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파크컴퍼니 대표 박정미

[TTIS의 새로운 코너 ‘궁금하다, 이 사람’입니다. 이 사람일 수도 있고 이 집단일 수도 있고 이 극단일 수도 있습니다. 선정 기준이 뭐냐고요. 없습니다. 그냥 제가 궁금한 사람 혹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저는 남명렬입니다.

‘궁금하다 이 사람’ 두 번째 손님은 파크컴퍼니 박정미 대표입니다. 파크컴퍼니는 2024년과 2025년 한국연극계를 강타한 신구, 박근형 출연 <고도를 기다리며>를 제작한 곳입니다. 박정미 대표는 여리여리한 첫인상이지만 단단함으로 무장된 유능한 연극 제작 프로듀서입니다. 오늘 박정미 대표에 대해 궁금한 것을 하나하나 풀어보겠습니다.]

 

글_남명렬(배우)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파크컴퍼니 박정미 대표

 

–  노심초사 했지만 끝은 모두의 행복

남명렬(이하 남) 며칠 전에 <고도를 기다리며> 일정을 모두 마쳤죠?

박정미(이하 박) 네.

많은 대중들이 호응한 작품인데요. 일정을 모두 마친 소감 먼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엔,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서 50회 공연으로 기획을 했어요. 신구, 박근형 두 고령의 선생님들이 원 캐스트로 출연하시니까 그때에는 50회 공연 약속을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가 목표였어요. 지나고 나서 보니 저희가 139회 공연을 했더라고요. 서울에서 세 번 공연을 했고 지역 투어로 31곳을 순회했어요.

서른한 곳이나! 대단하네요.

지금도 이 사실이 믿기지 않고, 두 고령의 배우님들의 체력적인 부담을 고려해 공연을 완주할 수 있을지 항상 걱정했고 여러 가지 대안도 준비했는데, 이렇게 무사히 약속된 공연들을 모두 마칠 수 있어 감회가 남다릅니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제작한 박정미 대표도 대단하지만 그 일정을 다 소화한 신구, 박근형 두 선생님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산울림 소극장의 대표 레파토리이고 다른 극단에서는 안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극단 산울림만 공연했잖아요? 거의. 한국에서는. 그랬는데 이 작품을 그 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박 저는 불어불문학을 전공했어요. 당시 전공 교수님께서 연극을 무척 좋아하셨는데, 한 학기 동안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함께 분석했습니다. 단어들은 쉬웠지만 뜻은 난해해서 꽤 힘든 수업이었죠. 그 경험이 처음엔 괴롭기만 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연극에 대한 관심을 키워준 계기가 된 거 같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고도를 기다리며>는 잊고 지냈지만, 교수님의 영향으로 이후에도 꾸준히 연극을 보러 다니게 되었고, 결국 지금은 대학로에서 제작 일을 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하하.

남 그 교수님 성함이 어떻게 돼요?

임혜경 교수님요.

아, 그분. 극단 프랑코 포니를 이끌며 프랑스 작품을 지속적으로 소개해 주시는 분.

네.

 

<고도를 기다리며> 사진 제공: 파크컴퍼니

 

 <고도를 기다리며> 얘기 더해 보죠.

박 2013년, 신구 선생님과 <황금연못>이라는 공연을 했습니다. 신구·이순재 선생님이 더블 캐스트로 출연하셨는데, 두 분과 함께 연습하면서 문득 <고도를 기다리며>가 떠올랐어요. 대학 시절 교재를 다시 꺼내 읽어보니,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두 선생님이 무대에 서신다면, 이 어려운 작품도 자연스레 이해될 것만 같았죠. 그러나 산울림의 대표 레퍼토리 작품이기에 감히 시도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신구 선생님과 <앙리 할아버지와 나>, <라스트 세션> 등을 함께 하며 제작자와 배우를 넘어선 친밀한 관계가 되었죠. 그러던 어느 날 식사 자리에서 “에스트라공 역이 정말 잘 어울리실 것 같다”는 말을 드렸더니, 선생님께서 무척 반가워하시며 “하고 싶었지. 근데 산울림에서 안 불러줘서 못했어”라고 하셨어요. 그 말에 큰 자극을 받아 바로 다음 날 프랑스 베케트 재단에 메일을 보냈습니다. 재단에서는 친절하게 답장을 해줬고, 그 이후로 저는 매년 새해 인사처럼 메일을 보냈습니다. 몇 년 후, 산울림과의 계약이 종료되었으니 공연을 검토해 보라는 연락을 받았죠. 2023년 초, 공연이 현실로 다가온 순간이었습니다. 계약 절차를 밟으면서 산울림의 임수현 선생님께도 연락을 드렸는데, 계약 만료가 맞다며 응원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가, 에스트라공 역에는 신구·박근형 선생님을 캐스팅하게 됐습니다. 박근형 선생님께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제안을 드렸지만 번번이 거절하셨는데, 이번에는 제안 드리자마자 “좋습니다”라고 답해 주셔서 정말 기뻤죠.

