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기의 공연산책 2015년 6월 공연총평
6월에는 창궐하는 메르스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각 극단의 열정적인 공연이 많았고, 제 33회 전국연극제가 울산에서 개최되었는가 하면 제4회 대한민국 셰익스피어 어워즈 시상식이 있었다. 6월 공연작 중 우수작을 평하고, 제33회 울산전국연극제 개막행사, 제4회 대한민국 셰익스피어 어워즈 심사평은 별도로 게재한다.
1, 극단 애플씨어터의 안똔 체홉 원작, 전 훈 번역·연출 <벚꽃동산>
성대입구 안똔 체홉극장(아트씨어터문)에서 극단 애플씨어터의 안똔 체홉 원작, 전 훈 번역·연출의 <벚꽃동산>을 관람했다.
전 훈 대표가 성대입구에 안똔 체홉 전용극장을 개관하고, <갈매기>에 이어 <벚꽃동산>을 공연하고 있다.
<벚꽃동산>은 1998년 세종M씨어터에서 전 훈 연출로 서울시극단이 공연했고, 2004년 이해랑예술극장에서 역시 전 훈 연출로 극단 애플씨어터가 공연, 그리고 2015년 성대입구 아트씨어터문을 안똔 체홉 전용극장으로 바꾸고 <갈매기>에 이어 대장정에 들어갔다.
<벚꽃동산>은 1999년 키프로스, 프랑스, 그리스의 합작영화로 미할리스 카코지아니스(Mihalis Kakogiannis)가 제작·감독하고, 샬롯 램플링 (Charlotte Rampling) 라녭스까야 역, 앨런 베이츠 (Alan Bates) 가예프 역, 카트린 카틀리지 (Katrin Cartlidge) 바랴 역, 오웬 틸 (Owen Teale) 로빠힌 역, 투스카 버겐 (Tushka Bergen) 아냐 역, 잰더 버클리 (Xander Berkeley) 에삐호도프 역, 그리고 제라드 버틀러 (Gerard Butler), 앤드류 하워드 (Andrew Howard), 멜라니 린스키 (Melanie Lynskey), 이안 맥니스 (Ian McNeice) 등이 출연해 성공을 거두었다.
안똔 빠블로비치 체호쁘(1860~1904)는 러시아작가다. 단편소설의 선구자요 대가인 체호프의 단편집 한 권은 삶의 양식이 되기에 충분하다. 작품의 소재도 러시아 농민들의 삶이나 공무원들의 고생부터 말 도둑, 심지어는 추리소설도 집필했다.
가난한 집안의 가장이자 의대생이었던 체호프는 푼돈이라도 벌 목적으로 단편소설을 써서 출판사에 보낸 원고가 호평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가 된다. 엄청난 수의 단편 소설을 집필한 것으로 유명하다. 1886년에는 무려 116편의 단편을 썼고 1887년엔 69편을 썼다. 체홉의 소설은 900여 작품에 이른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단어수로 원고료를 주었기 때문에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러시아 소설들은 분량이 굉장히 길었는데 체호프는 반대로 간결하면서도 흥미로운 글을 썼다.
체호프는 소설보다는 극작가로서의 명성이 더 높다. 러시아 근대문학에서 체홉을 소설가보다는 극작가로 칭한다. 부인 또한 잘나가는 모스크바 예술극단의 여배우였다.
1904년 1월 17일, 자신의 새 연극 <벚꽃 동산>이 초연될 때 그도 무대에 나와서 인사를 했는데 그의 창백하고 빈사의 백조 같은 모습에 관객들은 모두 “제발! 안똔 파블로비치를 병원으로 보내시오!” 라고 소리를 질렀고, 결국 체홉은 비틀거리다 쓰러진다. 곧 병원으로 실려가 치료를 받고 시골에서의 요양생활을 하면서, 체호프는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다.
그러나 여섯 달도 못 되어 1904년 7월 2일 밤에 갑자기 고열로 신음하며 “난 죽는다!”하고 소리친다. 의사가 달려와 진료를 한 후 고개를 저으며, “마지막 가는 길에 포도주를 주도록 하세요.” 이 말에 아내는 울기 시작했고 결국 마지막으로 포도주를 입에 머금은 그는 미소를 지으며 유언을 남긴다. “오랜만에 마셔보는 포도주인걸…맛이 좋아…” 그리고는 눈을 감고 44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다.
