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IS의 새로운 코너 ‘궁금하다 이 사람’을 시작합니다. 이 사람일 수도 있고, 이 집단일 수도 있고, 이 극단일 수도 있습니다. 선정 기준은 뭐냐고요? 없습니다. 그냥, 제가 궁금한 사람 혹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저는 남명렬입니다. ‘궁금하다 이 사람’을 하기로 하고 그 첫 번째로 어느 분을 만나 볼까 곰곰이 생각하는 중에 곽지숙 배우가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4분 12초>에서 모성 가득한 엄마였다가 <몰타의 유대인>에서 구제불능의 욕망 가득한 인물까지 종횡무진 변신하는 그 배우가 몹시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글_남명렬(배우)
불꽃처럼 타고 사라져도 배우로 살 것이다
배우 곽지숙
–감사함으로 충만한 시간
남명렬(이하 남) 한 달이 좀 넘었지만 먼저 백상예술대상 백상연기상 수상을 정말 축하드립니다.
곽지숙(이하 곽) 감사합니다.
남 소감 한마디 부탁합니다.
곽 소감이요? 그냥 멀다고만 생각했던 상이었는데 막상 후보 지명되고 또 수상자로 선정이 되니까 너무 떨리고 너무 감사하고 너무 행복했던 것 같아요.
남 수상한 다음에 주변의 반응이나 수상 이후 달라진 점 뭐 이런 것들 혹시 있나요?
곽 네, 정말 축하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축하 많이 받았죠? 축하 받느라고 정신없을까봐 내가 좀 늦게 하는 거야. 이렇게 기다렸다 하는 거야.” 하는 거예요. 많은 분들이 그렇게 배려를 해주시더라고요. 제가 백상연기상 후보로 지명 됐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가 아무 생각 없이 제일 기뻤던 것 같아요. 수상 소감을 준비한다는 게 참 쉽지가 않더라고요. 받을지 안 받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받을 거라고 예상하고 소감을 준비한다는 것이 괜히 욕심을 막 부리는 것 같고, 그렇다고 준비를 안 하면 예의가 아닌 것 같고. 후보 발표 이후에 한 달 가까이 혼란의 시간이 있었어요. 근데 그 사이에 저의 많은 시간들을 돌아보게 됐어요. 내 연기 인생을요. 그러니까 내가 지금까지 연기를 해오면서 지금까지 나를 스쳐갔던, 나를 손잡아줬던, 많은 사람들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넘어질 때 일으켜 준 사람도 생각나고, 다시 일어섰을 때 등 토닥여 준 사람들도 생각나고, 아무 말 없이 그냥 기다려준 사람들도 전부 다 생각나는 거예요. 이런 감사한 마음이 충만해진다는 것만으로도 상은 한 번 받아볼 만한 거구나 생각했어요.
남 물론 상을 받은 다음에 그 뒤에 펼쳐지는 인생이 급격하게 변하고 그런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스스로 생각할 때 수상 후 좀 변했다고 생각하는 거 혹시 있어요?
곽 공연이라는 게 현장에서 불꽃처럼 확 타고 사라지는 거잖아요. 기록이 남겨진다 해도 공연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그 불꽃이 기록되는 건 아니고요. 그래서 뭔가 계속 사라지고 사라지는 일을 하는 것 같아서 좀 허무한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할 때가 때론 있었는데, 그런 생각할 필요 없다로 생각이 바뀌었어요. 꼭 상을 받아서는 아니지만, 아무튼 내가 하는 일이 그런 직업이구나를 다시 확인했어요. 그런 순간들, 그러니까 불꽃처럼 지나간 제 시간을 돌이켜 보면서 내가 그렇게 살아왔구나. 그렇게 살아가는 직업인데 왜 허무해 했지? 그냥 그런 일이다 하고 말이죠.
남 백상예술대상을 생각해 보면 대중적 파급력이 대단히 크거든요. 생각해 보면 백상예술대상은 상금도 없고하니까 여러 연극상 중에 수상하기를 고대하는 상이 아닐 수 있지 않나요? 연극상들 보면 상금이 몇 백에서 몇 천까지 있잖아요. 그럼에도 백상예술대상이 대중적 파급력이 있는 것은 JTBC에서 프라임 타임에 생중계를 하기 때문일 거예요. 연극계 내부의 작은 파장이 아닌 대중적으로 관심이 많은 상을 받는다는 것이 개인에게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 어때요?
곽 제가 이 상을 받기 전에 서울예술상에서 몰타의 유대인이 작품상을 받았어요. 작품상을 받아서 작품으로 인정받고 대중적으로 주목도가 있는 시상식에서 제가 연기상을 받으니까 팀 내에서는 얻을 수 있는 영광은 다 얻었다 하는 분위기죠. 한편으로는 제가 팀 안에서 나름 몫을 해냈구나라는 생각도 들고요. 또 제일 큰 거는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모습을 봤다는 거예요. 우리 작품이 서울예술상을 받아도, 제가 서울연극제에서 연기상을 받아도 아버지께서는 큰 반응이 없으셨었거든요? 그냥, 수고했다. 뭐, 약간 개근상 받은 느낌이랄까요? 그래, 그랬구나 정도. 그렇게 반응이 없으셨는데, 백상예술대상은 JTBC에서 생방송도 하는 대단한 상이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시상식장에도 오고 싶어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시상식에도 오셨는데 뭔가 다르게 보이셨나 봐요. 많이 기뻐하시더라고요.
