객의 ‘모델’이 되고, 극 속의 인물(사슴)이 어떤 행동(선녀의 목욕 장면을 나무꾼에게 알려 준 행동)을 하고 보상을(무죄) 받으면, 관찰자인 어린이는 그 행동을 더 하려 하고, 처벌을(유죄) 받으면 그 행동을 피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공연장은 곧 학습의 장이 되며, 애써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학습이 일어나는 잠재적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의 실천장이 되는 것이다.

 

사진 제공: 문화예술위원회, 엠제이플래닛

 

자, 이제 다시 사슴 코딱코의 재판 과정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모든 어른이 성숙한 성의식이 있을 수는 없겠으나, ‘미투’의 아픔을 겪고 뼈아픈 성찰의 시간을 보낸 동시대의 관객들이 무죄를 우세하게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슴 코딱코의 재판>은 피해자인 선녀의 서사보다 사슴 코딱코의 서사만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러한 극의 흐름은 관객들로 하여금 사슴의 ‘딱한’ 사정에 몰입하게 하여 ‘약자’, ‘가엽고 딱한 존재’라는 이미지를 각인하며 균형적 사고를 방해하고, 비판적 사고를 약화한다. 실제로 다수의 어른은 사슴 코딱코를 가엾고, 약한 존재로 생각하고, 단순히 은혜를 갚고자 한 것뿐이라는 행위 의도에 동의하며 무죄 취지의 의견을 냈고, 일부 어린이 관객은 어른들과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여 같은 의견을 냈다. 어른 관객과 배우는 어린이 관객의 ‘모델’이 되었고, 어린이 관객은 ‘관찰 학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공연을 관람한 어린이들은 ‘선녀와 나무꾼’에서 선녀의 목욕 장소를 누설하고, 나무꾼이 선녀와 결혼할 방법을 알려 준 ‘사슴은 무죄’라는 학습 결과를 체험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첫째, 현대적 시점으로 ‘선녀와 나무꾼’을 재해석한다면, 과연 사슴은 공연의 배심원 투표 결과처럼 무죄일까?

둘째, 다수의 의견은 언제나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셋째, 의미 있는 교육적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분명 이것은 교육을 전공한 필자의 직업병이다. 어린이 연극을 볼 때면 언제나 이 작품이 어린이들의 예술적 감수성을 어떻게 자극하고 감동을 주는지 살피기보다 교육적 관점에서 어린이들에게 혼란을 주는 것은 없는지 먼저 생각하게 된다. 한 아이를 교육하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며, 공연장은 아주 효율적인 교육의 장이며, 창작자들은 강력한 교수자이다. 따라서 어린이 대상 연극은 그 작품의 내용이나 형식 이전에 교육적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어린이 연극의 창작 과정이 더욱 어렵고 조심스러운 것일 게다. 사실 우리는 첫째, 둘째 의문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는 것 아닌가? 문제는 이 답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쉽게 설명할 것인가이다. 이미 공연은 끝났고, 학습은 일어났으니 말이다.

첫 번째 문제부터 생각해 보자. 사슴 코딱코는 과연 무죄일까?

몇 년 전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예술과 성(보건)의 통합교육으로 예술 작품을 활용한 성교육 지도서 및 워크북을 개발한 바 있다. 전래 동화, 고전 문학, 영화, 명화 등에 숨겨진 성인지 감수성, 젠더 감수성 등의 문제를 점검하고 범람하는 성 정보 속에서 정확한 지식과 정보를 선택하고, 다양한 성적 갈등, 역할 갈등 속에서 올바른 행동 선택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변호사의 자문을 받아 고전 문학과 전래 동화에 우리나라 현대 법률을 적용하여 구성하였다는 점이다. 변호사의 의견에 따르면, ‘선녀와 나무꾼’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위를 중심으로 점검한 결과, 나무꾼에게 선녀의 목욕 장소를 가르쳐 준 사슴의 행위는 형법 제31조의 교사범1)으로 나무꾼과 함께 처벌된다. 사슴은 나무꾼을 부추겨 범죄를 저지르게 하였으므로 나무꾼의 범죄에 대한 교사범으로 처벌되며, 교사행위는 수단, 방법에 제한이 없어 명령, 지시, 설득, 애원, 요청, 유혹, 이익 제공, 위협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할 수 있다. 이외에도 ‘선녀와 나무꾼’의 각 문제 상황에 법률을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법률적 해석이 가능하다.2)

상황 적용된 법률 법률적 해석
나무꾼이 선녀의 목욕 장면을 훔쳐본 행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1조3) 위반 선녀가 옷을 벗고 있는 사적인 공간에서 목욕하는 장면을 엿봤고, 그 공간에 몰래 들어갔으므로 범법 행위가 됨.
나무꾼이 선녀의 날개옷을 훔쳐서 숨긴 행위 형법 제329조 절도 또는 제366조 재물손괴4) 날개옷을 훔쳐서 자신의 소유로 삼으려는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된다면 절도죄에 해당하고, 날개옷을 가질 생각은 없고 단지 찾지 못하게 할 의도만이 인정된다면 재물손괴에 해당함.
날개옷을 빌미로 결혼을 강요한 행위 형법 제288조 위반(약취・유인)5) 날개옷을 숨겨 선녀가 돌아가지 못하게 하고, 거짓말, 유혹 등으로 속여서 결혼 행위에 따라오게 하는 것, 선녀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범죄가 됨.
선녀의 공공장소에서 목욕 행위 형법 제245조 공연음란6) 선녀가 목욕한 장소가 일반적으로 목욕하는 공공장소라면 나무꾼의 행위가 성적 목적을 위한 공공장소 침입 행위가 될 것이나, 목욕하는 장소가 아닌 일반 장소에서 목욕했다면 오히려 선녀가 공연음란죄로 처벌받을 수 있음.

