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호_첫 인사 혹은 어떤 절대배우의 유래
글_장용철(배우)
안녕하세요? 저는 대학로 절대배우 장용철입니다. 사실 배우 작업을 하는 우리 모두가 절대배우 아닐까? 하고 중얼거린 지 한참 되었습니다.
자신의 일생을 잘 관통하는 일은 한 가지 일에 진지하게 몰두하며 주어진 시간을 잘 살아내는 사람들일 터인데, 지금의 우리는 차라리 어떤 절대적인 힘에 이끌리듯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의 서울연극>에 초대되어서 반갑고 감사한 마음을 우선 전하며, 당분간 저는 ‘연극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나’라는 주제로 서울 연극인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합니다. 막막한 시절을 어떻게 관통하고 지나가는지 그 거대한 물의 부피가 그려놓은 모래톱처럼 한 줄 한 줄 옆으로 긋고 한 발 한 발 뭍으로, 다시 저 바다로, 거친 흔적들을 천천히 밟으며 걸어가겠습니다.
지난 3년을, 월간 <한국연극> ‘연극인생’에서도, 코로나 시대로 막 접어드는 길목 어디에서 아주 많은 연극인들을 만났고 그 촘촘한 말들의 대강을 남겨두었더랬습니다.
이제는 “절대배우 장용철이 만난 풍경 ‘연극과 사람’”이라고 큰 제목을 정해놓고 빙긋 웃어봅니다. 우리 연극계에 디딘 마음 한편에 찌뿌둥한 무게감도 한 움큼 피어나지만 넓고 깊은 관대함을 구하고 앉아있습니다.
절대배우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먹는 일이다. 라고 주장하곤 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타고나야만 더 밝게 빛을 내는 요소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특히 우리 연극배우들은 우선 무엇을 타고나야 할까요? 무엇인가 타고나지 않았다면 나중에 그것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요? 세상에 길들여진 몸과 마음으로 무언가 다시 시작하는 일들은 어쩌면 인생의 역사를 돌이켜 태도와 정신의 기원으로, 대자연의 기원 혹은 사랑의 기원으로 발걸음을 다잡는 일이 될 것입니다.
‘별 이야기’ 하나를 꺼내봅니다.
때는 1993년 늦가을 즈음입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유진규 선생님은 당시의 안국동 볼재연기원 있던 자리에서, “제1회 유진규 마임 워크샵”을 시작하셨습니다. 회비가 무려 10만원이었는데 그 돈을 마련할 수가 없어서 안타까워하고 있을 때 극단 작은신화의 박정영 선배가 봉투를 건네었습니다. “공부하고 싶어 하는 널 보니까 내 마음이 움직이네, 이거 가지고 등록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극단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주라!” 그 말은 가슴에 남아서 이후로 무언가를 공부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향하는 작은 빛이 되었습니다.
연극을 전공하지 않고 수학을 전공한 내 가슴에, 음악과 시를 공부하고 싶어 했는데 연극반 동아리 활동에 전념하였던 대학 4년의 내 영혼에, 유진규 마임워크숍은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에 풍덩 빠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낙원상가 어느 집에서 술 한 잔 걸치고(?) 다시 연습실로 어깨동무하며 노래도 부르며 가던 중에 유진규 선생님께서 질문하셨습니다. “저기에 뭐가 보이냐?”
밤하늘에는 떠들썩한 도시와는 별개로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고, 아는 체하고 싶은 나는 “저 별은 북극성이고, 한 뼘 옆으로 카시오페이아고, 반대로 한 뼘은 북두칠성입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던 우리들은 멀리서보면 어떻게 보였을까요? 미래에 우리들의 모습이 언뜻 엿보였던 것일까요?
“그럼 저 별은 자기가 카시오페이아라는 걸 알겠냐?” 하시는 유진규 선생님의 말씀에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그걸 알 턱이 없으니까요. 별들이 빛난다고 자기가 빛나고 있다는 걸 알 턱이 없고 자기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을 테니까,“ 네? 그게 또 무슨 말씀이세요?” 하자, 선생님은 다시 말했습니다. “별들은 저 멀리서 빛나고 있는데, 자기 이름이 카시오페이안지 알겠냐?” 저는 대답했습니다. “그건 모르겠죠. 당연히.”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 자기 이름을 모르겠지. 다른 사람이 붙여주겠지. 그러니 너도 저 별처럼 빛나라. 그저 빛나고 있으면 된다. 다른 사람이 너의 빛을 보고 우리하고 똑같이 할 거다.”
“그저 별처럼 빛나라. 그러면 된다. 지금은 말고 나중에, 저 먼 별빛을 보듯이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우리의 별빛에 이름이 붙여질 것이다.” 이 말씀을 가슴에 새겨두고 이제까지 걸어서 여기에 도착합니다. 신탁을 받아온 사람처럼 우뚝 선채로 여기에 머물고 있습니다.
내 인생의 두 번째 별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50대 가까이에 세종대학교 특수대학원을 다닐 때였습니다. 전공을 하고 싶었던 마음에 연극학과라는 이름표는 황홀하였습니다. 어느 날 대학원 수업시간에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 ‘작은 인터뷰’를 시도하였습니다. 배우 남명렬에 대한 인터뷰였는데 대학로에서 만난 남명렬 배우에게 전해들은 북두칠성 이야기는 아주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밤하늘에 일곱 개의 별 북두칠성이 있는데, 그 별을 빛이 밝은 크기로 나열을 하면 1번 별이 가장 밝고, 7번 별이 가장 어둡겠다. 그런데 어느날, 세 번째 별 하나가 능력으로, 깨달음으로, 누군가의 조언의 영향으로, 무대 위에서 갑자기 그 밝기를 높일 때 과연 어떻게 될까? 전구를 켜놓은 듯 조악한 불빛은 결코 밤하늘 북두칠성처럼 아름답진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각자가 몇 번째 별인지를 잘 깨달아야 하는 것 아닐까? 그 조화로운 순서와 약속을 지키는 일이 우리 배우들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다.
그렇습니다. 지금 눈앞에 크고 밝은 별이 지금 흐릿하지만 꺼지지 않는 작은 별보다 더 훌륭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습니다. 더 멀리서 빛나며, 훨씬 더 큰 별이 아직도 자기 생을 태우고 있을 것이며, 우리는 그 별빛 하나라면 충분합니다. 잊지 않을 수 있고, 마음 다잡을 수 있습니다.
1999년 3월에 우연히 만난 절대배우 김상호. 그 이름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전주에서 올라온 25살 절대배우 김상호였습니다. 자기 자신을 절대배우라고 소개하는 김상호를 오래오래 기억합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반지에서 가져온 이름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도 우리 절대배우들은 주어진 하루를 다 걸어가야 합니다. 그저 빛을 내고 있으면 되는 그 이야기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마음먹습니다. 제0호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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