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Faust)’
멘델스존 – 첫번째 발푸르기스의 밤
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극단 듀공아, 외계 공작소, 동맹, 아레떼 연출부 드라마투르그
독일 중북부에 길게 걸쳐 있는 하르츠(Hartz)산맥은 수려한 자연경관보다는 오랜 괴담으로 더 유명하다. 바로 4월 30일부터 5월 1일에 걸쳐 진행되는 발푸르기스의 밤(Walpurgisnacht) 때문이다. 원래는 기독교의 축제였으나 중세 독일권에서는 세상의 모든 악마와 마녀 그리고 요괴들이 하르츠산맥의 브로켄(Brocken)산에 모여들어 요란 법석한 파티를 벌인다는 괴담으로 변질되었다. 참가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엿보고 싶은 광란의 축제는 오랜 시간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수많은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그 중 문학 작품으로 가장 으뜸은 두말할 나위 없이 바로 괴테의 파우스트다.
멘델스존은 1832년 괴테를 위해 ‘첫 번째 발푸르기스의 밤; Die Erste Walpurgisnacht (op.60)’이라는 대규모 칸타타를 작곡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해 괴테가 사망한다. 1833년 베를린에서 열린 초연회에 원작자인 괴테 없이 열렸고, 괴테를 깊이 존경했던 멘델스존은 이를 매우 비통해했다.
2년에 걸쳐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 연관된 음악을 제일 작은 편성부터 크레셴도를 걸어 가장 큰 편성까지 마치 산을 오르듯이 연재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소개할 멘델스존의 칸타타는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괴테의 텍스트이긴 하지만, 파우스트의 텍스트는 아니다.
‘첫 번째 발푸르기스의 밤’은 괴테가 쓴 발라드(Ballade; 중세 음유시인이 부르던 자유로운 서사시)로, 우리가 알고 있는 파우스트의 ‘발푸르기스의 밤’ 장면과는 내용이 사뭇 다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괴테의 기발한 상상력이다.
괴테는 기독교 성인 ‘성(聖) 발푸르기스’의 성스러운 축제가 악마와 마녀들의 난잡한 파티로 변모했는지 그 뒷이야기를 시적 운율에 담아 우리에게 들려준다. 괴테의 발라드는 악마와 마녀가 점령한 ‘발푸르기스 밤’의 유래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프리퀄(prequel; 前史)이자, 연극 파우스트 속 명장면의 밑그림이다.
발라드의 내용은 매우 흥미롭다. 브로켄산의 깊은 숲속에 살고 있는 이교도(드루이드) 집단이 자신들의 신을 모시는 제사를 지내려 할 때 기독교인이 침입해 온다. 그래서 이교도들은 숲에 숨어서 각종 도구로 기괴한 소리를 내고, 이를 악마의 소리라고 생각한 기독교인들이 혼비백산한다는 줄거리다. 이런 식으로 기독교인의 축일이 이교도의 축제가 되었고, 그것이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악마와 마녀의 파티가 되었다는 괴테의 ‘썰’이다. 대문호 괴테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아무도 알 수 없는 역사의 한 장면을 그럴듯하게 각색한 것이다.
멘델스존은 괴테의 ‘첫 번째 발푸르기스의 밤’을 총 10곡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칸타타로 음악화했다. 알토, 테너, 바리톤, 베이스 네 명의 독창자와 혼성 합창단 그리고 지휘자와 2관 편성의 오케스트라를 합치면 연주 인원은 100명이 훌쩍 넘는다. 아마도 괴테에 대한 존경을 담은 멘델스존의 음악적 헌사일 것이다. 멘델스존은 거장이 남긴 텍스트의 변용을 최소화하면서 그가 짜 놓은 이야기를 충실하게 따르는 음악적 전개를 들려준다.
각 10곡을 살펴보자.
서곡: 저음 현이 저주를 깔고 주선율이 긴장을 얹는다. 중간중간 목관이 마디처럼 끼어들면서 조금 잠잠해지지만, 바이올린이 마녀의 웃음소리를 흉내 내는 기괴한 부분까지 저주와 긴장은 점점 고조된다. 숲을 상징하는 호른의 여유로운 선율이 현의 팽팽한 긴장을 억누르지만, 그리 길지는 않다. 다시 마력을 보충한 주선율의 총주가 터져 나오면서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이후 클라리넷이 주도하는 부드러운 선율로 잠시 진정하면서 제1곡 – 드루이드(테너)의 노래로 넘어간다.
