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재진(단국대학교 명예교수)
희곡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극단에서 번역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번역자의 항의가 있었다. 극단에서는 그 사람의 번역으로는 도저히 공연할 수 없어 자기들이 여러 번역을 참고하고 손질하여 무대에 올렸다며 굳이 어느 역자의 이름을 밝힐 수 없었다는 해명이 있었다. 번역에는 용도에 따라 강의용, 학술용, 무대용 등 여러 번역이 가능하다고 흔히들 생각한다. 번역에는 하지만 사용하는 곳에 따라 시용목적에 따라 각기 다른 번역이 있는 것이 아니다. 번역에는 의역과 직역이 있는 것이 아니다. 번역에는 학술용이 있고 공연용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번역에는 오직 좋은 번역과 나쁜 번역이 있을 뿐이다. 민주주의에 서양식 민주주의가 따로 있고 한국적 민주주의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닌 것처럼!
번역에는 물론 어느 번역이 더 좋다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고전작품을 예를 들어 아리스토파네스의 번역본을 출판하려면 출판사로서는 누구의 번역으로 출간할지 고민하게 된다. 독일의 경우 드로이엔(Droyen)의 번역이나 세거(Seeger)의 번역 중에서 고르게 된다. 드로이엔의 번역은 원문의 운율에 더 충실하고 세거의 번역은 (독일)독자가 읽기에 더 부드럽다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독일어 번역은 많지만 보통 슐레겔이나 티크의 번역본을 많이 사용한다. 물론 70년대 80년 대 유행했듯 고전작품을 공연하면서 [오셀로]의 데스데모나가 비키니를 입고 등장한다거나 [햄릿]의 주인공이 무대에 기관총을 들고 나오는 등 특별한 경우에는 그에 맞게 대본을 다시 만들기는 한다. 하지만 그럴 경우는 번역상의 문제를 떠나 연출상의 문제가 된다.
우리의 경우에도 많은 희곡작품들이 번역되어 출간된다. 번역이란 외국어를 조금 읽을 수 있다 해서 누구나 마구 덤벼들 수 있는 손쉬운 분야는 아니다. 때로는 며칠 밤을 뜬 눈으로 밝히며 피를 토하며 삶과 죽음 사이를 헤매며 써 놓은 천재시인들의 귀한 독백을 별 책임감 없이 무성의하게 편한 마음으로 마구잡이로 번역을 한다면 이는 무모한 짓을 넘어 범죄행위에 해당될 것이다. 우리만큼 희곡문학이 서러움을 받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우리 자체가 안고 있는 창작희곡문학의 낮은 질적 수준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저질의 번역 때문에 많은 고전작품들이 망가지고 결국 이상하게 불구가 된 작품 앞에서 많은 독자가 외면하고 떠나는데 더 큰 원인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연애편지 한 번 제대로 써보지 않은 사람이 당대 최고로 추앙받는 시인들의 작품을 함부로 주무를 수는 없는 일이다.
희곡의 경우는 다른 장르에 비해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거나 압축되어 있기 때문에 번역자는 상상력이나 표현력이 풍부하고 작가와 맞먹을 정도의 시인의 예술적 재능이 있어야 한다. 시인이 타고나야 되듯이 번역자도 타고나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고귀한 작품은 모두 망가지고, 결국 고전작품들은 누구도 쓸 수 없는 쓰레기가 되고 만다. 때로는 그 고귀한 작품이 평범한 번역자의 수준으로 끌려 내려오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어디에 있느냐고 내게 따져 물을지 모른다. 이런 오만의 독설은 독화살이 되어 되돌아와 내 등에 꽂혀 오히려 내가 더 고통의 신음 속에 허우적거리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뇌와 고통 속에서 번역일이 이루어짐을 강조하고 싶은 마음에서 망설이지 않고 독하고 험하게 감히 내뱉는 것이다. 번역은 사전의 말을 옮겨 놓는 안일하고 안이한 유희가 아니다.
