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예산은 국가의 책무

글_오세곤(극단 노을 예술감독)

 

요즘 문예진흥기금 고갈이라는 해묵은 얘기들을 한다. 기금 모금이 중지된 게 언제고, 제대로 예술 진흥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니, 당장 급한 일은 기금을 헐어서 쓰고, 이후 시간을 두고 충분히 논의하여 확실하고 안정적인 예산 확보 대책을 마련하자는 얘기 나온 게 언젠데 아직도 기금 고갈 운운하고 있는지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사실 여태 고갈이 안 된 게 오히려 이상하고 욕먹을 일이다. 20년 전 독임제의 문예진흥원 시대를 마감하고 민간 주도의 위원회 체제로 전환될 당시 보유 기금이 5000억 원 정도였는데, 예술에 얼마나 돈을 안 썼으면 획기적으로 국고를 늘린 적도 없는 상황에 아직도 그게 남아 있다는 말인가? 물론 문화부건 문화예술위원회건 이유는 들으나마나 뻔하다. 예산을 많이 쓰고 싶었지만, 그놈의 기재분지 뭔지가 막아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겠지. 참말로 기재부 없었으면 할 말이 없어서 어쨌을까 모르겠다.

혹자는 그런다. 나랏돈을 쓰려면 국민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당장 먹고사는 데 쓸 돈도 부족한데 예술 지원에 많은 예산을 책정하면 그걸 국민들이 인정하겠느냐고. 그런데 도대체 그 동의는 누가 어떻게 구해야 하는 것일까? 설마 예술인들에게 스스로 그 동의를 구해 오라고 하는 것일까? 하긴, 가끔 보면 그렇게 믿는 관료들도 꽤 많은 것 같다. 우는 아이 젖 준다고 예술인들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면서, 국민들 설득에 필요하니 예술을 경제적으로 환산하여 제시하라고 제법 예술과 예술인을 걱정하는 척 조언하는 인사들을 보면 분명 그렇다.

아마 예술을 경제적으로 환산해서 크게 화제가 됐던 대표적인 사례는 김영삼 정부 시절 <주라기 공원>이라는 영화 한 편이 현대자동차 100만대 판매한 것과 같은 수익을 올렸다는 말에 갑자기 문화산업이 정책의 화두로 떠올랐던 일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는 것이 사회 전반으로 넓고 깊게 뿌리내린 예술에 대한 교육과 관심이라는 사실은 간과한 채 갑자기 그 과실의 크기만 보고 흉내를 내려고 했기에 오히려 산업이라는 단어에 기초예술이 질식해 버리는 심각한 부작용만 낳고 말았다.