 

이에 따르면 나무꾼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절도, 재물손괴, 약취 및 유인 등의 혐의가 있고, 심지어 피해를 주장하는 선녀에게는 상황에 따라 음란공연죄를 적용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선녀와 나무꾼‘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이 모두 위험한 범법을 하고 있다.

사슴 코딱코는 명백히 유죄이다. 동심 파괴의 논란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삶의 기술을 습득하고 대인관계능력, 자기 결정권, 사회성 등을 신장해야 하는 어린이들에게는 성인지, 젠더 등은 매우 민감한 학습 영역이므로 정확한 정보의 제공과 함께 올바른 선택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아무리 선한 의도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부추겨서 범죄를 저지르게 한다면 범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다수의 의견은 언제나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공연에서 배심원의 평결은 투표를 통해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결정되었다. 다수결의 원칙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의사 결정의 기본 원리이지만 소수의 의견이 무시되거나 사회 전체의 이익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약점이 있다. 특히 합리적인 토론 문화가 조성되지 않으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저해할 수도 있다. 창작자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유죄 취지의 소수 관객 의견은 무시되고, 우리나라 현대 법률적 해석과 충돌하는 판결이 도출됨으로써 배심원 토론은 어린이 관객에게 다수결의 원칙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따라서 공연이 끝난 시점에서 어른 관객은 어린이 관객에게 다수결의 원칙에 의한 결정이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되었다. 물론 토론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의사 결정 과정이었는가를 먼저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지만,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 것이다. 자녀 교육에서 어려운 점은 아이들이 궁금한 모든 것에 대해 어른들이 완벽한 지식을 갖고 해법을 제공하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일 것이다. 특히 성인지 감수성, 젠더 감수성 등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해야 한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어른도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아이의 궁금증을 존중하고 어린이와 함께 공부하며 탐구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어른 관객은 함께 공연을 보러 온 어린이 관객에게 설명해야 한다. 어른과 함께 투표하여 사슴의 무죄를 결정하였지만, 이는 합리적인 결정이 아니었으며, 사슴 코딱코의 행위가 왜 유죄일 수밖에 없는지 함께 학습하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주며, 어린이 스스로 행위 선택 기준을 만들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생명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평생에 거쳐 일상의 삶 속에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성인지 감수성, 젠더 감수성, 성가치관 형성 과정에서 어린이들이 오(誤)개념이나 난(難)개념으로 혼란을 겪지 않는다. 아울러 다수의 의견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며, 자신과 생각과 다른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다양성을 인정하며, 소수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도 알려 주어야 한다.

 

사진 제공: 문화예술위원회, 엠제이플래닛

 

셋째, 의미 있는 교육적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할까? 어린 관객일수록 한 편의 연극으로 체험하게 되는 교육적 효능은 절대적일 수 있다. 그래서 창작자들은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고 가치 있는 교육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선택하고 아이들의 현실과 연결되는 주제를 풀어내려 노력하고 있다. 또한 양식적인 면에서도 일방적인 전달이 아닌 쌍방향의 소통을 통해 정서적・ 비판적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질문, 토론, 함께 노래하고 춤추기 등 다양한 참여 활동을 개발한다.

내용적인 부분에서 <사슴 코딱코의 재판>이 사슴의 서사에 집중하고 있는 점은 작품의 의도와 교육적 가치를 고려할 때 적절한 선택이었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70분 남짓의 공연 시간 중 상당히 많은 시간을 큰 가엽고 딱한 사슴의 사연에 집중하여 관객들은 사슴의 상황과 감정에 동화되어 버리지만, 정작 피해자인 선녀의 ‘딱한’ 서사는 전무하고 피해자 진술 과정에서만 등장하여 선녀의 피해를 공감할 시간조차 부족하다. 그것도 ‘낼름낼름 뱀 사냥꾼’ 역할을 했던 배우가 선녀를 상징하는 헤어밴드만을 하고 영상 통화로 등장한다. 가해자인 사슴은 가엽고, 딱한 존재로 여기고, 지구 가까이 있으며, 피해자인 선녀는 일상을 되찾은 모습으로 멀리 하늘나라에 존재하다. 관객이 피해자인 사슴에 동화되는 동안 선녀의 피해 사실은 무력해진다. 창작가는 극의 흐름이 이러한 정서적 반응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배심원 평결의 결과를 예측하여 ‘선녀와 나무꾼’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불법적 행위를 정확하게 전달할 방안을 구축해야 한다. 관객이 ‘유죄’ 평결을 내릴 경우와 ‘무죄’ 평결을 내릴 경우를 예측하여 차별화된 극의 결론을 구축하여 어떤 경우에도 교육적 가치와 주요 메시지가 손상되지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