실러, 브레히트, 베데킨트, 뒤렌마트 등의 드라마를 나는 꽤 많이 번역해서 출간도 하고, 무대에 올리는데 나름대로 일조를 했다. 1970년 이진순 선생님의 부탁으로 뒤렌마트의 [천사바빌론에 오다]를 번역했다. 극단 “광장”은 이 작품을 명동 국립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공연 후 나름대로 흡족했는지 연출은 내게 또 다른 독일 작품을 주문했다. 나는 클라이스트의 [암피트리온]을 선택했다. 학생인 내가 번역하기에는 버거운 작품이었다. 몇 줄 내려가지 않아 막히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별 큰 문제도 아니었지만 그 당시에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서울을 온통 뒤집고 다니며 교수들을 찾아다녔다. 소용없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독어독문학과가 서울에만 8개 대학에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에 관심 있는 교수들은 거의 없었다. 근래에 나는 옛날에 번역했던 [암피트리온]을 다시 꺼내 읽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 보아도 일찍이 이미 내 손에 한 번 더럽혀진 이 작품의 번역을 고쳐 되살릴 수는 없었다. 번역된 작품도 생물과 다름없다. 한 번 망가지면 태아건 희곡작품이건 다시 회생시킬 방법은 없는 것이다. 독일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던 당시 학생의 번역치고는 제법 상상력이 풍부했다고, – 장님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더욱 상세히 상상할 수 있듯이 -, 자위하면서 뚜껑을 그대로 덮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문화일보사가 서 있는 서대문 언덕진 자리에 예전에 동양극장이 있었다. 지금은 영화관으로 바뀌어 있다. 형들을 따라 가서 그곳에서 커크 더글러스가 주연한 ‘율리시스’란 영화를 보았다. 지금도 영화 속의 많은 장면들이 떠오른다. 지중해의 외딴 섬에 거인 족 외눈박이(cyclops) 괴물들이 살고 있다. 이들 중 폴뤼펨(Polyphem)이란 거인은 포세이돈의 아들로 평화롭게 홀로 가축을 키우며 살아간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율리시스 일행이 물과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이 섬에 당도한다. 이들은 거인의 굴에 들어갔다가 잡히고 만다. 폴뤼펨은 멸치 먹듯 울리시스의 부하들을 잡아먹는다. 취하게 만들려고 율리시스는 포도를 짓이겨 거인의 입에 쏟아 붓는다. 포도주에 취해 기분이 좋아진 폴뤼펨은 제일 나중에 잡아먹겠다며 율리시스의 이름을 묻는다. 목마의 속임수로 10여 년간의 트로이 전쟁을 끝낸 영리한 율리시스는 만약을 생각해서 “내 이름은 우티스(‘utis’)”라고 대답한다. ‘우티스’는 영어로 하면 no man 정도의 뜻이다. 폴뤼펨의 눈을 찌르고 율리시스 일행이 도망치자 앞이 보이지 않는 외눈박이는 고함을 치며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동료들이 여기저기 동굴에서 뛰쳐나와 누가 그랬는가 물으니 ‘우티스’가 그랬다고 대답한다. ‘사람이 그리하지 않았다’(no man)면 이는 분명 제우스가 혼을 내준 것이라 생각하고 동료들은 모두 자기들 굴로 들어가 버린다. 이 장면에서 ‘우티스’를 어떻게 번역해야 될까? 이를 제대로 번역하려면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첫째 이름의 형태를 갖춰야 한다. 둘째 사람이 아니라는 뜻을 줘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안사람’이라고 번역함을 주장한다. 우리의 번역판을 뒤져보면 이 부분이 생략되어 빠져있거나 아니면 번역되지 않은 채 ‘우티스’로 그대로 옮겨 놓았을 것이다.
