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진흥을 위한 지원을 위한 보조를 위한 절차를 위한 예술인의 희생

글_오세곤(극단 노을 예술감독)

 

진흥과 지원은 어떻게 다를까?

사전을 찾아보니 진흥(振興)은 “떨치어 일어남. 또는 떨치어 일으킴.”이고 지원(支援)은 “지지하여 도움.”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지원이 방법이라면 진흥은 그 목표나 결과라고 하면 될 듯하다.

다소 여담 같지만, 이 두 단어를 두고 문화부와 교육부가 미묘하게 갈등했던 일이 있었다.

2005년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이 제정될 때 이야기다.

애초 문화부에서는 문화예술교육 “진흥법”으로 초안을 마련하였다. 그런데 교육부에서 문제를 제기하였다. 문화예술교육도 교육이므로 진흥은 교육부가 할 일이고 문화부는 그 진흥을 지원만 하면 되니까 “진흥법”은 안 되고 “지원법”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결국 명칭이 바뀌어 문화예술교육 지원법으로 통과되었다. 그러나 교육부도 어쩌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법 통과 전에 이미 일반 법인으로 설립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명칭까지는 바꾸지 못하였다. 그래서 법의 명칭은 “지원법”이고 그 법을 시행하는 주무 기관의 명칭은 “진흥원”이 되는 우스운 꼴이 벌어지고 말았다.

최근 연극계에서는 보조금법 개정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 움직임의 계기는 여럿 있겠지만 그중 대표적인 일은 바로 한국극작가협회가 계간 한국희곡을 출간하면서 원고료 중 일부를 기부받아 인쇄비에 쓴 일로 제5대 이사장 외 3인이 유죄 판결을 받고, 그에 더해 협회가 지원금 환수와 향후 5년간 지원 불가라는 치명적인 처분을 받게 된 사건이었다.

또 한국 국적으로 20여 년 국내에 거주하며 활동한 연극인이 단지 교포로서 외국 영주권 소지자라는 이유로 정당한 심의를 거쳐 지급 받았던 지원금을 환수당하는 것은 물론 부정 수급자로 향후 상당 기간 지원 불가 처분을 받은 일도 중요한 문제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이야기하다 보면 지원과 보조가 자주 혼용된다. 그래서 다시 보조(補助)의 뜻을 보니 “보태어 도움”이란다. “지지하여” 돕는 것과 “보태어” 돕는 것의 차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친 김에 ‘금(金)’ 자를 더 붙여 지원금과 보조금을 찾아보니, 지원금은 “지지하여 돕기 위하여 주는 돈.”이고 보조금은 “정부나 공공 단체가 기업이나 개인에게 교부하는 돈.”으로 “특정 산업의 육성이나 특정 시책의 장려 따위와 같이 일정한 행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그렇게 보니 지원금보다는 보조금이 훨씬 구체적이고,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예술 지원은 거의 정부에서 하고 있으니 보조금이라는 게 적합하다는 생각이다. 하긴, 지원금 정산할 때 이용하는 “e나라도움”을 검색하니 “e나라도움은 국고보조금을 보다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구축된 국고보조금통합관리시스템이다. 2017년 1월부터 국고보조금이 들어간 모든 사업은 e나라도움을 이용해야 한다. 국고보조금이란 국가 이외의 자가 수행하는 사무 또는 사업에 대해 국가가 이를 조성하거나 재정상 원조를 하기 위해 재원을 교부하는 제도를 말한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이렇게 해서 진흥과 지원과 보조라는 세 단어 간의 위계가 정해졌다. 진흥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지원을 하는데 그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보조인 것이다. 즉 진흥을 위한 지원이고, 지원을 위한 보조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보면 문제 될 게 없어 보인다. 그런데 연극계에서는 왜 이렇게 보조금법 개정까지 주장하며 반발하는 것일까? 사실은 연극계가 앞장선 것일 뿐 예술계 전체가 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헌법 제22조 ②항을 보면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라고 되어 있다.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를 하나로 묶고 또 하나로 예술가를 명시하며 법률로써 권리를 보호하라고 되어 있다.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는 다른 말로 하면 장인(匠人), 즉 기술자이고, 예술가는 예인(藝人)이다. 비록 드라마에서지만 고구려 패망 후 부흥세력들이 예인과 장인을 지키고자 온갖 노력을 다하는 내용이 있다. 즉 예인과 장인은 나라를 세우고 유지하는 핵심 인력군으로 보았다는 것인데, 현재 우리의 헌법도 그런 국가 운영 철학을 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예술인복지법을 제정할 때 가장 많이 나온 반론이 복지는 전 국민에 해당하는 것인데 왜 특별히 예술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법이 필요하냐는 것이었다. 법 제정의 마지막 관문이었던 국회 공청회에서도 예산 문제와 함께 가장 많이 나온 것이 그 이야기였다. 그러나 예술의 특성상 예술가에게는 그 어느 분야와도 비교할 수 없는 집중력과 실패를 마다않고 덤벼드는 집념이 필요한데, 그렇다 보니 예술 창작 이외에는 무관심해서 심지어 자기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조차 못 하는 경우도 흔하다. 즉 다른 직군에 비해 위험에 처할 확률이, 또 거기서 못 빠져나올 확률이 대단히 높으므로 별도의 복지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도저히 걸러낼 수 없는 수많은 사례를 살펴 지원하고 보호해야 하는 것이 예술이고 예술가들이다.

