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이지현(서울지역 연극예술강사 이지현)
“선배님, 어떻게 연극선생님이 되셨어요? 저도 하고 싶은데, 방법 좀 알려주세요!”
학교 졸업 후, 극단에 들어가 대학로 연극무대에서 서다 잠시 쉬고 있는 대학 후배가 나에게 물어왔다. 난 뭐라 대답해주면 좋을지 고민이 됐다. 대답을 기다리는 후배에게 그저 쓴웃음을 보이며 먼 곳만 쳐다봤다.
17년 전, 어느 날이 떠오른다. 대학졸업 후, ‘연극’이라는 하나의 열정으로 인생을 펼쳐나가던 내 친구는 그 어떤 생계적 어려움이 있더라도 무대를 떠나지 않겠노라 다짐했고 그 다짐은 아직도 연극 무대 위에서 호흡을 하는 연극배우로 성장시켰다. 친구가 연극무대를 떠나지 않겠다고 했을 때, 나 역시 함께 하자고 했지만 결국 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나마 ‘연극’이라는 두 글자를 평생 갖고가겠다는 다짐을 마음깊이 새긴 채 연극배우가 아닌 연극예술강사가 되었다. 학생들 앞 교실 앞을 무대 삼으며 내가 이토록 좋아하는 연극을 학생들과 함께 하는 것도 참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한 해 한 해를 보냈다. 나에게는 교실 앞이 무대였고 ‘연극선생님’이 하나의 역할이었으며, 교실에서 마주하는 학생들은 나와 함께 호흡하는 관객이었다.
‘연극선생님’이라는 역할은 꽤 보람찼다. 무대와도 같은 교탁 앞에 오르며 다양한 연극기법으로 학생들과 함께 배우가 되었다가, 관객이 되었다가 매번 새로운 즉흥극을 하듯 시시각각 역할을 입고 벗었다. 무대 위에서 몸으로 배운 다양한 연극기법들은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교실 속에서 학생들에게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차츰차츰 흡수되었다. 놀면서 공부하는 과목, 나도 모르게 공부하게 되는 과목이 바로 연극예술수업이었다. ‘연극’은 마법과도 같아서 어떤 학년, 그 어떤 성별이든 아이들 사이에서 의미있는 변화를 이끌어냈다. 목소리를 한번 듣기가 힘들었던 친구가 마지막 수업 땐 단골 배우를 되게 만들고, 누군가가 바라보는 앞에 나와 표현하는 것에 어색했던 친구들은 수업이 거듭될수록 가장 먼저 손을 드는 발표쟁이가 되었다. 물론 출강하는 학교가 다 좋고, 매 수업이 다 만족스러우며 만나는 학생들 모두가 긍정적 변화를 보여주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학교교육 안에서 예술수업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얼마나 필요한 지 해가 거듭될수록 더 절실하게 느껴졌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다양한 기관을 통해 다채로운 교육현장에서 교육예술가(Teaching Artist) 혹은 문화예술교육사, 문화예술전문가, 학교예술강사, 예술협력강사 등등의 여러가지 호칭으로 불리며 예술교육을 이끌어 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만 해도 소속으로만 활동하는 예술강사는 현재 5천 여명으로 전국 약 8600개 초.중.고교에서 약 240만 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국악, 연극, 무용, 만화애니메이션, 공예, 디자인, 영화 사진 8개 분야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의 예술강사들은 모두 10개월만 고용계약을 맺는 초단시간 노동자로 주 15시간 미만으로 일할 수 있다. 겨울방학을 제외한 10개월만 고용계약을 맺기 때문에 매년마다 고용과 실업 상태가 반복되는 처지다. 맞다. 흔히들 생각하는 ‘예술은 힘들다, 예술하는 사람은 더 힘들다’는 식의 고정관념이 예술교육 현장에서 일하는 예술강사에게도 똑같이 현실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강사들이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수업 시수 제한이다. 정부는 주 14시간 이하, 월 59시간 이하, 연 476시간 이하로 예술강사들이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제한해버렸다. 15시간 미만 60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사람을 ‘초단시간 근로자’라고 하는데 예술강사들은 건강보험, 주휴수당, 퇴직금, 연차휴가 등이 따로 없다. 