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이재진
하우프트만(Gerhart Hauptmann. 1862-1946)
입셉과 더불어 자연주의 연극을 대표하는 극작가이다. <해뜨기 전>으로 1912년 노벨문학상을 탔다. 하우프트만의 작품은 레씽, 실러의 작품들에 비해 자주 무대에 오르지는 않는다.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는 보편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연주의 연극이란 좁은 틀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 나치와의 관계도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히틀러가 1933년 집권하자 많은 예술인, 지식인들이 독일을 떠났다. 하우프트만은 독일에 남아 나치에 동조했다.
<직조공>(Die Weber 1892), <비버 모피>(Der Biberpelz 1893) 등이 크게 주목을 받았다. 1968년 <해뜨기 전>으로 나는 연출을 시작했고, 단막극 <엘가>(Elga 1905)를 무대에 올린 적도 있다.
세기말(世紀末. fin de siecle)
한 세기를 끝내려는 아쉬움과 조바심,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려는 희망과 불안감이 뒤엉키기 때문에 세기말이 되면 거의 언제나 시끄럽고 혼란스럽다. 18세기 말은 프랑스 혁명으로, 19세기 말은 드레퓌스 사건(Dreyfus)으로 프랑스는 몸살을 앓지 않았던가! 특히 19세 후반 유럽은 급변하는 세기말을 맞고 있었다. 혼란 속에 갈 길을 찾아 헤맸다. 세계는 점점 좁아지고 더욱 가까워지고 있었다. 자연과학의 발달로 보이지 않던 미지의 세계가 드러나고 있었다. 산업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도시로 몰려들었다. 계급분쟁이 벌어졌다. 마르크스는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봉기하라고 외쳤다. 슐리만은 1872년 곡괭이로 트로이 전쟁의 흔적을 파헤쳤다. 이로써 전설같이 전해 내려오던 트로이 목마의 이야기가 신화나 동화의 세계가 아닌 역사임이 증명되었다. 동화의 세계가 갑자기 역사가 되고, 그 역사적 사실 속에서 새로운 인간상을 찾게 된 것이다. 다윈은 진화론을 발표한다. 포이어바흐는 천상에 앉아있던 신의 모습을 인간의 품으로 끌어내렸다. 인간은 이제 저세상을 준비하는 착한 양이 아니라 이 세상을 탐구하고 연구하고 개척하는 일꾼이 된 것이다.
마이닝겐 궁정극단(Meininger Hoftheater)
19세기의 유럽연극은 의상이나 무대장치가 화려하고 호화찬란했다. 원작에는 충실하지 않고 연출보다는 스타 배우가 중심이 되는 무대였다. 그런 무대로는 진실은커녕 현실도 밝힐 수 없었다. 중부 독일에 마이닝겐이란 작은 공국(公國)이 있었다.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영주는 연극을 사랑했고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인식이 풍족했으며, 앙상블을 이끌 수 있는 경제적, 정치적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영주는 연극을 통해 세상을 개혁하고 변화시키고자 했다. 마이닝겐 모델을 만들었다. 연출 중심으로 무대를 이끈다. 스타 중심이 아닌 앙상블의 연극, 희곡작품을 중시하고 창작품의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고 아주 세밀하게 표현한다. 현대연극의 효시라 할 수 있다. 이런 “마이닝겐 원칙”을 널리 보급하고 선전하기 위해 유럽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공연하였다.
자연주의 (naturalism)
자연주의란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이란 진실, 현실, 구체적 사실이다. 자연주의 연극은(대략 1880-1900) 감성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을 비감성적으로, 즉 세상만사를 관찰하고 탐구해서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나타내고자 했다. 그렇기에 예술은 이성에 지배받으며 원인과 결과를 따지는 인과성, 결정론, 객관성에 좌우되었다. 유전이나 환경이 지배적인 요인이 되었다. 주위 환경, 유전, 부패 등의 사회문제를 주제로 내세워 사실 그대로를 조금도 보태지도 않고 빼지도 않고 표현하고자 했다. 예술가의 주관성이나 개인성은 무시되었다. 이들에게 가장 훌륭한 예술품이란 자연과 예술이 일치하는 것이며, 어찌하면 그사이에 인간의 손길을, 즉 작가의 개입을 얼마나 적게 만드느냐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자연주의 작가들에게 예술은 하나의 경찰조서(프로토콜)와 다를 바가 없었다. 상징성이나 신비성은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예술에서 작가의 주관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연주의 운동이 오래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자연주의 시대에, 즉 19세기 후반에 태어난 젊은 세대들은(표현주의 작가들) 이를 예술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프라이에 뷔네 – 자유무대
마이닝겐 궁정극단이 유럽 여러 나라를 순회하며 ‘마이닝거 원칙’을 소개하자 이에 유럽 연극은 크게 영향을 받았다. 1880-1900년 사이에 유럽 전역에서 일어났던 지적 문학운동, 즉 사실을 가능한 대로 정확하게 표현하자는 자연주의 연극을 무대 위에 담으려면 마이닝겐 모델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무대예술은 ‘사실을 밝히기 위한 예술’이라며 검열을 피해 사회비판적 작품을 공연하고자 선언했다. 파리를 시작으로 런던, 모스코바, 베를린에 자유무대가 설립되었다. 연극사에서 19세기말처럼 모든 사회적 어려움을, 희망이나 고통까지도 온통 연극에 매달려 연출하고 그 속에서 해결점을 찾으려고 시도하던 시기는 없었을 것이다.