남 배우 한다고 늘 걱정만 끼쳐드렸는데 작은 효도 하나 한 것 같은 느낌이었겠네요? 저도 그런 경험이 있는데 서울에서 연극 시작한 이후에 아버지가 제 공연을 보러 오신 게 딱 한 번 있었어요. 제가 상을 받아서 그런 건 아니고 예술의 전당에서 처음 공연할 때였어요.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한다는 건 성공한 거 아니냐? 하시면서 성공한 아들 모습을 보고 싶으셨나 봐요. 대학로에 있는 당신께서 알지도 못하는 극장에서 공연할 때는 관심도 없고 걱정만 하셨는데 말이죠. 그거하면 먹고는 사냐? 하시며. 하하. 아버지 얘기하니까 갑자기 옛날 일이 소환이 되네요. 더 하고 싶은 얘기가 많겠지만 백상예술대상 얘기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본격적으로 곽지숙 배우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 거를 한번 쭉 파내보겠습니다. 곽지숙 배우를 어느 정도 알아야하니까 포털에 검색을 해봤는데 의외로 곽지숙 배우에 대한 내용이 별로 없어요. 네이버도 보고 뭐 다음도 보고 구글로도 봤는데 삶의 이력이라든지 고향이 어디인지 어느 학교 출신인지 나이가 몇인지 아무 것도 없고 했던 작품만 나오는데 그것도 좀 빈약해 보였어요. 그리고 인터파크 인물 검색에는 뮤지컬 배우로 나오더라고요. 뮤지컬도 했었나요?
곽 하기는 했었지만 포털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초기에 분류해서 제가 미처 못 고친 것 같아요. 몰랐습니다.
–누구에게나 번민의 시간은 있다
남 기억을 더듬어 곽지숙 배우를 떠올려 보면 4분 12초부터 지숙 배우가 내 눈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조사를 해보니까 내가 본 작품이 꽤 있더라고요. 애국가, 글로리아, 체액, 새들의 무덤, 오구, 시골선비 조남명 등등. 내가 본 여러 작품에 출연한 배우가 전혀 기억이 없다가 어느 날 어떤 작품에서 이렇게 확연하게 각인시키는 연기를 할 수 있지? 하는 의문이 들면서 경이롭기까지 했거든요.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곽지숙 말고 그 전의 곽지숙 부터 탐험해 보겠습니다. 고향은 어디예요?
곽 서울입니다.
남 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했나요?
곽 전공하진 않았고 극예술연구회에서 시작했어요. 서울시립대학교 극예술연구회.
남 연극반 출신이구나.
곽 연극반에 입학식 날 들어갔어요. 성적 맞춰 학교에 가다보니 전공에는 관심이 없었고 취미를 찾아서 바로 연극반 생활을 했어요. 학교에서 작품을 꾸준히 하다가 시험공부 이런 거 신경쓰지 않고 실컷 연극 한 번 해보고 졸업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얄팍하게, 한 학기를 남겨놓고 휴학했어요. 1년 동안 연출도 해보고 이렇게 푹 빠져서 생활했어요. 졸업하고 더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에 대학원 시험을 봤다가 다 떨어지고 극단에 들어가자 결심하고 학교 졸업 후 바로 2000년에 연희단거리패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극단을 나와 대학로에서 작업을 시작 한 게 2008년도부터일거예요. 중간에 결혼을 했고요. 어머니가 갑자기 말기 암 진단을 받으셔서 2003년도에 날짜부터 잡고 서둘러 결혼했어요. 어머니는 결혼식 하고 그 다음 해에 돌아가셨어요.
남 그러니까 신랑을 극단에서 만나서 결혼을 한 거였구나.
곽 극단에서 만나서 결혼을 했고, 저는 엄마 병간호 때문에 잠시 연기를 중단한 상태로 떨어져 있었는데 엄마 돌아가시고 나니까 제가 심적으로 많이 안 좋았어요. 그때는 연극을 다시는 안 할 거야 생각했어요. 내가 연극을 해서 엄마를 잃었어, 약간 이런 자책을 했었던 것 같아요.
남 연극을 해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건 아닐 텐데 말이죠.
곽 어떤 시기에 연극하느라고 제가 소홀해서 엄마를 살피지 못했다는 생각? 졸업하자마자 짐 싸서 나 하고 싶은 거 할 거야 하며 극단에 들어갔으니까요. 그래서 그때는 그냥 연극에서 멀어지고 싶었어요. 나는 이제 무용을 할 거야 그러면서 무용을 하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몸이 많이 안 좋아져서 어쩔 수 없이 다시 연극을 했어요. 그냥 끌려 들어온 거지요. 신랑하고 같이 있어야 하기도 했고요. 결혼을 했는데 떨어져 있으니까 너무 힘들어서 같이 있어야겠다 생각했는데 같이 있으며 연극을 하니까 치유가 되더라고요.
남 아니, 좀 전에 연극 안 하고 무용을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춤을…
곽 네 전공을 안 했는데…
남 춤추는 걸 좋아했나 보죠? 춤을 잘 췄어요?