그런데 역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얘기가 맞는 것 같다. 예술인만을 대상으로 제정된 예술인복지법의 주 시행기관인 예술인복지재단에서 바로 앞서 예로 든 교포 연극인의 지원금을 환수하고 부정 수급자로 낙인찍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절차대로 신청하고 심의받고 선정되고 지급받고 정산까지 했는데, 뒤늦게 3년 전, 5년 전의 일이 잘못됐다며 보조금 토해내고 규칙 위반자로 불이익을 감수하라는 것이다.

더욱이 신청 시 교포라는 사실을 숨기지도 않았는데, 이제 와 애당초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 보조금을 신청해서 받았으니 잘못이라는 것이다. 사실 내국인의 사전적 정의는 “자기 나라 사람을 다른 나라 사람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 대한민국 국적자가, 게다가 20여 년 계속 한국에 거주한 사람이 스스로 “국내 거주 내국인”으로 생각하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게 없다.

만약 내국인에 대해 자체적으로 다른 정의를 갖고 있다면 공고를 낼 때부터 분명하게 강조했어야 옳다. 그리고 심의 과정에서도 그것을 확인했어야 한다. 그러니까 신청자에게 기만의 의도도 없었고, 실무 차원의 문제 제기도 전혀 없었는데, 그 책임을 오로지 해당 예술가에게만 묻겠다니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것이다.

여기서 예술인복지법상의 예술인을 규정하고 있는 예술활동증명 운영지침을 보자면 다음과 같다.

 

제2조(기본원칙) ① 법상 예술인은 전문적인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을 말하며, 전문적이란 상당한 지식과 경험 및 수준을 전제로 하고 취미나 여가 활동의 일환이 아니라는 뜻이다.

② 법상 예술인은 자신을 예술인으로 인식하는 정체성이 분명하여야 하며,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활동 경력이 예술인으로 인정받기에 충분하여야 한다.

③ 문화예술의 범위를 한정할 수는 없으므로 법상 규정된 분류에 맞지 않더라도 예술 활동임이 분명할 경우 심의를 통하여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④ 법상 예술인은 원칙적으로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한 사람으로 한정되나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중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경우는 예외로 한다.

  1. 대한민국 국민과 혼인 중인 사람
  2. 대한민국 국민인 배우자와 이혼하거나 그 배우자가 사망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직계존비속을 돌보고 있는 사람
  3. 「난민법」 제2조제2호에 따른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
  4.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 제5조에 따른 재외동포체류자격을 부여받은 외국국적동포
  5. 「출입국관리법」 제10조의3에 따른 영주자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

 

이 지침에 의하면 설령 재외동포라도 예술인복지법상 예술인에 해당한다. 더욱이 위의 사례는 분명 대한민국 국적자인데 외국 영주권자이므로 내국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정을 받은 셈이다. 물론 한겨레 신문 보도에 의하면 재단은 “해당 사업은 저소득층 예술가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재외국민은 해외소득 파악이 어렵기 때문에 사업 대상에서 제외했다”며 “애당초 지원대상이 아니라 환수 조처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분명하게 지적할 사항이 있다. 해당 지원금의 출처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저소득층”이라는 지침이 어디선가 끼어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국고건 지방비건 교육 재정이건 복권 기금이건 문예진흥기금이건 예술인들에게는 그냥 지원금일 뿐이다. 이게 어디서 나온 거니까 취약계층만 된다느니 하는 설명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슬며시 예술인 중 취약계층 아닌 사람도 있나 하는 반감이 떠오를 수도 있다.

