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Faust)’
– 임야비(tristan-1@daum.net)
자유기고가, 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극단 듀공아 / 극단 동맹 연출부 드라마투르기
거인 괴테의 텍스트에 감히 음악을 얹은 간땡이가 큰 거인 작곡가 둘을 소개한다. 바로 베토벤과 무소르그스키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둘은 가장 작은 간을 가진 벼룩에 음악을 붙였다. 우선 텍스트를 살펴보자.
텍스트는 보통 ‘벼룩의 노래’라고 불리는 부분으로, 파우스트 1부에서 메피스토펠레스가 라이프치히 아우어바흐 켈러에서 백성들(프로슈, 브란더, 지벨, 알트마이어) 앞에서 부르는 풍자가 가득한 노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간 큰 벼룩’이 있고 이 해충을 제거해야 할 사람들은 ‘윗선’의 눈치를 보느라 제 할 일을 못 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랫선’이 나서야 한다. 귀족들은 왕이 아끼는 벼룩을 죽이지 못하지만, 백성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죽일 수 있다. 여당 의원들은 대통령이 비호하는 장관을 내치지 못하지만, 성난 가재-붕어-게들은 그를 단칼에 내칠 수 있다. 소대장은 대대장이 싸고도는 당번병의 눈치를 보지만, 말년 병장들은 가차 없다. 부장은 사장이 예뻐하는 애첩을 건드리지 못하지만, 단합된 노조는 그 마녀를 광장으로 끌고 나올 수 있다. 19세기 초, 메피스토펠레스의 신랄한 노래에 웃기만 하던 백성, 가재-붕어-게, 병장, 노조가 슬슬 ‘간 큰 벼룩’을 박멸하기 시작한다.
엄청난 걸작을 무수히 남긴 베토벤. 그의 작품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위대함 그 자체’다. 여기에 덧붙여, 베토벤의 또 다른 위대함은 그가 신(神)과 귀족들의 ‘고상한 여흥’에 지나지 않았던 음악을 인간과 민중의 뜨거운 품에 안겨준 ‘민중 작곡가’라는 것이다.
교향곡 3번 ‘영웅(Eroica)’의 원제목은 ‘보나파르트(Bonaparte)’였다. 베토벤은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을 전 유럽에 전파한 나폴레옹에 열광해 이 곡을 작곡했는데,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표지에 쓰인 ‘보나파르트’를 지우고 ‘영웅’으로 바꾼 일화는 유명하다. 교향곡 5번 c minor (일명 ‘운명’으로 알려졌는데 잘못된 명칭이다)는 ‘인간’ 그 자체이며, 교향곡 9번 ‘합창’은 교향곡 3번과 5번의 인간들이 힘을 모아 도달해야 할 새로운 세상을 노래한다.
베토벤과 괴테의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괴테는 전 유럽에서 존경을 받는 ‘거인’이었고 베토벤의 위치는 대문호의 명성에 비할 바 못 되었다. 베토벤은 마음속 깊이 괴테를 존경했지만, 그가 귀족들에게 굽실거리는 꼴을 영 마뜩잖게 생각했다. 어느 날, 둘이 같이 산책을 하는데 마주오던 시민들이 인사를 건넸다. 괴테가 답례 인사를 하자 베토벤은 괴테에게 ‘당신을 보고 한 인사가 아니라 나를 보고 한 인사입니다’라고 했다. 베토벤은 그런 ‘간 큰’ 남자였다.
이런 남자 베토벤이 벼룩을 가만히 둘리가 없다. 1809년 작곡한 ‘6개의 가곡 op.75’의 제3번 g 단조 ‘벼룩의 노래’에서 그는 날뛰는 벼룩을 가볍게 압살한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극 중 메피스토펠레스와 무대 위의 테너, 바리톤 가수다. 하지만 이를 읽고, 듣고, 상상하는 프로슈, 브란더, 지벨, 알트마이어 그리고 우리의 엄지 손끝에는 이미 간이 터진 채로 눌려 죽은 벼룩이 붙어 있다.
이 곡에서 주목할 부분은 두 곳이다. 하나는 스타카토의 도약음으로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벼룩의 움직임을 묘사한 멜로디다.(악보1) 이 기괴하고 예측불허한 이미지에는 벼룩과 함께 메피스토펠레스도 함께 들어 있다. 다른 하나는 곡의 마지막으로, 연주 내내 휘젓고 다니던 벼룩의 멜로디는 점차 하강하다가 피아노의 일격으로 끝나버린다.(악보2) 이 타건에 최소 벼룩은 죽고, 그 강도에 따라 메피스토펠레스까지 멸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베토벤의 승리이자 민중의 응징이다.
