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Das Kapital
연극평론가 고수진
독일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 칼 마르크스가 쓴 『자본: 정치경제학 비판(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은 우리나라에는 『자본론』이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하 『자본론』)
1권-‘자본의 생산과정’, 2권-‘자본의 순환과정’, 3권-‘자본주의 생산의 총과정’으로 구성된 이 책은 1867년 제1권이 출간되었고 2권과 3권은 마르크스가 죽은 뒤에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그의 유고를 모아 펴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19세기 영국의 고전경제학을 비판하며 노동의 ‘잉여가치’와 ‘착취’를 자본주의 사회모순을 이해하는 핵심개념으로 제시하였고, 2013년 저자의 친필메모가 적힌 초판이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19세기 저작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9세기에 쓰인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20세기는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경제적 충격과 혼란으로 문을 연 21세기에도 여전히 세상을 이해하는 토대로 여겨졌다.
미국에서 시작한 금융위기가 아시아를 강타한 2008년, 일본에서는 『자본론』이 <자본론 만화로 독파>라는 만화로 출판되었다. 치즈공장을 운영하는 젊은 자본가의 노동착취를 다룬 이 만화는 15만 권이 팔리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한편 금융위기가 끝나가는 2010년 중국 상하이에서는 『자본론』을 각색한 뮤지컬이 제작돼 큰 호응을 얻었다.
금융 위기의 원인과 자본주의의 부조리를 브로드웨이풍 춤과 노래로 보여주는 이 블랙코미디는 2010년 초연 이후 ‘상하이 드라마 아트센터’의 인기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고, 2018년에는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상하이와 마카오에서 다시 공연되었다.
『자본론』을 다른 장르로 변환하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러시아혁명을 소재로 한 영화 <전함 포템킨>으로 잘 알려진 영화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은 1927년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영화화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처럼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가 흘러가는 방식으로 영화 <자본>을 찍으려고 했는데, 파리에서 제임스 조이스를 직접 만나 시나리오 작업에 대한 동의를 얻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대 유명감독이던 에이젠슈타인도 난해한 경제학 서적을 영화화하겠다는 계획으로는 투자를 받지 못했고, 그의 ‘<자본> 프로젝트’는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이 같은 사실은 에이젠슈테인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기록해 놓은 작업노트가 1973년 한 영화잡지에 공개되며 알려졌는데 독일 영화감독 알렉산더 클루게는 이 작업노트를 바탕으로 2008년 〈이데올로기적 고대로부터 온 뉴스(Nachrichten aus der ideologischen Antike: Marx – Eisenstein – Das Kapital)〉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총 570분 길이의 영화 〈이데올로기적 고대로부터 온 뉴스〉는 『자본론』에 대한 학자, 작가, 예술가들의 인터뷰, 『자본론』의 본문 낭독, 악기연주, 에이젠슈타인의 작업노트를 인용한 텍스트와 이미지의 콜라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버지의 영화는 죽었다! (Papas Kino ist tot!)”고 외치며 오버하우젠 선언을 이끌었던 1960년대 뉴 저먼 시네마(the New German Cinema)의 대표적 감독 알렉산더 클루게는 이 작품을 통해 ‘영화라는 예술을 전적으로 파괴하고 그것을 새롭게 구축하고자’ 했던 에이젠슈타인의 의도를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독일의 연출가 헬가 하우그, 다니엘 베첼, 슈테판 카에기가 2000년 설립한 극단 ‘리미니 프로토콜’은 현실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만들기 위해 다큐멘터리 형식의 극에 주목했다.