몇 년 전 국립극장에서는 독일 연출가를 모셔다 [수궁가]를 무대에 올렸다. 전체 줄거리는 대강 쫓아갈 수 있었지만 대사의 온전한 뜻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전광판의 영어자막을 통해서야 비로소 웬만큼 이해할 수 있었다. 많이 부끄럽고 적지 아니 슬펐다. 하지만 대사는 욕설하고 토씨만 우리말이고 그 외는 온통 어려운 한자말로 되어있다. 수백 년을 아니 천 년 넘게 우리와 희로애락을 함께한 [삼국지], [수호지]등은 어느 정도 번역이 되어 있는가? 우리말은 토씨의 역할에 그치고 ‘우티스’의 경우처럼 내용의 대부분은 번역되지 않은 채 편한 데로 원문을 그대로 옮겨놓았을 뿐이다. [수궁가]와 다를 바 없다. 그 당시 우리 조상들의 넉넉하고 구성진 언어생활을 돌이켜 본다면 마음만 먹었으면 분명 어려운 한자말이라도 모두 우리말로 구수하고 시원하게 번역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상님들은 아랫도리만 배고픈 것이 아니었다. 허기진 배를 움켜잡으며 허전한 머리를 유식한 한자로 채워 넣고 싶었을 것이다. 언문으로는 어지럼증이 가시지 않는다고 변명하며 어려운 한자말에서 영양분을 섭취하며 그 속에서 위안을 삼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하고 싶어도 [수호지]나 [삼국지]를 우리말로 옮길 수 없다. 배가 아무리 불러도 머리가 아무리 온갖 지식으로 가득 차 있어도 그럴 능력이 닿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말은 끝내 빈약해지고 망가지고 말았다.
번역하면서 내가 늘 부딪치는 어려움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외국어의 장벽이다. 일생을 독일 말과 씨름하며 살았는데 아직도 고전작품 하나 시원하게 번역해내지 못하니 부끄럽다. 이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두 번째로 비교문학의 한계이다. 번역을 하다보면 어색하거나 뜻을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과감하게 원문에서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표현이 어색해도 그대로 머물 때가 있다. 그리고는 연출상의 문제로 떠넘기게 된다. 이를 나는 어쩔 수 없는 번역상의 한계라 생각한다. 잘못하면 원작가의 세계를 너무 파괴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를 얼마나 잘 넘나드느냐에 따라 번역의 질이 갈릴 것이다. 세 번째로 시공간의 극복이다. 특히 고전작품을 번역하려면 시공간을 초월해서 다른 차원의 세계관을 이해해야 된다. 몇 세기 전에 가졌던 어떤 시인의 생각을 이제 와서 훔쳐보며 상상하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고도의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면 그런 상상의 세계에 파고들어가 다른 차원에서 고전작가와 만나 서로 대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희곡번역은 무대에 올린다는 엄연한 사실이 전제된다. 번역할 때 그래서 나는 항상 머릿속에서 연출하며 작업한다. 대사를 무대에 맞게 만들려고 애를 쓸 뿐 아니라 심지어 연기자들의 위치에 따라 같은 말이라도 달리 선택한다. 같은 단어라도 경우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른 뉘앙스를 갖게 다르게 번역하게 된다. 그 뉘앙스의 섬세한 차이는 번역자가 찾아 관객에게 들추어내 주어야 한다. 즉 같은 단어라 해서 어느 경우든 똑 같이 번역한다면 최상의 번역은 아닐 것이다. 또 하나는 그 나라 관객이 그 말을 들었을 때 받아드리는 뜻이나 강도, 그 느낌을 우리 관객에게 가능한 대로 거의 같도록 번역한다. 90년 대 초 브레히트의 [코카서스 백묵원](그 당시 나는 [하얀 동그라미 재판]이라고 제목을 붙였었다.)이 대학로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공연이 있었다. 그 작품에는 속담이 많이 나온다. 나는 전부 우리 관객이 이해할 수 있게 풀어서 번역했다. 어느 독문학자가 연습실로 항의전화를 했단다. 제목이며 속담의 번역에, – 글자 그대로 번역하지 않았다고 -, 불만을 가졌던 모양이다. 다행히 나는 그 독문학자의 어느 번역본도 읽어 볼 기회가 없었다.
