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IS의 인터뷰 코너 <궁금하다 이 사람>입니다. 이 사람일 수도 있고 이 집단일 수도 있고 이 극단일 수도 있습니다. 선정 기준이 뭐냐고요? 없습니다. 그냥 제가 궁금한 사람 혹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저는 남명렬입니다.
<궁금하다 이 사람> 여섯 번째 손님은 연출가 이준우입니다. 이준우 연출은 2020년 <왕서개 이야기> 그리고 2021년 <붉은 낙엽>으로 일약 주목받는 연출가로 우뚝 섰습니다. 그가 가진 무엇이 우리를 열광하게 하는지 꼼꼼히 알아봐야겠습니다]]
글_남명렬
연극! 참 어렵지만 참 재밌다
연출가 이준우

남명렬(이하 남) 서울시극단 단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먼저 서울시극단을 어떤 예술적 지향으로 이끌 것인지 말씀해 주실래요?
이준우(이하 이) 네. 감사합니다. 무거운 책임을 느낍니다. 일단은 공공기관이고 제작극장이기도 하니까 공공성과 대중성을 같이할 수 있는 작품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 오면서 생각을 했어요. 서울이 어떤 곳일까? 그래서 주변을 좀 봤는데 광화문이 눈에 들어오더라더라고요. 다른 극장과 다르게 장소가 주는 특성이 좀 강하다라고 생각을 들었습니다. 제일 먼저 광장이 눈에 들어오고 그 다음에 많은 행정부처들도 자리하고 있고 어떤 일상의 모든 것이 중첩되어 있고 함께 있는 그런 공간이잖아요. 그래서 서울시민들의 목소리를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바람이 있다면 제가 여기 있는 동안 광장의 목소리, 사람들의 목소리를 극장으로, 무대로 담아낼 수 있는 작업들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 이준우 연출이 현재 국공립 예술단체 단체장으로 제일 젊은 단체장인데요. 우리나라처럼 나이 서열이 매우 강하게 존재하는 사회에서 어려움이 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혹시 했나요?
이 알고는 있었지만 들어와 보니까 역시나 나이로는 제가 막내더라고요. 제가 서울시극단 단장으로 임명됐다고 공식 발표 난 후에 언론 기사의 타이틀이 [85년생 이준우…] 이렇게 걸리더라고요.
남 책 제목 <82년생 김지영> 같이? 하하하
이 제가 나이를 그렇게 의식하며 살지도 않았고 제 나이가 궁금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텐데 이렇게 공개적으로 알려지니까 새삼 체감이 되기도 하고 부담이 되기도 한 건 사실이에요. 어쨌든 세종문화회관에서 저를 선택한 것은 저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연출가로서 뭔가 새롭고 과감한 시도를 해줬으면 하는 기대가 아닌가 합니다. 또 제가 그동안 해온 작업들이 극단 혹은 국공립극단 뿐만아니라 상업 프로덕션의 작업들도 두루 해왔던 이유도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쪽에 치우치는 공연이 아니라 예술적으로 의미 있는 작업과 함께 보다 많은 대중들과 시민들이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공연도 만들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공공성과 대중성을 함께 가지고 갈 수 있는 작품들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서울시극단의 공연이 신뢰할 수 있는 공연이자 많은 사람들이 연극 공연장을 찾아올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남 저는 개인적으로 서울시극단의 이 결정을 아주 적극적으로 지지합니다. 우리 사회가 나이 서열 사회인 건 분명하지만 지금 많은 분야에서 나이 서열 깨지고 있거든요. 어쩌면 창의성과 창조성이 제일 중요한 예술계가 나이 서열이 제일 먼저 깨질 것 같지만 오히려 타 분야보다 느린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젊은 이준우 연출의 서울시극단 단장 취임이 다른 국공립단체에도 영향을 미치는 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단장 취임 얘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렵니다. 이준우 연출과 인터뷰하고 싶었던 이유는 단장 취임 때문이 아니라 이준우 연출 자체가 궁금해서였기 때문입니다.
이 네. 하하하
남 저에게 이준우 연출은 어느 순간 완성된 제품이 툭 튀어나온 것 같은 연출가였어요. <붉은 낙엽>에서 이준우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거든요. 도대체 어디서 갈고 닦아서 이런 완성된 연출가가 나타났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연극에 관심을 갖고 어떻게 연극을 시작했는지 궁금합니다.