1곡: 드루이드로 분한 테너가 오월의 숲을 찬양하면 이교도 무리가 이를 합창으로 받아 드높이 올린다. 선명하고 충만한 합주로 자유와 녹음의 기쁨을 노래하면서 이교도의 신을 추앙한다.
2곡: 모두가 들떠 있을 때, 무리의 한 여성(알토)이 무겁고 단호한 단선율을 업고 나선다. 그녀는 엄중한 저음으로 우리 이교도들은 얼마 안 있어 기독교인들에게 학살당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경고한다. 이어서 여성 합창이 불안한 울림으로 알토의 음성을 감싼다.
3곡: 아녀자들이 불안에 떨고 있을 때, 드루이드 사제(바리톤)가 나타나 용기를 가지고 오늘 있을 제사에 최선을 다하자고 이교도들을 독려한다. 그가 육중한 목소리로 신앙의 의무를 다하자고 웅변하자 남자 합창이 우렁차게 이에 화답한다. 사제는 신도들에게 숲속으로 흩어져 적(기독교인)의 동태를 감시하라고 명령한다.
4곡: 플룻,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의 속삭이는 듯한 스타카토로 분위기가 밝게 바뀐다. 목관의 총총걸음 위로 남녀 합창이 까치발을 들고 숲속으로 흩어진다. 음험한 일이 닥치기 직전, 이를 몰래 지켜보는 소심한 관찰자의 두근거림을 멘델스존은 여리고 빠른 스타카토로 멋지게 연출했다. 이 조마조마한 청각적 심상은 2021년 11월호에 본지에 연재한 ‘8인이 연주하는 파우스트 – 멘델스존 현악 8중주(op. 20) 3악장과 같은 결이다.
5곡: 드루이드 경비병(베이스)이 꾀를 낸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악마와 마녀를 무서워한다. 그러니 야습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말뚝과 갈퀴, 불꽃과 소리 나는 막대기로 마녀와 요괴 소리를 내어 그들을 쫓아내자는 전술이었다. 남성 합창이 이에 격하게 호응하고, 음악은 전의 넘치는 행진곡으로 바뀐다. 경비병이 적들이 다가온다고 소리치면 오케스트라의 템포가 갑자기 빨라진다.
6곡: 전투 직전의 초조와 결의를 널뛰는 관현악과 포효하는 합창으로 표현한다. 여기에 심벌즈와 팀파니가 가세해 긴장을 극대화한다.
7곡: 드루이드 사제(바리톤)가 등장해 격한 분위기를 진정시키고 그들의 신에게 기도를 바친다. 차분한 미사곡 또는 장중한 축전곡 같은 인상이 지배적이다.
8곡: 겁에 질린 한 기독교인(테너)이 드루이드들이 낸 기괴한 소리를 악마와 요괴의 소리로 듣고 혼비백산한다. 다른 기독교인들도 늑대인간과 용을 탄 마녀가 날아다닌다며 모두 숲 밖으로 줄행랑친다. 악보상 단 47마디밖에 안 되는 짧은 곡이라 플롯 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클라이맥스를 이루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
9곡: 승리를 쟁취한 드루이드들과 사제가 자신들의 신을 찬양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멘델스존은 드루이드 교리의 핵심인 “불꽃이 연기로 정화되듯, 우리의 믿음을 정화하소서! 그리고 그들(기독교인)이 우리의 고대 의식을 훔친다 해도, 그 누구도 우리에게서 당신의 빛을 뺏을 수 없습니다”를 ff 로 강조하며 거대한 방점을 피날레에 찍는다.
규모가 큰 곡이지만 음악 자체는 멘델스존 특유의 산뜻함이 담겨 있어서 총 연주 시간 35분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연극사에 큰 족적을 남긴 파우스트의 ‘발푸르기스의 밤’. 괴테가 상상력으로 펼쳐 놓은 그 기괴한 밤의 ‘프리퀄’이 궁금한 분들께 멘델스존의 칸타타를 들어보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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