안똔 체홉은 톨스토이가 무척 아끼던 후배였기에 그가 죽었을 때 몹시 슬퍼했다고 전한다.
<벚꽃동산>은 1960년대부터 국공립극단을 비롯해 각 극단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작품이다. 1967년 극단 광장의 이진순 연출의 <벚꽃동산>은 명 연극으로 기억에 남는다.
충무로 연극인회관에서 1980년대의 이원복 연출로 공연한 <벚꽃동산>도 기억에 남는다.
2010년 한·러 수교기념 연극 <벚꽃동산>을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러시아 연출가 지차트콥스키의 연출로 공연했을 때, 기존공연을 답습하지 말고,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는 말은 마음에 와 닿는다.
무대는 여러 개의 창이 달린 문짝을 출연자들이 이동시켜 장면변화에 대응한다. 복도를 향한 문이 되는가 하면, 벚꽃동산이 바라다 보이는 테라스 문으로도 사용된다. 낮은 장식장과 경대, 어린이 장난감 동물 인형, 피스톨과 장총, 통기타, 트렁크, 가방 등이 사용되고, 당시를 회상시키는 출연자들의 의상도 제격이다. 직접 기타를 연주하며 부르는 노래나, 모두 함께 춤을 출 때의 무곡, 그리고 마술사의 등장도 어울리고, 관객을 극에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연극에서는 <벚꽃동산>이 상징물로 강조된다. 여지주 라녭스까야 에게는 <벚꽃동산>은 아름다운 추억이고 영원히 간직하고픈 대상물이다. <벚꽃동산>은 그녀가 태어나 살았고 과거의 추억이 그대로 살아 숨 쉬는 곳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마지막 남은 <벚꽃동산>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기 싫고 그대로 보전 했으면 하고 바란다. 반면에 비록 농노의 아들이지만 기업가 자질과 경제적 능력이 있는 로빠힌에게는 기회의 터전이다. 현재의 <벚꽃동산>은 결국은 사라져버릴 운명이기에, 차라리 그곳을 개발하여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려는 안목을 로빠힌은 갖고 있다. 서로 상반된 의견, 보전이냐 개발이냐를 놓고, 과거의 추억을 쫒는 이들은 결국 몰락하고, 미래를 쫒는 사람은 이 <벚꽃동산>을 새롭게 출발하는 발판으로 삼는다. 어쩌면 <벚꽃동산>은 19세기의 제정 러시아의 상황이지만, 21세기 우리의 현실과도 비교된다. <벚꽃동산>이 기존의 사회 질서의 전통과 순수함을 대변 한다면, 이를 베어 버리고 개발을 하는 것은 후천개벽을 의미 한다. 이 극에 등장하는 80세 후반의 늙은 하인 피르스는 과거와 현재를 모두 격은 인물로써 구시대를 그저 묵묵히 지켜본 방관자 중 하나이다. 그의 마지막 독백처럼 홀로 남은 그는 결국 과거와 함께 죽을 수밖에 없다. 또한 떠나는 사람들의 이별 소리는, 과거의 유물을 떨쳐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러 떠나라는, 안똔 체홉이 그 마지막 희곡을 통해 만인에게 전하는 충고로 느껴진다.
최대웅, 최원석, 주유랑, 김대건, 이동규, 백현욱, 염순식, 이도우, 장정인, 유영진, 조 환, 서석규, 이정주, 이진하, 황찬호, 이은주, 조수정, 김미송, 안나영, 김정경, 김원경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 그리고 성격창출이 관객의 갈채를 이끌어 내고, 극단 애플씨어터의 발전적인 장래를 예측케 한다.
예술감독 임경식, 무대디자인 Dmitree jh, 음향디자인 Nikita 프로젝트, 조명 Team XL, 의상 Ari Moda, 일러스트 레시이 지메일컴, 안무 Andrei Kevrin, 작곡 Gerashim Petrin, 조연출·드라마트루기 임주희, 연출부 신소민, 우소영, 무대감독 김정현, 협회 매니저 임주희, 티켓 매니저 최윤후, 하우스 매지저 김병국 등 스텝 모두의 열정과 노력이 일치되어, 극단 애플씨어터의 안똔 체홉 작, 전 훈 번역·연출의 <벚꽃동산>을 새로운 시각과 감각의 고품격, 고수준의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2, 극단 완자무늬의 바츨라프 하벨 작, 오세곤 역, 김태수 연출의 <메모랜덤>
노을소극장에서 극단 완자무늬의 바츨라프 하벨(Václav Havel) 작, 오세곤 역, 김태수 연출의 <메모랜덤(Vyrozumění) 비망록>을 관람했다.