곽 연극반을 하면서 춤을 접하기는 했어요. 연기하려면 춤도 배워야 돼, 이러면서 훈련을 받았었거든요. 학교 극회에서 훈련 하다가 방학 때 되면 필요한 걸 찾아 헤맸어요. 그 때 전공에 너무 관심이 없었거든요.
남 전공이 뭐였죠?
곽 환경원예학과.
남 그냥 원예도 아니고 환경원예? 이건 뭐예요?
곽 그러니까. 환경원예는 쉽게 얘기하면 씨 없는 수박 만들거나 아니면 나무 병충해에 대해서 연구하거나 아니면 비닐하우스를 어떻게 하면 더 잘 만들지 골프장 잔디밭을 어떻게 만들지? 이런 걸 연구하는 거예요.
남 그냥 원예학과인데 거기다 환경 하나를 붙였군요? 그럴듯해 보이려고.
곽 하하, 네.
남 나도 전공이 임학이에요. 임학. 나무. 수풀 림자, 임학. 근데 임학이라고 하면 너무 옛날과 같으니까 요즘은 뭐 무슨 산림자원학과 뭐 이런 식으로 이름을 바꿨더라고. 그냥 나무 기르는 거, 나무 가공하는 건데. 내가 농대 나왔으니까 옆에 원예학과가 있었어요. 나랑 비슷한 과였구나.
곽 농대에는 진짜 관심이 없었는데 환경이라는 단어에 현혹되어서 간 거예요. 그때는 성적 맞춰서 선생님들이 추천을 해주잖아요. 당시에는 인터넷 정보가 이렇게 활성화되어 있는 때가 아니어서 스스로 정보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선생님이 서울대 농대를 가라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농대 관심이 없습니다. 그랬더니 그러면 어디 갈래? 하시기에 제가 고민해 보고 말씀드릴게요. 하고 나서 고른 게 거기였던 거예요. 그래서 여기 갈게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음… 그래라 하시더라고요. 근데 그때 저는 그게 농업계열인지 몰랐거든요? 입학식 날 과를 소개하면서 농대가 요즘 하향길에 있다 그런 생각하지 마시고 열심히 하십시오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착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어요. 환경원예학과는 농대가 아니라 문리대 안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과를 소개하는 말을 듣고서야 야, 이거 큰일 났다. 그래서 입학식 날 바로 연극반에 들어갔어요. 연극반에 들어와 보니까 이것저것 배우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그냥 공부만 하다가 나 스스로 찾아서 이것저것 배우니까 참 좋았어요. 연극 때문에 재즈 댄스를 배웠는데 거기가 조금 유명한 학원이었는데 재즈 댄스도 재밌더라고요. 연극하다가 중간에 그만 해야겠다하고 생각했다고 했잖아요. 그땐 무용이 조금 더 정직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만든 대로 결과물이 나온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못하니까 요행을 바랬던 것 같아요. 지금에 와서는 몸을 사용하는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데 그때는 오히려 우회하면서 그게 더 매력으로 와 닿았던 시절이었던 거죠.
남 실제로 무용단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어요?
곽 잠시 게스트로 트러스트 무용단에서도 활동을 했었고 그리고 재즈댄스 강사로도 활동을 했었는데 나이 먹고 혹사하니까 몸이 안 좋아지더라고요.
남 원래 재주가 많구나. 그런 이력이 몰타의 유대인에서 팝콘 터지듯이 포텐이 터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곽 최근까지도 플라멩고 공연을 했었으니까. 무용은 계속 취미로, 아니다, 취미보다 조금 더 찐하게 병행해 온 것 같아요.
–포텐이 터지는 조건들
남 내 눈에 곽지숙 배우가 확 들어왔던 공연, 4분 12초 그 다음 해에 몰타의 유대인이 있는데 그 이전에도 연기를 계속해 왔는데도 불구하고 2023년 2024년에 갑자기 곽지숙 배우의 연기 역량이 폭발한 거 같거든요? 제 말에 동의한다면 본인이 생각하기에 그 이유가 뭔 거 같아요?
곽 좋은 팀을 만나서인 것 같아요.
남 아, 좋은 팀을 만나서.
곽 작품을 그러니까 저를 믿고 작품을 맡겨주신 제작팀, 기획 작가 연출이 제가 놀 수 있는 판을 깔아주셨어요. 거기에 또 제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구성원들 모두의 합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그 합이 참 좋았어요. 모두가 작품 안에 최선을 다하는 팀이었습니다. 특히 ‘4분 12초’에서 액팅 코치님을 만났는데 그분이 엄청난 진화를 시켜주셨어요.
남 그 액팅 코치 이름이…
곽 최정선.
남 최정선. 저도 그분 한번 만나봐야겠다.
곽 현실적으로 한국 연극에는 잘 없는 포지션인데 그 역할을 되게 잘 해주셨어요.
남 두 작품 다 이곤 연출이 주재하는 극단 적의 작품인데 극단 적과 만나고 이곤 연출을 만나고 또 지금 얘기한 최정선 액팅 코치를 만난 것이 지금까지에 쭉 쌓아 오던 곳에 성냥불을 탁 켜서 발화시킨 거군요.
