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IS의 새로운 코너 궁금하다. 이 사람입니다. 이 사람일 수도 있고 이 집단일 수도 있고 이 극단일 수도 있습니다. 선정 기준이 뭐냐고요? 없습니다. 그냥 제가 궁금한 사람 혹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저는 남명렬입니다.
궁금하다 이 사람 네 번째 손님은 배우 김윤태입니다. 김윤태 배우는 얼마 전 떼아뜨로 노리의 <바냐아저씨>에서 아스트로프 역을 매력적으로 연기하여 내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지금부터 김윤태 배우에 대한 궁금한 것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글_남명렬(배우)
연기를 한다는 건 깨달음의 과정
배우 김윤태

남명렬(이하 남) 요즘 어떻게 지내요?
김윤태(이하 김) <바냐아저씨> 잘 끝냈고요, 제가 평소에는 공연에 대한 후유증이 별로 없는데 요번에는 후유증이 조금 있네요. 약간 쓸쓸함도 느끼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지방 공연 하나 할 게 있어서 그거 연습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남 이번 <바냐아저씨>가 유독 후유증이 있는 이유가 뭘까요?
김 작품 준비 기간이 길었던 부분이 있고요. 이항나 연출을 비롯해 같이 참여한 배우들과 스토리가 많이 쌓였던 거 같아요. 그렇게 쌓인 스토리가 공연에 진하게 묻어난 공연을 하고 나니 후유증이 좀 있네요.
남 그 스토리 한 가지만 들려줄래요?
김 테이블 리딩을 이항나 연출 집에서 했었는데요. 주요 배우 3명 혹은 4명이 모여 나누었던 이야기들,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느낌들 이런 것들이 되게 인상 깊게 남아있어요.
남 공연한 극장 TINC도 특별한 공간이잖아요. 보통의 극장과는 다른 새로운 공간이데 공간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윤태 배우가 아스트로프 역을 했는데 윤태 배우가 무대에서 연기할 때 그리고 관객 속에서 앉아 있을 때 존재 자체에서 나오는 아우라가 대단했어요. 연기를 한 입장에서는 어땠어요?
김 되게 행복했어요. 과정이 힘들기도 했지만 서로 자신들의 욕심을 억제하면서 잘 조정해 나간 거 같아요. 그래서인지 이번 <바냐아저씨>는 세월이 많이 흘러야만 잊힐 것 같은 작품입니다.
남 윤태 배우가 연기한 아스트로프로 좁혀보죠. 윤태 배우는 아스트로프를 어떤 인물로 구축하고 싶었나요.

김 저는 연기를 할 때 제가 어떤 거를 잘해 낼 수 있을까 먼저 생각합니다. 대본에 쓰인 인물과 나의 어떤 모습이 잘 어울릴까를 생각하면서 아스트로프가 쓸쓸함이 묻어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바냐아저씨>라는 작품이 널리 알려진 유명한 작품이지만 연습 이전까지 <바냐아저씨>에 대해서 깊이 알고 있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좀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전 아스트로프가 염세적 인물로 느껴졌어요. 그 염세성이 그를 쓸쓸하게 보이게 했고 쓸쓸함을 감추기 위한 반대의 욕구를 더 드러내면 쓸쓸함이 강화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남 아스트로프는 의사이면서 환경운동가 같은 발언도 많이 하는 인텔리로 나오잖아요. 인물의 어디에서 쓸쓸함을 발견한 걸까요?
김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계속 어딘가를 옮겨 다니면서 사람들을 치료하고 치료하다 보면 낫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이 죽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일들을 계속 겪다 보면 굉장히 외로울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결혼도 안 했고. 그리고 대본을 보면 사람들이 아스트로프를 은근히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보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여기에 끼지도 못하고 저기에 끼지도 못하는 존재적 쓸쓸함이 있는 인물로 보였어요.
남 세레브랴코프 교수, 교수님의 젊은 부인 옐레나 그리고 옐레나를 연모하는 바냐, 바냐만큼은 아니지만 어쨌든 옐레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아스트로프. 아스트로프는 바냐가 옐레나를 연모하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옐레나와 키스를 나눕니다. 더구나 바냐에게 들키기까지 합니다. 옐레나와 이런 애정행각을 벌이는 아스트로프의 심리는 뭘까요?
