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쯤 전 대학로의 게시판이 사시사철 ‘체홉’으로 도배된 것만 같던 때가 있었다. 2010년 러시아의 극작가 안톤 체홉(Anton Chekhov, 1860~1904) 탄생 150주년을 맞이하면서 정말 많은 단체와 예술가와 평론가들이 체홉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체홉이라는 인물과 <벚꽃동산>, <갈매기>, <세 자매>, <바냐 아저씨>처럼 체홉이라는 이름 뒤에 자연스럽게 줄줄 따라오는 이 작품들에 별다른 유감은 없다. 다만 2010년 이전에도 한국의 연극계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왔던 체홉의 작품들이 2010년에는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다.
사실 체홉 뿐인가, 셰익스피어까지 보탠다면 연중 진행되는 연극, 뮤지컬 중 셋 중 하나는 두 작가의 작품이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지금은 죽고 없는 러시아와 영국의 세계적인 작가나 그의 작품을 선택하는 연극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 경력이 많다고 보기에는 애매한 연출가와 새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이 연출가에게 어울릴만한 작품을 추천하다 보니 대부분 작가가 살아있거나 사후 70년이 지나지 않아서 선뜻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공연을 제작하는 입장에서 ‘저작권과 관련된 이야기’는 거의 괴담수준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몇 년 전 A축제가 개막을 코앞에 두고 홍보용 대표 포스터에 사용된 폰트가 문제가 되어 잠시였지만 당황스러운 상황에 놓였던 적이 있다. 일명 ‘폰트 파파라치’로 불리는 이들은 상업적으로 사용할 수 없거나, 정식으로 구매하지 않으면 대외적으로 활용할 수 없는 폰트를 사용한 경우를 찾아 저작권자가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우리 팀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는데, 시안 단계에서 포스터에 체험판 폰트가 사용되었고 시안이 결정되자마자 마음 급한 기획팀이 예매처에 이 포스터를 먼저 등록해버렸다. 의외로 많은 제작자 혹은 연출자 분들이 놀라는 부분이 15년간 기획을 해온 우리 팀은 법을 지키는 것에 대해 아주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상업용으로 사용 가능한 폰트를 구입하는 비용은 보통 기간 단위로 여러 개의 폰트가 함께 있는 패키지를 구입해서 디자이너가 쓰는데 당시는 기존에 디자이너가 쓰던 폰트 패키지들 중 기간이 지난 폰트였고, 새로 구입하기에는 디자이너의 수입에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그러나 연극 기획팀이라는 사람들은 이 작품에 이 디자인이 어울리고, 무엇보다 연출자가 마음에 들어 한 것을 이제와 조금이라도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은 가급적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예매처에 등록된 이미지를 바꾸는 것도 무척 번거롭다) 폰트파파라치에게 적발되기 전에 먼저 이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디자이너의 이름으로 폰트 회사에 보내는 메일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 우리는 100석 정도의 소극장에서 창작연극을 하는 전혀 유명하지 않은 미미한 존재들로 열심히 작업을 해 오던 중 귀사의 폰트를 시안에 활용하게 되었고 이 폰트가 너무 멋졌던 나머지 정식 패키지를 구입하기 전에 예매처에 등록되어 공개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이 디자인을 이제와 수정을 하여도 며칠이 소요될 뿐 아니라 할 수 있다면 이 폰트를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아주 크다. 그러니 십만 원 정도에 이 폰트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폰트에 관련된 이야기를 길게 했지만 사실 가장 어려운 것은 체홉과 셰익스피어처럼 해외 작가들의 작품의 저작권이다. 체홉과 셰익스피어가 좋은 작품을 남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사후 70년이 지난 사람들이라는 것 또한 수많은 연출가와 작가들에게 또 연극을 공부하고 취미로 하는 사람들에게 큰 매력이 되었을 것이다.
연극을 공부하고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야 상업적 용도가 아니고 대개 기간도 짧으니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국내 제작사들 중 저작권과 공연권을 가진 작품의 활용에 대해 엄격하거나 절대 불가인 팀이 많은데 예상보다 적지 않은 경우로 저작권리자 모르게 작품을 제작하여 수익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고, 아마추어극단 또는 동아리로 작품을 만들어서 티켓을 판매하는 경우도 많다. ‘많다’의 수준이 오리지널 팀의 지방공연이 잡히지 않을 정도인 경우도 있었다.
나와 같이 일하는 팀에서도 저작권을 해결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 해외 유명작가이고 국내에서 이미 작품이 무대에 오른 적도 있어 저작권 해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 현대에 활동한 작가들의 경우 저작권을 에이전시에서 담당하는 경우가 많아 작가 본인 보다는 에이전시에 이메일로 문의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해외의 에이전시들이 응답률이나 속도가 무척 떨어지는데 있다. 이미 여러 번 다른 작품을 해외 축제나 극장에 보낸 경험도 있고 영어 레터에 익숙한 사람도, 심지어 저작권 관련하여 원어민 수준으로 문의할 사람도 있어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했는데도 에이전시가 답이 없다. 이러한 경우 먼저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이후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방식도 있어 우선 우리가 저작권 관련하여 문의한 기록이 명확하니 이를 믿고 작품을 무대에 올렸지만 기획팀의 입장에서는 명쾌하지 못한 진행이었다.