바츨라프 하벨(체코어:Václav Havel, 1936년- 2011년)은 체코의 극작가로 체코슬로바키아의 마지막 대통령과 체코 공화국 초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바츨라프 하벨은 프라하에서 유명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프라하의 팔라츠 루체르나(Palác Lucerna)를 세웠고 삼촌은 바란도프 영화 스튜디오(Filmové studio Barrandov)를 건립하였다. 1948년 공산주의 쿠데타 이후 바츨라프 하벨은 초등학교 이후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1951년에 화학 실험 전문가 과정에 입학하고 김나지움 야간 과정에서 공부하였다. 인문학 분야 고등교육 과정에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체코 기술학교의 경제학과에서 잠시 공부한다. 군복무 (1957-1959)를 마친 후에 극장에서 전기 기사 겸 비서로 일했다. 처음에는 ABC 극장(“Divadlo ABC”)에서 1960년부터는 울타리 극장(Divadlo Na zábradlí)에서 일한다. 음악 및 극예술 아카데미(Akademie múzických umění)의 연극학과에서 극작술을 공부하며 연극에 관한 많은 논문을 썼다. 1964년 첫 작품 Zahradní slavnost(정원 파티)을 선보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공적인 생활과 개인 생활의 기계적인 관계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가하고 있다. 또 하나의 작품은 기계적 조직에 휩쓸려든 인간을 다룬 <비망록>이다
1989년에 벨벳 혁명(Sametová revoluce)을 이끌고 1989년 12월 29일 공산주의 연방 의회(Federální shromáždění)는 바츨라프 하벨을 대통령으로 선출한다. 40년 만에 비공산주의자가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통령이 되는 순간이었다. 하벨이 첫 번째로 한 일 중의 하나는 대규모 사면이었다. 수감자의 3분의 2가 풀려났다. 정치범으로 수감되었던 사람들은 자유와 함께 자신의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1990년 자유선거에서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슬로바키아가 독립하려는 것이 분명해진 1992년 7월부터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몇 달간 정치계에서 떠나 있었다. 1993년 1월 의회는 바츨라프 하벨을 체코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임명하였다.
1996년 첫 번째 아내 올가 하블로바는 세상을 떠났지만, 바츨라프 하벨은 심각한 종양을 성공적으로 싸워 이겨낸다. 1997년 여배우 마그마르 베슈크르노바(Dagmar Veškrnová)와 결혼한다. 1998년 다시 대통령에 임명되고 2003년 2월 두 번째 임기를 마칠 때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한다. 경제학자 바츨라프 클라우스(Václav Klaus)가 그의 후임이 된다.
두 번째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자신의 평화주의 입장을 수정하고 몇 번에 걸쳐 군사적 개입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특히 나토의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공격과 미국의 대 이라크 전에 대해서 그러했다.
2004년 10월 제7회 서울평화상을 수상했다.
그가 서거한 뒤 2012년 기존 프라하 루지네 국제공항이 그의 이름을 본떠서 프라하 바츨라프 하벨 국제공항으로 개칭되었다. 이끈 주요 인물로 체코슬로바키아의 마지막 대통령과 체코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메모랜덤(원제 비망록Vyrozumění)>은 바츨라프 하벨이 1965년에 발표한 희곡이다. <비망록'(1965)>은 인간관계를 완전 파괴하고 비양심적인 권력투쟁을 가져오는 거대한 관료주의적 기업을 난해한 기교 언어로 묘사한 작품이다.