끝으로 희곡의 경우에 번역자는 연극계의 흐름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 연극에 대한 경험이나, 최소한 연극의 돌아가는 무대역학을 이해해야 된다. 드라마는 장르 특성상 종막을 향해 서둘러 달려가기에 중간 중간 쉬어갈 시간적 여유가 없다. 소설 같으면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고 보충하며 설명이 되지만, 드라마의 경우는 많은 부분이 압축되고 생략되게 마련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루해지고 긴장감이 떨어져 관객을 사로잡는 드라마는 생겨날 수가 없다. 누가 이런 압축되어 숨겨진 부분을 찾아 내 본능적으로 냄새를 잘 맡느냐에 따라 번역의 질이 달라진다. 이런 야수적 본능이 부족한 사람이 번역했을 때 독자나 관객이 입는 상처(피해)는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문장의 앞뒤관계도 고려하면서 특히 그 순간 극작가가 가졌을 법한 감정도 번역자는 훔쳐볼 수 있어야 한다. 그 단어 앞뒤에 숨어 있는 다른 말들을 상상해 낼 수 있는, 시인의 마음을 훔쳐볼 수 있는 도둑놈 같은 재주가 필요한 것이다.
번역은 엄청난 힘이 드는 창조의 작업이다. 번역하는 사람들이 잠시라도 시인의 고통을 함께 괴로워하고 시인의 슬픔을 가슴에 묻으며 시인보다 더 크게 통곡한 적이 있을까? 우리의 무책임한 번역자들은 쉽게 작업을 끝내고 그럼 무엇을 하는가? 건강에 해롭다며 작은 소주잔마저 내 팽개치고 누런 주스 한 잔으로 목을 축이며 만족해하지는 않는가?! 그런 메마르고 무심하고 느슨한 마음으로 거대한 창조의 뜰 안에서 배회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할머니나 어머니로부터 우리말을 배웠다. 그런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람을 근래에 나는 본적이 없다. 나는 우리의 할머니들이 손자들을 잠재울 때 쓰던 우리말로, 우리 어머니들이 멀리 길 떠나는 자식을 배웅하며 울먹일 때 입술에 배어 있던 그런 우리말로 번역하려고 애를 쓴다. 서양문학을 전공하면서 다행스럽게 나에게는 더 많은 스승이 생겼다. 언어의 마술은 셰익스피어에게서, 언어의 처절함은 실러에게서, 언어의 유희는 클라이스트에게서, 언어의 간결함은 브레히트에게서, 언어의 재치는 뒤렌마트에게서 … 무엇보다도 언어의 진지함을 나는 헵벨(Friedrich Hebbel. 1813-1863)에게서 배웠다. 내가 이들 여러 시인들 중 한 시인의 서자가 되어도 좋다면 단연 헵벨의 이름 아래 조용히 내 이름을 적을 것이다. 헵벨은 비엔나에 묻혔다. 그곳에 몇 번 갔었지만 나는 그분의 무덤을 찾아보지는 못했다.
셰익스피어, 실러, 헵벨 등의 언어는 인간의 언어가 아니라 살아있는 신의 언어이다. 영원히 되 물림 되는 우주의 진화 속에서 신도 지루했을 것이다. 잠시 지상에 내려와 이들 시인들의 이름을 빌려 인간의 갈등을 소재로 비극 몇 편을 쓰고 올라갔는지 모르겠다. 신들의 언어를 우리는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천재들의 이런 언어 앞에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덤벼들면 안 될 것이다. 집나간 자식을 위해 새벽에 일어나 몸을 깨끗이 씻고 냉수 한 사발을 떠 놓고 그 앞에서 기도하던 조선시대의 어머니처럼 우리는 간절하고 소박하고 경건하고 끈질긴 마음으로 시인들의 글을 두 손에 조심스레 담아 쥐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