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즈 베르탱 – 젊은 여성 작곡가의 위대한 도전

글_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연출가(총체극단 ‘여집합’), 클래식 연주회 기획가

 

 

여성 작곡가에 관한 평가가 박했던 시대, 험준한 파우스트 정복에 도전한 두 프랑스 여성 작곡가가 있었다.

스물다섯 살 루이즈 베르탱(Louise Bertin;1805~1877)과 스무 살 릴리 불랑제(Lili Boulanger; 1893~1918)는 소규모 편성의 실내악곡, 합창곡, 관현악곡도 아닌, 연주 인원만 백 명이 훌쩍 넘는 오페라와 칸타타를 완성했다. 매우 놀라운 업적이 아닐 수 없지만, 안타깝게도 두 작곡가의 이름은 물론 작품들도 거의 잊혔다. 하지만, 19세기와 20세기 초반 여성 작곡가가 바라본 남성 중심의 거대 파우스트와 이를 모조리 울림으로 감싸는 음악적 연출은 살펴볼 가치가 있는 일이다. 먼저, 모든 여성 작곡가의 대선배격인 루이즈 베르탱의 오페라 ‘Fausto’를 살펴보자.

 

 

루이즈 베르탱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소아마비로 하반신 장애가 있었다. 유력한 언론인 아버지 덕분에 당시 유력했던 예술계, 문학계 인사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했고, 많은 예술적 영감을 받게 된다. 뛰어난 음악 선생인 안톤 라이하에게 작곡법을 배운 점, 친구가 된 빅토르 위고가 역작 ‘노트르담 드 파리’의 음악화를 허락한 점, 음악계의 총아 베를리오즈가 음악적, 연극적 도움을 줬다는 점만 보아도 그녀가 당시 파리 문화계에 뻗치고 있던 인맥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1830년에 완성된 오페라 ‘Fausto’는 그녀가 21살 때부터 이탈리아어로 대본을 써서 완성한 opera semiseria(심각한 내용을 다루는 opera seria보다는 덜 심각한 오페라 형식)다. 1831년, 무려 5년에 걸쳐 완성된 베르탱의 오페라 파우스토는 겨우 초연을 올리지만, 고작 3회 공연이라는 쓰라린 패배를 맛보게 된다.

 

 

 이 오페라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자 동시에 문제가 될 만한 요소는 각색과 음악적 양식이다. 

오페라 대본은 파우스트 1부에서 사랑 이야기만 추출한 각색이다. 늙은 학자의 고뇌와 철학은 묻히고, 젊고 낭만이 넘치는 사랑꾼 파우스트만 부각된다. 그레트헨에게 이탈리아어로 세레나데를 부르는 파우스트는 부드러운 미소년 그 자체다. (선율이 전체적으로 매끄러워서 메피스토펠레스마저 매혹적인 야성남이 되는 지경이다) 무릇, 사랑 이야기에는 가련한 여자 주인공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왕자님이 등장해야 한다. 20대 초반의 베르탱은 그것을 노렸다. 그레트헨은 내적 갈등과 극복 없이, 의존적이기만 한 약자로 연출된다. 파우스트는 지나치게 영웅적이며, 그레트헨을 향한 사랑으로 머릿속이 꽉 찬 매우 단순한 인물이 되어 버렸다. 가장 어처구니가 없는 지점은 파우스트가 연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결말이다. 이 정도면 당시 유행하던 연애 소설이나, 통속 오페라에서 주인공 남녀 이름만 괴테에서 따온 수준이다.

베르탱은 규격화된 이탈리아 오페라 형식 위에 매우 다양한 음악적 양식을 올렸는데, 너무 뒤죽박죽이 되었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발랄함, 프랑스 음악의 우아함, 독일 작곡법의 견고함이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고급 레스토랑에 앉아서, 파스타와 마카롱과 소시지를 비빔밥처럼 섞어 먹는 느낌이다. 만약, 베르탱이 파우스트의 내적 갈등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음악 양식을 섞었다면, 정말 시대를 앞서간 음악적 연출일 것이다. 하지만 그랬을 확률은 극히 낮다. 미숙한 20대 작곡가의 의욕 과잉이다. 아마도 베르탱은 집안의 재력으로 큰 극장에 올릴 게 확실한 첫 작품에 알고 있던 음악 재료를 모조리 넣었을 것이다.

 

 

유력 신문사의 편집장이었던 아버지의 뒷배 때문에, 평론가들은 베르탱의 ‘파우스토’에 혹평을 삼가고 작곡가가 여성이라는 점과 대담한 시도라는 점만 강조했다. 심기일전한 베르탱은 괴테에 필적하는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노르드담 드 파리’ 음악화에 전념한다. 1836년, 위고가 직접 각색까지 해준 오페라 ‘라 에스메랄다’가 왕립 음악 아카데미에 오르지만 처참하게 실패한다. 두 번의 큰 실패에 크게 좌절한 베르탱은 오페라를 깨끗이 포기하고 실내악곡과 피아노곡에 전념하게 된다.

 

 

이후 작곡가 ‘루이즈 베르탱’이란 이름과 오페라 ‘파우스토’는 희미해졌다. 단지, ‘19세기 파리에서 오페라를 올린 최초의 여성 작곡가’, ‘빅토르 위고와 직접 작업한 유일한 작곡가’라는 타이틀만 남았는데, ‘여성’과 ‘빅토르 위고’라는 단어 없이는 홀로 설 수 없는 애매한 타이틀들이다. 하지만, 파우스트를 원작으로 한 최초의 프랑스 작곡가’라는 타이틀은 꼭 기억하자. 거의 마흔 살의 구노가 오페라 파우스트를 올린 것이 1859년이다. 이보다 28년 전인 1831년, 스물다섯 살 작곡가가 파우스트에 과감하게 부딪혔다. 그녀의 용감한 시도는 파우스트 오페라의 첫 거름이 되었고,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로 화려한 결실을 보게 된다.

 

 

다행히 작년에 프랑스의 고음악 전문가, 하프시코드 연주자이자 지휘자인 크리스토퍼 루세가 먼지 소복이 쌓인 베르탱의 파우스토를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음악적으로나 연극적으로 매우 귀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사라질 뻔한 음악에 현대적 연출을 입힌 흥미로운 영상을 덧붙여 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SFShARSGF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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