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양세라
<혁명의 춤>(8월 17~27일, 더줌아트센터)은 마치 바로크회화처럼 어두움과 빛의 대비가 강렬했다. 혁명의 순간 빛과 어두움, 여기와 저기, 그들과 우리로 나뉘는 바리케이트의 경계가 표현되는 강렬함은 마치 고야의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와 같았다. 무대를 장악하는 어두움과 그에 비해 작은 빛이 어둠을 뚫고 배우들의 작은 얼굴과 몸으로 떨어지는 명암으로 표현된 <혁명의 춤>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빛과 어둠, 검은색과 붉은색이 회화처럼 강렬했던 감각을 기억하며 연극 <혁명의 춤>을 되새겨 보았다.
양쪽으로 관객석이 무대를 마주 보는 구조로 구성된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 갓등 그리고 바닥에 설치된 모닥불과 공사장 한켠을 밝히듯 드럼통의 불과 조명이 나열되듯이 설치되어있다. 관객이 공연이 시작되기 전 무대에 들어가면 무대 위와 아래는 이처럼 각종 불과 조명들이 나열되어있지만, 공연의 시작은 암흑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암흑을 뚫은 빛은 아주 작은 휴대용 조명의 가느다란 빛의 깜빡임으로부터 시작되며 공연은 출발한다. 마치 숨을 멈추다 나지막하고 조심스럽게 호흡하듯이 배우들은 어둠을 뚫고 작은 조명에 의지해 소통할 뿐 아무런 말이 없다. 어둠을 뚫고 그들의 움직임과 호흡만이 극장을 가득 메우니 관객은 마치 강너머 어둠을 뚫고 지나가는 정체 모를 이들을 지켜보는 겁먹은 짐승처럼 덩달아 동공만 커지며 이들을 지켜보게 된다.
어둠 속 움직임에 익숙할 즈음, 숨죽여 지켜보듯 바라본 <혁명의 춤>은 프롤로그(서막), 여덟 개의 짧은 장면, 에필로그(종막)로 세 부분으로 구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연극은 마치 혁명의 순간의 영화적 스틸이 반복되며 혁명의 순간을 완성해 나가는 몽타쥬적 구성을 취했다. 불빛, 담배 연기, 라디오 소리, 주파수, 클래식과 이질적인 대중음악이 교차하는 무대는 다채로운 감각들이 중첩되기도 한다. <혁명의 춤>은 어둠 속에서 시작하고 어둠 속에서 막을 내린다. 그리고 낮게 깔리며 비춰지는 불빛에 의지해 혁명의 순간과 상황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빛과 함께 등장하고 움직인다. 이 이질적인 감각의 꼴라쥬를 뚫고 혁명의 순간 혹은 상황들이 섬광처럼 비껴가고 중첩되는 경험을 하였다.
이런 인상을 받은 이유는 무대 전체의 암흑을 뚫고 반복되는 빛들이 대비되면서 공연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처럼 강렬한 몽타쥬는 반복되는 배우들의 몸짓과 대사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반복은 아주 세심하게 결이 다르며, 놀라운 것은 각 장면이 하나로 구성되는 혁명의 순간을 완성하기도 한다. 이를 표현하는 열세 명의 배우들이 보여주는 간결한 움직임은 미세한 틈과 결을 지니며 블록처럼 공연의 끝으로 갈수록 한편의 그림 같은 순간을 만들어낸다. 배우들이 연기하는 인물들은 조심스럽게 수신호와 불빛을 주고받고, 때로 두 손을 번쩍 들어 서로를 확인하기도 한다. 이 동작들은 ‘손전등’, ‘샹들리에’, ‘삼각대 등불’, ‘드럼통 불’, ‘실내 갓등’, ‘거리등’, ‘모닥불’, 다시 ‘손전등’ 불빛과 함께 혹은 동시에 움직인다. 불빛과 배우들은 그룹을 지어 움직이는데, 그룹의 대형에 따라 다른 상황을 표현하기도 한다.