자동차 회사 ‘다임러’의 주주총회에 제작진이 참여하여 총회장 안팎을 연극적 상황으로 만든 <총회(Hauptversammlung)>, 인도 콜센터 직원과 관객과의 통화를 통해 세계화에 대한 체험을 연극으로 만든 <콜커타 인 어 박스 (Call Cutta in a Box)>, 세계 여러 도시를 다니며 그 도시를 대표하는 사람 100명을 5가지 기준에 따라 모아 단체 사진을 만드는 <100% 도시> 등 공간이나 사회 질서를 연극 형식으로 번역하는 실험적인 공연들은 ‘리미니 프로토콜’의 사회 참여적 지향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2006년 11월, 뒤셀도르프 극장에서 초연한 <칼 마르크스 : 자본론 제1권 (Karl Marx: Das Kapital,Erster Band)> 역시 ‘세미 다큐멘터리’ 형식의 작품으로 출연진은 전문 배우가 아닌 실제 경제학자, 영화 제작자, 경영 컨설턴트, 전기 기술자, 시각장애인 콜센터 직원, 혁명가 등이다.
이들은 무대 위에서 각자의 입장에 근거하여 『자본론』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역사적 사건을 영상으로 보여주거나 관객에게 미리 나눠준 『자본론』을 함께 읽기도 한다.
또 공연의 현지화, 현재화를 위해 외국공연에서는 그 나라의 학자, 사회운동가, 시각장애인이 출연하기도 하는데, 2009년 도쿄 공연에서는 일본의 저명한 마르크스 경제학자 오오타니 데노스케 교수가, 같은 해 ‘페스티벌 봄’의 초청으로 진행된 한국 공연에서는 『자본론』 의 한국어 번역자인 강신중 교수가 무대에 올랐다.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이던 2018년, 극단 ‘드림플레이 테제21’은 『자본론』을 바탕으로 <자본 (We are the 99%)>를 공연했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김재엽이 직접 쓰고 연출한 이 연극은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제시한 ‘노동’, ‘잉여가치’, ‘상품’ 등의 개념을 설명하는 일종의 강의형 연극으로, 개인의 노동이 어떻게 자본의 생산도구로 복무하고 나아가 21세기 한국사회의 정치경제에 편입되는지에 대한 담론을 담고 있다.
그러나 공연은 거창한 이론적 수사를 배제하고 극단원들이 실제 진행한 『자본론』 관련 세미나 내용을 도표와 영상을 이용해 보여주거나, 경쾌한 노래, 배우들의 실제 노동경험담 등을 곁들여 설명해 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나’의 노동이 자본주의 생산과 분배구조 안의 일부분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도와준다.
이 작품은 노동당이 진보적 예술인과 작품에 수여하는 레드어워드에서 2018년 ‘주목할 만한 담론’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었고, 2019년 전태일기념관 개관초청공연작으로도 공연되었다.
<자본 (We are the 99%)>가 노동으로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99%의 자각에 관한 ‘강의’였다면 같은 극단이 올해 5월 공연한 <자본2: 어디에나, 어디에도>는 거대자본을 독식하는 1%에 대한 ‘다큐드라마’이다.
국가원수, 정치가, 기업가, 유명인 등 세계 1% 슈퍼리치들이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같은 전문가들을 자산관리사로 동원해 몰타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고 세금을 탈루한다. <자본2: 어디에나, 어디에도>는 이들의 조세 도피를 추적 폭로한 실제 탐사보도를 바탕으로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불법을 저지르는 자본가들의 탐욕스런 실체와, 내전으로 바다 위를 떠돌며 그 어떤 국가의 국경도 넘지 못하는 시리아 난민의 참상을 오버랩시켜 과연 ‘자본’은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19세기 민중들의 처참한 노동 현실에서 탄생한 책 『자본론』. 이 책이 아직도 독일에서, 중국에서, 한국에서 무대에 올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코로나 팬데믹으로 부의 편중이 심화되고, 분배의 균형보다 자산의 수호가 정치적 선택의 척도가 돼 버린 지금, 마르크스가 150여 년 전 설파한 노동의 소외가 여전히 우리 삶을 옥죄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너무 좋아요.
자본론으로 연극이 만들어 졌는지 몰랐네요.
요즘 읽은 책 중에 “마르쿠스 가브리엘” 의 “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중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처럼 자본주의는 노동의 역활분담에 대한 응답이며,투명성이 중시되는 민주주의와
불투명성이 본질인 자본주의와의 긴장에 어떻게 대처 하는지가 중요하겠죠
정말 잘 읽었어요.
계속 해서 보내주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