김 인간에게는 일탈을 꿈꾸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또한 삶을 살면서 사회 규범 속 지켜야 할 약속들을 지키며 살려고 노력하지만 가끔은 나 자신이 혼란스러워지기도 하고 그 수위가 올라가면 모든 걸 파괴해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잖아요. 그런 정서가 아니었을까 하고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남 내재적인 일탈을 꿈꾸는 것들이 잠깐 분출된 것 정도?
김 근데 만약에 옐레나가 저를 받아들였더라면 그것이 잠깐이었을까? 어쩌면 좀 더 긴 시간이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남 뭔가 제한 조건이 없었다면 더 길게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김 그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번 해봅니다.
남 이번 <바냐아저씨>를 공연한 극장이 TINC. 즉, ‘This is not Church’ 잖아요. 옛날에 교회였던 장소를 공연장, 전시장 등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쓰는 곳인데 일반적인 극장이라는 공간하고 완전히 다른 곳이죠. 이런 새로운 공간에서 공연된 <바냐아저씨>가 아주 신선했어요. 물론 이런 공간을 염두에 두고 쓰고, 그리고 공연한 작품을 여럿 봤지만 <바냐아저씨>는 경우가 다릅니다. 전통적 공연 공간을 염두에 두고 썼을 뿐 아니라 고전 작품이니까 작품을 변주하는데 적잖은 저항도 있을 테고 말입니다. 직접 작품에 참여한 배우로서는 어땠어요?
김 걱정됐지요. 첫날 들어가서 소리를 내보니까 소리가 많이 울리더라고요. 아이고 어떡하지? 연극은 말을 잘 전달해 주어야 관객들이 따라오는데 소리가 울리니까 되게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둘째 날 소리를 내보니 좀 나아지는 걸 느꼈어요. 노하우가 생긴 거죠. ‘아, 우리가 좀 더 잘 해낼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고요. 막상 공연을 해보니까 마치 마당놀이처럼 객석들과의 배우와의 경계선이 무너진 상태에서 재밌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남 배우와 관객의 경계선이 무너진 상태라고 했는데 실제로 교회의 장의자 몇 개가 객석으로 무대 3면을 둘러싸고 있고, 장의자 뒤에 1인용 의자들이 객석으로 배치가 돼 있는 그런 무대 환경이었는데 배우들은 관객이 입장할 때도 관객을 자유롭게 맞이하다가 연극이 시작되잖아요. 공연할 때는 배우가 관객과 함께 장의자나 1인용 의자에 앉아 있다가 무대로 나가 연기하다가 장면이 끝나면 의자로 돌아오고 필요할 때면 객석에 앉아 리액션을 하기도 하고요. 이런 형식으로 무대를 구성하니까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이 바냐가 사는 마을의 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저 연극을 관람하는 삼자가 아닌 시공간을 같이하는 동료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김
연습 초기에는 제가 시선이 보수적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런 식으로 하면 어떻게 연기를 집중해서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부정적 의견을 표시하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이항나 연출과 연습중 1,2막을 중간발표식으로 관객들을 모셔놓고 시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관객들 반응이 좋았었거든요. 그리고 이런 컨셉으로 하려는 명확한 이유를 가지고 연출이 설득을 하고 경험을 해보니 믿음이 생기더라고요. 믿음을 갖고 연기를 하니까 관객을 끌어들이는 힘도 생겼고요. 보통 <바냐아저씨>는 1, 2막이 지루하고 심심하다고 하는데 관객 입장 때부터 배우들이 관객을 맞이하고 긴장 없이 공연을 시작하니까 심심하던 1, 2막이 생기가 돌고 재밌어지더라고요. 보너스 같았어요. 물론 저는 첫장면의 막중함 때문에 긴장을 하긴 했습니다만요. 하하하.
남 맞아요. 분명 연극인데 그냥 우리 마을 사람들 얘기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아, 이게 우리의 얘기구나. 19세기 후반 러시아 사람들의 얘기가 아니라 2025년도에 지금 우리 마을 사람들 얘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참 좋았어요.
김 이항나 연출이 정확히 맥을 짚고 저희를 데리고 가준 것 같아요.
