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이재진
나는 원어극 연출을 맡으며 연극에 발을 들여놓았다. 1966년 <로물루스 대제>(뒤렌마트)에 이어, 1967년 <깨어진 항아리>(클라이스트), 그다음 1969년 <보이체크>(뷔흐너) 등등. 그리고는 원어극에는 더 이상 손대지 않고, 연출, 번역, 기획일을 맡아 독일의 대표적인 작품을 하나씩 소개하기 시작했다. 1971년 드라마센터에서 공연한 <당통의 죽음<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이 공연에서 나는 여러 가지 연극적 실험을 시도해 보았다.
<보이체크>, <당통의 죽음>, <레온세와 레나> 등으로 우리게 알려진 뷔흐너는 24세에 죽었다. 스트레스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시인은 발진티푸스에 걸렸던 것이다. 시인이며 혁명가였던 하이네처럼, 극작가 뷔흐너는 의사이며 자연과학자이며 동시에 혁명가였다. 망명작가로서 짧은 삶 속에서, 예술과 학문과 정치 사이를 정신없이 내달렸다.
프랑스 혁명 후 19세기 전반의 유럽은,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1815년 비엔나 협약은 흐트러진 유럽 질서를 새롭게 정립하고, 프랑스혁명으로 몰락한 절대군주세력의 부활을 확립하려 들었다. 이런 복고주의(Restoration)에 시민들은 실망하거나 이에 항거하기 시작했다. 1815-1848 시기의 문학을 ”삼월혁명전야“(Vormärz)라 부른다. 하이네, 뷔흐너, 그라베 등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낭만적 고전주의 문학에는 등을 돌렸다. 평등권, 언론자유 등 민주적 권리를 요구하며 억압받고 소외당하는 힘없는 사회적 약자의 불이익과 불평등을 대변하며 작품에 담았다. 이런 전형을 갖춘 극중인물이 바로 보이체크이다. 시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보이체크>는 완성되지 않은 채 단편(斷篇. fragment)으로 남아 있다. 장면의 순서도 출판사마다 다를 정도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1879년 비로소 출간되었다. 1913년에 이르러서야 처음 무대에 올랐다.
1) 보이체크(Woyzeck. 1837)
보이체크는 사회적 약자이다. 신분은 군인이다. 들에서 일하다가 헛것을 본다. 불 속에서, 타오르는 하늘 속에서 곧 닥쳐올 죽음을 예상한다. 보이체크에게는 마리라는 여인이 하나 있고, 두 사람 사이에는 아이도 있다. 결혼은 하지 않은 관계지만 이들 가족을 위해 돈을 벌려고 시간만 나면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대위의 머리를 깎아주는가 하면, 의사의 실험 대상이 되어 완두콩만 먹으며 지내기도 한다. 의사나 상관으로부터 늘 멸시를 받거나 천대를 받는다. 이들은 보이체크를 조롱하고 무시한다. 결혼전인데도 아이가 있다며 도덕적으로도 비난한다. 보이체크는 가리지 않고 일을 하지만, 혼전의 마리와 아이를 돌볼만한 돈을 충분히 벌지 못한다. 보이체크가 돈벌려고 고생하는 동안, 마리는 이와 달리 군악대 지휘자와 놀아난다. 보이체크는 질투에 빠진다. 결국 마리를 살해할 생각을 한다. 술집에서 마리와 군악대장이 춤추는 모습을 보고, 보이체크는 정신없이 뛰쳐나온다. 들판에서 보이체크는 마리를 죽이라는 듯한 바람소리를 듣는다.
마리도 성경을 읽으며 자책한다. 집 앞에 아이들과 할머니와 같이 앉아있다. 할머니는 동화를 들려준다.
할머니 이리들 오렴, 아그들아, 이리로! – 옛날에 아주 불쌍한 아이가 하나 살았단다, 아빠 도 없고 엄마도 없었어, 모두 죽고,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지. 모두 죽어 없자, 아이 는 길을 떠났어, 밤이고 낮이고 찾아 나섰지. 이 땅 위에는 아무도 없자, 아이는 하 늘로 가보고 싶었지. 달님이 하도 친절하게 내려다보니 아이는 이내 달님에게 가게 되었어. 그곳에 가보니 썩은 나무둥치 하나 뿐이었어. 그래서 아이는 해님을 찾아갔 어. 그곳에는 해바라기 한 송이뿐이었어. 그래서 아이는 별나라로 찾아갔지. 하지만 별들은 작은 누런 모기들처럼 달라붙어 있었어, 까치들이 나중에 먹으려고 가시나 무 사이에 꽂아 넣었듯이. 지구로 다시 돌아오려다 보니 땅덩이가 엎어놓은 항아리 가 되어 있었어. 그래 아이는 혼자였어. 그래서 아이는 주저앉아 울고 있었지, 그러 니 지금도 아이는 주저앉아있을 거야, 홀로 외롭게 …
보이체크카 이때 들어와 마리를 데리고 교외로 나간다. 이들을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너무나 뻔하다. 동화 속의 어린아이에게처럼, 외로움, 죽음 뿐, 그 외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짧고 마음 아픈 동화는 아마 없을 것이다. 보이체크와 마리는 호숫가를 돌며 산보를 한다. 어두워진다. 칼로 마리를 찌른다. 칼을 호수에 집어 던진다. 연인이 배신하자 보이체크는 결국 살인자가 된다. 보이체크는 대위나 의사, 군악대장으로부터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다. 마리를 죽임으로써 이런 사회적 굴욕에서 벗어난다고 본능적으로 받아들인다.