곽 그렇죠.
남 성냥불을 켜서 갖다 대도 안에 폭발할 수 있는 것이 쌓여있지 않다면 폭발할 수 없는 건데…
곽 그거를 마정화 작가님이랑 권연순 피디님이 봐주신 것 같아요. 왜냐하면 몰타 유대인은 정말 쉽지 않은 역할이었는데 이거를 이 배우가 할 수 있을 거야 하며 맡겨주신 것부터가 이미 저한테 엄청난 큰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남 내가 밖에서 극단 적을 바라보면 이곤 연출도 그렇고 굉장히 학구적인 팀이라고 저는 봤거든요. 작품 이력들을 보면 굉장히 학구적으로 파고들어야만 되는 그런 작품들을 주로 공연을 했어요. 지숙 배우 같은 경우는 몸을 많이 쓰는 것들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이 보였는데 학구적인 팀에 들어가서 작업을 할 때 충돌하는 지점은 없었나요?
곽 다행히 제가 생각보다 학구적이어서요, 신났어요. 그 팀을 만나서 작품을 진지하게 계속 연구하고 서로의 연구가 교류되고 하는 이 과정이 그냥 재미있었어요, 너무너무. 왜냐면 각 파트에서 만들어진 게 잘 만나져서 제대로 연극하는 느낌, 그게 너무 행복하고 재미있어서 그게 아마 큰 힘이 되고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어요.
남 지금까지 얘기를 들어 보면 작업을 할 때 인물 구축을 위해 집요한 면이 있는 것 같은데 어때요, 그런 편인가요?
곽 그런 편이라 할 수 있죠.
남 그런데 말이죠? 집요한 면이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 생각하면 그 집요함 때문에 같이 하는 구성원과 불화를 겪기도 하는데 그런 적은 없어요?
곽 구성원한테 최대한 불화가 안 가게 하려고 제가 속앓이를 하다 보니까 집에서 같이 사는 분이 고충을 겪죠.
남 집에 가서 화풀이를 한단 말이죠? 그러면 신랑은 뭐라고 해요?
곽 화풀이라기보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데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야 될지 모르겠고, 조심해야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어디까지인지 판단도 안 되고 그럴 때 집에 와서 물어보면 되게 좋은 혜안으로 해답을 줘요. 자기 일이 아니니까, 떨어져 있으니까 더 잘 보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혜안으로 좋은 답을 주기 때문에 다음날 적용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그건 대부분은 제 개인적인 어떤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충돌이니까 감수하는 거죠. 그래서 신랑이 지적을 해주면 저는 그냥 바로 반성해요.
남 부부가 같이 연기를 하면 좋은 점도 있지만 안 좋은 점도 있단 말이죠. 집에 와서, 연습하면서 생긴 스트레스를 얘기를 하면 상대방이 그건 “니가 잘못한 거잖아”라고 얘기하면 속상하지 않나요? 위로받고 싶어서 얘기를 한 거고 나의 잘잘못과 관계없이 내편이 되어줬으면 하는 마음 같은 것이 있을 텐데 말이죠.
곽 다행히 제가 위로받고 싶은 마음보다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크게 속상하지는 않아요. 물론 서운할 때도 있지만 서운함을 넘어서는 궁금함이 있어서 서운함은 금방 없어져요. 나의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정말 알고 싶은 거. 그 궁금함을 해결하고 싶어서 집요하게 얘기를 계속 나누고 하다 보면 대부분 해결이 되더라고요.
남 수긍이 되네요. 내 자신이 궁금함을 해소해야겠다는 마음 가지고 출발했기 때문에 문제가 안 생긴 거지 그렇지 않고 그냥 위로받고 싶다라는 마음에서 출발했다면 아마 상당한 경우가 싸움으로 끝났을 거예요. 내가 얘기를 할 때 내가 잘했든 잘못했든 남편이 내 편이 돼 주기를 기대하고 있는데 남편이 내 편이 아닌 남의 편이구나 생각이 드는 순간 정말 속상해지죠. 사실 속상한 얘기를 할 때는 내가 잘못한 것도 있었다는 것을 알면서 얘기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나도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콕 집어서 그건 니가 잘못한 거네 라고 지적하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죠. 나도 알아. 이 XX야! 하하.
곽 남편이 남의 편이 아닌 내 편이어서-진짜 와이프가 이렇게 얘기하기 쉽지 않은데-매번 제 편이 되어주니까 남편이 그건 니가 잘못한 거야 하고 얘기하면 그건 진짜 내가 잘못한 거예요. 그냥 인정해야 돼요. 그렇게 늘 1순위로 제 편이 돼 주니까 오히려 객관적으로 좀 얘기해 달라고, 내 편 들지 말고 객관적으로 얘기해 달라고 말하곤 하죠. 읽는 사람들이 좀 싫어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하하하
남 하하하. 이제 다른 걸 한번 여쭤볼게요? 지금까지 작업을 쭉 해오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작품은 뭐예요?
곽 몰타의 유대인.
남 이유는?