남 <고도를 기다리며>는 한국에서는 극단 산울림만 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암묵적 약속이 있었지만 박대표가 제작하기로 맘먹을 때에 극단 산울림의 상황, 그리고 고도…의 한국 공연 라이선스 종료와 맞물려 고도…를 제작할 수 있었네요. 참 여러 가지가 잘 맞아 떨어져서 이런 행복한 결과를 냈네요. <고도를 기다리며> 얘기는 이쯤하고, 대학로에 연극제작사가 많이 있는데 파크컴퍼니는 제작 작품들은 조금 다른 색깔이 보이는 것 같아요. 프로그램 북에 있는 작품 이력을 보면 <앙리 할아버지와 나> <이토록 보통의> <도둑 배우> <엘리펀트 송> <꽃의 비밀> <라스트 세션> <오만과 편견> <올드 위키드 송> <얼음> <리어왕> <러브레터> <고도를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가 있던데 모두 제작한 작품은 아니죠?

박 공동제작도 있고요, 참여 형태가 다양해요.

 그러면 공동 제작 홍보 마케팅이나 이런 거 빼고 순수 제작한 작품은 어느 거죠?

<앙리 할아버지와 나>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 <라스트 세션> <러브레터> <고도를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지금 말한 작품들만 봐도 다른 제작사의 작품 레파토리와 성격이 좀 달라요. 그게 뭐냐면 대체로 대학로 프로덕션 제작 작품들은 인기 있는 젊은 주인공을 내세운 작품이 많잖아요? 그게 흥행 공식이기도하고 제작비 부담도 적을 테니까. 그런데 파크컴퍼니의 작품은 원로, 혹은 중견이상의 배우가 출연해야만 하는 작품이 다수예요. 보통은 이런 작품 선택을 주저하게 되는데 이런 작품을 선택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박 제가 좋아하는 분들을 캐스팅하고 이분들과 같이 작업하고 싶어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작품을 선택하고 공연을 올리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제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사람’인 것 같아요. 공동제작으로 했던 <꽃의 비밀>이나 <얼음> 같은 경우를 보면 장진 감독과의 오랜 인연이 있고 제가 너무나 애정 하는 배우와 그 작품의 핏이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해 과감히 도전한 작품들이죠.

남 내가 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으면 다소의 제작 리스크가 있더라도 과감히 도전하는 스타일인가 봅니다. 하지만 프로덕션의 제 일 목표가 작품을 통해 최대한의 수익을 내는 것일 텐데 리스크를 감수하고라도 하고 싶은 작품을 우선 선택하는 이유는 뭘까요?

박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그렇게 선택을 했을 때 후회가 남지 않더라고요. 물론 저도 제게 꼭 끌리지 않지만 순전히 상업적 고려를 해서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서 선택 을 해서 제작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실패했어요. 많은 가능성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요. 어쩌면 그런 경험들이 일을 크게 벌이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의 범위를 정해놓고 시작 전에 고민을 많이 해요. <라스트 세션> 초연 때도 정말 그랬던 것 같고. <라스트 세션>은 오래전부터 올려보고 싶었는데 그때는 제가 소속된 회사에서 이 작품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 최종 결재를 못 받은 작품이거든요. 그 후 우여곡절 끝에 제가 회사를 설립하고 올린 <앙리 할아버지와 나>로 돈을 좀 벌고 나니까 <라스트 세션>을 올릴 때 생길지도 모를 리스크 정도는 감당할 수 있겠다 싶어서 과감히 도전했지요.