이 어떻게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됐냐를 얘기하려면 가족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작은할아버지가 희곡을 쓰셨어요.
남 작은할아버지가 희곡 작가셨어요? 성함이…
이 아시는 줄 알았는데…
남 몰라요.
이 이근삼 작가요.
남 이근삼 선생이 작은할아버지구나. 몰랐어요.
이 저는 원래 미술을 전공을 했고 연극은 잘 몰랐어요. 그런데 고모인 이유정 무대 디자이너, 고모부인 김종석 연출의 공연을 보러 가고, 작은할아버지 희곡을 읽어보기도 하면서 연극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연극을 꼭 할 생각은 없었어요. 한다면 영화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것도 이유가 있는데요, 친할아버지가 영화사에 계셨었거든요. 옛날 충무로의 스카라 극장에서 30년 동안 외화 수입을 하셨어요. 평양분이신데 영화를 너무나 좋아하셔서 한국전쟁 때 피난길에서도 사람들 붙잡고 영화! 영화! 하실 정도로 영화에 애정이 많으셨다고 하더라고요. 할아버지와 지내면서 영화를 계속 보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기회가 된다면 ‘영화감독을 해야겠다’ 막연히 생각했어요. 하지만 생각뿐이었고 대학을 다니면서 미술학원 입시강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입시강사를 2년쯤 해보니까 사회경험을 못하고 사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왜냐하면 매일 캔버스만 보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입시미술 강사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열 몇 개를 했어요. 이것저것 하면서 세상을 알아야겠다 하다가 마지막에 도달한 게 연극이었어요. 처음엔 배우를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고모부 김종석 연출에게 연기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되냐고 상의했더니 연극반 활동을 해보래요. 그러면서 오디션을 보라는 거예요. 영화 <가위손>을 세미뮤지컬로 만든 건데 용케 캐스팅이 돼서 공연을 했어요. 너무나 재밌었어요. 연습을 하면서 제일 좋았던 건, 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살아 본 적이 없었는데 연극을 하다보니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살아 본다는 게 엄청나게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그동안 나만 알고 살아왔었는데, 연극을 하면 더 나은 사람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극의 매력을 처음 느꼈고요. 하지만 그때까지는 전 여전히 배우라고 생각했고 오디션을 열심히 보러 다녔어요. 그때는 우는 것과 화내는 걸 잘하면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엄청 울고 다니고 엄청 화를 냈어요. 이유도 없이 혼자 벽 보고 막 화를 내고 이 정도 화낼 수 있어! 생각한다든지 난 금방 울 수도 있어! 막 이랬어요. 너무 몰랐죠. 그러다 우연히 제가 출연한 <가위손> 영상을 봤는데 끔찍했어요, 걷는 것조차도. 난 배우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죠. 그 다음에 군대 가고 제대하고 어떻게 살아야하나 고민하는 시기에 작은할아버지 희곡 전집이 나왔는데 할아버지 희곡을 읽다가 연극을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연극을 하되 연출을 해야겠다 하고요. 그래서 할아버지 희곡으로 연출을 한 게 제 첫 연출이었습니다. 참 재밌었습니다. 그때는 영화도 놓고 싶지 않아서 단편영화도 찍었어요. 단편영화를 찍는 게 재밌긴 했지만 배우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영화는 배우와 소통할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배우를 알고 싶어서 방법을 찾는 중에 국립극단이 새로 생겼는데(아마 재단법인으로 재편 될 때 국립극단인 듯-필자 주) 조연출 인턴을 뽑더라고요. 국립극단이라면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모이는 곳이니 그 배우들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지원을 했고 감사하게 선발이 돼서 연극 공부를 시작하게 됐어요. 근데 그때 제가 제일 재밌어한 건 연습이 아니라 연습 끝나고 뒷풀이 하며 술 마시는 거였어요. 연습 끝나고 배우들끼리 술 마시며 얘기하는 자리에 끼어 있는 게 너무 재밌어서 제 일과의 본격 시작은 밤 10시부터 였어요. 새벽 3시까지 술 마시고 잠깐 자고 아침에 출근해서 일하고 그렇게 일년 반을 보냈어요. 그렇게 술값으로 택시비로 월급을 탕진하고 나니까 주머니에 가진 건 없고 바로 현실과 마주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안 되겠다, 취직을 하자’하고 취직 준비를 했어요. 취직 준비로 한 6개월 정도 혼자 집에서 공부를 하던 어느 날 창밖을 바라보는 데 너무 답답했어요. 뭔가를 만들지 않으면 못 견디겠더라고요. 다시 시작해야겠다 결심했지만 지원 사업이 있는지도 모를 때였으니까 연극반 같이 했던 친구들과 연극을 시작했어요. 잠실에 어느 횟집이 철거 예정이었는데 한 달 동안은 비어 있대요. 그래서 그 횟집을 극장으로 꾸며서 연극을 했어요. 그렇게 다시 연극을 시작하게 됐죠. 그 후 ‘극단 여행자’가 서강대 메리홀에서 신진 연출가들을 모집해서 단막극 페스티벌을 열었는데, 기회가 생겨 작업을 했습니다. 그때 멘토 연출가로 오세혁, 민새롬, 이대웅 연출이 있었는데 그분들과 만남이 좋은 경험이었고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남 철거된 횟집에서 했던 작품이 뭐였어요?