누차 강조했듯 예술은 헌법에서부터 명시하고 있는 국가 구성과 유지의 필수 요소이다. 필수란 없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역시 헌법에서 예술인을 콕 집어 그 권리를 법률로써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예술이라는 요소가 없어서는 국가와 사회가 온전히 유지, 발전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먹고사는 게 중요하니 예술은 뒷전으로 제치자고 하는 게 과연 맞는 말인가? 당장 굶어 죽을 지경인 사람한테야 우선 뭐든 먹이는 게 중요할 것이다. 그건 사고로 목숨이 경각인 사람에 대한 응급의료조치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런 육체적 극한 상태를 벗어나면 바로 정신적 건강을 고려해야 한다. 정신적 건강이 결국은 육체적 건강까지 좌우한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서 예술이 어떤 부분을 채워주는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즉 먹고사는 문제 운운은 그렇게 육체적 극한 상태에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말인데 우리가 정말 그런 처지에 있는가? 툭하면 세계 몇 위의 경제 규모니, 선진국 대열이니 하며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지난달 “기초예술 정책의 첫걸음”이라는 글에서는 주로 돈을 어떻게 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요지는 아직 우리에게는, 특히 정책을 주관하고 실행하는 쪽에서는 거의 실력이 없으니, 최대한 겸손한 태도로 아주 단순하고 안전한 방법을 택하라는 주문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 의견을 수용한다 해도 쓸 돈이 없으면 속수무책이다. 물론 돈이 있는데 잘못 쓰면 그것은 차라리 없어서 아무 일도 안 하는 것만도 못하겠지만, 일단 올바르게 쓰리라는 전제로 과연 어떻게 돈을 마련할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과거 문예진흥기금은 영화나 문화시설 관람료 등에서 일정 비율을 떼어 적립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2003년 위헌 판정이 나서 중지되었는데 문제는 앞서 말했듯 이후 아무런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우물쭈물 수십 년을 방치해 왔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대통령이건 장관이건 위원장이건 모두 직무유기로 처벌받아야 마땅할 일이건만 그런 일로 누가 고발당하거나 수사받았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국민들을 설득하는 문제도 그렇다. 먹고사는 게 급하다는 건 이제 그냥 습관적으로 나오는 말버릇일 뿐이다. 그 부분에서 중요한 건 분배의 문제이므로 정책을 잘 세우고 실행을 합리적으로 하면 된다. 즉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분배의 방법을 잘못 선택하거나 운영을 잘못해서일 것이다. 반면에 예술은 아예 돈이 없는 게 문제이므로 먹고사는 것과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니까 설령 누군가 먹고사는 문제를 내세우며 예술에 돈 쓰는 것을 반대한다 하더라도 국가 운영자들은, 더 넓게는 국가와 사회를 이끄는 이들은 그것이 잘못된 전제에 근거하고 있음을 간파해야 하고, 나아가 설득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대통령부터 실무 창구 담당자까지 중앙과 지역의 모든 공무원, 중앙과 지방의 의원과 같은 공직자는 물론이고, 소위 지도층 인사에 해당하는 이들은 모두 그런 책무를 지녀야 한다.

사실 문예진흥기금과 관련해서는 많은 전문가들이 세세하게 연구하여 다양한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복권기금, 체육기금 등 자체 목적이 있는 성격의 돈을 끌어왔을 때 발생하는 문제로 문화바우처와 같은 향유자 지원의 비중만 증가할 뿐 정작 중요한 예술 진흥 예산은 상대적으로 빈약해진다는 진단도 나와 있고, 그런 상황에서 어설프게 선택과 집중을 기조로 하는 바람에 예술 지원에 대한 일반 예술인의 체감은 더욱 낮아졌다는 평가도 있는 상태이다.

어떤 기금을 가져다 쓰건 문예진흥기금은 그 본연에 취지대로 쓸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그런 돈은 가져올 필요가 없다. 그에 대한 대안 역시 국가 운영자들이 마련해야 한다. 간혹 외국의 사례를 들어 국고를 가지고 예술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또 소위 선진국에서도 예술인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얘기들도 한다. 물론 외국의 사례를 보고 배워야 할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의 두 사례 제시는 배우자는 것이 아니라 예술 지원에 대한 책임 회피라는 불순한 의도의 혐의가 짙다.

다시 강조하지만, 예술을 위한 예산은 국가가 책임지고 마련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 국민 설득이 필요하다면 역시 국가가 책임지고 나서야 한다. 경제적 가치 환산이 필요하다면 그 또한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하고, 그 결과 홍보도 국가가 해야 한다. 경제적 가치를 넘어서는 훨씬 중요하고 광범위한 예술의 가치를 홍보하는 공익 광고도 만들어 배포하고, 더 근본적으로 마치 스포츠 뉴스가 그렇듯 방송의 일정 부분을 반드시 예술로 채우도록 강제하는 입법까지도 해야 한다. 그래서 국민 누구도 예술에 쓰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고, 오히려 아끼면 화를 내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책무일 것이다. 부디 국가가 해야 할 일과 예술인들이 해야 할 일이 상식적으로 구분되는 세상이 오기를 희망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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