남 공연이 평일, 주말에 관계 없이 저녁 6시 공연이더라고요. 이유가 뭘까 하고 생각했는데 공연을 보면서 무릎을 탁! 쳤어요. 아, 이유가 있었구나. 어디서 느꼈냐면, 창문 커튼 이용하는 걸 보고 느꼈어요. 창문 커튼을 정말 잘 이용했더라고요. 오후 6시면 아직 밖이 밝을 때죠. 시작할 때는 창문 커튼을 끝까지 다 올려놓아 아직 낮이라는 걸 알려주고 어느 시점이 되면 한쪽 벽에 커튼은 다 내리고, 어둠이 살짝 깔리기 시작하면 두세 개의 창문 커튼을 반쯤만 내려서 밖의 어둠을 보여주죠. 시간의 흐름을 실제로 어둠이 깔리는 밖과 함께 인식하게 하는 영리한 무대 활용이었어요. TINC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잖아요.
김 그 부분도 역시나 이항나 연출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6시에 공연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직장인들은 공연에 오기 힘들지 않겠느냐 했더니 관객이 좀 적더라도 그 시간에 해야 한다고 해요. 그 장소에서 해 지는 시간까지 정확하게 계산을 했던 거죠. 일반적인 극장에서 느낄 수 없는 그런 자연 현상들을 체감하게 해주는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남 출연 인원이 8명이죠? 배우들이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며 연기를 할 텐데 배우 중에 나에게 영향를 많이 미쳤다든지 어떤 배우와는 합을 맞추기가 힘들었다든지 하는 경우가 있었나요?
김 저희 배우들이 스토리가 좀 많아 갖고…
남 스토리가 많다고만 하고 말은 안 하네요. 재밌는 스토리 한두 가지만 얘기해 봐요. 힘들었던 거든지 좋았던 거든지.

김 일단은 바냐 역할을 한 홍서백이란 친구를 칭찬하고 싶어요. 서백이란 친구가 매체 연기만 하고 무대 연기를 많이 안 해본 친구라서 걷는 것에서부터 장대사를 치는 것까지 처음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정말 많은 걸 인내하고 견뎌냈어요. 그 친구가 연습 시간을 견뎌온 시간은 마치 바냐가 인내하고 견뎌내는 그런 시간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견뎌내는 것, 더 높은 차원의 연기를 해내고야 마는 것, 과정을 같이한 저로서는 짠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어요.
남 내가 그 공연을 보고 한 줄 적어 놓은 게 있는데요, ‘지금까지 본 <바냐아저씨> 중에 가장 유쾌하고 가장 슬픈 <바냐아저씨>이다’ 라고 적어놨어요. 저는 그렇게 느꼈거든요. 슬프긴 한데 정말 유쾌했어요. 자기 작품을 코메디라고 말한 체홉 선생의 말처럼 연극의 상황들은 참으로 유쾌하고 아이러니와 유머가 넘치는데 바냐의 입장을 이입하고 나면 바냐가 참으로 슬픈 거예요. 한 슬픈 인간의 전형 이런 것들을 보게 돼서 너무 기뻤어요.
김 감사합니다. 최고의 칭찬 같네요.
남 그럼 <바냐아저씨> 얘기는 이 정도 하고, 사실 김윤태 배우가 저한테 각인 된 공연이 있었어요. 몇 년 전 동숭무대 소극장에서 한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인데요, 그전에도 윤태 배우를 알고는 있었지만 뚜렸한 기억으로 알고 있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 공연을 보면서 아, 이런 멋진 배우가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불편은 너와의 사정거리> 얘기 좀 해볼까요? 그 공연을 제작한 집단 이름이 뭐죠?
김 지속 가능한 공연을 위한 협동조합.
남 지속 가능한 공연을 위한 협동조합. 줄여서 지공연. 지공연하고 꽤 여러 편 작업 했더라고요.
김 네, 맞습니다.
남 지공연과는 어떤 인연이 있는 거예요.
