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호 편집인의 글)
관심과 관찰과 분석과 판단과 행동
연극계에 새로운 토론 모임이 출범했다. 대학로X포럼이다. X가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많은 연극인들이 모여 연극계 현안을 놓고 다양한 의견을 개진한다. 벌써 두 번째 모임을 가졌는데 참여자의 수로 보나 폭으로 보나 관심의 정도로 보나 연극계로서는 거의 처음이라 할 만큼 많고 넓고 뜨겁다.
어떤 일이건 제대로 되려면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 분석의 첫 단계는 관찰이다. 관찰의 도구는 시각을 필두로 하는 오감일 것이다. 오감을 통한 관찰은 이성적 분석의 토대가 된다. 물론 관찰과 분석은 그 전 단계로 관심이라는 절대 조건이 필요하고, 이후 단계로 종합적인 판단과 그에 근거한 반응 내지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
연극계는 가난하다. 가난하면 여유가 없다. 연극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연극 그 자체이다. 연극 그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 가난하여 거의 없는 에너지를 모두 쓰려니 다른 일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른 일이라는 것이 실은 핵심 중의 핵심인 연극을 둘러싼 환경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환경이 잘못되면 결국 핵심마저 죽고 말 테니 말이다.
배우는 배우의 일만, 연출은 연출의 일만, 학자는 학자의 일만, 평론가는 평론의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그런 정의로운 세상은 아직 안 왔다. 적어도 연극에 관한 한 그렇다. 즉 배우도 연출도 작가도 학자도 평론가도 모두 연극을 둘러싼 환경에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에너지불변의 법칙을 적용하면 배우와 연출과 작가의 에너지 중 작품에 갈 몫이 적어지지 않겠느냐며 걱정하겠지만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일이라 생각하면 어느 정도 상쇄가 된다.
예술지원정책, 국공립극단, 공공극장, 공공축제, 예술인복지, 이 모두가 연극을 둘러싼 환경이다. 오랜 세월 그 환경은 계속 악화되고 있었다. 그 중에는 체감할 수 없을 정도로 서서히가 아닌 급격한 변화도 많았다. 그러나 때로는 작품에 쓸 에너지밖에 없다는 생각에, 때로는 자신은 이리저리 피해가며 견딜 수 있다는 안이함에, 때로는 우리의 힘이 미칠 수 없는 거대한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는 무력감에, 매번 무관심 속에 방치했던 것이다.
그간 연극 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거론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 그 거론의 정도가 현실에 영향을 미칠 만큼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관심과 관찰과 분석과 판단과 행동으로 이어지는 모든 단계가 일정 정도의 깊이와 정확도로 진행될 때 비로소 현실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이 단계가 요식행위로 전락하면 그건 문제를 왜곡하고 일을 그르치는 악의 도구가 될 뿐이다.
이제 과거 연극계 현안 발생시 어떻게 일이 진행됐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때 나온 주장과 반론에 대해서도 그 내용과 논리가 타당했는지, 또 심도는 충분했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과거는 현재를 만든 과정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사실 파악 없이 펼치는 주장이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오류 하나로 허물어져 버리는 일을 우리는 너무도 자주 보았다. 모처럼 일어난 연극계 토론 분위기가 제대로 연극에 기여하게 하려면 이런 점에 주의하여야 한다. 부디 연극인 스스로 연극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갖고 관찰하고 분석하고 판단하고 행동하자는 대학로X포럼이 연극계 중요한 에너지원이 되기를 희망한다.
2015년 3월 2일
‘오늘의 서울연극’ 편집인 오세곤
오세곤 교수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힘을 모두 모아서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예산여고 윤종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