 

 

–  사람과의 인연이 모든 것

남 작품 프로그램 북에 보면 파크컴퍼니를 소개하는 글이 있어요. 제가 읽어 볼게요. [공연제작사 파크컴퍼니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선보이며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파크컴퍼니가 선보이는 작품들을 통해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비판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되길, 더 풍요로운 삶을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파크 컴퍼니의 가장 큰 자산은 작품을 통해 인연을 맺은 ‘사람들’로서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는 신념을 지키며 함께 즐길 수 있는 순간들을 만들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하겠습니다.] 여기에서 인상 깊은 것은 ‘작품을 통해 인연을 맺은 ‘사람들’로서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는 신념을 지키며’였어요. 이러한 회사의 목표와 박대표의 마음이 신구, 이순재, 박근형 선생등과의 인연을 오래 이어지게 하는 것 같네요.

저는 사람이 연극 작업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렇다고 제가 아무에게나 마음을 여는 성격은 아니고요 오히려 낯을 가리는 성격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저와 인터뷰하고 있는 남선생님 같은 경우를 보면요, 남선생님이 출연하신 <노이즈 오프>를 공연할 때 큰 어려움이 있었잖아요. 갑자기 배우 한 분이 아프셔서 공연을 못하게 됐는데 전 배역 중 유일하게 더블 배역을 맡으신 선생님께 그 배역을 어렵게 부탁했는데 흔쾌 히 “연극은 계속 돼야지.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애”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 순간이 저는 아직도 잊혀 지지가 않거든요. 저에게 그런 순간이 연극 작업에 있어서의 감동의 순간이에요.

남 <노이즈 오프> 얘기가 나온 김에 박대표와 나와의 개인적인 얘기를 조금 할게요. 박정미 대표하고 나하고 2007년 작품 <노이즈 오프>에서 처음 만났죠? 그때는 연극제작 프로덕션의 태동기라고 할 수 있는데 박대표가 근무하던 ‘동숭아트센터 씨어터컴퍼니’가 그 첫 번째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거기서 박대표는 막내 피디로 근무하고 있었고. 그러다 회사의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거친 후 드디어 제작사를 창립하게 됩니다. 저는 저 나름대로의 작품 활동을 하느라 박정미가 회사를 차렸다더라 정도의 소식만 듣고 있었는데 어느 날 불쑥 연락이 와서 작품하나 읽어봐 달라는 거예요. 그 작품이 <라스트 세션>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작품은 참 흥미로웠어요. 하지만 회사를 창립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첫 작품을 성공적으로 제작했다 해도 아직 취약한 회사가 감당하기엔 너무 위험성이 커 보이는 작품이었어요. 그리고 그 당시 프로덕션이 제작하는 연극의 주 성향이 로맨틱 코메디류가 대세일 때였거든요. 그렇게 내 생각을 말해주고 몇 년인가 지난 후에 이번에는 <라스트 세션> 출연 제안을 하는 거예요. 걱정 됐죠. 솔직히 내가 아니라 박대표가 걱정 됐어요. 하하. 이유는 아까도 말했듯이 회사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대중지향적 작품을 몇 개 더해서 재정이 좀 더 튼튼해진 다음에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 작품을 꼭 하려는 이유가 뭐냐 물었더니 “지금 이 작품을 제작하지 않으면 영원히 못할 것 같아서요”라고 대답했던 게 기억나네요. 저는 그 대답을 들으면서 박대표에 대한 믿음이 생겼거든요. 그때 이야기를 박대표 입으로 듣고 싶네요.