김 제가 극단 반 단원인데요, 극단 반의 박장렬 연출이 지공연을 설립했는데 초창기 멤버로 지공연에 가입해서 6작품 정도 했습니다. 첫 작품은 <원맨쇼>였고요. 지공연 설립 취지가 꾸준히 무대에 설 수 있는 배우들임에도 불구하고 40대가 넘어서기 시작하면 배우들의 무대 기회가 조금씩 줄어드는 게 안타까워서 지속적으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자에서 시작한 거 거든요. 저는 지공연에서 꽤 혜택을 많이 받은 배우 중의 한 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두 번째 작품이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였는데 그때 정범철 연출이 제게 주인공 역을 맡게 해줬죠. 사실은 제가 그 역할을 하고 싶다고 손들었습니다. 첫 미팅을 하고 “이 인물 내 정서하고 맞는데? 나 이거 하고 싶어요. 나 이거 시켜주면 안 돼요?”하고 말했습니다.
남 하고 싶은 배역 있을 때는 먼저 손드는 도발적인 성향도 있군요.
김 예, 제가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생각이 들면 그런 배역에 대한 욕심이 있습니다.
남 저하고는 완전히 다른 성향이네요. 저는 마음에만 담고 있고 과감히 표현하지 못하는 성격인데 부럽네요. 손드는 사람을 보면 쟤는 무슨 근자감으로 손을 드는 거야 생각하면서도 진짜 속마음은 표현하는 그 모습을 부러워하고 있었던 거죠.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를 공연한 지가 꽤 됐죠?

김 꽤 됐죠. 코로나 시기니까.
남 그게 2020년이니까 5년 전이잖아요. 사실 작품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아요. 하지만 윤태 배우의 열연은 기억나요. 그 공연을 보고, 제가 적어 놓은 코멘트가 뭐였냐면 ‘불편함이 이어지다 최후의 반전과 함께 무릎이 탁! 김윤태의 열연이 한몫’이었어요. 그러니까 공연 내용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김윤태 배우는 기억이 아주 잘 나는 그런 공연이었던 거죠. 그 후로 윤태 배우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아쉬움도 좀 있었어요. 그게 뭐냐면 좋은 신체, 잘생긴 얼굴, 연극에 임하는 진지한 자세 등 좋은 조건이 많은데 무대 활동이 폭넓지 않아 보이는 거예요. 그 이유가 뭘까요.
김 아마 제가 연극계에서 아는 분이 많지 않은 것이 결정적인 것 같고 또 하나는 과거에 제가 고집이 센 부분이 꽤 있었습니다. 고집이 세다 보니까 제 주장을 강하게 하고 그러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한테 안 해도 될 말을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너무 솔직함은 상대방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죠. 그리고 과연 누굴 위해 그런 말을 하는가 깊게 생각도 해보게 됐구요. 작업을 하면서 그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고민도 하고 고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어요. 제가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가 ‘나이를 먹으면 고쳐지지 않는다’인데요,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인식을 하면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잘 해보겠다는 욕심이 구성원을 불편하게 했던 부분이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많이 좋아졌고 참아낼 줄 아는 힘이 생겼습니다. 이번 작업하면서 더욱더 느꼈습니다.
남 연극이라는 것은 모여서 같이 하는 작업이잖아요. 배우 일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는 것들이 두 가지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첫째, 배역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 둘째 타인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은 때인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 나가겠지만 두 번째는 혼자 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서 난감할 때가 많거든요. 그러니까 과거에 두 번째 요인의 제공자가 될 때가 많았다는 거예요?
김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았을까 싶어요.
남 자주?
김 자주는 아니고 조금. 그래서 저와 성향이 맞는 사람들은 좋은 에너지가 나고 맞지 않는 사람들은 조금 버거워하는 호불호가 확실히 있더라고요. 그게 늘 빈번하지는 않았지만요. 근데 제 성향이 유쾌하기도 하고 그래서 잘 풀어가려고 마음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어느 정도 조절할 줄 알게 됐습니다.
남 지금 얘기를 들어보면 나는 더한 것 같은데. 나도 굉장히 예민한 편이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주장도 쎄게하고 상처 주는 말도 많이 했던 시절이 있었어요. 지금은 덜하지만.
김 아, 또 하나는 연기하면서도 돈은 좀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래서 연극 이외의 것들에도 시간을 많이 썼어요. 그게 무대 기회가 적었던 이유 중 하나인 것 같기도 하고요. 연극 게런티로 생계를 유지하는 게 어려운 것은 현실이잖아요. 배우이지만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의 책임도 회피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남 윤태 배우의 필모를 보니까 영화, 드라마 필모는 꽤 많더라고요. 일찍부터 영화나 드라마에 그 출연을 했고 거기에 비해 연극 이력이 적으니까 ‘윤태 배우는 매체 연기에 관심이 많은 배우구나’하고 연극계에서 인식하니까 연극 캐스팅 제안이 적었던 건 아닌가요?
