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선 공약 들여다보기

글_오세곤(극단 노을 예술감독)

 

  1. 들어가며

 

대선이 끝나고 새 정부가 출범하였다. 전 대통령 파면에 의한 조기 선거라 세밀한 정책을 제시할 틈도 없었고, 인수 기간 없이 바로 임기를 시작했으니 구체적인 실행 계획도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도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지 가늠하기 위해 대선에 승리한 민주당의 대선 공약을 살피기로 하였다. 우선 문화예술 분야를 따로 요약한 2쪽짜리 문건을 살펴보았는데 주로 K-컬처니 K-콘텐츠니 하는 단어들만 두드러질 뿐, 이른바 기초예술에 관한 내용은 “문화예술 인재 양성 및 전문조직 설립 추진”, “창작비 지원 및 창작 공간 마련”과 같이 뜬금없거나 새로울 것 없는 문구로 두루뭉술 넘어가고 만다.

반면에 비교를 위해 살펴본 민주노동당 쪽 공약은 “블랙리스트 등 검열 방지 대책 마련, 문화 예산 확대(전체 예산의 5% 수준)를 전제로 한 문화예술 정책 전면 재구성, 이전 정부에서 자행한 문제 있는 정책들에 대한 폐기 또는 대폭 수정을 통한 예술의 공공성 강화 및 창작 활동의 지속가능성 제고, 표현의 자유, 창작권, 성평등·안전권 등을 골자로 하는 예술인의 권리 보장 방안 마련”과 같이 나름 구체성과 시의성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문화부 장관이라도 민주노동당에 할애한다면 모를까 이 공약들이 현실에 영향을 미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민주당 대선 캠프의 내부 사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십중팔구 문화 관련 분과에서 기초예술보다는 콘텐츠 내지는 산업 중심의 접근 태도가 우위를 점했을 것이다. 물론 세계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우리의 문화콘텐츠가 더욱 힘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소위 K-컬처가 정책의 힘으로 오늘에 이르렀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과연 그럴 만한 정책 설계 및 실행의 역량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 어설프게 밀어붙이다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거의 자생적으로 성장해 온 K-컬처가 자칫 실체 없는 수치만 나열하는 전시 행정의 희생물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더욱이 이러한 방향의 문화정책은 기초예술의 환경이 튼튼할 때 비로소 긍정적인 실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즉 K-컬처의 세계적인 시장성도 기초예술이라는 토대 위에서 더욱 안정적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기초예술은 소홀히하건 중요시하건 당장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느낄 수 없다. 그래서 정책을 입안하는 쪽에서는, 특히 선거 공약을 개발하는 측면에서는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아무래도 정치권의 입김이 강하므로 눈에 확 띄는 소위 킬러 문구가 가능한 공약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1. 기초예술 관련 민주당 대선 공약

 

그래서 민주당 대선 공약집 전체를 뒤져, 비록 대선 기간 중 전면에 크게 내세웠던 요약 문건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기초예술과 관련이 있을 법한 내용을 모두 찾아보았다. 이 공약집은 ‘회복’, ‘성장’, ‘행복’이라는 3개의 비전을 내세우고 있는데, 그중 문화예술 관련 공약은 주로 ‘성장’과 ‘행복’에 포함되어 있었다.

 

성장

 

1. AI 등 신산업 집중 육성

 

13) 문화콘텐츠의 국가지원 체계를 확대하겠습니다.

*콘텐츠 분야 세제 지원 확대

-음악 등 각종 공연콘텐츠 및 웹툰 제작 세액공제 신설

 

14) 한류 문화콘텐츠의 인프라를 구축하겠습니다.

*한류문화의 국내 인프라 확대

-국립영화박물관, 대중문화예술의 전당, 국립무용원 등 문화 위상에 부합한 공간 마련

 

2. 성장 기반 구축

 

13) 문화예술의 자생력 강화를 위한 지원체계를 개선하겠습니다.