자유무대는 주로 입센이나 하우프트만의 작품을 선호하였다. 그 당시 사회 비판적 작품은 검열에 걸려 공연이 금지되곤 했다. 자연주의 작품들은 무엇보다 “순수예술을 위한 예술은 허상이다”를 내세우고, 사회적 참상이나 비판적 배경이 주제가 된다. 줄거리의 전개는 압축되고 축소된다. 상징성 있는 진술이나 표현은 배제하고 사투리, 은어를 사용한다. 등장인물의 나이, 이름, 직업, 무대 설명 등은 정확하고 세밀하게 묘사한다. 대부분 도입부나 종결 부분이 생략된 채 열린 상태에서 시작해서 열린 상태에서 극이 끝난다.
늦게나마 우리도 그 대열에 끼게 되었다. 1967년 12월 연극에 관심 있는 각 대학 독문과 학생들은 故 박종서 교수님을 모시고 한 울타리 안에 모였다. 1968년 4월 드라마센터에서 하우프트만의 <해뜨기 전<으로 창립공연을 올렸다. 한국 프라이에 뷔네의 탄생이었다.
<해뜨기 전>(Vor Sonnenaufgang. 1889)
베를린 프라이에 뷔네가 창립되고, 오토 브람(Otto Brahm)이 최초로 무대에 올린 독일의 자연주의 작품이다. 이 공연으로 독일의 자연주의 연극이 태동하고, 동시에 무명 작가이던 하우프트만이 극작가로의 이름을 얻게 된다. 이 작품은 입센의 <유령<을 잇는 작품으로,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고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라기보다는 유전, 환경, 교육 등에 좌우된다는 자연주의 이론에 부합된다. 사회극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5막극이다. 점차 산업화, 도시화 되면서 평화스럽던 가정이, 또 인간성이 파괴되는 아픔을 보여준다.
슐레지엔 지방의(독일과 폴란드의 접경지역) 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9월 어느 날 이른 저녁 사회과학자 로트 박사가 젊은 광부들의 생활환경을 조사하고자 이 시골 마을에 찾아든다. 이곳에는 대학 동창 호프만이 살고 있다. 매장되어있던 석탄을 팔아 갑자기 부자가 된 농부 가족에 결혼해서 들어와 살고 있다. 호프만과 로트는 한때 사회적 문제를 같이 괴로워하고 의논하던 친구였다. 이 집은 모두 알코올중독에 걸려있다. 농부 크라우제는 매일 저녁 술을 퍼마시고는 동
네가 떠나가라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크라우제 부인은 조카와 눈이 맞아 못 볼 꼴을 보여준다. 첫째 딸은 또 임신했지만 순산하기는 어려울 것이란다. 이 모두 알코올중독 때문이라고 담당 의사가 로트에게 귀띔해준다. 기숙사학교에서 제대로 고등교육을 받은 둘째 딸 헬레네는 이를 너무나 괴로워한다. 로트 박사와 문학뿐 아니라, 사회적 제반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신뢰가 쌓이며, 황폐한 집안에서 외로웠던 헬레네는 로트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이는 두 사람의 사랑으로 이어진다.
언어
자연주의 연극에서는 무엇보다 언어가 눈에 띈다. 언어는 작중인물의 성격, 상황을 적절히 들추어 내준다. 이 작품에서는 농부 크라우제와 부인이 심하게 사투리를 쓴다. 무엇보다 연출지시문이 희곡작품에서나 가능할 정도로 (서사극에서처럼) 상세하고 구체적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고향인 슐레지엔 지방의 사투리로 쓰였다. 마지막 장면을 소개해 본다. 큰딸은 사산한다. 알코올중독의 재앙이다. 의사는 로트에게 이 집과 어떤 인연도 맺지 말고 떠나라고 충고한다, 로트는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떠난다. 쪽지를 본 헬레네는 절망한 나머지 자살을 한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소리치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경상도 사투리로 번역해 보았다.)