김 제가 드라마나 영화 같은 걸 많이 했을 때는 30대 초반에서 40대 초중반이었고 그 후는 드라마나 영화도 그렇게 많이 하진 못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연극을 많이 하게 됐고 연극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만큼 돈을 절대 주진 못하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줄 수 없는 크나큰 삶의 매력을 연극에서 준다라는 거를 깨달았어요. 그 깨달음의 결정적 계기가 <불편한 너의 사정거리>였고요. 그 작품이 저에게 굉장히 큰 감동을 줬고 감사함을 줬어요. 저를 성장하게 해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뒤로도 계속 진화하려고 맘먹었는데 작품이 없었습니다. 하하하
남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많은 제안들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하하하. 찾아보니까 좀 특이한 이력이 하나 있더라고요. 서울예술단 단원이었어요?
김 네. 서울예전 졸업하고 바로 서울예술단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뮤지컬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뮤지컬보다는 일반 연기를 좋아하는데 고향이 인천이니까 서울에서 하숙하며 연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 끝에 서울예술단에 들어갔어요. 거기서 5년 정도 근무했는데요, 그럼에도 뮤지컬은 제게 감동을 주는 장르가 아니었어요. 지금은 생각이 다르지만 그때에는 작품의 깊이감이랄까, 질감이 사실적인 얘기 같지가 않다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서울예술단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연극배우로 살아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영화배우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서울예술단을 나왔습니다. 리얼한 연기를 추구하는 저에게 영화가 하나의 통로로 보였거든요.
남 연기하면서 돈도 안정적으로 버는 곳은 서울예술단만큼 좋은 곳이 없었을 텐데요?
김 그렇죠.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현실과의 충돌이 일어나는 거죠. 돈은 벌 수 있지만 여기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는 없겠구나 하고요. 거기에다 결정적으로 외부에서 하는 작품을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이제는 내가 나가야 될 때가 됐구나 생각했어요.
남 예술단에 있으면서도 외부 작업을 하는 게 가능했나 봐요? 그럼 예술단에 적을 두고 외부 작업을 하지 왜 나왔을까?
김 제약도 심했었고 젊었을 때니까 무엇에든 올인을 해야한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남 혹시 지금은 후회하지 않아요?
김 후회는 했었습니다. 후회는 했고요….
남 생활이 어려울 때?
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나왔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여기저기 부닥치면서 얻어지는 자양분들이 꽤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삶이 녹록지 않다를 깨닫는 것도요. 하하하.
남 김윤태 배우가 대중들한테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화제의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69번 참가자죠? 거기에 출연한 많은 배우들이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는데요, 윤태 배우도 그랬었죠? 어땠어요? 갑자기 대중들에게 확 알려졌을 때요.
김 사실 그렇게 확 느껴지지 못했어요. 코로나 시기였기 때문에 다들 마스크를 쓰고 다녔으니까요. 배우로서의 인지도를 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마스크를 벗은 지금은 기억이 희미해졌고, 뭐 그렇네요.
남 69번 참가자가 삶이 굉장히 힘든 되게 불쌍한 인물로 표현돼 있잖아요. 원래 그렇게 불쌍한 사람이에요? 윤태 배우가?
김 제 안에 정서는 그런 게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가족분들이 다들 조금 일찍 돌아가셨고요. 그리고 돌아가시는 것들을 제가 다 지켜봤기 때문에 저 안에는 슬픔이 스며있는 것 같아요, 확실히. 제가 어렸을 때 저의 목표는 ‘어떻게든 50살까지만 살자’였어요.
남 가족분들이 일찍 돌아가셨나 보다.