*전국 문화재단, 문예회관, 문화원 등 지방 문화예술 단체의 지원 및 역할 강화

*문화예술단체 지원 강화

-문화예술단체의 보조금 지원 시스템 간소화: 간결한 신청·정산 및 투명한 집행 점검

-문화예술사업 소액 지원사업의 자부담 의무 폐지 추진

*문화정책의 투명성 및 전문성 강화

-정보공개 의무화, 민간전문가 참여 확보

-예술기관 운영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개방형 직위 공모제 강화

*문화국가 발판을 위한 정책 추진 기구 설치·확대

-현장 문화정책의 반영을 위한 문체부 산하 「국가문화강국위원회」 설치

-「국가도서관위원회」 및 「장애인문화예술 공공기관」의 위상 강화

 

물론 ‘AI 등 신산업 집중 육성’ 중 ‘제작 세액공제’는 산업화가 많이 이루어진 분야에 주로 해당하겠지만 공연계 전체가 관심을 가질만하다. 그리고 ‘한류 문화콘텐츠의 인프라 구축’ 중 ‘대중문화예술의 전당 설립’은 공공공연장들이 각기 성격을 분명히 함으로써 현실적으로 상대적 차별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순수 내지 기초 공연예술에 대한 안전장치 마련의 계기가 될 수도 있고, ‘국립무용원 설치’는 연극 등 여타 공연 장르에도 중요한 방향성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성장 기반 구축’ 중 ‘문화예술의 자생력 강화를 위한 지원체계 개선’은 대부분 당장 현장에서 변화를 체감하기 어려운 내용으로 과연 어떻게 세부 계획을 짜서 이행하게 될지 지켜봐야겠지만, ‘보조금 신청 및 정산 간소화’나 ‘자부담 의무 폐지’ 등은 예술계가 꾸준히 문제를 지적해온 사항으로 실현된다면 크게 반길 만한 일이다. 반면에 ‘전국 문화재단, 문예회관, 문화원 등 지방 문화예술 단체의 지원 및 역할 강화’는 상당히 포괄적이어서 거의 선언에 가깝다. 다만 최근 연극계를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는 공공공연장의 정상화 주장과 관련하여 실제로 문예회관을 필두로 전국 각지의 공공공연장들이 예술인들의 실제 창작 현장이 되도록 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야 할 일이다.

 

행복

 

1. 생활 안정

 

11) 문화예술인의 촘촘한 복지 환경을 구축하겠습니다.

*문화예술인 생활 보장 강화

-예술인 복지금고 조성 추진

*문화예술인 사회보험 보장 확대

-건강보험료 지원 신설

-국민연금·고용보험·산재보험 가입(자부담분) 지원 확대

*문화예술인 복합지원공간 확대

-예술인 자녀돌봄센터 확대(2개소–>20개소) 및 야간 실행기관 확대

-경력단절 예술인 지원 체계 구축(공공센터 구축)

*문화예술인 공공임대주택 보급 확대

*‘임금채권보장법 대지급금’에 준하는 예술인 체불수입 보장제도 실시

 

2. 생활비 절감 대책

 

9) 국민 문화향유권 확대로 문화행복시대를 열겠습니다.

*소외계층 문화향유권 확대

-저소득층 대상 문화누리카드 지원 확대

-불우 환경 예술영재 발굴을 위한 「한국판 엘 시스테마」 사업 실시

*생애주기 3대 문화패스 신설 및 확대

-“청소년 문화패스” 신설 지원 추진

-“청년 문화패스” 지원 확대로 청년의 문화예술 접근성 강화

-“생애전환 문화패스” 도입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 강화

-초중고 학교예술강사 인건비 국비 지원

-초중고 학교 단위(학년·학급)의 최소 연 1회 문화향유 지원

-인문학 창작 및 프로그램 활성화 지원

*문화·체육 상품 및 입장에 특화된 “문화형 온누리상품권” 발행 추진

 

4. 노동존중 및 권리보장

 

11) ‘팔길이 원칙으로 문화예술인의 창작권은 보장하겠습니다.

*문화예술의 활동을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팔길이 원칙’ 준수

-정부의 문화예술인 창작권 침해 금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방지 대책 마련

*예술인 창작권 보장을 위한 권리보장 강화

-국가·지자체 등과의 계약상 권리 강화(예술인 의사에 반하는 계약 불이행 금지)

-예술인 권리 침해행위 확대 및 벌칙 신설, 국가 등의 불공정행위 금지

-예술인보호관의 개방형 직위 전환 추진

*창작자 보호를 위한 계약관계의 합리적 개선

*청년 예술인 및 예술대학(원) 학생 지원

-예술대학(원)의 공공 연계 프로젝트 및 산업화 지원 확대: 창업지원에서 성장 단계별 지원(예비창업→창업→성장→도약)

-청년 예술인의 공공문화예술기관 인턴쉽 확대

 