현대, 생존해 있는 해외 작가들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것에 있어 가장 정석적으로 일하는 팀은 극단B이다. 극단B는 코로나19 이전 매년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을 하나 선택하고 저작권, 국내 공연권을 구입하여 직접 번역하여 극단의 제작과 연출로 무대에 올린다. 기획팀 입장에서 이 과정이 더 좋은 것은 극단B가 무대에 올라간 공연과 관련하여 국내의 모든 권리를 안전하게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 작품의 경우 작품의 국내 권리는 출판사가, 번역된 책에 대한 권리는 번역한 사람이 각자 가지는 경우도 많다. 애써 해외 에이전시와 소통에 성공했는데 국내 번역가와의 소통이 수월하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
이렇다 보니 공연제작이 많지 않은 단체와 연출가들이 선택하게 되는 것은 사후 150년부터 수백 년이 지난 작가들의 작품이거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제작에 성공하였고 나 또한 오랜 시간 공부하고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는 셰익스피어와 체홉, 트렌드에 따라서는 그리스 희비극까지 자주 등장하게 된다. 물론 체홉과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가지는 그 자체로의 가치도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역시 가끔은 너무 많고 너무 자주 등장한다. 물론 이런 경향이 연극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16년 <안네의 일기>와 히틀러의 자서전에 대한 출판물 저작권 보장기간 70년이 지나며 많은 관심이 받았고, 독일에서는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또 2012년에는 헤밍웨이의 저작권 보호기간이 지나면서 다수의 출판사들이 앞 다투어 출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출판계 역시 생텍쥐페리(1900~1944)의 작품 <어린 왕자>가 사후 저작권 보호 기간이 지났음에도 책에 등장하는 이미지와 제호의 상표권이 등록되어 있어 ‘생텍쥐페리 상속재단’에서 권리를 주장하며 잠시 서점 매대에서 사라졌던 적이 있다.
작가의 저작권뿐만 아니라 연극의 제작에 참여하는 모든 창작진들의 창작물 역시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다. 특히 그간의 관행과 다르게 자신의 권리를 가지고 싶다면 계약서상에 향후 재 공연에 대한 부분이 명시되어 있는지 수정가능한지 확인해보아야 한다.
일례로 디자이너 C의 경우 연극작품을 진행하며 배우들의 사진을 바탕으로 포스터 디자인을 했다. 배우들의 사진을 기본으로 했지만 구도와 재가공에 있어 디자이너의 아이디어와 역량이 큰 역할을 했는데 문제는 재공연을 하며 등장한 새 포스터가 배우들의 얼굴만 바뀌었을 뿐 그대로였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제작자가 디자이너에게 재사용에 대한 동의를 얻었어야 했는데 이 과정이 아름답지 못했다. 물론 많은 경우 암묵적으로 재공연과 디자인의 재사용이 함께 이루어지지만 사전 동의는 필요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 많은 작품들이 온라인으로 전환되거나 1회 촬영만으로 작품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경우 이 영상에 대한 권리에 대하여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계약서상에서도 이 영상물의 활용에 대한 범위나 권리에 대해서 명확하게 논의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권리에 대한 법률’은 많은 경우 확대되고 약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언젠가 우리는 연출가의 연출, 조명디자이너의 디자인, 무대디자이너의 디자인에 대해서도 그 권리에 대해 세밀하게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배우를 포함하여 창작에 참여하는 모든 역할에 대해 그렇다. 물론 과정은 늘 그렇듯 머리 아프고 쓰지 않았던 관심과, 예상치 못했던 예산에, 무대 현장을 모르는 연구자들의 언어들까지 더해져 한참을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직업적 안전함을 위해서라도 미래의 창작활동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고민하고 노력해야할 부분이다. 무엇보다 동료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우리의 작품에 대한 권리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저작권 관리에 엄격한 작품의 경우는 완성도도 높고 매력도 커서 관객들에게 언제나 인기가 높다. 몇 년 전 직장인 동아리가 대학로의 극장을 대관하여 공연을 하려다 공연 당일 취소한 적이 있었는데 제작 전반을 책임졌던 외부연출이 당일 증발했기 때문이다. 그 동아리는 대학로에서 활동 중이라는 연출가를 초빙하여 자신들의 제작비를 맡기고 작품을 준비하였는데 그리되었다. 그런데 그 작품이라는 것이 인물, 시간, 배경, 넘버 모두 고유명사를 제외하고는 ‘그 작품’과 판박이여서 제 3자 입장에서는 흥미로울 정도였다. 결국 동아리 사람들이 경찰서로 이동하며 우리가 직관하던 장면은 끝이 났다.
#초연창작물의 반응이 좋고 팀워크가 좋았다면 공연이 끝나고 몇 달 뒤 몇 년 뒤에도 연락이 온다. ‘▲▲에서 우리 작품 하는데 허가받고 하는 거야?’하고.
덧붙임. 이번 글은 소재를 두고 갈팡질팡하다 마감을 살짝 넘겼는데 글을 쓰다 보니 다음 소재가 두 가지나 굴러 나왔다. 다음은 ‘기획비’, 그 다음은 ‘기획팀이 만나는 법과 규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