뷔흐너는 몇 작품 쓰지 못하고 떠났지만, 사회극(soziales Drama), 자연주의 극, 표현주의극은 물론 반동화(Antimärchen. 反童話) 등의 선구자적 역할을 인정받는다. (反동화에 대해서는 이 연재의 마지막 회에 상세히 이야기할 계획이다.)
2) 레온세와 레나(Leonce und Lena. 1836)
뷔흐너의 유일한 희극이다. 출판사의 희곡현상모집에 출품하려고, 정치적 풍자를 담은 낭만적 작품을 써서 보냈으나 마감일을 맞추지 못해 반송되었다. 60년이 지나서야 뮌헨에서 공연되었다. 독일 최상의 희극으로 손꼽히기도 하는 이 작품은 지면상 여기에 소개하지 못한다.
3) 당통의 죽음(Dantons Tod. 1835)
뷔흐너는 명실상부 학문과 예술과 정치에 몸담은 시인이다. 대학에서 비밀조직을 만들어서 정치적 행보를 한다. 기센(Gießen)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던 뷔흐너는 1834년 전단을(Hessische Landbote) 만들어 뿌렸다. 프랑스 혁명당시의 구호와 같았다. ”서민의 지붕위에 평화를! 궁성 위에는 전쟁을!”(“Friede den Hütten! Krieg den Palästen! /Peace to the huts! War on the palaces!)란 구호가 붙은 뷔흐너가 작성한 8쪽짜리 전단은, 그 시대의 참담함을 고발하고 군주에 맞서라고 시민들을 선동한다. 1834년 다름슈타트 전역에 대략 1200-1500부가 비밀리에 살포되었다. 이에 대해 헤센 공국은 예민하게 반응하였다.
전단은 성경의 창세기와 헤센 지역의 사회상을 비교해 놓았다. 창세기를 빗대어 영주, 귀족과 서민들과의 종속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농부와 상공인은 아마 여섯 번째 날이 아니라 다섯 번째 날 창조되었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이들은 짐승의 대열에 끼게 되었을 것이다. 여섯 번째 날 창조된 군주나 귀족이 마음대로 부려 먹어도 상관없는 모양이다.” 전단은 종교적 믿음을 가진 시민들에게 혁명의 불가피성을 호소하며 영주와 국가체제에 반기를 들고 봉기하라고 책동하고 있다. 그 당시법에 의거하면 군주와 그 체제는 신이 내린 은총으로서 그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영역이었다. 불법적인 인쇄물 배포로 검찰의 소환을 받게 되고, 뷔흐너는 이에 응하지 않는다.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프랑스로 도주한다. 도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서둘러 <당통의 죽음>을 몇 주 안에 써서 출판사에 보낸다. 출판은 제때 이루어지지 않았다.
1971년 나는 <당통의 죽음>을 드라마센터의 무대 위에 올렸다. 마지막 장면에 나는 배우로 등장해 보았다. 나의 유일한 배우로서의 경험이다. 대사는 없고, 웃통을 벗은 사형집행인의 역할이었다. 그 공연에서 연출로서 나는 두 가지 새로운 실험을 해보았다. 연극은 당통의 솔로로 시작했다. 또 하나는 무대를 인의장막으로 만든 것이다. 사람이 늘어서서 만들어진 골목길을 당통이 걷게 된다. 그리스 연극의 코러스처럼 이들은 당통의 솔로에 응답한다. “~ 영혼아 ~일어나라!”
(1막 6장)
방
로베스피에르. 당통. 파리.
로베스피에르 자네에게 말해두겠는데, 내가 칼을 빼드는데 내 팔을 잡는 인간은 나의 적이 되는 거야 – 의도야 어떻든 간에 내 알 바 아니야. 내가 나 자신을 방어 하려는데 나를 방해한다면 나를 공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를 죽이는 것이지.
당통 정당방위를 내세우다 보면 결국 그곳에서 살인이 시작되는 법이야. 우리가 살인 을 계속 이끌어갈 이유를 나는 더 이상 찾지 못하겠네.
로베스피에르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혁명하다가 중간에서 멈춘다면, 이는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것과 다를 바 없지. 귀족사회는 아직 죽지 않았어. 건전한 민중의 세력이 썩을대로 썩은 그런 집단의 자리를 차지해야 된다고. 악덕은 처벌 받아야 하지만 미덕이란 공포를 동반하며 지배해야 된단 말이야.