배우들의 군더더기 없고 간결하며 확신과 신뢰를 주는 몸짓과 동작에는 세심한 리듬과 음이 실려있는 듯했다. 덕분에 이야기가 없어도 의지와 분노, 조심스러움, 절망, 긴장, 광기가 강렬하게 전달되어 배우의 몸에 집중하게 되었다. 배우들의 간결한 동작과 이들의 몸짓에 실려 혁명의 상황과 순간, 감각의 무게와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배우들의 수많은 훈련과 연습으로 만들어졌을 에너지는 그대로 <혁명의 춤> 극적 상황을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박자에 맞춰 춤추듯 호흡하며 공연을 경험했다. 이런 경험이 가능했던 것은 마치 촛불이 공기흐름에 영향을 받아 흔들리듯이 공연장의 어둠을 뚫고 나오는 빛이 파도 소리, 왈츠음악, 총소리, 개 짖는 소리, 라디오 주파 맞추는 소리, 이국적인 음악소리, 비행기 소리, 사이렌소리와 함께 수행되기 때문이었다. 마치 소음처럼 무의미한 소리들은 빛과 동작, 동일한 대사와 반복하면서 일정한 리듬을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 이 팽팽한 긴장감의 연속에 터질듯한 감각이 절제된 춤처럼 유려한 몸짓으로 마치 탱고처럼 전달된다면 하는 순간도 있었다.
<혁명의 춤>은 간결한 대사의 반복을 통해 많은 상황이 중첩되는 몽타쥬를 감지할 수 있다. “기다려” “여기” “이쪽이야” “뭐지?” “그들 거야!” “그들이 여기 있어” “들려?” “누군가 오고 있어” “아냐” “준비됐어?” “여기 있어” 이 대사가 반복되면서 짧은 말에 실리는 에너지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덟 번의 상황에 반복하는 대사는 그 말해지는 방식에서 혁명의 순간의 긴장감과 분노, 공포, 조심스러움, 때로 도망자를 쫒는 추격자들의 수색과 순찰의 상황이 뒤섞인 듯 단조롭지 않음을 감지할 수 있다. 같은 대사의 반복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다른 호흡과 어조, 정서로 표현된 혁명, 상황의 다른 결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간결한 대사가 말해지는 순간은 잠시 멈추듯 사이(pause)를 두고 있어 관객은 혁명의 순간, 섬광의 순간에 이야기를 떠올리고 입힐 수 있었다. 야전 침상에 뉘인 젊은 청년, 바닥에 숨진 듯 누운 젊은이 신체 주위를 흰 테잎으로 표시하는 장면에서 여전히 곳곳에서 진행 중인 혁명의 상황을 투사하게 된다. 떠오르는 몇 가지 혁명의 순간들이 있다. 특히 공연 중에 울려 퍼지는 이국적인 필리핀 여가수의 노래는 2019년 홍콩 민주화를 위한 시위, 2021년 미얀마의 군부 독재에 맞섰던 이들의 영상을 떠오르게 했다.
마이클 커비의 <혁명의 춤>은 대사, 소리, 움직임 등의 반복을 통해 이 극작가가 추구하는 구조주의 연극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김우옥 연출은 이러한 구조들을 연극의 전면에 내세웠다. 구체적인 이야기가 없어도 관객의 감각과 인식을 자극한다. 손가락 튕기는 소리. 기침하는 소리, 발을 구르거나 소리, 권총을 당기거나 두드리는 소리, 의료기기를 두드리는 소리 등이 강조되면서 <혁명의 춤>은 극적 상황을 미세한 감각을 집중시키며 관객의 영감과 상상을 자극한다. 김우옥 연출의 <혁명의 춤>은 단순하고 간결한 대사와 동작의 반복처럼 보이지만 철저히 계산된 작곡가의 악보처럼 연주된 공연이었다. 때문에 관객인 필자는 사건으로서 혁명의 상황을 상상하게 할 뿐만 아니라 당겨진 방아쇠처럼 긴장과 불안, 공포로 쫒기는 사회와 일상의 떨리는 공기를 인식할 수 있도록 연출된 공연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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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기사를 써주신 양세라 기자님을 김우옥연출가님의 다음 연극에 초대하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10월6-9일 겹괴기담 연극이고
전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김우옥교수님의 제자입니다. 교수님 작품을 너무 잘 써주셔서 꼭 한번 초대하고 싶은데 연락처라도 받을수 있을지…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