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배우 장용철이 만난 풍경_ 연극과 사람 8호

글_장용철(극단 작은신화, 좋은희곡읽기모임 대표)

배우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를 묻지를 않고, 우리가 어떻게 연기를 하는가를 묻지를 않고, 배우가 어떻게 진짜를 하느냐! 라고 말했습니다. 그게 궁금한 이유가 뭐냐? 고 되물었더니,

방금 선배님 공연을 보았는데, 무대 위에서, 진짜처럼 보여서요. 꼭 진짜 같았어요. 고양이를 죽이는 그 장면 너무 끔찍했어요. 앞에 앉은 관객 두 사람이 입을 막고 밖으로 나가던데요!?

10년이 훌쩍 지난 얘기입니다. 연극 <해변의 카프카>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 / 김미혜 번역, 연출 / 2013. 5. 4. ~ 6. 16. /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 공연할 때였어요. 객석에 앉아있던 후배는 공연이 끝나자 어디 좀 조용한 데로 가서 진지하게, 길게 이야기를 하자고 청했습니다. 대학로를 벗어나서 성북동, 잘 모르는 길을 걸으면서 낯선 카페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래, 진지하고 길게 이야기할 게 뭐지?

“배우는 어떻게 진짜를 보여주느냐, 배우가 얼마나 진짜가 되어야 하느냐! 배우는 등장인물이 되는가 아니면 어떻게 등장인물처럼 보이는가?”

나는 해변의 카프카 첫 연습실에서 경험한 기억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이렇게.

연습실로 들어서자 모든 시선이 내게로 쏟아졌어. 새로운 등장인물이었던 나를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았지. 연출을 맡으신 김미혜 선생님은 사뭇 의아해하는 얼굴이셨고. 이미 한달여간 연습을 진행한 상태였는데, 제작에 참여한 일본인 ‘이이즈카 마사키’ 씨가 나를 강권하였기 때문이었을듯. 연출 선생님은 말씀하셨지. 용철씨! 도대체 왜 마사키상이 그토록 강력하게 그대를 추천을 하는 걸까? 이미 배우가 있는데도. 난감하네 참.

그랬어. 마사키씨가 당시의 연극 <봄이 사라진 계절>(신은수 작 / 신동인 연출 / 극단 작은신화 / 2013. 2. 21.~3. 3. /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이인직’ 역할을 맡았던, 무대 위의 나를 객석에서 처음 본 이후, 나를 그 배역으로 마음에 점찍어 둔 셈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 <해변의 카프카>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고양이 살인마 죠니 워커’역을 할 사람이 이미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되었고 연습이 들어간 상태였는데도, 제작자가 다른 배우를 추천하는 일은 사실 여러모로 번거롭고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었지.

연출 선생님은 제안했지. 그럼 한 장면을 해보자! 그 다음에 출연할지 말지를 한번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보자! 하셨어. 나는 그때 소속극단에서 <콜라소녀>(김숙종 작 / 최용훈 연출 / 극단 작은신화 / 2013. 3. 8. ~ 4. 14. / 학전블루 소극장)를 공연 중에 있었기 때문에 연습일정이 쉽지는 않았으니까, 일단 맞닥뜨려보자고 생각한 것이었으니 나쁠 것도 없었지. 제가 어느 장면을 해볼까요?

연습실은 순간 연극의 한 장면으로 변했고, 처음 나타난, 유일한 관객인 내 앞에서 진지하게 그 남자가 등장하는 장면이 펼쳐졌어. 죠니 워커가 밤거리에서 납치해온 고양이를 도마위에 올려놓고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어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서 우적우적 씹어먹는 장면이었어. 나는 그 장면을 주의깊게 보았고, 내가 그 장면을 해야 하는 것이었어.

내게 15분 가량의 시간이 주어졌고, 다른 배우들은 쉬거나 개인 연습 시간을 가졌지. 난 우선 대사의 맥락만 일단 암기하려고 집중했고, 디테일한 부분이 필요할 때에는 내 눈빛을 보고 살짝 프롬프트를 해달라고 조연출에게 정중하게 부탁했어. 그리고 말했지. “식빵 좀 사다줄래요? 자르지 말고요. 그냥 비닐에 쌓인 채로요.”

한 장면을 가득 채우는 대사의 주요 맥락을 파악하면서도, 연습실을 거닐면서 주방용 칼 대용으로 쓸만한 것이 뭐가 있나 하고 찾았지만, 이미 앞에서 장면연기를 한 배우가 사용하던 드럼 스틱말고는 찾을 수 없었어. 마침 시간이 다 되었고 모두들 적당한 자리에 앉아서 내가 등장하길 기다렸지.