곽 일단은 너무 좋은 결과가 있었죠. 서울예술상 대상과 백상연기상을 받았지요. 이게 그냥 ‘내가 좋은 작품 하나 했어’에 끝나지 않고 작품을 보고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는 거니까 칭찬의 공식화? 뭐 이런 게 가장 기쁜 것 같아요. 어느 때보다도 정말 올인해서 했던 작품이기도 했구요.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있기도 해요. 이런 이런 부분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생각하는데 공연이 끝나버렸어요.
남 욕심이 참 많으시구나. 하하.
몰타의 유대인을 생각하면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있어요. 개막 첫날 일거예요. 제가 다른 일로 대학로를 배회하는데 대학로예술극장 앞이 떠들썩한 거예요. 보니까 공연을 마치고 나온 곽지숙 배우가 지인 혹은 관객들에게 둘러싸여 꽃다발도 받고 환호도 받고 하는 장면이었어요. 저하고 눈도 마주쳐서 눈인사도 나누었고요. 그 후 다른 곳 잠깐 들렀다가 극장 쪽으로 다시 왔는데 곽지숙 배우가 극장 옆 벤치에 탈진하듯이 누워있더라고요? 물론 지인과 함께. 몸 자체를 무척 힘들게 하는 배역인가 보구나 생각하면서 예매를 해뒀으니 그날 확인해 봐야겠다 생각했지요.
몰타의 유대인을 좀 더 얘기해 보죠. 궁금한 게 있어요. 그게 뭐냐면 내가 이곤 연출의 작품을 꽤 봤는데 몰타의 유대인은 지금까지 이곤 연출이 했던 작품하고 180도 다른 어떤 콘셉트를 가진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작품을 시작할 때 처음부터 이곤 연출이 콘셉트를 잡고 들어 온 건지 연습 중에 구성원들의 아이디어로 작품 콘셉트를 잡은 건지가 궁금했어요. 어때요?
곽 연습 들어가기 전에 스탭회의 과정에서 이미 많은 아이디어와 구성의 큰 틀이 짜인 걸로 알고 있어요. 마정화 작가님이 극단 적에서 고전을 연구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언젠가 몰타를 꼭 하고 싶다라는 마음을 갖고 계셨대요. 그 제안을 받아들이셔서 연출님이 작품 구상하기를 물질에 대한 탐욕과 혐오에 대한 이 이야기를 르네상스 시대가 아닌 80년대로 배경을 잡고 싶다고 생각했대요. 연출님의 이런 구상을 바탕으로 스탭회의 과정에서 이야기의 마지막 씬 같은 경우에는 죽음의 파티로 가자, 무대 디자이너와 조명 디자이너의 제안으로 풍선을 사용하자, 80년대를 배경으로 잡았으니 80년대 팝송을 쓰자, 80년대 팝송이 나오니 80년대 춤을 추자. 이렇게 회의와 연습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모아진 거죠. 그래서 80년대의 펑키한 분위기가 연극의 주조를 이루게 됐어요.
남 주인공 바라바스를 젠더프리로 했는데 그 아이디어는 누구 아이디어였어요?
곽 그거는 처음에 이 작품을 하고 싶다고 제안한 마정화 드라마터그 생각이었어요. 젠더 프리가 아니라 젠더 트랜스로 말이죠.
남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들은 적이 있나요?
곽 제가 듣기로는 영국에서 몰타의 유대인이 공연 될 당시에는 엄청나게 인기 있고 노련한 남자 배우가 주로 맡았던 역할이래요. 탐욕과 혐오로 가득 차 있는 이야기인데 그 당시 혐오와 탐욕의 대상이었던 유대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관객들이 마음껏 조롱할 수 있게 했던 거죠. 그러면서 동시에 타락한 지배계급도 비판하고 동네북이었던 유대인 비하라는 외피를 씌워 온갖 곳을 비난하는 막장극을 만든 거예요.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 공연을 하려니 그 혐오와 차별적 비하발언들의 이유는 알겠는데 그대로 무대에 올리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부담스러운 대사들은 걷어내고 압축했어요. 그런데도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는데 주인공 바라바스를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꾸면서 더욱 극악한 빌런이 되는 동시에 복수극의 중심에 여성적 시각을 재해석함으로써 그 복수의 여정이 관객들에게 부드럽게 수렴되는 길이 열리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남 남성을 여성으로 바꿈으로써 상당 부분 도움 된 것이 분명해 보여요.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는 무대에서 남녀 성행위를 묘사하는 것에 무척 예민하거든요. 자칫하면 엄청난 비판에 직면하고요. 극 흐름상 꼭 필요한 장면이라고 강변해도 그 강변은 수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죠. 그런데 몰타의 유대인에서는 권력의 우위에 있는 바라바스가 주도한 상징적 성행위로 보이는 장면이어서 덜 부담스럽게 관객한테 다가가는 효과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 그럼. 이렇게 좋았던 작품도 있지만 스스로 생각할 때 이건 정말로 부끄럽다? 이건 실패한 작품이다, 생각하는 작품 혹시 있나요?
곽 실패한 작품이라…
남 아니 뭐 그냥 잘 하진 못 했어 하고 생각하는 작품 이런 거.
곽 매번 잘 못했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남 그중에서 제일. 그냥 내 이력에서 빼고 싶어. 뭐 이런 거.
곽 기억이 안 나는 것 같아요. 근데 솔직히 이력에서 빼고 싶다기보다는 과정이 행복하지 않았던 작품은 있어요. 그런 작품은 이력으로도 행복하지 않아요.
