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셰익스피어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글_김충일(연극 평론가)

 

‘인간에 대한 이해’는 영원한 문제인가? 이 질문은 인간은 살아 있는 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그런 운명을 타고났다는 뜻일 게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들은 지금까지 숫한 좌절을 겪어왔지만 인간이해의 가능/불가능은 대안의 층위가 아니라 정도의 농담(濃淡)일 뿐이다.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끝없이 추구해 나아가야 하는 것 또한 인간의 운명일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에 대한 ‘자기물음’을 포기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라는 담론은 상이한 혹은 유사한 분절 점을 갖고 다양한 가지치기를 시도한다. 그 한 가지인 ‘인간이 지켜야할 도리(道理)’라는 실천적 윤리 속에는 지금까지의 예술 무대에 구현된 진부한 감동을 넘어서는 다양한 삶과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숨어 있다. 한편 역설적인 의미에서 그런 윤리의식은 회의하면서 사유가 작용하여 다른 무늬의 극적 작업으로 변모되고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것은 어떤 욕망(신체)과 권력(돈)의 놀이를 통해서 형성되는지, 어떤 모양을 하고 변화하는지, 낡은 문제들은 어떻게 새로운 생성의 문제들로 대체되어야하는지를 묻는 다른 이름이다.

 

사진 제공: 극단 셰익스피어

 

한 사내가 삶의 마당에 떨어진 낙엽을 쓸어내며 부드러우면서도 쓸쓸한 가을 무게를 저울에 달아보려 서성거린다. 그러다가 일상 속에서 때로는 흐느낌이 되기도 하고, 때론 단정한 매무새가 되기도 하고, 갑자기 사납게 달려들기도 하는 무대를 찾아 나선 것이다. 그 사내는 지난 10월 19일 대전 시내 대흥동 소극장 상상아트홀에 올려 진 극단 셰익스피어의 창단 20주년 기념작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김정숙 원작, 복영한 연출)속으로 얽혀들었다. 이 작품은‘극단 모시는 사람들’에 의해 2003년에 처음 무대에 오른 이 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국의 크고 작은 예술단체에서 다양한 변종된 모습으로 공연되면서 한국 연극의 대표작이 되었다.

도심 변두리 어제 동네에서 본 사람처럼 다가서기 부담 없는 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다. 대를 이어 30년째 오아시스세탁소를 운영하며 아버지와 가장의 무거운 짐을 양쪽 어깨에 메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강태국, 골목 세탁소를 청산하고 강남의 한복판에 폼 나는 세탁소 간판을 내걸고 싶어 하는 아내 민숙. 금의환향을 꿈꾸는 염소팔, 중풍에 걸린 할머니의 유품에 눈이 멀어 세탁소를 ‘습격’하는 안 씨네 자식들과 간병인 옥화, 40년 전 어머니가 맡겼던 세탁물을 찾아 희망을 품게 되는 불효자, 그럴듯한 의상을 빌리고 싶은 가난한 배우 지망생,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떼쓰는 딸의 철없는 모습 등 웃음과 애환이 교차하는 소시민들의 이야기가 오아시스세탁소를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 작품 속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저울질되고 객관화되는 사건의 중심은 할머니가 유언 대신 남긴 ‘세탁’이란 말을 듣고 세탁소에 들이닥쳐 재산에 혈안이 된 자식들이 단서 찾기 세탁소 난입사건이다. 급기야 할머니의 재산을 찾게 되면 50%를 주겠다는 큰 아들의 말에 아내 민숙과 세탁 배달부 염소팔마저 합세하면서 세탁소는 온통 난장판이 된다. 이 사건은 우리 인간의 몸속에 내재하고 있는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돈)에 대한 잠재된 욕망을 자극하지만, 그 심각성은 어머니의 임종보다는 세탁소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유품에만 눈이 먼 우리의 현실에 메스를 들이댄다. 세탁소 주인 강태국은 더러워진 빨래를 세탁하듯이 마음이 오염된 사람들을 세탁기에 넣고 돌려버림으로서 희극성과 풍자성이 강한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경계심(警戒心)을 촉발시키는 블랙 코미디로 변신한다.