<라스트 세션> 대본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들이 떠올랐습니다. 신구 선생님도, 그리고 앞에 계신 남 선생님도요. 이 작품처럼 배경지식이 많아야 하고, 그 내용을 체화해 연기할 수 있는 분이라면 선생님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많이 읽으시고, 지적인 스타일의 연극 경험도 풍부하시니까요. 다소 어렵고 무거울 수 있는 작품이지만, 오히려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직관이 들었습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영영 못 할 것 같다’는 마음, 그리고 최종 결재를 받을 필요가 없는 현실적인 상황… 이런 여러 이유가 겹쳐 작품 제작을 결심했습니다. 회사를 시작하면서 ‘크게 키우겠다’는 욕심은 전혀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그저 좋은 사람들과 함께 연극을 만드는 과정이 즐거웠고, <라스트 세션>이 설령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완전히 손해만 보는 일은 아닐 거라 생각했습니다. 퇴직금도 조금 여유가 있었기에, 한번 버텨볼 수 있겠다 판단했죠.

퇴직금 털어가지고 제작한 연극이군요. 지금 기억을 해보면 <라스트 세션> 공연 초반에는 우리도 놀란 만큼 관객이 많이 들었잖아요. 그러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본격화 되면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지요? 퇴직금을 다 털어먹지는 않았겠지만 꽤 데미지가 컷겠어요? 그럼에도 이년 후 재연, 또 다음 해 삼연을 해서 크게 성공을 거두었지요?

네. 사실은 <라스트 세션>으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저도 못 했고 같이 참여한 배우 스텝들도 못했죠. 그런 상태로 초연을 올렸는데 다행히 처음부터 반응이 너무 좋은 거예요. 코로나 사태는 있었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위협적일 때가 아니었 거든요. 코로나에 대한 뉴스가 연일 쏟아졌지만 세계적인 팬데믹 현상으로 오래 갈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어요. 초반 얼마간은 정말 행복하게 공연을 했던 것 같아요. 생각보다 관객들이 그렇게 어려워하지 않았고 굉장히 많은 곳에서 반응을 해주셨거든요. 그러다 갑자기 코로나19가 크게 확산되었지요. 어쩌면 공연을 취소해야 될지도 모르는 지경까지 갔어요. “관객이 몇 명일 때까지 공연을 오픈하는 게 맞을까요? 공연을 취소한다면 언제 취소하는 게 맞을까요?” 그때 너무나 고민이 돼서 두 선생님께 각각 여쭤 봤거든요? 근데 두 분 다 ‘옛날에 관객이 더 없을 때도 공연했고, 관객이 출연자수 보다 적을 때도 있었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 그렇다면 2인극이니까 관객이 두 명만 있어도 해야겠다 하며 버텨냈어요.

지금 들어보니까 제가 그렇게 대답을 했다면 진짜 무책임한 대답이었네요.

아니, 공연을 꼭 하자라는 말씀은 아니셨고 예전엔 연극하는 게 훨씬 더 힘들었다는 얘기였는데 제가 그 얘기에만 꽂혔던 거죠. 약속한 건 지키고 싶은 오기도 있었고요. 그렇게 어려운 선택이지만 선택을 했고 재연 삼연을 이어가면서 성공을 이루어냈어요. 참여하는 분들과 진짜 너무 행복하게 작업 했잖아요. 그래서 굉장히 뿌듯해요.

 

<라스트 세션> 사진: 신귀만

 

남 <라스트 세션>초연이 2020년 몇 월이었죠?

박 7월요.

남 맞아, 7월. 그해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나라에 상륙한 게 1월인가? 2월인가로 기억해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상륙한 지 오륙개월이 지났지만 우리나라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방어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일상생활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었지요. 그래서 <라스트 세션> 개막 후 얼마간은 극장을 꽉 채워서 공연했고요. 그러다 얼마 후 어떤 단체에서 방역수칙을 어기며 대규모 시위를 했고 그때부터 전국으로 급격히 확산되기 시작했어요. 아직은 한 자리 띄워 앉기, 두 자리 띄워 앉기가 강제 시행 전이었음에도 그 시기부터 관객들이 극장에 오는 걸 두려워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취소표가 쏟아졌고요. 어느 날이 기억나요. <라스트 세션> 엔딩이 프로이트가 시가를 피우며 상념에 젖어 앉아 있는 장면이잖아요.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며 십여 초의 시간이 있어요. 무대 조명이 어두워지면 객석이 보이거든요. 그때 눈대중으로 관객 수를 세어 보았어요. 30명 남짓 되더라고요. 며칠 전만해도 객석에 관객이 꽉 차 있었는데… 참 속상하더라고요.