‘행복’ 비전 중 ‘생활 안정’ 대책으로 제시된 ‘예술인 복지금고 조성’, ‘건강보험금 지원 신설’, ‘국민연금·고용보험·산재보험 가입(자부담분) 지원 확대’ 등은 상당히 현실감이 있는 정책이다. 더욱이 ‘예술인 자녀돌봄센터 확대(2개소→20개소) 및 야간 실행기관 확대’는, 대단히 유용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서울에 2개소만 불안한 상태로 유지되던 것을 전국으로 확대하여 본격적으로 운영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비교적 대상이 분명하고 현행 제도에 대한 보완 성격이 있는 공약들은 지체없이 추진되기를 기대해 볼 수 있다. 반면에 ‘문화예술인 공공임대주택 보급 확대’나 ‘예술인 체불수입 보장제도 실시’는 꽤 매력적이긴 하지만 과정과 절차에 상당한 공을 들이지 않으면 자칫 ‘그림의 떡’이나 ‘빛 좋은 개살구’ 꼴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생활비 절감 대책’으로 제시하고 있는 내용은 ‘문화누리카드’와 ‘문화패스’ 등 전 국민에 대한 관람 혜택 제공과 함께, ‘생활비 절감’과 연결하는 게 조금 의아하긴 하지만, 예술계 전체가 깊이 관심을 가질 만한 ‘문화예술교육’과 관련된 사항이다. 그런데 2024년과 2025년 2년에 걸쳐 학교예술강사 예산 중 국고가 거의 전액 삭감되면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비상한 상황을 고려할 때 ‘초중고 학교예술강사 인건비 국비 지원’이라는 공약은 상당히 안이해 보인다. 당장 피해를 보고 있는 학생들과 예술강사들을 생각한다면 앞서 비교차 살펴보았던 민주노동당의 공약처럼 ‘학교예술강사 지원 사업 복원’ 또는 ‘학교예술강사 국고 예산 원상 회복’ 등 명확한 내용을 제시하고 당장 추경을 해서라도 하반기 교육은 물론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예술강사들의 수입 문제까지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 표명이 필요했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노동존중 및 권리보장’에는 ‘팔길이 원칙’이니 ‘창작권 보장’이니 하는 거의 기본에 해당하는 공약들이 포함되어 있다. 사실 이러한 문구들은 수없이 들으면서도 과연 현실성이 있는지 의심을 받는 것들이다. 특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방지 대책 마련’은 가깝게는 박근혜 정부 시절, 좀더 길게 보자면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때로는 암암리에 때로는 노골적으로 자행되었던 명백한 불법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2번 바뀌는 동안 해결은커녕 심지어 범죄 주도자들이 계속 영전하며 예술인 위에 군림하는 일까지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피해 당사자인 예술계로서는 정권이 다시 바뀌었다고 섣불리 기대하기보다는 과연 실제로 어떻게 되는지 냉정한 눈으로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1. 나가며

 

이제 선거는 끝났다. 선정적인 구호보다는 정말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정책, 특히 현장에서 절실하게 원하는, 그렇게 실체가 있어 직접 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세우고 실행할 때이다. 또 예술 정책에 대해 당장 눈앞에 보이는 효과와 효율을 들이대는 비예술적이면서도 어설픈 태도를 벗어버리고 진정 예술을 진흥할 수 있는 전문적인 정책 역량을 발휘할 때이다. 마침 연극계에서는 연극진흥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2021년에도 이런 움직임이 잠시 있었으나 크게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었다. 이번에는 구체적인 결과로 이어지기 바라지만, 그 전에 먼저 진정한 연극진흥에 적합한 내용이 법안에 담기도록 가능한 한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명심할 게 있다. 법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곧 현실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법의 통과를 위해 있는 힘을 다 쏟았는데 정작 법이 제정되고 난 후 현실을 보면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손댈 수조차 없이 왜곡되어 버리는 수도 드물지 않다. 즉 법과 제도만으로 좋은 세상을 만들 수는 없다. 그보다는 좋은 세상의 모습을 먼저 그려 놓고 법과 제도가 그러한 목적지를 제대로 지향하고 있는지 부단히 감시하며 때로는 가속을 독려하고 때로는 제동을 걸거나 수시로 교정해야 한다.

그렇다. 무엇보다 먼저 연극, 또는 연극인에게 좋은 세상이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고민해야 한다. 물론 연극인에게만 좋아서는 안 되고, 세상에도, 사회 전체에도,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도 좋아야 할 것은 당연하다. 현재 우리의 상태를 면밀하게 살펴 무엇이 문제인지 찾아내고, 또 그동안 좋은 세상을 만들자며 나왔던 모든 제안들을 점검하여 우리가 지향해야 할 좋은 세상의 모습을 정확하게 그려 놓는 작업을 제안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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