이 공연 속에는 단순 흥행과 재미만을 위한 작품이 아닌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업을 해온 연출가의 숨겨진 의도가 무대 위에 촘촘히 박혀 ‘의미 있는 풍경’으로 다가온다.

 

사진 제공: 극단 셰익스피어

 

우선 열일곱 명이나 되는 배우들의 어울림 속에서 뿜어내는 활기찬 기운은 관객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든다. 특히 극의 중심에서 치열한 ‘자기 정체성 찾기 연기’를 하면서도 다른 배우들의 연기에 조미료역할을 해낸 주인공 태국, 매운 맛이 나면서도 떨림의 속살이 깊은 몸 연기를 보여준 민숙, 모든 배우들의 놀라운 성격창출로 마치 실존하는 인물인 것처럼 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아있는 연기, 1인 다역의 호연은 이 가을에 만난 관극의 즐거움이다.

특히 독특한 퍼포먼스로 꾸며진 마무리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 공연을 위해 새롭게 제작된 세탁기 속을 드나들며 집단 안무가 펼쳐진다. 블랙라이트(black-light)를 켜 들고 돈을 찾아 세탁소를 뒤지는 검은 옷을 입은 등장인물들. 그 어둠 속 불빛 속에는 우리 삶 속에 숨겨진 욕망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상징적 집단 무의식이 강렬하게 드러난다. 태국의 “우리가 진짜 세탁해야 하는 것은 말이야 옷이 아니야, 바로 이 옷들의 주인 마음이야”라는 내면의 외침은 이들을 세탁기 안에서 세탁된 후 흰 옷으로 변신하여 나오게 된다. 이와 같은 연출가의 작업은 물질적인 욕망만을 추구하는 ‘때 묻은 세상 속, 때 묻은 사람들’을 세탁해 줌으로써 진정한 자기이해의 마음을 잊어가는 관객들에게 ‘자기 찾는 도리’를 깨우쳐주는 극적 장치로 자리매김한다.

 

사진 제공: 극단 셰익스피어

 

<오세습>은 결국 ‘사람이 사는 모습’이다. 고단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이리저리 부대끼며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한 마리 낙타가 된다. 그 아픔과 억눌림의 그림자 속에 돈이 어른거리는 사막을 걸어간다. 결국 태국은 우리를 뜨거운 태양과 싸우며 땀 흘리다가 인간성이 메마른 세상에서 오아시스 같은 쉼터가 되는 인간 세탁소로 인도한다. 그 곳은 삶 속에 숨어있는 아픔과 고단함을 겪어낸 휴식처이다. 하지만 “절대 그로 인해 자신을 몰아세우지 말고, 이 힘듦이 지나갈 때 까지 기다리거나 그 힘듦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것” 그것이 극단 셰익스피어 20주년 기념 작 <오세습>이 관객들에게 던져 준 축하의 메시지이다 .

리뷰를 작성하면서 이 작품이 극단 셰익스피어의 4번 째(2008, 2015, 2016, 2023년) 작품임을 알게 되었다. 하여 왜 지속적으로 무대에 올려 지는가에 대한 물음은 당연하다. 작품 자체가 품고 있는 강한 연극적 흡입력과 시대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이해의 본질’을 담보하고 있기에, 작품에 대한 인지도가 높고 검증되었기에, 제작상의 연극자본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기에. 어떤 이유든 관객들이 다시 극장을 찾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부디 <오세습>이 재구성과 재해석을 통해 항상 현재진행형 무대로 살아남기를 기대한다. 그날이 바로 극단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아 창단 30주년에도 아니 50주년에도 연극을 본 적이 없거나 잘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공연 티켓을 좋은 선물, 갚진 선물로 주고받는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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