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_홍혜련
작년 10월 초연됐던 <그녀를 용서할 수 있을까>가 올해 제2회 연극 판 페스티벌의 참가작으로 다시 무대에 올랐다. 두 번이나 퓰리처상 후보로 올랐던 지나 지온프리도의 작품으로, 바로 그 퓰리처상 후보로 올랐던 <환희 물집 화상>을 국내에 소개했던 김희영 연출이 다시 연출을 맡았다. <환희 물집 화상>이 퓰리처상 후보로 올랐을 때 받은 당시 심사평이 “‘페미니즘’을 말하지 않는 ‘페미니즘’ 연극”이었다고 한다. ‘페미니즘’을 말하지 않는 ‘페미니즘’ 연극? 그런 지온프리도의 신작 <그녀를 용서할 수 있을까>는 어떨까, 궁금증이 일었다.
<그녀를 용서할 수 있을까>는 무엇보다, 유쾌했다. 굳이 어떤 심각한 주의나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도 볼 수 있는 코미디라 신선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배우들의 발랄하고도 리드미컬한 앙상블에 매료돼 깔깔 웃다 보니 어느 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런데 극장을 나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제목이 “그녀를 용서할 수 있을까”인가? 그녀는 누구이며, 그녀를 용서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하는 사람은 또 누구인가? 아니 그보다 먼저, 무슨 “용서”받아야 할 행위가 벌어지긴 한 걸까?
때는 할로윈 주말의 어느 늦은 밤, 그레이엄이 여자 친구(곧 약혼자가 될) 타냐와 앉아 있다. 그레이엄은 생계를 꾸려 갈 제대로 된 일은 하나도 하지 못한 채 여자 친구인 타냐의 5살 난 딸 에밀리를 돌보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그가 있는 이곳은 얼마 전 돌아가신 그레이엄의 엄마가 홀로 살던 별장이다. 거실 한 가득, 엄마가 평생 쓴 연애일지, 습작 소설이 든 수십 개의 박스가 쌓여 있다. 그레이엄은 그 글들을 읽어 볼 엄두도, 그렇다고 처분해 버릴 용기도 없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 집에서 근 6개월을 지내고 있다.
타냐, 그레이엄의 여자 친구이자 곧 약혼자가 될 그녀는 딱 한 번의 실수, 마약중독자에게 빠져 덜컥 그의 아이를 낳는 실수를 저지르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한 번의 실수에 굴복할 리 없는 억척스러운 여성이다. 자신의 아이를 마치 자기 아이처럼 사랑하며 돌보아 주는 그레이엄이 무척 고맙기도 하지만 죽은 엄마의 흔적에 파묻혀 폐인처럼 살고 있는 그레이엄이 그녀의 눈에 좋게 보일 리 없다. 타냐는 그레이엄에게 자기계발서를 권하고 어플을 이용해 엄마의 글들을 모두 읽을 수 있는 스케줄을 짜 주겠다고도 제안한다. 마침내 별장을 수리하고 이 집으로 임대업을 시작하자는 타냐의 제안을 그레이엄이 받아들이자 둘은 결혼하기로 약속한다. 이제야 안심한 타냐는 그레이엄을 두고 야간 웨이트리스 일을 하러 집을 나선다.
다음 장면, 같은 날 밤, 그레이엄이 웬 다른 여자와 한 방에 앉아 있다. 섹시한 시스루 마녀 복장을 하고 가죽 스타킹을 신은 그녀의 이름은 미란다. 사연인즉 미란다와 바에 함께 온 남자가 미란다에게 살해 협박을 하며 난동을 부리자 타냐가 급히 그레이엄의 집으로 피신을 시킨 것이다. 위스키를 홀짝이던 미란다는 그레이엄와 함께 점점 더 술에 취해 가며, 어쩌다 이 방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자기의 인생 사연을 펼쳐놓기 시작한다.
20대 후반의 미란다는 빚이 무려 28만 달러다. 학자금 대출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그녀는 빚을 갚기 위해 ‘노동’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 명문 사립학교에 다니던 시절 몸에 익힌 우아한 생활 방식을 포기한다는 것은 미란다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그녀의 선택은? 바로 슈거 대디! 이렇게 글로 적어 놓으니 속수무책 “할말하않”의 정신없는 여자처럼 보이지만 그녀는 터무니없이 매력적이다. 마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속 “평생을 남의 친절에 의지하며 살아 온” 블랑시의 재림 같다. 공연 후반, 미란다는 그레이엄에게 외친다. 당신의 깊은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저런 여자(타냐다)는 잊어버리고 자기와 함께 이틀 밤낮을 벌거벗고 뒹굴거리다가 쓰레기차가 오면 엄마가 남겨 놓은 저 쓰레기(!) 더미를 같이 내다 버려 버리자고. 그레이엄은 과연 미란다의 제안을 뿌리칠 수 있을까?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녀를 용서할 수 있을까”의 ‘그녀’는 누구인가? “난롯가에 앉아 코코아를 마시고 쿠키를 먹으며 시 문학을 논하는” 우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지난한 삶의 어려움 따윈 개나 줘 버린 미란다? 미혼모로서 딸을 키우며 “가난한 여성이 가난한 여성에게 주는 조언”으로 가득 찬 책을 삶의 지침서로 삼아 자기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다 자기처럼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은근히 강요하는 타냐? 아니면 남편으로부터 버림받고 한 평생 실연의 상처에 몸부림치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아들의 존재 따윈 깡그리 잊어버리고 오로지 자기 자신의 내면에 몰두했던 그레이엄의 엄마? 그런데 도대체 그런 그녀들의 삶의 방식을 과연 “누가” 용서한단 말인가? 그녀들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용서”씩이나 받아야 하나? 하나하나 짚어 보면 결국 코미디다. <그녀를 용서할 수 있을까>. 페미니즘 없는 페미니즘 연극을 만들어 내는 지나 지온프리도의 또 한 편의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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