한 기업의 사장으로 취임한 주인공은 사원들이 기업의 발전적 성장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부사장을 비롯한 전체 사원들이 새로운 용어로 업무를 처리하고, 그 용어를 전담한 선생에게 강의를 듣고, 의사소통까지 하는 것에 놀란다. 사장이 결재를 해야 된다는 관행대로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서류에 서명을 하기는 했지만, 그 용어라는 것이 난해할 뿐 아니라, 기억하기도 어렵고, 단어 한 개에도 비슷한 발음의 다른 의미의 단어가 많아 그러한 용어로 사무 처리와 결재를 하는 것이 오히려 불편하고 처리가 늦어지기 때문에, 주인공인 사장은 거부감을 드러내고, 용어사용을 반대하다가 부사장을 비롯한 사원들의 반감을 사고, 사장자리를 부사장에게 양보하고, 부사장 노릇을 하게 된다. 향후 주인공은 부사장 자리마저 그만두게 되고 기업에서 해직될 형편에 이르자, 하는 수 없이 사원들을 몰래 감시하는 감독관의 자리에 머물러 겨우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기업전체가 새로운 용어에 습득에만 골몰하고, 용어에 파묻혀 전혀 발전적인 방향으로의 진전이 없자, 사원들조차 차츰 용어사용을 꺼리고 결국에는 그 용어사용을 없던 일로 하기로 결정을 한다. 그리고 사장자리에 앉은 부사장에게 그 책임을 지워 퇴사를 하도록 사원전체가 결의를 한다.
그러나 부사장은 주인공이 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용어사용 결재서류에 서명을 한 것을 증거로, 주인공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주인공에게 책임추궁을 않는다는 조건으로 부사장직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술책을 쓴다. 관계는 없지만 용어사용서류에 서명을 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주인공은 첫 취임 때처럼 또다시 로봇이나 다름없는 사장노릇을 계속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극은 마치 각 정당들이 표심을 잡기 위해 행정신도시라는 공약을 발표하고, 당선된 후 실천에 옮기면서 드러나는 문제점과 비교되기도 한다.
김현종, 정명원, 곽현경, 박경희, 전소현, 안승균, 홍승오, 정수라, 이영민, 한성민, 김민우, 박미리, 김재혁, 김희중 등 출연자 전원의 성격창출과 호연은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조연출 유창선·최승열, 기획 김민우, 진행 전민영 등 스텝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극단 완자무늬의 바츨라프 하벨(Václav Havel) 작, 오세곤 역, 김태수 연출의 <메모랜덤>을 연출력이 감지되는 걸작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3, 극단 허수아비 창단공연 김경주 작, 이승희 연출의 <블랙박스>
76소극장에서 극단 허수아비의 창단공연 김경주 작, 이승희 연출의 <블랙박스>를 관람했다.
김경주(1976~)는 광주광역시 출신으로 2003년 대한매일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며 극작가다.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 작품을 올리며 극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야설작가, 대필 작가, 카피라이터 등을 전전하면서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펴냈고, 이 시집으로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이다’라는 평과 함께 문단과 대중에게 큰 바람을 일으켰다. 서강대 철학과 재학시절 친구들과 만든 독립영화사 ‘청춘’을 확장 개편한 무경계 문화펄프 연구소 ‘츄리닝 바람’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인디문화를 제작하고 개발하며 공연기획들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극단 바람 풀의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를 쓰고 박정석 연출로 공연한 앞날이 기대되는 작가다.
<블랙박스>는 비행기록장치(FDR), 비행영상저장장치(AVR, Airborn Video Recoder), 조종석 음성 기록 장치(CVR, Cockpit Voice Recorder)의 또 다른 이름이다. 블랙이란 이름과는 반대로 실물은 발견하기 쉽게 적색이나 오렌지색으로 도장되어 있다. 비행기가 추락하여 승무원과 승객이 전원 사망하는 경우 원인 규명의 단서를 얻는 것이 매우 어렵다. 이 때문에 재발 방지를 위해서도 비행 중의 상황을 재현할 수 있도록 비행 상태, 조종석 안의 목소리나 교신을 기록하기 위해서 여객기 등에 탑재되고 있다. 장치는 추락할 때 상당한 중력가속도, 화재, 해수 압력 등에 견딜 수 있도록 높은 내충격, 내열성, 내수성을 갖는다. 또한 회수할 때의 위치 통보용으로 발신기도 내장하고 있다. 블랙박스는 수심 약 100m의 압력에서도 견딜 수 있고. 섭씨 1,300도의 높은 온도에서도 견딜 수 있다.
연극 <블랙박스>는 항공기의 운항 중 생긴 기상변화에 대비한 조종사, 여승무원, 그리고 탑승객인 겪는 이야기다.
