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주)신시컴퍼니 <2시22분 - A GHOST STORY>

글_김건표(연극평론가, 대경대학교 교수)

 

 연극이 스릴감 있는 복선과 암시, 팽팽한 긴장감과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와 앙상블, 혀를 찌르는 기막힌 반전까지 더해진다면 무대에서 귀신이 출몰하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로는 극적인 요소가 충분하다. 신시컴퍼니가 5년 만에 선보이는 라이선스 연극 <2시22분 – A GHOST STORY>(작, Danny Robins, 박명성 프로듀서, 황석희 번역, 김태훈 연출,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은 역대 최대 폭염을 기록한 올해 연극적인 스릴러로 무장해 극적인 반전의 바람을 웰메이드 연극이다. 작품이 웰메이드 연극이라는 것은 플롯 구조와 설정을 통해 들어난다. 공포연극은 대체로 뻔한 스토리나 스릴러적인 반전을 시도하기 위해 작위적인 분위기를 설정하고 결말을 예측할 수 있도록 일방향으로 이끌어가는데 예측 할 수 없는 복선을 만든다. 남편 샘(김지철 분)이 섬으로 출장을 떠난 뒤 새벽 2시 22분만 되면 초등학교 교사 아내 제니(박지연 분)는 11개월 된 아이의 방에서 낮선 남자의 쿵쾅, 쿵쾅, 타닥, 드르륵 거리는 발소리를 듣게 된다. 아이는 혼령(魂靈)을 본 듯 비명에 가까운 울음을 쏟아내고 방 커튼은 닫혀 있던 창문 사이로 움직인다. 이 정도는 스릴러 연극의 공통된 연출 분위기다. <2시22분>은 한 발 더 들어간다. 출장을 갔던 남편 샘이 집으로 돌아온 뒤 분위기다. 70년대풍 빅토리아식 테라스 구조의 전원주택을 배회하는 귀신의 흔적은 ‘혼령’이 집을 배회하고 있다는 미스터리한 신호를 보내며 존재감을 키운다. 울음소리는 점점 커지고 테라스 주변에서 들려오는 여우 소리와 흔들거리는 불빛들, 사라지는 곰 인형과 화장실과 응접실은 귀신 흔적들이 집을 지키고 있다.

 

사진 제공: 신시컴퍼니

 

 무대는 전통적인 빅토리아식 테라스 하우스다. 후면으로는 넓은 유리문 구조로 되어 자연적인 테라스 전경이 한 눈으로 들어온다. 별을 관측할 수 있을 정도다. 응접실에는 물리학 교수인 샘이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천체망원경이 보인다. 주방 공간 주변으로 소파와 목재가구가 널려져 있고 2층으로 연결된 계단은 아이 방과 샘, 제니의 방으로 갈 수 있는데 보이지 않는다. 샘,제니,아이의 소리만 들리는 구조로 음산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공간이다. 아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무전기 같은 모니터가 있고 인간의 음성명령에 따라 음악을 키고 조명 밝기를 조절해 주는 작은 인공지능 AI, 알렉스가 보인다. 집은 낡고 허름하면서도 현대적인 구조다. 집은 남편 플랭크가 죽은 뒤에도 40년 동안 집을 지켜온 마가렛 할머니한테 제니와 샘이 사드렸다. 집을 두 사람한테 팔면서도 유언처럼 남긴 말은 “할아버지가 만든 선반과 공구들과 함께 오래된 집을 잘 사용해 달라는 것”이였다. 이 한마디가 귀신의 열쇠를 푸는 혼선의 복선(伏線)이 된다. 노부부가 살았던 동네는 재개발 붐으로 한창 뜨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이다. 작가는 플랭크가 태어나고 자란 수백 년이 될 법한 집 구조에 귀신이 등장하는 음산한 분위기를 설정하고 디지털시계가 번개처럼 움직이며 극은 하루 동안 벌어지는 제니의 집에 관객을 집중시킨다. 극이 열리면 제니는 응접실 내부 외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다. 여전히 집수리는 진행중이다. 70년대 벽지는 군데군데 벗겨지고 칠해져 있고 상단 위 나무 기둥은 세월을 느끼게 한다. 테라스 채광이 한눈에 비치는 한옥 구조에 최신식 아파트 내부라고 할 수 있다. 이사한 집에 샘의 대학 퀴즈동아리 동기인 심리치료사 로렌(임강희 분)과 그녀가 화장실 인테리어 시공을 하면서 만나게 된 남자 친구 벤(차용학 분)이 제니와 샘의 집에 오면서 부터 시작된다. 극초반에는 집들이를 준비하는 일상적인 대화들이 오고 가면서도 차츰 미스터리한 현상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진 제공: 신시컴퍼니

