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극단&창작그룹 노니 <빙빙빙>

글_홍혜련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영유아를 위한, 서커스.

2022년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더 어린 관객을 위한 창작의 과정 공유회”에서 창작그룹 노니가 이 연결 불가능해 보이는 세 키워드를 연결한 공연 제작 계획을 발표했을 때 놀람과 의문을 한데 품을 수밖에 없었다. 보이는 관객과 보이지 않는 관객이 다 같이 보는 공연에 대한 공연계의 노력은 계속해서 이어져 왔다. 그러나 그 범위를 36~48개월 이하 ‘더 어린 관객’에게로 확장한다는 것은 그간 공연의 서사를 음성으로 들려주는 식의 배리어프리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공연에의 시도를 시사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서커스라 했다. 서커스란 마술이나 곡예 등을 ‘보며’ 즐기는 공연이 아니던가. 보이지 않는 아주 어린 관객이 서커스를 어떻게 즐길 수 있을까. 발표를 보며, 줄곧 공연의 시각성에 비범함을 보여 왔던 창작그룹 노니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같은 풀 수 없는 문제를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 지금 공연계에서 그 숙제를 풀 수 있는 단체가 있다면 그 또한 2006년 창단 이래 사물과 공간, 몸을 통한 비서사 공연 제작에 매진해 온 창작그룹 노니밖에 없다는 믿음이 공연에 대한 기대를 품게 했다.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난 2024년 7월, 그들의 3년간의 노력의 결과가 트라이아웃 공연 <빙빙빙>에서 드러났다.

 

사진 제공: (사)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공연장 입구에 들어서자 신발과 소지품을 모두 두고 공연장에 입장하도록 안내받았다. 맨발로 들어선 어둑어둑한 공연장에는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둥그런 원형의 공간에 빛기둥들이 움직이고 있었고 청각을 새로이 일깨우는 음향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신을 벗은 맨발바닥으로 사람들의 발 굴림이 만들어내는 진동이 생생히 전해졌다. 그곳에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듯한 유아들과 아직 기저귀도 떼지 못한 듯 보이는 아가들, 보이지 않지만 누구 못지않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품은 아동들이 함께 놀고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공연에서 으레 기대하게 되는 화려한 색은 없었다. 오직 흰색과 검은색, 그리고 드문드문 파란색뿐이었다. 공연이 시작하기도 전에 아이들은 어두움을 무서워하고 낯선 소리를 싫어하고 화려한 색깔을 좋아할 것이라는 편견이 한 번에 무너졌다.

이윽고 공연이 시작된다는 안내와 함께 빛이 무대의 상하를 둘로 갈랐다. 마치 제임스 터렐의 한 작품 속, 명상의 공간으로 들어온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문득 천장에서 바람이 일었다. 드론이 일으키는 바람이었다. 머리카락을 흔드는 바람에 아이들은 또 까르륵 웃으며 바람이 이는 곳으로 쫓아갔다. 그와 동시에 무대 뒤편으로 커다란 파란 공을 타고 광대가 가로질러 갔다. 하지만 보이지 않아도 된다는 듯 굴러가는 공의 일부만 잠시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빨간코 광대가 아닌 파란코 광대가 등장해 공간을 어루만지는 빛기둥에게서 빛 조각을 떼어내 삼켰다가 다시 뱉어내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몸에서 기다란 비닐을 누에고치가 실을 뽑아내듯 뽑아냈다. 아이들은 가이드들의 안내를 받으며 비닐을 만지고 밟고 그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며 비닐이 만들어내는 소리와 촉감, 공간감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또 한 광대가 천장에서 내려온 줄에 매달려 위에서 아이들과 교감했다. 이윽고 공간 전체에 커다란 비닐이 펼쳐졌다. 어른들이 비닐을 사방에서 잡고 부드럽게 흔들자 비닐은 순식간에 바다로 변했다. 그 물결 위에 아이들은 몸을 맡기고 놀기 시작했다. 비닐이 만들어낸 물결은 부드럽기도 하고 요란하기도 했다. 그러다 한순간 비닐 물결이 위로 치솟았다. 이제 비닐이 만들어 낸 물속으로 들어갈 차례다. 머리 위에서 들리는 비닐 물결 소리에 아이들은 손을 하늘로 뻗으며 깡충깡충 뛰었다. 파도가 지나가고 나자, 하늘에서 여러 개의 커다란 공기 기둥 주머니가 던져졌다. 아이들은 자기 몸집보다 훨씬 커다란 공기 주머니에 몸을 던지기도 하고 쳐 올리기도 하고 손으로 만지고 타며 온몸의 감각을 활용해 공연을 즐겼다. 30분간의 공연이 끝나고 이후 주어진 20분의 놀이 시간에도 아이들과 보호자 관객들 모두 공연장을 떠나지 않고 마지막까지 공연의 여운을 즐겼다.

 

사진 제공: (사)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이번 공연을 위해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여러 가족이 워킹그룹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이들의 도움으로 보이지 않는 아동들이 편안하게 느끼는 말소리가 음향으로 삽입되었고, 빛 인지의 차이도 반영되었다. 공연 속 유일한 색이었던 파란색의 삽입도 이들과의 연구 결과다. 이 짧다면 짧을 수 있는 30분의 공연을 위하여 노니의 여러 예술가들이 그간 얼마나 치열하게 연구하고 고민했는지 그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 공연은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영유아 관객을 위한, 서커스다. 드라마란 갈등이고, 갈등이란 무언가가 격렬하게 부딪쳐 일어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세 연결 불가능해 보이는 키워드가 화학 작용을 일으키며 결합한 창작그룹 노니의 <빙빙빙>만큼 강렬한 드라마도 드물 것이다. <빙빙빙>은 공연의 본질이란 ‘놀이’임을 다시 일깨우며 꿈결 같은 체험을 선사했다. 비서사 공연이라고 하지만, 이번 공연을 체험한 관객들의 마음속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하나씩 생겨났을 것임에 분명하다. 그 이야기 안에서 아이들이 제각각 어떠한 모험을 펼쳤을지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 ‘트라이아웃’ 공연이었던 이번 공연을 보고 나니, 본 공연은 또 얼마나 더 큰 바람을 일으킬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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