김 어머니가 제가 초등학교 때 돌아가셨고 둘째어머니도 계셨는데 둘째어머니도 제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울 때 즈음에 돌아가셨고 또 몇 년 전에 친형이 돌아가셨습니다. 가족력이 있어요. 제가 살면서 그런 것들을 바라보고 수발을 하고 그러다 보니까 많이 힘들었어요. 그리고 저의 몸 상태도 그렇게 뭐 좋진 않았어요. 저도 10년 전에 암에 걸렸었고 아주 초기에 발견돼서 지금은 괜찮지만 지금도 매년 대장내시경 검사를 해요. 암에 대한 두려움이 베이스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동안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남 가족의 죽음을 목도 하는 것들이 삶 자체를 아프고 슬프게 하는 환경이었군요.
김 그래서 아마 <불편한 너의 사정거리> 때도 그렇고 이번 아스트로프를 연기할 때도 그렇고 눈물이 자연스럽게 흐른 것 같아요. 쓸쓸한 눈물이 그냥 흐르더라고요.
남 <오징어 게임>이 화제가 됐고 거기에 나온 많은 사람들이 화재 인물로 떠올랐잖아요. 그리고 그걸 계기로 활발한 활동으로 이어가는 사람도 여럿 있고요. 윤태 배우는 상대적으로 조용한데 그런 사람들을 볼 때 좀 부럽고 그렇진 않나요?
김 그렇죠? 돌아보면 저한테도 그런 기회가 몇 번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는 그 발판을 이용해서 도약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것조차 인생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꾸준히 작업하면서 감사하게 살고 있습니다. 기회는 언제든 있기 마련이다, 아직은 때가 아닐 수도 있다 하고 생각합니다.
남 또 다른 기회가 언젠가는 있기 마련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너무 유명한 게 꼭 행복한 것은 아닐 거예요. 물론 매체 작업을 꽤 했는데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면 속상하죠. 내가 그렇게 존재감이 없는 연기를 했나? 하는 자책감도 들고요. 매체 연기든 무대 연기든 인물에게 접근을 어떤 스타일로 하나요.
김 일단 구체적인 설정을 하고 시작하진 않고요. 대본을 읽으면서 어떤 부분이 나와 맞는지를 찾습니다. 배역 속 인물의 일상과 나의 일상이 맞아떨어지는 부분을 찾아서 나에게 이입시키는 방식이라고 할까요? 구체적으로 정해놓지 않은 상태로 천천히 스며들게 하려고 합니다.
남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의 선입견을 가지지 않는다.
김 제가 그렇게 뛰어난 분석력을 가진 것 같진 않거든요. 하하하.
남 왜 그렇게 생각해요?
김 대본을 처음 읽으면 연기할 인물이 딱 그려진다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렇지 않아요. 연습하며 인물의 느낌을 쌓아가는 느낌을 찾아가는 스타일이예요.
남 그래도 처음부터 느낌이 팍! 온 경우도 있지 않나요? 연극에서든 매체에서든.

김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가 그랬어요. 첫 리딩 후 내가 하고 싶다, 잘 표현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캐스팅된 후 연습 중에 갑자기 끊임없이 눈물이 나는 거예요, 저도 모르게 이렇게 감정이 막 치솟기도 하고요. 그때 그런 것들을 거부하지 않고 그냥 놔둬 봤어요. 장면 연습이 끝나고 나니까 부끄러움이 밀려오더라고요. 동료 배우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연출은 어떻게 생각할까, 생각이 들면서 말이죠. 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소중해요. 그런 순간들을 만나기 위해 선입견을 최대한 없는 상태에서 인물을 만나려고 노력합니다.
남 그렇군요. 자, 지금부터는 개인적인 얘기를 나눠보죠. 학교는 어디 나왔어요?
김 저는 대학교를 두 군데 나왔습니다. 인하공전하고 서울예대. 인하공전은 조선과. 배 만드는 거. 어쩌면 지금 거제도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죠.
남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전공이었는데 그걸 걷어차고 서울예대를 왜 다시 들어갔나요?
김 연기를 하고 싶었어요. 부모님이 원하시는 것도 있고 해서 인하공전을 들어갔지만 일단 졸업은 했으니 내가 원하는 것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서울예대에 다시 들어갔습니다.
남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거 같은데 그 욕망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요?