 

‘미스터리한 귀신 이야기’ 스릴러연극 <2시22분>

 작가는 ‘신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논쟁처럼 극중인물 네 명을 통해 혼령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학계와 현실사회에서 벌어지는 귀신 논쟁 구도를 만든다. 집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스터리한 현상에 시선을 분산시키는 작가의 장치다. 귀신의 존재를 예측할 수 없도록 장면의 분위기는 연결된다. 모니터로 들려오는 아이의 울음소리는 증폭되고 자연채광이 들어오는 테라스를 통해 누군가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초자연적인 분위기를 연속적으로 만든다. 벤이 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에서 연출은 연기(煙氣)의 패턴과 자연공간 분위기로 낡고 오래된 노부부의 분신같은 집을 떠날 수 없는 혼령이 인간 주변을 맴도는 것처럼 미장센의 구도를 연출해 분위기를 자극한다. 02시 22분만 되면 들리는 낯선 발소리, 아이 울음소리, 자연적으로 발화되는 초자연적인 현상의 미스터리한 상황들이 반복적으로 발생된다. 혼령의 실체를 두고 신이 실재한다고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무신론자로 규정한 아이작 아시모프의 논쟁처럼 극중인물을 통해 혼령에 대한 실재와 미신 논쟁의 대립 구도를 만든다. 그 사이로 샘이 출장에서 돌아온 뒤에도 <2시22분> 정확한 시간에 들여오는 아이의 울음소리와 발걸음 소리, 미스터리한 초자연적인 현상은 수백 년 된 집을 현대식으로 고치면서부터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귀신의 존재를 점차 믿어가는 초등학교 교사 제니이다. 샘은 ‘열역학 법칙’을 신봉할 정도로 과학적 증거를 중시하는 무신론자다. 로렌은 전생의 환생을 궂게 믿는 인물이다. 자신을 프랑스 혁명 때 살았던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어린 시절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혼령(귀신)을 체험한 경험자로 영적인 존재와 사후세계를 믿고 있는 인물인데 반해 로렌은 모든 인간은 두려움의 공포를 느끼고 있다며 인간이 받아들이는 감각 본능이 이성의 과학적 판단을 차단 할 수 있다며 혼령의 실체를 흥미롭게 생각하는 인물이다. 극중인물로 보면 귀신과 혼령의 존재를 믿은 사람은 2명(제니, 벤)이고 중간적인 입장을 취하는 인물은 1명(로렌)이고 샘은 존재를 부정하는 것으로 분류된다.

 2층에서 아이의 방문을 열고 누군가 달려나 올 것 같은 분위기, 응접실 식탁 선반 위에 있던 곰 인형이 1층 화장실 안에서 물에 젖은 채로 있다. 인공지능 알렉스는 귀신 놀이의 진범이 누구인지 밝히는데 혼선을 주며 복선의 설정을 한다. 1막은 귀신의 실체를 규명하려는 극중인물의 논쟁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작가는 극을 흥미롭게 연결시키는데 스릴러의 전율과 팽팽한 긴장의 구도를 만든다. 2막부터는 혼령의 실체를 규명하려는 극 중 인물들의 게임으로 공포 분위기를 2배속으로 당긴다. 2막의 분위기는 더 음산해지고 여전히 미스터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에 제니의 내면을 들어보자 ” 이 집을 배려하지 않고 다 뜯어 놔 버렸어요. 긴 세월 동안 사랑과 온기가 쌇여 있던 집이었는데…. 사람들이 자라서 결혼하고, 같이 자고, 애 낳고, 죽고. 한 겹 한 겹 소중하게 쌓여진, 여기에 살던 사람들의 얘기들인데 그걸 우리가 다 뜯어버린 거예요”라고 말할 정도로 집에 귀신이 존재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샘이 프랭크의 옷장을 집 마당에서 태워버렸다고 말하면서 제니의 믿음은 절대적으로 커져간다. 놀란 것 같은 아이의 울음소리와 02시22분에 방에서 쿵쾅거리는 남자의 소리에 혼령(귀신)의 실체를 알고 있는 듯 벤은 혼령사 처럼 샘을 바라보고는 “02시 22분. 왜 그 시간에 오는지 알잖아요.”라고 말하고 샘은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받아친다. AI 알렉스의 묘한 반응과 추측해 볼수 있는 벤의 암시적인 대사에도 작가는 극의 열쇠를 풀 수 있는 설정들을 주변의 소음처럼 장면과 극 중 인물들의 대사들로 흘려보내며 극은 2막 5장부터 흥미로운 게임으로 흘러간다.