헬레네(홀로)
주위를 둘러보며 조용히 부른다: 알프레드! 알프레드! 응답이 없자, 더욱 성급하게 불러본다: 알프레드! 알프레드! 부르면서 정원으로 이어지는 문으로 달려가, 내다본다. 이내 정원으로 나간다. 잠시 후 다시 돌아와: 알프레드! 점점 더 불안에 빠지며 창가로 가서 내다본다: 알프레드! 창문을 열고, 그 앞에 있는 의자에 오른다. 이때 고함소리가 들린다: 술에 취해 아버지가 술집에서 오고 있다: 야 임마! 내가 마 이 정도면 어데 가서 안 빠지지! 괜찮은 마누라 있거든, 딸내미도 있고! 야 임마, 안그릏나? 헬레네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쫓기듯 중간문으로 뛰어 들어간다. 로트가 책상에 놓고 간 편지를 발견한다. 달려가 잡아들고는 잽싸게 훑어본다. 몇 마디는 크게 흘러나온다: ”어쩔 수 없다오!“ … ”다시 보는 일은!“ 편지를 떨어트리며 몸을 가누지 못한다, 이제 끝이야! 뛰어 일어난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이제 모두 끝장이라고! 중간문으로 뛰쳐나간다. 문밖 가까이에 아버지가 와 있다: 이놈의 새끼야, 어? 기틀라 그 가시내가 내끼라, 그 말인기라! 내한테는 마 세상 제일 가는 예편네도 있고! 내보다 괜찮은 놈 있으면 나와봐라 이기라! 헬레네는 정신이 반쯤 나간 사람처럼, 여전히 무언가 찾으며 정원에서 들어온다. 호프만의 방에 무언가 가지러 온 에두아르드와 마주치자 말을 건넨다: 에두아르드! 예, 아가씨, 무슨 일로? 그러자 다그친다: 나 말에요… 로트 박사님을 … 에두아르드가 이에 답한다: 로트박사님은 쉼멜페니크 의사 선생님의 마차를 타고 떠나셨는데요! 그리고는 호프만의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정말! 헬레네는 이렇게 내뱉으며 몸을 가누느라 애를 쓴다. 절망 속에서도 마지막 힘을 다해, 앞으로 뛰어나가 소파 위 사슴뿔에 걸려있던 사슴 잡을 때 쓰는 줄이며 고리를 움켜잡는다. 에두아르드가 호프만의 방에서 나와 중앙문으로 나갈때까지, 헬레네는 도구를 숨기며 조용히 어두운 앞쪽면에 멈추어 서있다. 아버지 크라우제의 소리가 점점 더 또렷해진다. 야 임마, 엉? 내보다 더 믓찐 놈이 있느냐꼬? 이 소리가 신호라도 되듯, 헬레네는 뛰쳐나와 호프만의 방으로 들어간다. 거실은 비어있다. 계속해서 크라우제의 목소리만 요란하다: 안 그릏나, 어? 이 나이에 내보다 사지 멀쩡한 놈 있겠나? 갈트맨치 반반한 년 가진 놈 또 있나말이다! 밀레가 중간문으로 들어간다. 무엇을 찾는지 주위를 둘러보다가 소리친다: 아가씨, 헬레네 아가씨! 아가씨! 그 사이로 크라우제의 목소리가 들린다. 가틀라 그 년이 내끼라 그말이라! 밀레는 정신 없이 문을 열어젖힌 채 호프만의 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그러자마자 미친 듯 놀라 고함친다. 두세 번 뒤돌아본다. 계속 소리치며 중간문으로 뛰쳐나간다. 고함소리는 몇 초간 끊이지 않고 들리다가 점차 멀어진다. 육중한 문이 열렸다가 요란하게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복도로 걸어오는 크라우제의 발자국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거칠고 시끄러운 혀꼬부라진 소리가 울려 퍼지며 가까워져 온다. 이 자슥아! 마! 내한테는 딸래미들이 있다 안카나!
* 독일극작가 탐방에 표현주의 극, 서사극, 방송극, 새로운 청소년/어린이극 등도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쉽게 여기서 연재를 끝내기로 한다.
* 문의사항; chechinyi@hanmail.net
- [이재진의 희곡읽기 : 독일 극작가 탐방]은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종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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