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라마플레이 <집에 사는 몬스터>

글_양세라

 

<집에 사는 몬스터>(극단 라마플레이,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 9.28~10.03)는 2018년 초연 이후 4번째 공연이다. 필자는 네 번째 공연을 보았다. 이 공연을 보고 필자는 무대를 두 가지 이미지로 보았다. 여러 겹의 큐브같은 무대가 사회복지라는 미로 같은 제도적 관념을 은유한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애와 존엄을 갖고 살아가고자 하는 인물들의 분투를 그린 환타지 드라마라는 점이다. 이 글에서는 <집에 사는 몬스터>를 ‘커콜디’라는 작은 스코틀랜드 마을에 사는 십대 소녀의 환타지 성장 드라마라는 점에 주목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어린 소녀와 아빠의 불안한 동거를 돕고자 하는 사회복지사의 등장을 계기로 소녀 덕이 자신의 현실을 인식하는 과정을 <프린세스 덕의 이야기>로 창작하고 동시에 변화, 성장하는 과정이 연극으로 재현되기 때문이다.

이 연극은 덕이 아버지 휴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과정처럼 표현되기도 한다. 10대 소녀 덕은 방 두 칸짜리 집에서 아버지를 돌보며, 세 살 때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엄마가 요정이자 몬스터로 곁을 맴돈다(필자는 덕이 그렇게 상상한다고 보았다). 덕은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는 아빠 휴를 돌본다. 앞을 못 보는 휴는 쓰레기통 같은 거실에서 인스턴트 음식만 먹으며 밤마다 게임 속 가상세계에서 위로를 받으며 살아간다. 이 연극에서는 미숙한 아빠를 돌보는 소녀 덕이 글을 쓰는 것은 자신 스스로 치유하고 성장하고 돌보는 중요한 행위이다. 처음 연극의 제목과 시놉시스를 통해 사회화에 미숙한 소녀를 그리며 편협한 이해로 극장을 찾았던 필자는 공연을 보는 순간 쑥스러워졌다. 이 공연은 4면 객석과 4면 무대로 만들어진 입체적인 공간에서 마주한 덕의 이야기와 상상력을 만나며, 존엄한 인간의 가치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꿈꾸는 사람들을 마주했던 경험에 대한 것이다.

 

사진 제공: 2023 집에사는몬스터

 

<집에 사는 몬스터>는 어린 소녀 덕 매카트니스의 불안과 외로움을 상징하듯이 어둠 속에서 넘어지며 비명을 외치며 시작했다. 그리고, 덕이 아빠와 부자연스럽고 짧은 단답형의 대화를 반복하기도 한다.

 

실내가 어둡구나, 불좀 켜지 그러니?

왜요? 아빠? 불은 이미 켜져 있는데

 

사회복지사에 의해 정상적인 가족으로 인정받아야 아빠와 이 위태롭고 우당탕탕인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는 덕의 간절함이 이 연극이 반영한 극적 현실이다. 영국에서는 덕처럼 장애나 질병 정신질환, 약물이나 알콜 등의 문제를 가진 가족이나 친척을 돌보는 18세 이하 아동이나 청소년 들을 영 케어러(Young Carer)라고 부른다. 이 작품은 영 케어러인 덕이 자기 앞에 닥친 삶을 헤쳐나가는 방식이 그려져 있다. 십대 소녀 덕의 아빠에 대한 사랑과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구조적인 무대 위에서 입체적이고 분열적으로 그려졌다. 여기에 이 연극은 극적 현실과 거리를 두며 주인공 덕이 글을 쓰는 과정도 재현한다. 이는 아빠 휴를 돌보는 덕 매카트니스가 <프린세스 덕의 이야기>라는 글을 쓰며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 그리고 덕 자신의 내면이 교차하는 과정을 무대에 재현하는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졌다. 무대 위의 배우들은 등장인물로서 각자 덕을 중심으로 그리고 덕이 쓰는 이야기와 덕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연극을 시작한다. 그래서 마치 덕 매카트니스가 쓴 글을 듣고 있는 듯하다.

