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아시아문화전당·옐로밤 <로제타>

글_백승무

 

제목 로제타, 주제 로제타, 등장인물 로제타

공연은 이렇게 시작하고 끝맺는다. “그녀 이름은 로제타, 내 이름은 000. 나는 로제타 역을 연기한다.” 무대 위 여덟 배우 모두가 로제타이다. 한 위대한 인물의 삶을 공감하고 공유하고 전파하기에 더없이 좋은 설정이다. 무대 배우부터 로제타에 감염되었다면, 그 여덟 증상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설정은 제값을 한다. 심지어 한국어를 모르는 두 배우도 문제될 거 없다. 로제타 앓이에 언어는 변수가 아니다. 로제타도 한국어를 몰랐다. 그래서 굳이 로제타를 <로제타>로 표기할 필요도 없다. 로제타를 넘어서는 <로제타>는 없다. 모든 로제타는 모두 <로제타>이다.

 

ⓒ옐로밤

 

알차니까 쉬운 법

로제타는 위인전이다. 인물을 드러내고 발굴하고 전달하는 장르이다. 어떤 위인전은 연표 읊듯 해설조 대사로 범벅이 된다. 어떤 위인전은 ‘위인’은 없고 드라마만 남는다(장르적 문법을 망각한 탓이다). 어떤 위인전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박제된 초상화를 무대에 세워둔다. 로제타는 기억하건대, 훌륭한 위인전이다. 거추장스럽고 따분한 해설도 없고, 드라마를 살리려 인위적으로 꾸며낸 극작법도 없고, 생명력 없는 초상화도 없다.

로제타는 쉽고 친절하다. 현학성도 없고, 겉멋도 없다. 쉬운 언어, 담백한 무대 표현은 상상력 결핍, 유치한 설정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절대 아니다. 연출의 의도를 복잡화하는 난이도 높은 공연은 세련되고 지적으로 보이지만, 관객은 정서적 거리감,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반면, 쉬우면서도 내용과 형식이 알찬 공연은 관객의 마음을 움켜쥘 수 있다. 뒷 것이 로제타가 하는 일이다.

 

ⓒ옐로밤

 

정확성과 명료함

알찬 내용과 형식도 쉬울 수 있다. 로제타에 감염되었다면 가능하다. 그래서 로제타는 목적에 맞는 공연, 수단이 적절한 공연, 콘셉트에 부합하는 공연이다. 그렇다고 쉽고 단순한 구성만 띠는 것은 아니다. 평면적 서사라인과 쉬운 대사 속에서 리듬과 템포, 어조로 다양한 진폭과 흐름을 만들어내면 감동은 온다. 예를 들어, 화상 입은 아기 환자가 죽었을 때, 귀청을 찢을 듯 내지르는 ‘아’ 함성은 데시벨의 높이로 절망의 깊이를 퍼올리는 자극적 기법이다. 남편의 죽음 장면이나 에스더 아기의 죽음, 백신 없이 죽는 아기들을 보면서 무기력과 절망에 빠지는 순간의 묘사도 마찬가지다. 이 장면들은 무대 구성과 언어 표현에 있어서 복잡성과 난해함보다 정확성과 명료함이 더 효과적임을 증빙한다.

 

숨을 아우르는 조화

로제타의 가장 큰 매력은 무대의 조화에 있다. 주연 배우의 ‘신들린 연기’, 가슴을 후벼 파는 뜨거운 대사, 넋을 빼놓는 마법적 서사, 없다. 로제타에는 대사 한 줌, 음악 한 줌, 빛 한 줌의 조화가 있다. 서정성과 서사성의 조화가 있다. 같으면서도 다른 로제타들의 조화가 있다. 예를 들어, 최초의 한글 점자 발명가 로제타를 보라. 위인의 성취를 과시하는 장면이 으레 가지는 박수와 환호는 없다. 대신 안단테, 안단티노가 흐른다. 그러면서도 북받쳐 오르는 환희와 경탄의 분출을 억누르진 않는다. 이 장면은 ‘무대의 알찬 내용과 형식’이 관객과 숨을 아우르는 순간이다. 무대와 객석이 들숨과 날숨으로 어우러질 때, 이 안단테가 온다.

반면, 딸의 죽음 장면은 포르테피아노의 순간이다. 어조는 빠르고 날카롭지만, 죽어가는 딸 아이의 여린 맥박을 앞질러 가지 않는다. 말과 음악과 빛, 그리고 배우의 움직임이 조화를 이룰 때만 이 포르테피아노가 가능하다.

 

ⓒ옐로밤

 

몸이 빛나는 미장센

좋은 무대는 끊임없이 정보를 생산한다. 그 정보는 대사, 움직임, 표정, 제스처, 동선, 시선, 관계, 거리 등이 유기적으로 얽히면서 만들어내는 마찰열이다. 대사 정보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한국연극이 명심할 대목이다. 로제타는 무대를 꽉 채운 동선, 대사에 종속되지 않는 동선, 말보다 더 진지한 의미를 자아내는 동선, 읽기가 아니라 하기를 보여주는 동선, 이합집산의 동선, 죄고 푸는 동선을 선보인다. 배우들의 유연한 몸, 자연스러운 교류, 음악과 조명과의 협업 등이 일궈낸 성과이다.

원형 무대와 육중한 기차 구조물, 거친 철로도 주제를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무대 구성에 크게 기여한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낸다. 지휘자 같은, 연기자 같은, 피아니스트-연출가의 실루엣도 인상적이다. 희곡의 대사 하나하나를 음표로 되살리는 그의 연기-연주는 가끔씩 ‘아름다웠다.’

 

로제타 되기, 로제타 살기

배역을 맡는 것은 배역을 사는 것이다. 연출가는 공연 초반에 관람은 보기가 아니라 체험이라고 말한다. 배우가 로제타가 되면, 관객도 로제타가 된다. 맨 마지막, 천장에서 물이 쏟아진다. 물은 나눔도 구분도 없다. 개별자를 적신 물은 다시 하나로 흐른다. 배우는 배역에 젖고 관객은 연기에 젖어든다. 모두 로제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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