이 때문에 예술강사들은 기본적인 근로혜택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17년 차 연극예술강사인 나의 2023년 올해 수입은 어떨까. 순수하게 연극선생님으로만 활동하며 받게 되는 1년 치 임금은 세전 7,220,000원. 월급으로 환산하면 602,000원이다. 나이 마흔이 훌쩍 넘은 연극예술강사가 월 60여 만원으로 살 수 있을까. 예술강사 사이에서는 예술강사로서 1년에 최대로 일할 수 있는 476시수를 모두 수업하는 강사를 ‘재벌강사’라고 우스갯소리로 부르곤 한다. 476시간을 연봉으로 계산해면 2천여` 만원인데 말이다. 그만큼 고용형태와 처우가 매우 저급하다는 뜻이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만 파라’라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이든 한 가지 일을 끝까지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을 가진 속담이다. 17년 전, 연극무대에서 내려와 연극예술강사, 연극선생님으로서 17년 째 살아가는 나에게 이 속담은 꾸준한 노력을 1도 인정해주지 않는 거짓말과도 같다. 17년 차 연극예술강사로 아무리 최대한 수업을 많이 해도 받는 연봉은 2천여 만원. 더 슬픈건 그동안 한번도 천 만원 이상 연봉치의 임금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얼마 전 정부는 이른바 ‘실업급여 제도 건전화’의 첫걸음으로 초단시간 노동자들의 실업급여를 가장 먼저 손보겠다며 나섰다. 실업급여가 과도하게 지급되지 않도록 ‘일한 시간 기준’으로 제도를 바꾼다는 내용인데 이로 인해 고용형태가 불안정한 예술강사들의 실업급여가 가장 먼저 깎일 것은 불보듯 뻔하다. 물가는 오르고, 금리도 오르지만 예술강사의 임금은 그동안 딱 한 번, 3000원이 오른 게 전부다. 또한 예술강사직은 교원지위법에 따르는 교원이 아니어서 교권침해신고 대상도 되지 않는다. 우리 나라의 예술인 출신 예술교육가들은 학생들에게 폭행을 당해도, 학교에서 부당한 일을 겪어도, 학부모의 그 어떤 민원에도 그 어떤 보호를 받지 못함과 동시에 대응도 할 수가 없는 처지인 것이다.
4대 보험도 안 되고, 아파도 쉬지도 못하고, 초단시간 근로자에 21년동안 임금은 3000원 단 한 번 오른 게 전부이며, 5년-10년-20년을 일해도 퇴직금은 ‘0’인 불안하고 불합리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이 우물을 왜 나는 17년 째 파고, 또 파고 있는 것일까. 바로, 기대감 때문이다. 올해 이렇게 힘들었는데, 내년에는 처우가 개선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 그리고 함께 버티고 예술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알리고 있는 동료 예술강사들 때문이다.
“선배님, 어떻게 연극선생님이 되셨어요? 저도 하고 싶은데, 방법 좀 알려주세요!”라고 말하는 후배에게 “알려줄게! 무대 위에서 서면서 동시에 이 좋은 연극을 아이들을 가르쳐보렴, 내가 도와줄게!”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대신 쓴웃음 지으며 먼 곳을 쳐다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미안함 때문이다. 선배 예술인으로서, 예술인들이 다양한 형태로 예술교육을 할 수 있는 길들을 제대로 닦아놓지 못한 죄스러움이랄까. 내가 가진 예술혼을 무대가 아닌 또다른 곳에서 불태운다고 생각했지만 알고보면 그저 하루하루 버티기 바빴던 삶 때문이다. 예술인으로서 나의 예술적 재능을 교실에서만 꽃피웠을 뿐 그 외 정말 필요한 곳에서 큰 목소리를 내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연극선생님, 연극예술강사로 일하는 연극인들을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분들도 있는걸로 안다. 너무나 이해한다. 하지만 또 너무나 서운하기도 하다. 사람에게는 살아가는 방법이 다양하게 존재하듯 예술 실현에 대한 욕구와 실현 방법 또한 다양하니까. 이 글을 통해 연극선생님, 연극예술강사들의 부당한 처우를 알게 되었다면 그들을 묵묵히 지켜봐주길 부탁드린다. 또한, 그 힘든 우물을 왜 파고 또 파고 있는지 궁금하거나 묻고 싶다면 그 에너지를 이런 말도 안되는 고용형태를 만들어 시스템화시키고 있는 제도와 기관, 정부 쪽으로 방향전환 하길 바란다. 연극선생님이라 불리는 연극예술강사도 처음 시작은 연극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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