 

사진 제공: 신시컴퍼니

 

 샘, 제니, 로렌, 벤은 마치 ‘궁신사바라, 궁신사라바’귀신놀이처럼 혼령을 소환하기 위한 게임을 시작한다. 어두워진 응접실 조명은 귀신이 출몰할 것 같은 분위기로 극대화되고 식탁으로 모여든다. 이들은 미스터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집을 지키고 있는 프랭크 라고 믿고 게임은 시작된다. ” 프랭크, 우리가 모든 힘을 집중하고 있어요. 이곳에 와 있다면 우리와 함께 해주세요. 신호를 보여주세요.(중략) 이 집에서 마가렛과 살았나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식탁은 서서히 움직인다. 관객들은 어,어,어 하며 분위기에 눌리고 샘은 인간의 기대 현상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관념운동’ 현상이라며 조롱한다. 작가의 눈속임이다. 귀신의 실체를 느낄 수 없는 분위기인데 알렉사는할머니가 어릴 적 벤에게 가르쳤던 1940년대 글렌밀러의 ‘In An Old Duch Garden’노래를 틀면서 벤과 전생, 귀신과 혼령의 실체는 사실적인 분위기가 된다. 음악을 콕 집어서 트는 걸 보면 마치 이 집은 귀신의 혼령이 지배하고 있다는 걸 암시하고 벤은 대화를 이어간다. “프랭크, 아기 피비방에 들어가는게 다른 영혼인가요.(중략) 그 영혼이 여기에 있는 누군가와 관련이 있다면 그 사람 쪽으로 식탁을 움직여 줄 수 있나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탠드가 깨진다. 아기 피비의 비명이 들리고 식탁은 응접실을 날아다니는데 관객은 귀신의 실체보다는 미스터리한 현상들이 벌어지는 상황에 몰입되어 있다. 02시 19분, 귀신이 출몰하는 22분을 3분을 남겨두고 작가는 극적인 반전을 재점화한다. 그 시간 집을 방문하는 것은 초인종 소리를 내며 들어서는 경찰관이다. 소름의 전율이 느껴지는 밀러와 스털링 순경의 대사다. “남편분은 사망하셨습니다. 밤에 산책하시다가 절벽에서 추락하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인과 통화를 시도한 시간이 수요일 새벽 2시 22분이었습니다.” 절벽에서 떨어지기 직전 생존해 있던 마지막 시간이다. 관객은 귀신의 실체가 샘이었다는 사실을 경찰관의 대사를 듣고 비밀이 해제되는 순간 전율을 느끼게 된다. 아이의 방을 배회하는 혼령이 되어도 제니와 아이, 집을 지키고 싶었던 걸까. 귀신의 존재를 부정한 샘이 그 실체 였다는 것이 아이러니 하면서도 작가의 인물설정이 뛰어난 장면이다. 귀신과 혼령의 존재, 전생의 이야기는 과학적으로 확인되거나 설명할 수 없지만 작가는 귀신과 혼령의 존재를 분명히 믿는 것 같다.

 소름 돋는 마지막 반전을 숨기며 치밀한 복선을 등장인물 대사 사이로 섞어놓고 한 사람한테만 응답하지 않았던 인공지능 AI 알렉스의 설정까지. 극을 돌아보면 작가의 치밀한 계산이 공포 영화와 드라마가 아닌 연극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것에 희곡의 탄탄함을 느끼게 된다. 결말을 향해 극을 촘촘히 쌓아올려 한방에 반전을 시도하는 작가의 노련한 상상력으로 품격 있는 공연이 되었다. 작품이 연극적으로 뛰어난 점은 귀신의 비밀을 풀어가면서도 미스터리한 혼령의 존재를 두고 사회적인 논쟁을 시도하고 소통의 부재와 관계, 죽음과 삶의 본질에 대해 접근하고 있으면서도 공포, 유머, 논쟁이 극의 결말까지 연속적으로 대비되고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귀신과 공포 스릴러 연극을 표방하는 연극은 대체로 뻔한 스토리와 예측할 수 있는 반전과 결말, 조합한 귀신들의 출몰과 음향효과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극대화해 연극적인 분위기를 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연극 <2시22분>은 클레식한 연극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스릴러 연극의 표본을 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극 후반까지 동일한 상황들이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평면적인 구도가 지루해질 법도한데, 연출은 작가가 숨겨놓은 마지막 한 방을 위해 극적인 템포로 극의 분위기를 끝까지 긴장감있게 분산시키고 배우들의 연기로 스릴러적인 전율이 유지될 수 있도록 했다. 2막 4장에서 5장으로 이어지는 장면 분위기가 늘어지는 것은 여전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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