이 스와보미르 므로제크 작가의 <바다 한가운데서>입니다.
남 처음 연출했던 작은할아버지 작품 제목은?
이 <광인들의 축제>입니다.
남 저도 대학연극반 출신인데 대학연극반에서 꽤 많이 선택하는 작품 중 하나가 <광인들의 축제>일 걸요? 제 연극반에서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까 미술을 전공했다고 했는데, 어느 학교?
이 홍익대요.
남 미술도 여러 가지 분야가 있잖아요.
이 미술학원 강사를 하면서 회화 작가가 되었으면 하는 막연한 꿈을 가졌었어요.
남 그랬군요. 제가 봤던 <붉은 낙엽> 이전에 <왕서개 이야기>도 큰 성과를 이루었잖아요. 2020년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받았으니까. 이 작품이 이준우라는 이름을 연극계에 크게 알린 작품이고요. 아쉽게 저는 그 작품을 보지 못했어요. 저를 위해 <왕서개 이야기> 소개해 주실래요?

이 <왕서개 이야기>를 말씀드리려면 2017년도로 가게 되는데요. 제가 2017년도에 저한테는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지원 사업을 받았어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하는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라는 사업요. 그때 일본 전쟁 범죄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했어요. 그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던 이유는, 일본 전쟁 범죄자들의 정신을 분석한 일본 학자의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잔혹한 만행의 이유가 감정의 빈곤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때 남자들이 군대 조직 사회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고 버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을 죽여야 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하고, 강한 남자가 돼야 하고, 울지 않는 남자가 되어야 한다는 그런 조직 문화가 이들을 감정이 빈곤한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는 거예요. 그런 조직 사회가 지금도 유지 되고 있는데, 궁극적으로 감정이 풍요로운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슬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 책의 골자였어요. 또 제가 알게 된 게 중일전쟁 이후 중국 무순 전범관리소에서 일본인 전쟁 범죄자들의 교화 작업을 했는데 교화 작업의 일환으로 연극을 시켰대요. 이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야겠다, 생각하고 <무순 6년>이라는 작품을 했어요. 김도영 작가와 같이한 작품입니다. <왕서개 이야기>는 그 작품의 극중극용으로 쓴 이야기인데 그게 전쟁 범죄자들이 썼을 법한 대본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김도영 작가에게 지금은 쓸 수 없다 하고 묵혀 뒀었는데 남산예술센터 공모사업에 <왕서개 이야기>가 선정되어 낭독 공연과 본 공연까지 이루어졌어요. <왕서개 이야기>는 만주에서 살고 있던 매사냥꾼 ‘왕서개’가 일본군 5명에게 아내와 자식을 잃고, 20여 년이 지난 후 일본에서 다시금 그 가해자들을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남산드라마센터에서 2020년 시즌 프로그램으로 올린 후에, 다시 재공연을 못하고 있어요. 많이 아쉽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하고 싶어요.
남 2020년 <왕서개 이야기> 2021년 <붉은 낙엽>이 연극계를 강타했는데요, <왕서개 이야기>는 창작극이고 <붉은 낙엽>은 외국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지만 두 작품 다 인간의 심리를 추적해 나가는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평소에 인간의 심리에 관심이 많은가 봐요?
이 말씀하신 것처럼 인물의 심리를 따라가는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가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그림을 되게 좋아하기도 했고, 영화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라든지, 오즈 야스지로 같은 감독을 좋아했어요. 그러니까 카메라를 놔두고 가만히 그 인물을 응시하는 영화들을 되게 좋아했어요. 연극도 그런 작품을 하고 싶더라고요. 히라타 오리자의 희곡이나 마쓰다 마사타카의 <바다와 양산> 같은 작품을 좋아했습니다.