남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와 관계없이?
곽 네, 관계없이. 작업 과정에서 팀워크가 좋지 않았다던가 아니면 내가 그 과정에서 못난 짓을 했다던가 뭐 이런 실패한 것들은 있는데 그 작품을 밝히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남 작품을 거론할 수는 없다?
곽 그렇죠.
남 그 작품의 구성원들이 알게 되면 민망한 그런 마음?
곽 모를 수도 있는데 제가 작품 할 때 그렇게 생각했구나 하고 깜짝 놀랄 수도 있잖아요.
남 그럼 캐릭터 이름만이라도.
곽 얼마 전에 제가 나온 대학교 영자신문사에서 자랑스러운 졸업생 뭐 이런 인터뷰를 했었어요. 얘기 중에 제가 실패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어떤 얘기를 했었는데 말해 놓고 보니 꽤 괜찮은 말을 했더라고요? 그게 뭐냐면 ‘모든 실패의 과정은 실패가 아니라 너의 완성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순간들이다. 물론 그 완성에는 완벽은 없다.’
남 실패한 작품이 뭔지 더 구체적으로 묻지는 않겠습니다. 그럼 실패로 인해 얻은 교훈이나 아니면 그 실패가 나를 도약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있나요?
곽 연기적으로 실패를 했거나, 관계에서 실패를 했거나, 이 모든 과정들의 실패를 지나고 나면 다시 또 배우는 것 같아요. 지난번에는 여기서 이렇게 실패했지? 그럼 이번엔 어떻게 잘 해볼까? 약간 요런.
–내 연기의 8할은 000 덕
남 혹시, 지금까지 연기해 오면서 연기의 변곡점이었다 라고 생각되는 지점이 있나요? 성공했던 작품이든, 실패했던 작품이든.
곽 저를 굉장히 변화시키는 어떤 연출님의 한마디는 있었어요. 공연 직전에 어떤 장면에서 연기를 이렇게 할지 저렇게 할지 A, B 두 안을 가지고 연출님한테 물어봤는데 연출님이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하며 짜증을 내시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엔 그걸 연출님한테 물어보지 누구한테 물어보지? 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지? 하고 화가 났어요. 근데 뒤돌아서 생각해 보니까 아, 이건 내가 결정하는 거구나. 내가 해야 되는 거구나. 누가 내려준 정답을 내가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게 바로 내가 할 몫인데 내가 물어봤구나. 그때 그런 깨달음이 컸던 것 같아요. 돌아서고 나니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어요. ‘그래, 그걸 누구한테 물어봐.’ 하하
남 그 연출이 누구예요?
곽 이수인 연출요.
남 아, 그분. 자기 세계가 뚜렷한 아주 멋진 분이시죠.
자, 그럼, 지금까지 작품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재밌는 에피소드 혹시 있나요?
곽 신랑이랑 같이 했었던 공연이었는데 망나니가 있고 대장이 있고 쫄병 두 명이 있었어요. 저는 그중에 쫄병 중 한 명이었는데 제가 사약을 들고 있다가 누군가에게 사약을 줘야 되는데, 그 사약을 의상에 있는 끈에 묶어 준비하고 있다 주는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끈이 안 풀리는 거예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풀어보려 했지만 오히려 점점 더 꼬여지고 안 풀리는 거죠? 사약을 받아야 장면이 넘어가고 퇴장도 하고 할 텐데 끈은 안 풀리고 진행하는 음악은 나오고 있고 그래서 안 되겠다 사약을 그냥 내 몸에 붙여서 주고 사약 받을 사람과 동반해서 퇴장을 했어요.
남 하하하하하. 사약을 준 다음에 본인은 무대 남아있어야 하는데 퇴장을 한 거네요?
곽 의상에 묶여있는 사약을 주려고 사약 마실 사람과 같이 퇴장한 거죠.
남 그럼 무대 뒤에서 바로 해결하고 다시 들어왔나요?
곽 그 이후는 이상하게 기억이 나지 않네요. 아까 몰타의 유대인 때 벤치에 쓰러져 있는 거 보셨다고 했잖아요. 최근에 가장 큰 에피소드는 몰타의 유대인 때 매회 무대 포켓에 쓰러져 있었던 거예요. 그게 계속 기억에 남아요.
남 공연 끝나고?
곽 시작부터가 텐션이 엄청 올라가 있고 매 씬 마다 대사량도 엄청 많고 움직임도 많고 하다 보니까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서 포켓에서 쓰러지고 집에 가서 쓰러지고 했어요. 서울예술상 시상식 때 뼈를 맞춰주신 같이 사는 분께 감사드립니다라는 멘트를 제가 했거든요. 그게 그냥 재밌으라고 한 말이 아니고요 제가 너무 힘들어 하니까 집에 가면 마사지도 해주고 뼈도 맞춰주고 했어요. 사람들이 장재호가 배우가 아니라 카이프로락틱 하는 사람인 줄 알겠어? 라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장재호 배우가 제 신랑인 건 아시죠? 하하
남 곽지숙 배우가 연기 생활하는데 신랑인 장재호 배우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군요?
곽 제 연기의 8할은 장재호 덕!