김 어렸을 때 액션 영화를 좋아해서 액션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그때 홍콩 무술영화가 인기가 많았어요. 성룡, 홍금보 같은 배우가 나오는 거. 그래서 액션 배우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여러 가지 무술과 운동도 많이 했고요. 지금도 몸은 잘 씁니다. 어쨌든 배우를 하려니 연기를 배워야 해서 연기 학원을 등록했는데 학원에서 극단 반의 박장렬 연출을 연기 선생님으로 만났어요. 그 인연으로 박장렬 연출이 연출한 아동극에 많이 출연했어요.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같은 작품을요.
남 액션 배우가 되고 싶은 꿈 꿈을 이루기 위해서 일단 서울예대에 들어갔는데 거기에서 생활은 어땠어요?
김 제가 몸을 잘 쓴다고 했잖아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서울예대 들어가서 오리엔테이션 할 때 장기 자랑 같은 거 하거든요? 그때 제가 어떤 춤을 췄는데 상을 휩쓸었어요. 그래서 교수님들도 학생들도 물건 하나 들어왔다고 저한테 엄청 기대를 했나 봐요. 키 크고 잘 생기고 몸 잘 쓰고 연기 잘하는 친구가 들어왔다고요. 그런데 막상 연기를 시켜보니 엉뚱한 딴 소리만 하고 있어서 교수님들이 엄청 실망했다고 하더라고요. 하하하. 그럼에도 운은 좋아서 졸업하며 서울예술단에 어렵지 않게 입단했고 뮤지컬배우로 활동은 했지만 연기가 많이 부족하다는 걸 깨닿기도 했어요. 조광화 연출과 <남자충동> 그리고 뮤지컬 몇 편에도 출연할 기회가 있었고요. 생각해 보면 저한테 기회가 일찍 찾아왔는데 그 기회를 잡을만한 무기가 아직 준비가 안 되었던 것 아닌가 싶어요. 열심히는 했지만 그걸로는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연극을 좀 더 열심히 했어요.
남 좀 전에 박장렬 연출과 인연을 얘기했고 극단 반 단원인데 정작 극단 반의 작품은 그리 많지 않네요.
김 네. 박장렬 연출이 극단에서 추구하는 작품과 제가 결이 잘 맞지 않았던 부분도 있고요, 지금은 새로 김지은 대표가 극단을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작업이 줄어든 측면이 있습니다. 박장렬 연출이 만들었지만 운영 주체가 다르고 그래도 저와 잘 어울릴 법한 작품을 많이 하는 지공연과 작업이 오히려 더 많습니다. 작품하는 거와는 관계없이 박장렬 연출을 참 좋아하고요, 지금도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많은 부분 저를 이끌어 주신 분이에요.
남 지금 배우로서의 제일 큰 관심사는 뭐예요?

김 내가 나도 모르는 어떤 색깔의 연기를 더 할 수 있을까. 또 어떤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
남 어떻게 하면 돈도 많이 벌 수 있을까. 하하하.
김 물론 그것도 관심 있고요. 하하하.
남 신체 조건도 좋고 몸도 잘 쓰고 연기력과 상상력도 무르익은 윤태 배우인데 거기에 비해 연출들이 덜 주목한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런 점이 속상하지는 않나요?
김 속상해요. 속상하고. 아, 제가 술을 안 먹거든요. 술자리에 잘 안 가요. 물론 그게 전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앞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겠다는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연극 보러 많이 안 다니는 게 영향이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도 하고요.
남 지금까지의 작품 중에서 윤태 배우가 가장 성공적으로 해낸 작품이 생각하는 작품은 어떤 건가요.
김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 그리고 이번에 공연한 <바냐아저씨>요. 지공연 창립 작품인 <원맨쇼>나 작년에 공연했던 <내 웨딩케잌은 누가 먹어버렸나>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누란 누란> 같은 작품들도 참 애정이 가는 작품입니다.
남그러면 열심히 노력은 했지만 실패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하는 작품은요?
김 음…. 제가 참 긍정적인가 봐요. 실패한 작품이 있었겠지만 생각이 안 나네요. 다 잊어버렸나 봐요.
남 실패한 작품은 바로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하나 보죠?
김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하하하.
남 내가 이걸 물어본 이유는 한 배우를 성장시키는 게 성공한 작품일 수도 있지만 실패한 작품이 배우를 성장하게 하기도 하거든요. 실패한 이유를 되짚어 보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니까요. 깨달음을 주기도 하고요. 그런데 실패한 작품이 기억이 안 난다고 하니 이 질문은 실패네요. 하하하. 그러면은 질문을 좀 바꿔서, 연기를 해오면서 나의 연기 생활을 전환 시켜 준 작품이라든지, 연기의 지평을 넓혀 준 작품은 있나요?