베토벤은 프로메테우스에 자주 비견된다. 신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건네준 거인(티탄족) 프로메테우스는 그 간땡이가 부은 행동에 대한 대가로 산에 묶이게 되고, 매일 제우스가 보낸 독수리로부터 간이 쪼이는 극형을 받게 된다.
프로메테우스가 신으로부터 훔친 불 때문에 인류의 문명이 크게 도약했듯이, 베토벤이 귀족의 살롱과 교회의 예배당으로부터 공공 연주회장으로 몰고 나온 음악 덕분에 인류의 정신은 몇 단계 위로 고양되었다. 베토벤의 혁명 정신과 위대한 음악들은 서양 음악사를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산에 묶인 채 신이 보낸 독수리로부터 매일 간을 뜯기는 형벌을 당했듯이, 베토벤은 평생 청각장애와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이런 신화 속의 이야기 때문에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을 희생하여 인류에게 큰 깨우침을 준 선각자의 아이콘이 되었다(참고로 ‘프로메테우스’는 어원적으로 ‘먼저 생각하는 자’라는 뜻이다).
실제로 베토벤은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op.43)’을 작곡했고 이 곡 중 중요한 테마(일명 프로메테우스의 주제)를 ‘영웅 교향곡(op.55)’와 ‘에로이카 변주곡(op.35)’에 그대로 적용한다. 베토벤은 일찌감치 자신의 ‘프로메테우스적 운명’을 감지했을지도 모른다.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1839~1881)는 우리에게 ‘전람회의 그림’, ‘보리스 고두노프’, ‘민둥산의 하룻밤’으로 유명한 러시아의 작곡가다. 기괴한 천재인 무소르그스키는 주당, 말술로도 유명하다. 위의 그림은 무소르그스키가 죽기 직전 일리야 레핀이 그린 초상화로 술꾼의 빨간 코(주사; 酒筱, Rosacea)가 인상적이다. 결국, 그는 42번째 생일을 앞두고 알코올 중독에 의한 간경화 발작으로 허무하게 세상을 등진다.
무소르그스키는 러시아 음악사상 가장 독창적인 작곡가로 평가된다. 그의 후기작인 가곡 ‘벼룩의 노래(1879)’에서도 그 천재성과 호방함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간 큰’ 베토벤이 벼룩 같은 존재의 척살에 중점을 두었다면, ‘(술로) 간이 부은’ 무소르그스키는 멍청한 왕과 비열한 귀족들을 향해 호탕한 비웃음을 날린다.
Moderato(보통 빠르기로) 템포로 시작되는 곡(악보1)은 조금씩 휘청거리더니만 이내 꼬여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다 Andantino maestoso(조금 느리게, 장엄하게) 부분에서 아예 대놓고 주사를 시작한다. 노래 중간에 총 14번 삽입된 웃음소리는 괴테의 원문에는 없는 부분으로, 음악적 효과와 무대 위 연출적 요소를 위해 무소르그스키가 삽입한 일종의 ‘지시문’이다. 이 웃음은 메피스토펠레스의 경멸 또는 백성들의 폭소가 될 수도 있고, 괴테의 풍자나 무소르그스키의 주정이 될 수도 있다. 곡이 진행되면서 술 취한 작곡가의 맹폭이 귀족은 물론 왕과 벼룩까지 한 번에 쓸어버린다. 노래는 통렬한 웃음소리로 끝맺는데(악보2), 아우어바흐 지하 술집에서 프로슈와 브란더 그리고 지벨과 알트마이어가 호쾌하게 맥주잔을 비우는 장면이 눈앞에 또렷하게 그려진다.
같은 텍스트에 곡을 붙인 두 작곡가의 음악을 알아보았다. 음악에 순위를 매기기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무소르그스키가 ‘벼룩의 노래’만큼은 악성을 능가한다고 평가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작곡가가 본디 지니고 있는 정신을 고려하면 베토벤의 곡이 무소르그스키의 곡에 비해 훨씬 천재적이라고 추켜세운다. 아무 의미 없는 논쟁이다. 그래 봤자 두 곡 모두 3분이 채 안 되는 ‘벼룩의 간’ 만한 노래일 뿐이다. 두 곡을 번갈아 들어보자. 음악적 평가를 하기보다는 누구의 간땡이가 더 큰지 상상해보는 것이 훨씬 유익한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