당통 처벌을 해서 어찌하자는 것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어. 자네는 미덕을 말하지만, 로베스피에르, 자네는 돈을 받아먹은 적이 없이, 누구에게 빚을 진 적도 없고, 여자 를 끼고 잔 적도 없지. 언제나 점잖게 옷을 입고 다니고, 술에 취하는 법도 없지. 자네는, 로베스피에르, 지나칠 정도로 너무나 반듯한 사람이야. 하지만 나 같으면 부끄러워서 그리하지 못할 거야, 나보다 못한 인간을 찾는 얄팍한 즐거움을 얻기 위해, 30여 년이나 온 세상을 누비고 다니며 소위 도덕군자인 척 하며 살아간다면 말이야. – 자네 마음속에 혹 이런 은근한 속삭임이 들리지 않던가, 당신은 자신을 속이고 있어, 자신을 속이고 있다고!?
로베스피에르 나의 양심은 깨끗해.
프랑스 혁명에서 당통은 로베스피에르와의 갈등에서 좌절하게 된다. 뷔흐너의 당통은 피를 보는 잔인한 혁명의 당위성을 의심하고 회의하기 때문에 실패의 길로 빠진다. 자코뱅의 로베스피에르는 피를 마다하지 않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혁명을 이끈다. 당통은 이에 매우 회의적이다. 당통은 혁명 완수의 걸림돌이라 로베스피에르는 민중 앞에서 연설하며, 당통을 민중의 적이므로 제거할 대상으로 매도한다. 자신을 죽이려는 계획을 듣고도 당통은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당통은 반역죄로 기소된다. 체포영장이 떨어지자 친구들은 도망치라고 충고하지만, 죽는다면 조국에서 죽어야 마땅하다며, 이를 거절한다. “조국을 신발 밑창에 깔고 다니란 말인가?” 그 대신 혁명으로 죽은 사람들을 돌이켜보며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더욱 깊이 죄의식 속에 빠져든다. 오히려 죽음을 기다린다. 당통이 체포되고, 감옥에 동지들도 끌려온다. 재판이 열리고 당통은 공안회의와 민중 앞에서 진실과 정의를 위한 혁명을 주창하고, 로베스피에르의 잔인성을 성토하며 호응을 구한다. 하지만 죄수 하나가 당통이 혁명을 방해하고자 모반을 획책했다는 음모설을 폭로하며 위증하자 상황은 급변한다. 당통은 공안회의와 민중에게서 너무나 쉽게 신뢰를 잃고, 사형선고를 받는다. 동료들과 함께 단두대에 오른다. 부인은 자살한다. 단두대로 올라가는 마지막 장면을 소개한다.
혁명광장
(4막 7장)
(수레가 들어와 단두대 앞에 멈추어 선다. 남녀가 뒤엉켜 춤추며 노래한다. 죄수들이 입을 모아 혁명가를 부른다.)
부인 (아이들을 데리고) 비켜요, 비켜! 우리 애들 좀 보여주어야겠어요, 배고프다고 울고 난린데, 구경하다 보면 조용해지겠죠. 비키라고요!
여인1 이봐, 당통, 이제 땅속에 들어가면 벌레와도 그 짓을 할 수 있겠네.
여인2 에로, 당신의 그 멋진 머리칼로 내가 가발을 만들어 쓰면 좋겠구먼.
에로 머리숱이 너무 적어서 벗겨진 당신 사타구니도 제대로 덮어주지 못할 텐데.
—
라크르와 (민중에게) 당신들은 이성을 잃은 그 날 우리를 죽였다. 이성을 다시 찾게 되는 그날 저들을 죽이게 될 것이다.
고함소리 언제 때 이야기를 지금 또 하고 있냐! 지겹다, 지겨워!
라크르와 독재자들은 우리의 무덤 위에 넘어져 목이 부러져 뒈질 것이다.
에로 (당통에게) 저 친구는 자기 시체를 자유의 꽃밭에 뿌릴 밑거름 정도로 여기나 봅 니다.
필립뽀 (단두대에 올라) 당신들을 용서하리라, 당신들이 죽는 순간은 나처럼 그리 고 통스럽지 않기를 바라노라.
에로 내 그럴 줄 알았지! 저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 속옷이 얼마나 깨끗한지 보 여주려고 가슴을 또 한 번 벗어젖힐 거라고.
파브르 안녕히 가세요, 당통! 죽음이 이리 고통스럽다니
당통 잘 가게, 친구! 단두대처럼 좋은 의사도 없다네.
에로 (당통을 껴안으며) 아, 당통, 이제 나는 농담이 나오지 않는군요, (형리가 두 사 람을 떼어놓으려 한다.)
당통 (형리에게) 자네는 죽음보다도 더 잔인해지고 싶나? 그럼 우리 머리가 바구니 바닥에서 나뒹굴며 입을 맞추면 막아설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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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글 잘 읽었습니다.
늘 건강관리 유념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