남 제가 출연했던 <바다와 양산>?
이 네. <바다와 양산>을 희곡으로 읽었는데 너무 좋아서 그 작가의 다른 희곡도 사서 낭독회도 했어요. 역시 좋더라고요. 작가가 담아내는 그 작품의 분위기와 인물의 심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그 순간들을 포착하게 만드는 그 지점이 너무 좋았어요. <바다와 양산>에서 녹차를 쏟는 장면 같은.
남 제가 남편이고 아내가 예수정 배우, 집 주인 부부로 박지일 배우, 이정미 배우가 출연 했어요. 작가인 저의 작품을 출판하는 출판사의 여직원이 다른 곳으로 전근하게 되고 마지막 인사를 하러 집으로 오죠. 늘 병으로 누워있는 아내는 남편과 여직원이 특별한 관계일 거라 짐작하고 있고요. 대문간에서 인사하고 가려는 여직원을 굳이 집 안으로 들여 차를 대접하는데 긴장한 나머지 부인은 차를 쏟게 됩니다. 쏟은 차를 안 닦냐고 타박하는 남편의 손을 그러잡고 아내는 꼼짝을 안 합니다. 그때 아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이 그것 뿐이었겠지요. 그 행동 하나에 아내의 심리가 모두 담겨 있는 거예요.

이 네. 그런 게 너무 좋았어요. 그런 작품을 해보고 싶었고 그런 인물의 서브 텍스트를 관객들이 포착하고 발견해 낼 수 있는 작품들, 한마디로 내면의 풍경들을 담아내고 싶었는데 <왕서개 이야기>도 그렇고 <붉은 낙엽>도 그런 지점에서 흥미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남 작품 이력을 찾아보니까 <왕서개 이야기> <붉은 낙엽> <비(Bea)> <아록과 루시> <수정의 밤> <포트폴리오> <지킬 앤 하이드> <원칙> 이렇게 있네요. 몇 가지 특징을 발견했는데 김도영 작가와의 협업, 소설 각색 작품, 그리고 일인극이었어요. 다른 연출가와는 다른 특징이에요. 김도영 작가와는 어떻게 시작됐어요?
이 김도영 작가가 극단 여행자 소속이었거든요. 극단 여행자에서 작업 기회를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됐어요. 그때는 김도영 작가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원활한 소통도 힘들었고 자주 만날 수도 없었는데 첫 만남의 인상이 너무 좋아서 김도영 작가가 건강이 회복된 2017년 이후에 두 번째 작업을 하게 됐어요. 다시 작업을 시작하면서 김도영 작가에게 히라타 오리자의 작품이나 <바다와 양산>과 같은 분위기의 작품을 하고 싶은데 소재는 역사이고 좀 어두운 작품이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같이 공부하고 파고들었어요.
남 소설을 각색하는 작업이 쉽지 않잖아요. 돌아가신 연출가 한 분이 소설을 각색한 작품을 유독 많이 하길래 왜 소설 각색 작품을 많이 하냐고 물었더니 희곡에서 소설만큼 매력적인 이야기를 찾지 못해서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이준우 연출은 어때요?
이 저는 제가 관심 있는 것을 다룬 희곡을 찾기 힘들어서예요. 출판 되어 있는 희곡은 거의 고전 작품이잖아요. 제가 관심 있는 주제를 다룬 희곡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가 없었어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좀 더 탐구하고 싶고 그중에서도 범죄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 누가 그걸 쓰고 있는지 어떤 작가 거기에 관심 있는지를 알 수 없으니까, 결국 나와 있는 소설에서 찾을 수 밖에 없었어요.
남 현실적으로 관심 있는 희곡을 찾기 힘들어서였군요. 다른 한 가지, 1인극을 연출하는 기회가 많지 않은데 두 작품이나 했어요?
이 <지킬 앤 하이드> 말고 또 뭐 있죠?
남 씽크 넥스트.
