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황승경(연극평론가)
코로나19로 가장 위축되었던 공연 장르는 어린이공연이었을 것이다. 국내·외 우수 아동청소년연극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국내 최대 아동청소년 공연축제인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가 7월 15일부터 30일까지 16일 동안 대학로 일대 극장에서 성황리에 공연되었다. 팬데믹 여파가 완전히 가시지 않았던 작년 아시테지 여름축제는 해외공연(2개국) 2편만이 겨우 한국무대를 찾을 수 있었지만, 올해는 7개국 9편의 해외공연이 국내공연 4편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공연 뿐 아니라 예술놀이터, 텐트영화관, 공연연계 프로그램 등 공연 전후에 준비된 풍성한 즐길 거리로 참여 아이들은 공연관람뿐 아니라 탐미적 상상력을 배가 시키는 무한 여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31회를 맞이하는 올해 축제의 주제는 공존(共存/coexistence)이었다. 축제 관객은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고 베리어 프리(barrier-free)에 관한 진정한 가치와 이치를 체득할 수 있었다. ‘베리어 프리’는 장애인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물리적 장벽을 없애는 건축용어였지만, 이젠 사회적 약자들의 삶에 지장이 되는 심리적·정신적·물리적·제도적인 장벽을 허무는 실천운동을 의미한다. 공연계에도 베리어 프리가 화두로 떠오른 지 오래되어 많은 공연들이 장애인관객을 위해 전문수어통역사의 통역, 제공된 FM수신기를 이용하여 연극장면을 읽어주는 라이브 자막음성해설, 무대 위 중앙에 자막을 이용한 자막문자해설 등의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좀 더 발전된 양식으로는 배우들이 직접 수어를 몸짓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이나 배우들은 대사낭독만 하고 수어통역사들이 수어로 공연하는 방법 등이 있다. 다만, 이는 모두 성인이 된 장애인들을 위한 베리어 프리 공연양식이다. 장애아의 장애유형비율은 성인과 달라서 정신장애·발달장애·신경장애를 동반하지 않는 순수한 시각·청각 장애의 비율은 현저하게 낮다. 즉, 어린이극과 동일한 맥락의 베리어 프리 어린이극은 오히려 장애가 더 견고한 장벽으로 인식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2023 아시테지 여름축제에서는 ‘포용적 공존예술’의 일환으로 해외작품들을 선별했다. 그중 스코틀랜드 바로우랜드 발레단의 <Oh! 타이거(Playful Tiger)>가 눈길을 끈다. 바로우랜드 발레단은 호랑이가 가정집을 방문해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을 다룬 동화를 두 가지 권장연령 버전(7세 이상, 14세 이상)으로 무용극 <타이거>를 제작했다. 이후 동일한 서사로 관객과의 소통방식을 달리해 중증 자폐장애아를 위한 <Oh! 타이거(Playful Tiger)>가 재창작되었다. <Oh! 타이거(Playful Tiger)>는 감각적 경험과 상호 작용에 중점을 둔 대화형 동화책 같은 공연이다.(아시테지 공연 프로그램에는 대상으로 신경다양성을 가진 어린이로 명시되었지만 신경다양성 개념이 포괄적 경중개념으로 뜨거운 장애치료경계 논쟁에 있으므로 본 리뷰에서는 바로우랜드 발레단 홈페이지에 명시된 증증 자폐장애로 명시합니다.)
무대는 3명의 배우 외에도 보호자와 함께 관극 온 8명의 중증 자폐장애아가 경계를 넘어 다니며 더불어 만들어 가는 열린 공간이다. 완전한 예술적 자유를 맛 본 어린이관객들은 기꺼이 실연자가 되어 수시로 무대와 객석을 대담하게 오간다. 무대를 종횡으로 오르내리는 배우(무용수)들은 관객의 미묘한 감각적 변화조차 놓치지 않는 탁마된 관찰로 빠르게 반응하고 소통한다. <Oh! 타이거(Playful Tiger)>에는 ‘자폐성 장애아들이 비장애인과 다른 체계의 인지·사회·정서·언어·감각·행동·사고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반복적이고 제한된 관심과 활동을 하는 것이지 생각을 안 하거나 못하는 것이 아니다’는 철학이 녹아져 있다. 배우들은 호랑이와 오렌지라는 이미지에 관객의 반응을 도출하기 위해 같은 행동과 움직임을 끊임없이 무한 반복한다. 관객은 생소함과 두려움에 강한 거부의사를 표현한다던가 의사표현을 거칠게 주저하지만 배우들은 이면의 관객의도를 민첩하게 수용해 결국에는 외부세계인 무대로 인도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스코틀랜드 바로우랜드 발레단의 ‘포용적 공존예술’ 이머시브 베리어 프리공연은 우리의 베리어 프리 어린이극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