근데 저 고백 하나 해도 돼요? 그때 사실 그 30명 정도 되는 관객을 객석에 채우느라 너무나 힘들었어요. 왜냐면 돈을 내고 공연장에 오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서 조연출 그리고 조명, 음향 하는 친구의 학교 친구들을 열심히 동원했거든요. 그래도 객석에 관객이 좀 앉아있어야 했기에. 그때는 초대를 해도 사람들이 극장에 오는 걸 많이 피했어요.

내가 모르는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군요. 나는 그분들을 정말 용기 있는 일반 관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얘기를 들으니 참 고맙네요. 지금까지 계속 나온 얘기 같긴 한데 작품을 고르는 기준 같은 게 있나요?

제가 좋아야 되는 작품 같은데요? 너무 이기적인가요?

내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이어야 된다. 그렇다면 내 마음을 움직이는 건 어떤 작품이에요?

그냥 희곡을 보았을 때는 희곡 안에 철학이라고 말을 해야 되나-사실 이런 고민을 안 해봐서 지금 좀 두서가 없는데-어떤 철학적인 메시지가 있는 작품이 좋은 거 같아요.

철학적 메시지가 있는 작품이라… 그거는 대중성과 충돌할 거 같은데요?

그런 작품들을 대중성하고 매칭해 보고 싶은 게 저희 회사와 저의 목표이기도 해요. 제가 대학원 수업 들을 때 강사분이 한 분 계셨어요. 연극 연출도 하시던 분이셨는데 그분하고 제가 심각하게 논쟁을 한 것이 연극에서 대중성과 예술성이 공존할 수 있느냐 였어요. 그분은 절대 안 된다고 말씀하셨고 저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 납득할 수 없다, 분명 가능하다라는 입장이었거든요. 저는 지금도 그게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그것들을 잘 조화롭게 하는 것이 목표이기도 하고 그런 공연들이 많았으면 하는 게 바람이기도하고요. 연극계에서 프로덕션의 연극제작 방식에 대해 안 좋은 시선이 있는 것도 알고 있어요. 연극에 그저 유명한 배우들을 써서 돈이나 벌려는 거 아냐? 하는 시선 말이에요. 하지만 저의 기준은 유명하다고 무조건 캐스팅하지는 않아요. 우선 캐릭터와 배우가 잘 맞아야 해요. 관객의 시선은 너무나 냉정해서 유명하다고해도 캐릭터에 맞지 않는 분을 무대에 세우면 절대 좋은 평을 주시진 않거든요. 그러니까 돈만 벌기 위해 연극을 제작한다는 시선을 너무 갖지 않으셨으면 해요.

그러니까 캐릭터하고 잘 맞는 유명한 배우가 있어야겠군요?

하하. 유명한 배우만 있으면 안 되고요, 만약 그 유명한 배우가 무대를 처음 한다면 그 친구를 잘 리드해 줄 수 있는 연륜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도 함께 해야 되요. 그런 앙상블이 필요하지요.

얘기를 나눌수록 연극하는데 박대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라는 것이 더욱 진하게 느껴지네요. 그렇죠. 연극은 사람이 만드는 거니까, 사람이 모여서 만드는 거니까.

네. 그리고 또 이토록 가내수공업 같은 작업이 없잖아요, 생산성 떨어지는. 사람들이 일한 만큼 아웃풋 되는 게 참 신기하기도 해요. 연극은 그런 장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연극이라는 장르가 참… 지금까지는 연극을 어떻게 만들고 연극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공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개인적 질문 몇 가지 할게요. 고향이 어디예요?

 

 

–  인생을 바꿔 준 아비뇽 연극제

서울입니다.

 아까 학부를 불문과 다녔다고 했는데 어느 학교?

숙명여대 불문과요.

대학원 얘기도 잠깐 했는데 대학원은 연극관련 학과였나요?