남 야, 최고의 남편을 만났네.
곽 네, 그렇죠?
남 내가 곽지숙 배우를 알아보다가 인터파크 몰타의 유대인을 보고 어떤 사람이 쓴 리뷰 중 몇 문장이 인상 깊었어요. ‘다들 잘하시지만 곽지숙님은 엄청나네요? 과장 좀 보태서 거의 원맨쇼. 이 배우를 영화 스크린에서 모셔가지 않는 게 의아할 정도입니다’ 이렇게 써 있더라고요. 근데 최근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드라마 ‘노무사 노무진’을 봤는데 거기 딱 나오더라고요. 한참 전에 찍은 거죠?
곽 몰타 끝나고 바로. 5일 뒤에.
남 아, 5일 뒤에. 드라마를 보니까 드라마에서도 연기가 참 좋더라고요. 앞으로 드라마 업계쪽에서도 꽤 주시해서 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백상연기상도 받았으니 더욱 더. ‘노무사 노무진’말고도 매체 일도 했죠?
곽 네. 근데 대부분 짧은 역이어서 봤어도 사람들이 기억을 못하고 제가 또 화장을 하면 워낙 달라지는 얼굴이라 맨 얼굴로 있으면 잘 못 알아봐요.
남 ‘노무사 노무진’을 보니까 실제 내 앞에 있는 이 얼굴보다 화면 속 얼굴의 이미지가 더 좋았어요, 개인적으로. 실례는 아니지요?
곽 진짜요? 사실은 저도 깜짝 놀랐어요. 그게 백상 시상식 이후에 방영이 됐거든요. 백상시상식 때는 좀 예쁘게 꾸몄잖아요. 근데 촬영할 그때는 몰타 끝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라서 얼굴이 진짜 만신창이였었거든요. 피로에 완전 쩔어서. 촬영시간이 기니까 얼굴이 실시간으로 늙어 가는 게 보이더라고요. 너무 부어 보이고 확 늙어 보이고 못생겨 보이고. 백상 시상식에 나온 사람하고 너무 다른 얼굴이어서 처음에는 놀랬는데 근데 배우로서는 좋더라고요. 저는.
남 매체 활동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죠? 어때요?
곽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죠.
남 나의 연기영역을 넓힌다는 의미에서도 경제적인 도움을 얻는다는 면에서도 매체연기도 활발하게 하는 곽지숙 배우를 보고 싶어요. 경제적인 면을 최고 우선순위로 둘 필요도 없지만 그걸 굳이 도외시할 것도 아니니까요. 현대 생활을 하면서 경제적인 면은 기본베이스로 깔아 줘야 하고 싶은 작업을 더 잘 할 수 있거든요.
곽 그렇죠?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또, 지원 정책이 조금 더 풍요로워져서 연극만 잘 해도 살아갈 만하다 하는 세월이 왔으면 해요. 연극만 하겠다는 게 아니라 연극만 하면 경제적으로 부족하니까 매체를 통해서 매워야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말입니다. 매체에는 매체만의 매력이 있으니까 매체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경제적인 면 보다 우선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요.
–나를 살아있게 하는 것
남 네, 알겠습니다. 내가 궁금한 것들은 거의 다 물어본 것 같은데 마지막 한 가지, 곽지숙 배우는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까?
곽 같이 사는 장재호 배우와 함께 지금 하는 일을 재밌게 하면서 저만 재밌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도-좋은 영향력이라고 많이들 얘기들 하는데-힘이 될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이 있어요,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그건 그냥 먼 꿈처럼 두고 오늘은 오늘을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그게 꿈꾸는 미래입니다.
남 오늘을 행복하게 잘 사는 것, 지숙 배우가 생각하는 그 행복은 뭐에요?
곽 제가 최근에 저를 알았는데 제가 도파민 중독자더라고요.
남 도파민중독자?
곽 계속 재미를 찾고 도전하고 싶고 숙제를 풀고 싶어 하고 알아내고 싶어 하고 이런 게 재미있어요. 연극을 계속하는 과정도 그런 연속인 것 같아요. 이 대사는 왜 해야 되지? 어떻게 해야 되지? 이런 걸 계속 알아내는 과정이 고통스러우면서도 재미있어서 못 놓고 계속 하고 있는 거죠. 요즘에는 연극뿐만 아니라 내가 하루를 즐길 수 있는 다른 것도 있구나 하는 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거든요. 수영을 한다든지 그림을 그린다든지 피아노도 치고 외국어 공부도 하고-너무 한량 같은가?-모든 배우는 과정이 사실 너무 재미있어요.
남 지금은 도파민을 뿜뿜하게 하는 거는 뭐예요?
곽 너무 다채널이에요. 수영도 너무 재밌고요 피아노도 재밌고 영어 공부도 재밌고 그래서 오전에 그 일정을 다 소화하고 나면 너무 피곤해요. 그런데 피곤하면서도 다시 또 뭘 하고 이내 또 피곤한 상태를 못 견디고 다시 또 뭘 하고 도파민을 찾아서 이렇게 빙글빙글 돌다보면 다시 연습실에 있고. 하루가 꽉 찼을 때 아, 오늘 행복했다 생각이 들어요.