이 아, 씽크 넥스트 <문 속의 문>! 저는 연극이 배우 예술이라고 생각해서 1인극이 연극의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영화나 연극을 좋아하게 된 것도 배우가 좋아서 시작했거든요. 영화를 보면 그 배우 어때? 너무 멋있지 않아? 브레드 피트! 로버트 드 니로! 배우를 사랑해서 영화를 보게 되고 연극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배우가 중심이 돼야 되고 배우가 잘 보여야 하는데 1인극을 해보니 배우가 진행자 역할, 화자 역할을 동시에 주도적으로 해야 하니 책임이 크면서도 배우의 매력이 무궁무진하게 보이더라고요. 기회가 되면 1인극을 더 해보고 싶습니다.
남 저는 1인극이 배우의 무덤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준우 연출과 제가 1인극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다르네요. 하하하.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성공해도 실패해도 배우에게 미치는 영향이 긍정적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실패했을 경우 그 배우의 밑천을 보여줬다는 면에서 배우에게 절망감이 커서 그걸 극복해 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고요, 성공했을 경우 성공의 환호를 홀로 다 받았기에 차후 여럿이 하는 연극을 참여했을 때 나눠 받는 환호를 견뎌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건 그렇고, 연극을 만들 때 이준우 연출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언가요.
이 과정에서요? 아니면 결과적인 면에서요? 답변이 정리가 안 되긴 하는데요, 과정에서는 그런 생각 들었어요. 좀 더 책임감을 갖고 해야 한다, 결과 중심으로 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소외되는 사람이 생길 수 있고 누군가는 배제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최대한 모두 같이 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말로만 즐겁게 하자가 아니라 정말로 모두가 즐겁게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최근 <원칙>이라는 연극을 하면서 더 깊이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고 결과로서의 연극 측면에서 본다면 ‘지금 왜 이 이야기가 필요한가’를 생각합니다. 혹, 고전을 공연한다 하더라도 그 고전이 이 시대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때로 자기 색깔이 강한 연출들을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자기만의 색깔을 어떻게 저렇게 잘 드러낼 수 있을까. 나도 한번 용기를 내 볼까?’ 생각하다가도 이야기를 좋아하고 텍스트를 깊이 파는 것을 좋아하는 저의 장점을 살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돌아오곤 합니다.
남 형식이 강한 연극도 물론 좋지만, 연극의 본질은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저한테 이준우 연출의 작품이 더욱 기대됩니다. 연출을 하면 필연적으로 배우를 만나야 하잖아요. 연출로서 배우들과 어떤 관계 맺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연극은 결국 배우를 통해서 구현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연습 과정에서 제 생각을 어떻게 제안하고 그 제안을 어떻게 함께 바라볼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보통 과정을 기다리기보다는 결과를 먼저 얘기하고 그곳으로 달려가기를 기대하는 것 같아요. 과정을 통해서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 순서가 뒤바뀐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지금도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지점입니다.
남 그건 지금 한국의 연극 제작 현실과 닿아 있는 것 같아요. 한 작품을 만들 때 무한정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잖아요. 한 작품을 하기 위해 1년을 연습할 수도 없고 1년 연습비를 지급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제한된 시간에 작품을 만들어내야 하니 토론하고 기다려주고 하는 시간을 갖기가 어려워지는 거죠. 지금 서울시극단 단장이기도 하지만 극단 [배다]도 이끌고 있죠? 극단 [배다]는 언제 창단했어요?
이 2017년요.
남 연출은 2012년에 시작하고 극단 창단은 2017년에?
이 네. 연출 작업만 하다가 독립해서 작품을 만들려고 지원사업에 지원하려하니 단체명을 요구하더라고요. 사업자등록도 해야하고요. 그래서 부랴부랴 준비했는데 극단 같이하려는 동료들과 고민 끝에 극단 [배다]라고 이름을 정했어요. 거창한 기치를 내걸기보다는 우리의 연극은 천천히 스며들 듯 관객에게 다가가는 연극이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요. 고깃집에 가면 고기 냄새가 옷에 천천히 배어들 듯 천천히 연극의 향기가 관객에게 배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극단이 이렇게 오래 갈 줄은 솔직히 몰랐어요. 하하하.
남 급하게 지었다고 하지만 의미가 굉장히 커 보여요. 제가 이준우 연출에 대해 찾아보다가 재밌는 걸 하나 발견했어요. 어떤 대학연극반 블로그인 것 같은데, 거기에 연출 이준우하고 소개해 놨더라고요, 사진과 함께. 제가 읽어볼게요. ‘연출 이준우. 홍익대. 2006년부터 독립영화 <유죄> 연극 <막차> <가위손>. 무슨 연예인 닮은 것 같은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네요. 아, 강동원… 영화도 찍어 본 분이십니다. 지금은 연극 연출을 하시네요. 경계를 넘어선 활동! 형님의 미래는 밝을 것 같습니다. 제 미래도 좀 밝혀주세요, 형님’ 재밌네요. 블로그 이름을 보니까 신방연극회더라고요?