잘 알려진 이야기, 전래 동화, 고전 문학 등은 예술뿐만 아니라 교육 분야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되는 소재이며, 특히 ‘선녀와 나무꾼’은 초등학교에서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학령 군에 상관없이 많이 활용된다. 창작이나 교육의 소재로 전래 동화나 고전 문학을 활용할 때는 작품에 내재한 왜곡된 성행동, 성 역할 고정, 성차별, 여성/남성의 대상화, 폭력의 정당화, 남성 중심의 서사, 여성의 수동적 문제 해결 구조 등에 대한 학술적 분석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와 관련된 현행법에 대한 조사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대표적인 몇 작품을 살펴보면, <잠자는 숲속의 공주>, <백설 공주>, <개구리 왕자>는 항거 불능 상태에서의 신체 접촉을 미화하거나 성폭력을 정당화한다. 특히 <백설 공주>는 미모를 중심으로 주인공-악역의 대결 구도를 만들고 예뻐야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외모지상주의를 표면화하고 있으며, 남성의 도움이 없이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여성의 성공은 곧 결혼이라는 등식을 강조한다. 외모지상주의와 결혼 중심의 해피엔딩 서사는 <신데렐라>, <콩쥐팥쥐>, <심청전>에서도 나타난다. 여성의 희생이 도덕적이고 칭찬받는 행위로 그려진 <인어공주>, <심청전>의 젠더 감각 역시 문제성이 짙다. 위계에 의한 폭력이 두드러진 작품으로는 <춘향전>을 들 수 있다. 정절 중심의 여성상이나 남성 권력에 의한 구원이라는 문제도 무시할 수 없지만, 지위와 권력을 이용하여 춘향에게 성적 행위를 강요하는 변학도의 행위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강간・강제추행(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7조)에 해당한다. 이외에도 직권남용(형법 제123조 위반), 불법체포・불법감금(형법 제124조 위반), 뇌물수수(형법 제129조 위반)의 불법을 저질렀으므로 형사처벌 대상이다. 아울러 조선시대 사또는 지금의 시장이나 군수에 해당하는 공무원의 신분이므로 형사처벌과는 별개로 파면 또는 해임의 징계를 면하기 어렵다. <이생규장전>, <금오신화>, <배비장전> 등의 고전 문학에서도 여성 타자화한다거나 수동성을 강조하고 있어 젠더 감수성이 미약하다.

양식적인 부분을 보자. 이머시브 공연 방법으로 선택한 관객의 배심원 토론 과정은 쌍방향의 소통을 시도한다는 측면에서 효과적이고, 어린이 관객이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생각의 다름을 인정한다는 측면에서 교육적이다. 그러나 다수결의 원칙을 적용하여 배심원의 토론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이나 이를 반영하여 판사의 판결과 극의 결론으로 연결하는 것은 유감스럽다. 판사의 판결이 사회적 통념이나 법률적 판단과 충돌할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수용하기 어렵다. 먼저 성(性), 안전(安佺) 등 기본적인 삶의 기술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주제에 대해 다수결의 원칙으로 판단하는 것이 적절한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법이나 원칙이 있는 문제는 결론을 강조하기보다 다양한 관점으로 토론하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데 집중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어린이 연극은 단순히 좋은 공연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서 어린이의 삶과 성장을 함께하는 교육 파트너 역할을 해야 한다. 단순 오락이 아닌 주제와 메시지를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하고, 감상 활동이 교육적 경험이 될 수 있도록 참여 중심의 프로그램도 개발해야 하며, 교육이나 아동 전문가 등과의 협업으로 교육적 효능을 확장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공연의 내용과 양식에 있어 교육적 책임감을 필요한 이유는 어린이에게는 창작자가 모델링의 대상이며, 공연장이 학습 공간이기 때문이다.

 


1)「형법」제31조(교사범) 타인을 교사하여 죄를 범하게 한 자는 죄를 실행한 자와 동일한 형으로 처벌한다.
2)본 내용은 필자가 개발자로 참여하고 서울시교육청에서 발간한 『2017 예술작품 활용 성교육 지도서·워크북』을 참조하였다.
3)제12조(성적 목적을 위한 공공장소 침입행위) 사람이 성적 욕망을 만족시킬 목적으로 「공중위생관리법」제2조 제1항 제3호에 따른 목욕장업의 목욕장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공장소에 침입하거나 같은 장소에서 퇴거의 요구를 받고 응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4)「형법」제329조(절도)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자는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5)「형법」제288조(약취 및 유인) ①사람을 약취 또는 유인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 추행, 간음 또는 유사행위의 목적으로 사람을 약취 또는 유인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6)「형법」제245조(공연음란) 공연히 음란한 행위를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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