무대는 항공기의 내부를 상징적으로 꾸몄다. 무대 좌우벽면에 원형의 창을 네 개씩 만들어 반원형의 투명한 플라스틱 막을 씌웠다. 중앙과 무대 좌우에 플라스틱 기둥을 일정한 간격으로 세우고, 중앙에는 기둥의 중간부분을 연결해, 출연자가 철봉을 하듯 거꾸로 매달릴 수 있게 해 놓았다. 중앙기둥 앞에는 항공기의 조정석일 수도 있고, 탑승객의 좌석일 수도 있는 EGG PLANT라고 적힌 원형의 의자를 나란히 배치해, 출연자가 앉도록 했고, 뒤에는 커다란 박스를 놓아, 그 속에서 구명정이나, 목에 감는 안전장비, 그리고 총기를 넣어두고 출연자들이 극 진전에 맞춰 착용하거나 사용한다. 위장막으로 가린 배경 너머로 변기와 세면기가 보이고, 출연자가 자주 출입을 한다. 배경 좌우로 등퇴장 로가 있고, 객석 출입구로도 여승무원이 등퇴장을 한다.
연극은 마치 로봇 같은 의상차림의 미녀 승무원의 탑승객을 향한 안내에서 시작된다. 관객은 승무원의 안내와 함께 비행기의 탑승객이 된다. 곧이어 나이든 남성과 젊은 남성이 등장해 중앙의 좌석에 나란히 앉는다. 노소 두 남성은 처음 대면하는지 서로 서먹서먹한 표정이다. 나이든 남성은 붉은 털실을 꺼내 무릎에 놓고 뜨개질을 시작한다. 여승무원이 손수레에 음식물을 싣고 들어와서 음료와 와인을 두 사람에게 제공한다. 두 사람은 각자 가져온 음식물을 들기도 하고, 대화를 나눈다. 한동안 그런 장면이 계속되다가, 돌연 기체가 흔들리면서 항공기가 난기류 속에 들어가 있음을 여승무원이 알린다. 향후, 기상이변과 기체의 요동, 그리고 탑승객의 불안과 공포의 모습이 연출된다. 탑승객은 구토를 일으키고 배경 막 뒤쪽 변기로 달려가 얼굴을 대고 토하는 모습이 반복되기도 한다. 잠시 항공기가 정상궤도를 달리면, 승객도 평안함을 되찾고, 각자의 생각과 심정을 상대에게 전한다. 그러나 그 생각이 전달되는 것 같지는 않다. 젊은 측은 의자 뒤쪽 플라스틱 봉에 거꾸로 매달리기도 하고, 나이 든 축은 뒤쪽 사물함에서 각종 기구를 꺼내 몸에 두르거나 목에 두르다가 다시 집어넣는다. 또 다시 기상이변과 기체의 흔들림이 지속되고, 자주 일어나는 변화에 두 남성이 기진해 정신적 혼란상태가 온듯 두 사람은 장총을 꺼내들고, 서로 겨누거나,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기도 한다. 미녀 승무원은 권총을 꺼내 휘두르기도 한다. 잠시 난기류에서 벗어나 항공기가 정상궤도에서 운행되면, 평온을 되찾은 탑승객 앞에 미녀 승무원이 한 마리의 백조가 된 듯 백조의상을 걸치고 음악에 맞춰 등장하면 관객은 환상의 세계로 진입한다. 잠시 후 격렬한 뇌성벽력과 함께 기체가 요동을 치고, 탑승객을 견디다 못해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고 발사한 후 무대 바닥에 쓰러지는 장면에서 암전된다. 대단원에서 조명이 밝아지면, 2인은 위장막으로 설정된 한 공간에 나란히 앉아 음식물을 드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이창직, 곽정화, 곽현석이 출연해 독특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관객을 도입부터 연극에 몰입시키고, 갈채를 이끌어 낸다.
심채선 무대디자인, 고재경 움직임지도, 이용헌 조연출, 박성근 조명오퍼, 고혜진 음향오퍼 등 스태프 모두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극단 허수아비(대표 이승희)의 창단공연 김경주 작, 이승희 연출의 <블랙박스>를 새로운 형태의 표현주의 연극으로 탄생시켰다.
4, 극단 으랏차차 스토리의 김봉민 작, 조선형 연출의 <형제의 밤>
혜화동 키작은 소나무 극장에서 극단 으랏차차스토리의 김봉민 작, 조선형 연출의 <형제의 밤>을 관람했다.
김봉민은 서울예대출신으로 문화콘텐츠 제작단 으랏차차스토리의 작가 겸 연출이다. 2010년에 <중랑천 이야기>로 출발해 <청춘밴드 제로> <썸 걸즈> <형제으 밤>을 발표 공연했다.
