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작품, 두 여인의 마주보기 또는 넘어서기: <꽃 속에 살고 죽고>
박연숙(공이모 평론가, 숭실대학교 교수)
공연일시: 2013.02.27-03.03
공연장소: 대학로 알과 핵 소극장
원작: 강성희
각색/연출: 노승희
작가 강성희(1921-2009)의 <백합향>과 <날아가는 새>는 다른 시대, 다른 세대, 다른 상황의 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이다. <백합향>의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내’는 남편의 여자와 배다른 아들을 감내해 온 노년의 여성이고, <날아가는 새>의 스타 배우 ‘선미’는 유부남의 아이를 임신한 채 새로운 남자 정운과 살림을 차린 당찬 젊은 여성이다. 두 작품 속 배경으로 등장하는 벽촌의 집과 스타 배우의 아파트만큼이나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 또한 매우 이질적이다.
그러나 노승희 연출은 서로 다른 그녀들을 마주보게 한다. 서로를 마주보게 함으로써 생겨난 <꽃 속에 살고 죽고>는 시대와 세대, 상황을 뛰어 넘어 반복되는 여성의 문제를 짚어내고, 그것을 반성적으로 인식하게 하고, 문제를 넘어설 돌파구를 모색하게 한다. ‘아내’와 ‘선미’는 전업주부와 스타 배우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 다 사랑하는 남자에 의해 자신의 욕망이 좌절되고 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불임 때문에 남편의 외도를 묵인해야 하는 아내의 무기력감을 선미도 똑같이 느낀다. 선미는 오감독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오감독 부부에게 아이를 뺏길 처지이고, 새로운 애인 정운은 결혼조차 원치 않기 때문에 아이를 낳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 무기력하다. 선미는 결혼을 거부하는 정운의 태도에서 또 다시 불행해질까봐 불안하고 두렵다. 아내 역시 남편이 아들을 따라 떠날까봐 두렵고 불안하다. 두 여성에게 드리워진 정서가 시대와 세대, 상황을 뛰어 넘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주체가 되지 못하고 타자로 남아 있기 때문에 느낄 수밖에 없는 정서이다.
주어진 문제 상황을 회피하려 하는 점에서도 이 두 여성은 닮았다. 아내는 애써 남편의 아들을 반기는 척하고 선미는 오감독의 아이를 정운의 아이인 척한다. 약자의 기만이다. 그러나 작품의 결말에 이르면, 각자의 방식으로 주어진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한다. 그 초월의 단초가 ‘백합향’과 ‘파랑새’이다.
<꽃 속에 살고 죽고>의 가장 큰 미덕은 다른 시대, 다른 세대, 다른 상황의 <백합향>과 <날아가는 새>의 두 인물을 마주보게 하면서 서로의 닮은 점과 서로 다른 모색을 확연히 부각시키는 점이다. 아내는 백합향을 품으로 끌어안으면서 선미는 새장의 파랑새를 놓아 주면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다. 서로 다른 선택이지만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고자 하는 의지에서만큼은 일치한다.
<꽃 속에 살고 죽고>는 관객에게 끊임없는 질문으로 다가갈 것이다. 당신이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 앞에서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것과 정면으로 대면하고 있는가,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무엇을 선택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