제가 대학교 3학년 때 교환학생으로 프랑스에 두 달 반 가있었어요. 방학 기간에 아비뇽 페스티벌을 보고 제가 눈이 돈 거예요. 그때까지만 해도 이쪽 일을 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일로는 대학로에 와본 적도 없는데 아비뇽 페스티벌이 제 인생을 바꿔 놨죠. 연극의 재미를 붙여서 대학로에서 연극을 꽤 많이 봤어요.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자원봉사를 하기도 했고요.

아, 98년도에.

아니요. 2002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기자단으로 자원봉사를 하며 공연 분야에 발을 들이게 됐습니다. 당시 기자단 활동 모습을 눈여겨본 분이 샘터 파랑새 극장에서 열리는 어린이 해외 페스티벌 ‘파랑새 축제’에 함께하자고 제안하셨죠. 마침 샘터에서는 <라이어> 공연도 진행 중이었는데, 제가 일하는 모습을 보신 또 다른 분이 스카우트 제의를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부터 현장에서 일을 시작했고, 이후 대학을 졸업하면서 대학원까지 병행했습니다. 그 후, 동숭아트센터에 입사하게 됐습니다.

대학원에서는 예술경영 뭐 이런 공부를 했겠군요? 그리고 바로 동숭 레파토리씨어터에 들어갔고요.

동숭아트센터 씨어터컴퍼니.

아! 동숭아트센터 씨어터컴퍼니. 거기가 프로덕션 연극 제작의 일 세대라고 할 수 있죠? 뮤지컬 제작사는 여럿 있었지만 연극을 주로 제작하는 제작사는 거의 없었으니까요. 거기서 배우고 느낀 것도 꽤 많았겠어요?

정말 많죠. 그리고 그 회사의 큰 장점은 454석과 200석 짜리 공연장 두 개를 같이 운영하면서 제작 공연들을 할 수 있었으니까 굉장히 최적화된 시스템 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봐도요. 그런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곳은 지금도 없는 거 같습니다.

박정미 대표의 이 모습을 보면 한때 배우를 꿈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는데 혹시 배우를 꿈꾸고 그런 적은 없었나요?

아니요!

그래요? 보기에는 배우를 꿈 꿀만도 한 모습인데.

사실 지금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도 너무 부끄러워요.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고 저는 그냥 뒤에 있을 때 항상 마음이 편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이 언제냐 하면요,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열렬한 박수 받는 걸 맨 뒤에 앉아서 그 모습을 볼 때, 그때가 제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때예요.

얼마 전에 돌아가신 김민기 선생이 영광은 앞에 있는 배우들이 다 받고 나는 뒷것으로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런 거 하고 좀 일맥상통하네요?

제가 감히 김민기 선생님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선생님의 그런 성격, 성향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해요. 저도 그럴 때 마음이 편안하거든요. 앞에 서는 것보다. 그래서 작품 크레딧에도 제 이름을 맨 앞에 넣지 않아요. 제가 알려지고 제 얼굴이 알려지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선생님이 인터뷰를 하자고 하시니 지금 이렇게…

어떻게 하지? 오늘 이후로 얼굴을 숨기는 건 끝났네! 하하.

하하.

 

 

–  위기는 또 다른 기회

지금까지 일해 오면서 위기의 순간도 있었을 테고 기회의 순간도 있었을 텐데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어요?

얘기해도 돼요?

얘기해 봐요.

다 이야기하기에는 복잡하지만, 제가 몸담았던 동숭아트센터 씨어터컴퍼니가 연극열전으로 재편되는 등 회사 정체성이 여러 번 바뀌는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회사를 창립하기 전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곳은 수현재 컴퍼니였는데, 내부 사정으로 갑작스럽게 문을 닫게 되었죠. 당시에는 제게 가장 큰 위기였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오히려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회사가 문을 닫는 상황을 수습하느라 정신없이 지내는 와중, 함께 일하던 후배 PD가 “이제 어떻게 할 거냐, 회사를 차릴 거면 같이 하고, 아니라면 다른 일을 알아보겠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왔습니다. 저는 쉬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그 피디가 지금 파크컴퍼니의 기둥 김수진 피디?