남 나처럼 정적인 사람한테는 거의 불가능한 생활이네요. 물론 나한테도 도파민이 나오는 게 있겠죠. 하지만 삶의 범위가 너무 좁아서 연극하고 연극 보고 시간이 있으면 앉아서 책 보고, 그게 나의 일과의 거의 대부분이니까요. 다른 걸 새롭게 배우고 하는 거 이제 힘들어서 못하는데 지숙 배우를 보면 경이로워요. 어디서 보니까 취미가 프리다이빙이라고 돼 있더라고요? 그건 뭐예요?
곽 숨 참고 물에 들어가는 건데 기록경신을 하는 명상스포츠에요. 제가 하는 것 중에 가장 정적인 건데요, 예전에는 요가를 했었고요. 요즘에는 새로운 명상운동 개념으로 하고 있어요. 시상식 때도 수영하는 얘기를 잠깐 했었는데, 연극하고 있는 대학로가 바다 같은 거예요. 내가 보지 못하는 공연들이 부지기수잖아요. 바다에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부지기수인 것 처럼요. 그리고 극장 안을 들어가 보면 다들 자기 역할에 푹 빠져 있고요. 이 대학로 같은 물속을 숨을 참을 수 있을 만큼 깊이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거예요. 프리다이빙 숨 참기 세계 최고 기록이 10분이 조금 넘거든요. 저는 그냥 채 2분도 안 되는 시간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거예요. 근데 그거를 가서 할 때마다 내가 언제 들어가야 할지 나와야 할지 선택하는 모든 순간이 연기하고 좀 닮아 있어요. 선택하고 시뮬레이션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거에서 조금 더 들어가려고 하면서도 무리하지 않게 딱 선회해서 다시 돌아오고, 돌아올 수 있는 힘을 남겨놓는 거, 이 모든 과정들이 연기하는 거와 닮아 있어서 갈 때마다 깨달음을 얻어요. 그래서 프리다이빙을 취미를 하고 있는데 모두가 다 각자 극장에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각자의 깊이대로 각자의 숨을 쉬고 또 나오면 다른 사람들의 공연도 보고. 그렇게 닮아 있는 것 같아서 프리다이빙을 좋아해요.
남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고 다양한 것에서 도파민을 얻으려는 아내를 곁에 두고 있는 남편은 되게 피곤하겠다. 하하하
곽 그 모든 취미를 남편과 같이 하거든요. 하하
남 남편은 힘들어하지 않아요?
곽 힘들어할 때도 있는데 다행히 즐거우니까 같이 하는 거죠.
남 즐거워하는 척하는 건 아니고?
곽 물어봐야겠네요. 하하
남 남편도 본래 액티브한 걸 좋아하는 성향이기 때문에 그걸 다 따라 하는 거지 나 같은 사람이었다면 무지 힘들어 했을 것 같은데요? 아니다, 애초에 맺어지지가 않았겠다. 하하하.
오늘 곽지숙 배우하고 얘기를 나눠보았는데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곽 이렇게 자료 조사도 해주시고 많이 궁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곽지숙 배우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한 5%쯤 알게 된 것 같아요. 이 인터뷰가 독자에게 전달 됐을 때 독자들이 지숙 배우를 더 궁금해 하는 시작점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지숙 배우의 무대가 궁금해서 지숙 배우의 무대로 많은 관객이 몰려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혹시,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얘기 이런 게 있나요?
곽 무대에서 계속 뵀었던 존경하는 선배님이 제가 출연한 작품을 높이 평가해 주셨고 좋은 결과를 맺었는데 인터뷰를 하며 궁금한 점을 이렇게 조사까지 해서 질문을 해 주시니까 감개무량합니다.
남 그거 말고.
곽 그거 말고요?
남 그거 말고. 나에 대한 공치사 그런 거 말고 그냥 관객을 향해서. 아니면 이 인터뷰 기사를 읽는 분들을 향해서, 그것도 아니면 동료 배우나 여러분들한테. 없으면 하지 말고요.
곽 저의 집요함 때문에 불화했던 게 없었을까? 아직 풀지 못했거나, 혹은 제가 기억하지 못하거나 어떤 상처를 받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이 자리를 빌어서 다들 무탈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이것 또한 제욕심인 것 같지만요. 세상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다들 풍요로워졌으면 좋겠어요. 연극을 보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옆에 있는 사람들 모두, 우리나라 모두, 전 세계가.
남 이 세계가, 연극 현장이, 우리나라가, 다 무탈하고 편안하고 평화로웠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50이 된 지금 돌아보면 어렸을 때 연극을 하며 할 말 못하고 하고 싶은 거 못하고 해서 편안하고 평화롭지 않았던 경우가 있었던 모양이예요?
곽 네, 그렇죠. 그렇다고 지금 말을 더 할 수 있는 건 아니예요. 잘 모르겠어요. 위치가 바뀔 때마다 해야 되는 경험은 늘 새로 하는 거라서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나이 덕을 조금 보는 것 같기도 해요. 먼저 배려를 받으니까 감사하죠.
남 1시간 30분이 훌쩍 넘어갔네요. 오늘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오늘 인터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곽지숙 배우, 앞으로도 계속 멋진 연기 보여주시길 바랄게요. 고맙습니다.
곽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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