<형제의 밤>은 재혼을 한 부부가 각기 아들을 한명씩 데리고 와 함께 13년간 살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남은 두 아들의 이야기다. 두 아들은 30세 초반으로 설정이 되고, 성격이 서로 다르고, 공부도 한 쪽만 제대로 최고학부까지 다닌 것으로 소개가 된다. 부모 슬하에서 살면서도 늘 상 사이가 좋지 못 하고, 남이나 다름이 없던 형제는 부모상을 당한 이후, 공부를 한 쪽에서 서로 헤어져 살기로 결심을 하고 그것을 상대에게 알린다. 그리고 유산분배와 문상객이 가져온 조의금을 나누자고 제의한다. 그러자 상대는 집을 매매했을 때 가격과 현재 집의 채무가 비슷함을 알리고, 장례비로 조의금이 쓰여져 유산분배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향후 두 사람의 티격태격하는 모습과 집을 나가겠다는 쪽이 부모의 얼굴을 그린 그림을 들고 나가려 하자, 상대가 그것을 제지하는 정경이 펼쳐지고, 두 사람의 13년 쌓인 갈등이 폭발된다. 그림을 가지고 실랑이를 펼치다. 그림 뒤에 숨겨진 또 한 장의 그림이 드러난다. 샴쌍둥이 형태의 그림으로, 그 그림을 들여다보며 두 사람은 자신들의 과거를 회상한다.
샴쌍둥이는 결합 쌍둥이로 몸의 일부가 붙은 채로 태어난 쌍둥이를 말한다. 생물학적으로 수정란이 불완전하게(덜) 분리된 일란성 쌍둥이를 말한다. 결합 쌍둥이는 20만 번에 한 번 꼴로 태어나며, 절반은 사산(死産)된다. 산 채로 태어났다 해도 조기에 사망할 확률이 높으며, 분리 수술을 받는 경우도 있다. 결합 쌍둥이의 전체 사망률은 5~25% 사이이다. 결합 쌍둥이의 성비는 여성이 70-75% 정도로 높은 편이다. 1811년에 태어나 1874년 사망한, 시암(타이)에서 태어난 창(Change)과 엥(Eng) 벙커(Bunker) 형제가 유명하다. 그들은 P.T. 바넘의 써커스 단과 함께 다녔으며 희귀성과 악명으로 인해 ‘시암 쌍둥이’로 선전되었다. 이들은 각각 결혼해서 10 명과 12 명의 아이를 낳았으며, 1874년 같은 날 사망했다. 이들은 흉 골이 연골로 결합되어 있었지만, 현재 의학 기술이라면 충분히 분리할 수 있는 수준이다. 우리나라에는 2003년 3월 4일 태어난 민사랑/지혜 자매가 있다. 이 자매는 엉덩이가 붙은 채로 태어났으며, 그 해 7월 22일 싱가포르에서 분리수술에 성공했다.
샴쌍둥이 그림을 보며, 두 사람 다 고아원에서 자라고, 양쪽 모두 부모의 피가 섞이지 않은 입양아이지만, 13년간 부모님 밑에서 똑같은 자식으로, 또 친형제로 자라난 일을 회상한다. 결국 두 사람은 다른 집 자식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도 친형제임을 의식하고, 비로소 서로를 끌어안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무대는 정면에 문틀이 세워지고, 하수 쪽에는 창문틀이 천정에서 내려진 끈에 매달려 있다. 창문을 열면 가로등 불빛이 실내로 들어온다. 문틀 밖 배경 가까이는 화장실로 설정이 되고, 의자를 변기처럼 사용한다. 실내에는 긴 소파와 접는 나무의자, 그리고 흔들의자가 비치되어 있고, 상수 쪽에 부모의 얼굴을 그린 그림이 이젤 위에 놓여있고, 하수 쪽 객석 가까이에도 이젤과 스케치북이 놓여있다. 상수 쪽 낮은 탁자위에는 라디오와 전화기가 놓여있고, 배경 가까이에는 소주병과 잔이 보인다.
권오율, 김남희 팀과 이교엽, 김윤배 팀이 형제로 출연해 대조적인 성격과 호연으로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형제가 싸우는 장면은 실제와 방불해, 저러다 다치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이 될 정도로 실감이 난다.
조명디자인 정진철, 무대디자인 이은규, 음악감독 최유리, 작곡 오준영, 프로듀서 지인환, 기획 who+ 등 모두의 노력과 열정이 드러나, 극단 으랏차차스토리의 김봉민 작, 조선형 연출의 <형제의 밤>을 성공작으로 창출시켰다.