 

-이때 사진을 찍어주고 있던 김수진 피디가 끼어들었다-

 

김수진 박정미 대표 말고는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할 것이냐 마느냐를 결정해야 했거든요. 어떻게 할 거냐 말을 던져놓고 전 여행을 떠났는데 여행 중에 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했다고 대표님이 전화를 주신 거예요. 그래서 야! 나 취직했다! 하며 막 기뻐했어요. 하하.

파크컴퍼니 창립의 공 5할은 김수진 피디에게 있네요? 하하.

5할이 뭐예요. 그 이상이지요.

이제 궁금한 걸 얼추 다 물어 본 거 같네요. 이제 2025년도 하반기로 접어들고 있는데 올해 그리고 2026년 파크컴퍼니는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지요.

최근에 <아르카디아>라는 작품을 함께 했는데요…

홍보 마케팅을 담당했죠?

그 작품을 제작하고 연출한 김연민 연출하고는 아주 오래 전, 2010년 연극열전 작품들에서 조연출로 만났어요.

조연출로. 그런 인연이 있었군요. 며칠 전에 김연민 연출을 만났는데 굉장히 젊어 보였는데 15년 전에 조연출을 했어요? 연극원 들어가기 전부터 인연이 있었네요.

오랜 인연이 있었고, 서로 연락하며 응원하던 친구였는데 어느 날 대본을 하나 보내왔습니다. 읽어본 뒤, “언젠가 이 대본이 무대에 오른다면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돕겠다”고 말했죠. 그 친구의 성격상 먼저 도움을 요청하지 못할 걸 알았기에, 제가 먼저 홍보마케팅을 맡아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연극 만드는 데만 집중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역시 사람과의 인연을 중요하게 여기는 박대표네요.

최근에 <아르카디아>를 잘 마쳤고요, 단 7회 공연으로 끝난 것이 아쉬워서 그 공연을 한 번 더 해보고 싶은 목표가 하나 생겼어요. 아직 확정된 건 아니고요. 그리고 <고도를 기다리며>를 하면서 고전 작품에 매력을 굉장히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내년에는 조금 더 큰 대극장 버전의 고전 작품을 하나 올려보려고 계획 중이에요.

고전? 어떤 작품?

아직 고민 중입니다.

그리고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가 곧 올라가죠? 작년에 공연을 올렸는데 이순재 선생님의 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었는데요. 그래서 이번에 다시 올려서 벌충을 해 보겠다 하는 심산인가요? 하하. 아이 대답을 안 하시네.

하하. 네, 그러길 바라지만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순재 선생님의 건강 문제로 공연을 취소했을 때, 박근형 선생님께서 무척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빨리 다른 배우를 구해 공연을 이어가는 게 어떻겠냐, 내가 다른 공연만 아니면 해주고 싶다”는 말씀도 해주셨죠. 하지만 저는 급하게 다른 배우를 캐스팅해 무대에 올리는 것은 관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결국 이순재 선생님 회차는 모두 취소했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신 박근형 선생님께서, 먼저 “다시 해보자”라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네. 지금까지 파크컴퍼니 박정미 대표하고 연극에 대한 얘기를 풀어봤는데요, 박정미 대표의 계속되는 행보를 기대하면서 응원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없어요? 그럼 이대로 끝.

음… 한 가지가 있는데요. 인재들이 이 시장으로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능력 있고 젊은 인재들이요.

젊고 능력 있는 인재들이 많이 들어오면 그 인재들이 빛날 수 있도록 열심히 뒤에서 제작을 하겠다 하는 의미인가요?

그런 것도 있고 더 발전되고 더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어찌 됐건 사람이 바꾸는 거니까. 단기적으로 돈이 되겠다는 생각 말고, 단지 사업적 측면으로만 보는 거 말고, 공연예술로서 가치 있는 콘텐츠가 더 많이 제작되는 대학로가 되면 좋겠어요. 아니, 대학로 뿐 아니라 대한민국 공연예술계 전체가요.

네. 오늘 긴 시간 자리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박정미 대표의 행보를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자리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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