게다가 예술인복지재단에 저소득층을 판별할 역량이 있을 리 없다. 그러니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기준을 적용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전년도 소득 또는 소득세 얼마 미만인 자, 또는 전년도 건강보험료 얼마 미만 납부자” 등과 같은.

세밀한 기준은 때로 공정해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형식 논리에 빠져 본질을 망각하게 하는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도대체 예술인들의 평균 소득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뻔히 다 아는데, 거기서 어떤 기준을 세워 저소득층을 가려내겠다는 것인가? 그걸 가리겠다는 것 자체가 전혀 쓸데없는 낭비적 발상이다. 과연 일반 기준으로 소득이 많아 지원에서 배제되어야 할 예술인이 얼마나 될까? 또 그렇게 확연한 고소득자가 사회적 비난을 무릅쓰고 1년에 300만 원 지원받겠다고 신청을 할까? 그런 경우를 걸러 내라고 심의 과정이 있는 거 아닌가?

일반과 다르기 때문에 예술인만을 대상으로 예술인복지법을 제정하였다. 그런데 실무에서는 일반의 원칙을 들이댄다. 애당초 법의 제정 취지를 모르거나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모르면 무능이고 무시하면 나쁜 것이다. 두 경우 모두 자격 미달이다. 즉 우리 예술인복지재단은 이 일을 통해 스스로 자격 미달을 고백한 셈이다.

사실 먼저 거론했던 한국극작가협회 사건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왜 잡지 발간 비용을 지원하면서 어떤 항목은 되고 어떤 항목은 안 된다는 원칙을 세우는지 이해가 안 된다. 더욱이 인쇄비는 분명히 주요 비용인데 그게 안 된다고 정한 의도는 정말 불가사의하다. 원고료로 지급된 돈의 일부를 기부받아 인쇄비로 쓴 일로 고발당하고, 유죄 판결 받고, 벌금 내고, 환수 조치 당하고, 협회가 파산 위기에 처하고 하는 일련의 일들을 보면 정말 이 사회가 이렇게 낭비를 해도 될 정도로 한가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냥 알아서 하라고 주면 안 되나? 잡지 발간 사실만 확인하면 되지 않나? 발간 비용에 턱없이 못 미치는 것이 확실한 지원금에 대해 왜 정산이 필요할까? 예술가들은 창작 활동이 아닌, 그래서 서툴고 어려울 수밖에 없는 증빙 서류 만드느라 골치를 썩이고, 행정에서는 일일이 살피고 따지고 잘못된 것 찾아내느라 시간을 보내는 이 과정이야말로 정말 비생산적이고 낭비적인 바보들의 행진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낭비적인 상황을 지적하면 보조금법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이 따라붙는다. 법에는 해석이 필요하다. 보조금법이든 뭐든 예술인과 결부될 때는 헌법 제22조와 예술인복지법의 제정 취지에 비추어 해석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예술인의 특성에 맞도록 적용할 줄 알아야 한다. 만약 명백하게 어긋난다면 그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즉 법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진정 예술인을 보호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절차의 덫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절차는 본질을 위한 것이다. 예술을 진흥하기 위하여 지원이 있는 것이고 지원을 위하여 보조가 있는 것이고 그 보조를 제대로 잘하기 위하여 절차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절차를 위해 예술과 예술인이 희생되고 있다면 그런 아이러니가 없다. 이제라도 본질을 최우선으로 놓고 고민하여야 한다. 그렇게 항상 본질을 생각하며 고민하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예술을 진흥하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예술 진흥을 위한 모든 정책을 철저히 새로 점검할 것을 제안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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