김 그건 역시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예요. 한 시간짜리 공연이었는데 그 안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도전해 볼 수 있었어요. 정범철 연출도 많이 기다리며 제게 여지를 주기도 했고요.
남 지금까지 중에 인생작을 꼽으라고 하면 당연히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겠네요? 앞으로 또 그런 작품을 만나길 기대하겠죠.
김 꿈꾸긴 하지만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또 온다면 너무나 행운일 거 같아요. 한편 이번 <바냐아저씨>도 저에게 큰 울림을 줬어요. 작품이 나를 이렇게 변화시킬 수도 있구나를 알았거든요.
남 저는 제일 듣기 좋은 말이 연극이 끝나고 지인 혹은 관객분들이 지금까지 중에 이번 공연에서의 연기가 제일 좋았다는 말이예요. 그만큼 제가 성장했다는 게 보였다는 거잖아요. 윤태 배우도 새 작품을 할 때마다 이번 작품에서 연기가 젤 좋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김 처음에 저의 목표가 50살까지 사는 거라고 했잖아요. 이제 50이 넘었으니 60살까지는 살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사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해요. 감사하기도 하고요. 아시다시피 배우는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야 하잖아요? 제가 선택받는 그 순간이 늘 감사하고 감사해요. 선택받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선택받는 것이 너무나 귀중한 거죠.
남 연기하는 거 말고 윤태 배우의 일상은 어때요?
김 운동하고 강연 준비하고…
남 강연? 어떤 강연.
김 제가 말하는 걸 좋아해서 배우로서 경험했던 것을 일반인한테 얘기해 주는 거예요. 세바시 대학이라고 아시죠. 약 15분짜리 강연입니다. 제가 돈 버는 것에도 관심이 많다고 했잖아요? 작년에 발렛파킹 일도 좀 했는데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 말고 당신만이 할 수 있는 걸 해봐라. 그래서 평소에 해보고 싶은 것이기도 해서 강연을 시작했어요.
남 세바시가 뭐의 약자죠?
김 세상을 바꾸는 시간.
남 아, 세상을 바꾸는 시간. TV에서 하는 거예요? 아니면 YouTube?
김 YouTube요. 김창옥 교수 이런 분들이 거기서 많이 성장했어요.
남 그렇군요.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네요.

김 무대에 서는 것과 강연을 하는 것이 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강연도 연기와 비슷해요. 사람들한테 마음을 전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설득하는 것이요. 제가 배우다 보니까 강연도 좀 드라마틱하게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남 청중들을 재미있게도 해줘야 하고 메시지도 있어야 하고, 준비하는 게 쉽지는 않겠다.
김 세상에는 참 많은 일이 있잖아요. 처음에는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저 자신에게도 참 재미있는 일이예요. 강연을 하면서 나를 돌아보기도 하고요.
남 나도 세바시에 청중으로 참가해서 한번 들어보고 싶다.
김 YouTube 채널 알려드릴게요. 제가 강연했던 거 링크도 보내드리고요. 하하하.
남 좋아요. 그리고 여기에도 YouTube 강연영상 공개하시죠.
김 https://www.youtube.com/watch?v=n3VOPJz6vlc 여기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남 좀 진부한 질문이긴 한데,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배역이 있나요?
김 특정 배역을 얘기하기보다는 무대에서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선배님이 했던 <라스트 세션>에서 프로이트 역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제가 그다지 창의적인 사람은 못 되지만 선배님들의 발걸음을 보면서 열심히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남 오늘 긴 시간 윤태 배우와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윤태 배우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일부나마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기쁩니다. 앞으로 윤태 배우의 행보가 정말 멋진 배우로서의 행보가 되길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못한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김 아내한테 항상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가계의 많은 부분을 책임져주고 있고 컵 안의 삶과 같이 저의 좁은 삶을 컵 밖으로 끄집어내서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게 아내거든요. 이런 사람을 만난 것은 제게 정말 행운이예요.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남 그래요. 앞으로의 윤태 배우를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김 저도 선배님을 응원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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