이 네, 기억해요. 하하하. 당시 연극반 친구가 진지하게 썼다기보다는 가볍게 농담조로 썼던 글인거 같아요. 신방연극회. 서강대 신방연극회. 하하하.
남 서강대 신방연극회지만 여러학교 학생들이 같이 했더라고요. 굉장히 자유분방하고 여러 방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느껴지더라고요. 풋풋했던 시절을 생각하며 신기하고 새롭기도 하고 그럴 것 같아요.
이 저는 중학교 때 학교 그만두고 절에 들어가려고 했어요. 그때 최인호 작가가 쓴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라는 에세이를 보고, 나고 청산을 찾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고등학교 때는 학교가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12시까지만 학교에 있고 도시락 가지고 교회에 갔어요. 교회는 항상 개방되어 있으니까. 교회에 가서 도시락 먹고 시도 써보고 잠도 자고 했어요. 그래도 엄마에게 혼나기 싫으니까 시간 맞춰 집에 가고 하는 걸 한 1년 동안 했어요. 그래서 전 고등학교 동창이 거의 없어요. 학교를 잘 안 갔으니까.
남 그런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좋은 작품을 만드는 연출가로 우뚝 섰잖아요? 수상 이력을 보면 2020년 <왕서개 이야기>로 동아연극상 작품상, 2021년 <붉은 낙엽>으로 동아연극상 작품상, 신인연출상, 2022년 문체부 젊은예술가상, 뮤지컬 <홍련>으로 뮤지컬어워드 작품상을 수상했는데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이렇게 많은 수상을 한 게 부담스럽진 않나요?

이 <왕서개 이야기> 때도 그렇고 <붉은 낙엽> 때도 그렇고 김도영 작가하고 너무 무섭다고 얘기했어요. 갑자기 많은 상을 받았는데 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우리는 그럴만한 사람이 아닌데 하면서. 우리 이래도 돼? 얘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한편, 지금 생각하면 무서워도 상 받은 게 없어지는 게 아니니 그냥 즐길 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리고 상 받는 것과는 별개로 연극은 하면 할수록 어렵게 느껴져요. 오랫동안 연극을 만들어 온 선배 연출가는 어떻게 긴 세월을 견뎌왔을까 궁금하기도 하고요. 실제로 선배 연출에게 물어보기도 했어요. “왜 이렇게 연극이 어려워요?” 하고요.
남 다른 연출가들과 교류도 많이 하나요?
이 네. 다른 연출들을 만나서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종종 연락을 하거나 만나곤 합니다. 민새롬 연출, 오세혁 연출, 하수민 연출, 김정 연출, 이철희 연출, 강훈구 연출, 신유청 연출 등 많이 만나고 있어요.
남 지금까지 많은 얘기를 나누었는데요, 서울시극단 단장으로 그리고 극단 [배다]를 이끄는 사람으로 계획하고 있는 게 있나요?
이 지금 구체적으로 좀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2027년이 서울시극단 창단 30주년이예요. 30주년을 미리 준비하려고 합니다. 또 하나는 국제 교류를 해보고 싶어요.
남 지금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고마움이나 그건 오해야 하고 해명하고 싶은 건 없어요?

이 지금까지 연극 하며 주목받고 서울시극단 단장까지 오게 된 것은 모두 함께한 동료들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동료들에게 감사하고 싶어요. 그리고 어머니께도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어머니께서는 혹시 제가 객사할까 봐 늘 걱정하셨거든요. 젊을 땐 밖으로 떠돌고 지금은 연극으로 고민하니까 ‘체력도 약한데 늘 걱정이다’ 하시며 약도 수시로 보내주셔요. 어머니께 늘 감사합니다.
남 어머니와 헤어지는 날까지 계속 고마워하셔야 할 것 같네요. 하하하. 아직은 젊지만 10년, 20년이 지나도 지금의 젊은 패기와 창조적 아이디어가 오랫동안 유지되는 이준우 연출이 되기를 기대할게요.
이 감사합니다.
남 긴 시간 인터뷰 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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