5, 국립극단의 김윤철 예술감독, 츠쿠다 노리히코 작, 명진숙 역, 류주연 연출의 <허물>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김윤철 예술감독, 츠쿠다 노리히코(佃典彦)작, 명진숙 역, 류주연 연출의 <허물>을 관람했다.
츠쿠다 노리히코(佃典彦, 1964~)는 일본 아이치 현 나고야 출생으로 메이조 대학시절부터 희곡을 썼다. <허물> <심판> <정육공장의 미스터 케첩> <나팔꽃> <지우개> <카레집 여자> 그 외 작품을 발표 공연하고, 라디오 드라마와 TV극본을 집필하고 있다.
류주연은 극단 산수유 대표로 <괴물> <청중> <별무리> <니나> <주머니 속 선인장> <양철지붕> <동물 없는 연극> <878미터의 봄> <기묘여행> <마지막 여행> <경남 창녕군 길곡면> 그 외 다수 작을 연출한 미모의 여성연출가다.
이 연극은 80대 고령의 치매를 앓고 있는 인물이 차례로 허물을 벗고 젊은 시절로 돌아가 자식과 같은 나이가 되고, 자식보다 어린 나이가 되어, 젊은 시절 자신의 인생역정을 돌이켜보고, 사별한 부인, 며느리, 그 외의 사랑을 나눈 여인을 차례로 등장시켜 그들과의 사랑과 애환을 낭만희극으로 묘사한 독특한 창의력의 걸작연극이다.
무대는 주인공인 아들의 거처다. 하수 쪽에 음식조리대가 있고, 중앙에 커다란 냉장고와 세탁기가 있다. 상수 쪽에는 침대와 일본 집 다다미방에서 볼 수 있는 벽장이 있고, 아래윗간으로 된 벽장에는 사람이 누울 수 있도록 했다. 정면 벽 오른쪽에 출입문이 있고, 세탁기 속에 사람이 있는가 하면, 냉장고 속에서도 문을 열고 등장을 한다. 하수 쪽 객석 가까이에는 부모의 영정사진과 제사상이 있고, 그 위에 향 그릇 촛대 등이 놓여있다. 조리대 앞에는 원형의 쓰레기통도 보인다. 방 한가운데에는 탁자가 놓여있다.
극은 도입에 마루와 방, 그리고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제각기 다른 연령의 남성들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잠시 후 주인공과 별거 중인 부인이 이혼서류에 도장을 받기 위해 등장을 하고, 잠시 후 주인공이 트레이닝 바람으로 등장하면서 두 남녀의 대화가 시작이 된다. 주인공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거기에 계란을 여섯 개나 깨뜨려 넣고 젓갈로 휘저은 후 들여 마신다. 그 후 부인은 이혼서류를 탁자에 꺼내놓고 주인공이 도장 찍기를 기다린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주인공은 외도를 하다가 교통사고를 일으켜 다니던 직장에서 해직되고, 그로인해 모친은 충격을 받고 사망한 듯 소개가 된다. 주인공은 고령의 치매를 앓고 있는 부친과 살고 있는데, 주인공의 부친이 침대에서 내려와 아들내외가 이혼서류를 놓고 실랑이를 펼치는 곳으로 다가온다. 자연 두 사람은 실랑이를 멈출 수밖에. 부친은 영정사진을 보고 누구냐고 묻고, 엊그제 모친장례를 치른 사실을 이야기 하며 주인공이 부친에게 상기시키려 들지만, 치매 노인은 그러냐고 끄덕일 뿐 잠시 후에 같은 질문을 되풀이한다. 그리고 술을 찾기 시작하니, 주인공은 부인에게 술과 안주를 사오도록 부탁하고, 부인이 사려고 나간사이 이혼서류를 쓰레기통에 집어넣는다. 그 사이 보험회사 여직원이 노크 소리와 함께 등장을 하고, 보험에 들기를 끈질기게 원하는 장면이 펼쳐지고, 여직원은 주인공의 보험가입을 성공시킨 후 퇴장한다. 부친은 며느리가 사온 술을 마신 후 구토를 하면서 화장실로 들어간다. 그런데 화장실에 들어간 부친이 나올 때가 되었는데도 나오지를 않고, 오랫동안 잠잠하기에 주인공이 들여다보니, 부친은 허물을 벗고 숨을 거둔 것으로 설정이 된다. 그런데 잠시 후, 부친은 20여년이나 젊어진 60대의 모습으로 아들 앞에 등장을 한다. 얼마 후에는 50대의 부친, 그리고 40대, 30대, 20대의 모습으로 변해 주인공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40대의 한창 나이로 등장한 부친은 조그만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영화배우이자 가수인 엘비스 프레슬리에 방불하고, 각각 다른 연령의 부친이 한꺼번에 등장을 하기도 한다. 