음악이 흐르고, 천천히 연습실 한가운데로 내가 등장했어. 죠니 워커가 다른 얼굴로 변했겠지. 10년 정도 나이든 얼굴로. 그는 고양이를 아니 식빵을, 가방에서 꺼내어 쓰윽 한번 쳐다보았어. 축 늘어진 식빵을 아니 고양이를.

집중해서 심장에다 쑤셔박은 대사를 읊조리면서, 왼손으로 고양이를 더 높이 눈썹 앞까지 들어올렸어. 고양이는 축 쳐져있었고 몇마디 말을 내뱉었고, 갑자기, 고양이를 도마 위에 팽개치듯 내던지고, 그리고 다시 몇 마디 하면서, (드럼스틱을 아니, 칼을 오른손으로 머리 위까지 들어올렸다가 순식간에 고양이의 목을 푹 찔렀고, 힘을 빼지 않고 그대로 쭈욱 길게 배꼽 아래까지, 고양이의 내부를 유린했어. 고양이 뱃가죽은 생각보다 질겼어. 뭉툭한 욕망의 끝에 걸려든 비닐가죽이 짓눌리면서 비명을 질렀어. 부욱 북~ 트드득~ 소리가 나도록 힘있게, 고양이의 목에서부터 아랫배까지 쭈욱 갈라낸 다음에 그는 양손으로 짓뭉개진 고양이의 몸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내장을 힘차게 뜯어냈어. 정면으로 쳐다보면서, 어쩌면 먼 곳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따위에 홀린 듯이, 깊은 탄식과 묘한 쾌감으로 글썽이는 눈빛으로, 움켜쥔 양이의 내장을 입안에다 쑤셔넣고 넓게 자란, 푸르고 싱싱한 상추 댓 장을 한입에 넣고 씹어대듯이 탐욕스럽게 씹어댔어.

창밖에서는 현실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지. 어디에선가 시간을 다투는 일이 벌어진 건가. 누군가 새카맣게 애간장을 태우고 있는 것인가. 고양이가 살해된 실내에서는, 모두가 숨죽였어. ‘쇠 속을 떠난 종소리들은 어떻게 손톱을 밀고 저녁이 되어 다시 돌아오는지(김경주_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中에서)’도 모를 무거운 침묵이 깃들고, 그 다음 장면을 절대 모르는 나는 그대로 멈추었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누군가 먼저 시작한 박수가 신호탄이 되어서 연습실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손뼉을 쳤어. 어떤 이들은 와아~ 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브라보~ 했을 것인데, 나는 가슴이 뜨거워졌기 때문에, 얼굴까지 바알갛게 상기가 되어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젠 무엇을 또 어떻게 할까요?라는 듯 불거진 눈시울이 살살 녹아내렸지.

여기까지 듣고 있던 후배는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순간 캐스팅이 확정된 거군요?

중년의 일본인 제작자의 얼굴이 활짝 빛났습니다. 연출 선생님께서도 만족스런 표정이었습니다. 다음 순서는 연습일정을 결정해야 했고, 계약서를 써야하는 순간이 왔는데 제안된 사항을 읽다가 잠깐, 나름대로 내가 정한 조건을 말했습니다.

지금 공연 일정을 확인해보는데, 오디션으로 이미 캐스팅이 된 젊은 배우가 있는데도 제작자의 추천으로 제가 들어왔으니 마음이 썩 편하지는 않고요. 그래서, 그 배우와 회차를 똑같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최종 공연일정이 확정되자, 나와 같은 배역으로 오디션을 보고 들어와서 이미 연습을 진행하던 그 젊은 배우가 다가와서 내게 인사를 하며 말했습니다. 선배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길게 나누다가 작은 목소리로 적당한 결론을 마련하였습니다.

배우는 심리적으로, 뇌과학에서 말하는 것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알게 되듯이, 정말로 진짜 경험을 한다. 그 경험이 진짜인지, 경험을 하는 내가 진짜인지, 허구의 세계에서도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자기도 알고 보는 사람은 더 잘 알게 되는 작업이 바로 연극 무대다. 배우가 진짜 등장인물이 되는지, 진짜 등장인물처럼 보이는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식빵 하나를 폐기처분해보는 일인가. 고양이를 죽일 순 없으니까.

지난 작업들을 돌이키면서, 나는 반성하고 참회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내 심장에서 일으키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의 작업이 어쩌면 이 세상을, 배우가 살아가는 현실을 끝끝내 외면하고만 있다는 심증에 대하여 그게 참 고통이라는 점을 상기하면서.

침묵! 그 다음은 뒷모습! 이라고 나는 외쳤습니다. 배우에게 제일 중요한 게 무언가요?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우선 침묵을 배울 것. 그 다음엔 뒷모습을 골똘히 오래오래 생각할 것. 그래야 혹시라도, 진짜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다시 봄입니다. 건강과 평온이 깃들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