<집에 사는 몬스터>에서 먼저 4면 무대와 4면 객석이 관객의 시선을 잡는다. 우선, 이러한 무대 활용은 객석도 적극적으로 무대와 상호작용하기를 바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넓은 무대를 객석으로 사용하고 무대 일부를 벽장이 있는 실내공간으로, 그리고 무대와 객석을 종횡으로 구분하는 런웨이처럼 남긴 통로무대를 십자형태로 두어 배우들이 이동하며, 물리적인 공간감과 깊이감을 부여했다. 무대는 여러 겹의 큐브라는 인상을 주려는 듯했다. 그리고 커다란 쓰레기통처럼 활용된 벽장 공간과 무대 맨 위에 설치된 문들로 무대가 큐브처럼 면과 면을 바꾸는 듯 움직이기도 했다. 이 문은 덕이 집밖에서 찾아오는 외부인과 소통할 때마다 덕의 심리상태를 반영하듯 밀고 당기며 이동하며 안과 밖,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가능한 출구가 되기도 했다. 문을 통해 덕은 게이 남자 친구, 아버지의 가상세계 친구, 사회복지사 언더 힐을 만난다. 문을 열어주기 전 덕은 이들과 상호작용을 위한 심호흡을 하곤 한다. 그리고 이들을 만나 준비한 역할극을 수행하거나 역할극 연습을 하기도 한다. 일종의 전환의식 같은 이 행위를 통해 덕은 조금씩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당탕탕 소동극처럼 보이지만 십대 소녀 덕이 로렌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역할극을 연습하는 장면이나, 아빠와 사회복지사 앞에서 건강한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기 위한 역할극을 연습하는 장면은 일상에서 기대감, 책임감 등등의 변화가 이 역할의 전환을 수행하면서 형성되는 듯 보였다. 관객은 이 장면에서 상호작용하며 이해와 공감 유머가 형성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2023 집에사는몬스터

 

이 연극에 등장하는 앞을 못 보는 아빠 휴, 그런 아빠를 돌보는 덕, 게이가 아님을 증명하려는 로렌스, 게임에서 어울린 사람을 만나기 위해 국경을 넘어 찾아온 아그네사는 모순적이지만 입체적인 인물들이다. 이 인물들이 덕과 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며 밀고 당기기를 하는 연기는 그런 감정의 물리적 관계를 아주 잘 보여준다. 게이인 로렌스가 덕에게 하는 부탁과 이를 받아들이며 연습하는 덕, 그리고 식물을 키우는 과정을 보여준다며 비오는 저녁 이끌리는 언더힐, 아빠 휴가 언더힐에게 마카롱 치즈를 요리해 주겠다는 엉망진창까지 여기에는 인간애가 있다. 언더힐이 외치는 무정부주의처럼 사회제도로서 도움과 보조, 지원은 이 연극의 중요한 전제이지만 우스꽝스럽고 덕의 삶과 엇나가는 듯하다. 등장인물들 가운데 1인 4역을 맡은 남권아 배우의 의상과 연기가 영국의 유명한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처럼 펑키한 감각을 전해준 점은 덕의 엄마와 언더힐과 아그네사를 오가는 그의 연기를 만끽하는 즐거움을 더해 준다. 회전 의자에 앉아 360도 회전하며 바라본 이 연극은 사랑과 관용, 관심에 대한 은유로 가득한 연극이었다. 사건의 전개로 연극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듯이 극장에 울리는 거친 벨소리는 덕이 무대에서 이 다양한 사람(이웃)들과 관계를 맺으며 시를 쓰듯 자신을 표현하는 과정이자 그 사이를 알리는 신호다.

관계성을 잘 드러내기 위해 설치되었다는 무대구조는 덕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기에 효과적이었다. 덕이 치유되고 성장하는 모습은 관계를 맺는 방식을 통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덕이 글을 쓰는 책상이 무대 위를 가르며 이동하고 책상의 창이 열리며 덕이 얼굴을 불쑥 내미는 장면에서 소녀의 상상력이 확장되며 현실을 극복하는 듯한 모습 같아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이 연극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상호작용 과정에서 성장하는 것에 대한 메타포가 가득한 연극이다. 등장인물들이 아빠의 게임 친구 아그네사의 오토바이를 함께 타고 덕을 찾는 빗속의 추격신은 안도감과 해방감을 준다. 우정과 관용, 사랑의 메타포가 강렬한 락 음악 같은 이미지를 전달하는 장면이었다.

 

사진 제공: 2023 집에사는몬스터

 

필자가 극작가 데이비드 그레이그(David Greig)의 작품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작가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알아보니<미드썸머>(2011), <노란 달>(2013), <한때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우주비행사의 마지막 메시지>(2014), <집에 사는 몬스터>(2018), <카사노바>(2022), <터칭 더 보이드>(2022) 등의 작품들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이 작가는 사회와 정치문제를 다루면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관점과 유머가 특징이라고 알려져 있다. 필자가 본 데이비드 그레이그의 첫 연극 <집에 사는 몬스터>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그리는 방식은 지구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는 현대인의 민낯이다. 연극치료나 치유로서 연극의 역할에 오랫동안 고민한 환경에서 드라마를 쓴 이 작가는 위트와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 보호 안에서 인간애와 존엄이 공존할 수 있음을 강렬한 감각으로 전달한 임지민 연출은 잘 계산된 환타지 영화처럼 독창적이다. 다소 계몽적일 수 있을 소재처럼 보이는 회색 빛의 현대인의 삶을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의상을 걸친 캐릭터로 표현하여 통통 튀는 십대 소녀의 환타지한 감성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가난과 질병 등으로 불안한 가정이 사회의 보호와 개인의 존엄 사이에서 공존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독창적으로 생각해 보도록 이끈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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