청년모습의 부친은 보험회사 여사원과 정사를 펼친 후 한 침상에 누워 있다가 일어나 주인공에게 옷을 집어달랜 후 입기도 한다. 냉장고 속에서 젊은 시절의 모친이 튀어나오고, 주인공의 부인과 보험회사 여직원이 주인공 부친의 기타에 맞춰 열정적인 춤을 춰 보이고, 각 연령대의 부친이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하면서 극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각기 다른 연령의 부친을 한 사람 한 사람 접하면서 주인공은 진실하게 살아야 하겠다는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대단원에서 주인공은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새롭고 아름다운 삶을 살겠노라 결심을 하는 장면과 모든 아버지와 남녀 등장인물 전원이 일본식 우동을 함께 맛있게 먹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임홍식, 정태화, 조영선, 신안진, 신용진, 김유진, 현은영, 김애진, 반인환, 조재원, 이경미 등 출연자 전원의 성격창출과 호연, 그리고 기타연주와 노래, 그리고 경쾌한 춤은 관객의 갈채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제작총괄 박현숙, 무대 구은혜, 조명 박성희, 의상 김지연, 음악 최인양, 안무 최수진, 분장 이동민, 소품 노주연, 영상·음악 윤민철, 무대감독 김탁수, 조연출 강선영 그 외의 스태프 모두의 열정과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재)국립극단의 김윤철 예술감독, 츠쿠다 노리히코(佃典彦) 작, 명진숙 역, 류주연 연출의 <허물>을 창의력이 돋보이고, 연출력이 감지되는 한 편의 명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6, 강원도 화천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배요섭 대본·연출 <노래하듯이 햄릿>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강원도 화천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배요섭 대본·연출의 <노래하듯이 햄릿>을 관람했다.
공연창작집단 뛰다는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지화 마을의 폐교에 “시골마을 예술텃밭>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2000년에 출발한 극단이다. 2001년 <상자 속 한 여름 밤의 꿈> <하륵 이야기,> 2002년 <커다란 책 속 이야기가 고슬고슬,> 2003년 <또채비 놀음놀이>, 2005년 <노래하듯이 햄릿>, 2009년 <앨리스 프로젝트>, 2010년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 한다>, 2011년 <쏭노인 퐁당뎐>, 2012년 찰스부르흐 음악극 축제 <노래하듯이 햄릿>, 2013년 <고통에 대한 명상> <맨발 땅> 2014년 <바후차라마타>, <낭천별곡> 등을 공연한 앞날이 발전적으로 기대되는 극단이다.
<노래하듯이 햄릿>은 4인의 광대가 인형극을 연출하며, 노래와 춤으로 햄릿의 줄거리를 펼쳐가는 노래극이다.
무대는 커다란 소나 말이 끄는 바퀴 네 개 달린 달구지를 광대들이 이동시키고, 달구지 위에 네 개의 기둥을 박고, 널판의 양 바퀴 쪽 기둥과 기둥 사이에 연결봉을 걸쳐놓고, 거기에 휘장을 늘어뜨려 막처럼 설정을 한다. 또 작은 트렁크 형태의 조형물에 네 개의 바퀴를 달고 뚜껑 중앙에 구멍을 뚫어 거기에 꼭대기에 머리형태 조형물이 있는 봉을 꽂아, 무대 위로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연희를 펼친다. 소형 수레의 뚜껑을 열고 인형과 장식물을 꺼내 극 전개에 맞춰 사용한다. 그리고 시신을 넣은 관 형태의 조형물도 광대들이 이동시키고, 관 뚜껑을 열어 소품과 소도구를 꺼내 극적 변화에 대응한다.
배경 가까이 연주석이 있어, 연주자들이 타악기와 건반악기, 해금, 첼로 등을 연주하고, 아코디언은 광대들이 극 흐름에 맞춰 연주를 한다.
연극은 도입에 회색 바지저고리에 회색 모자를 쓴 광대들이 객석 가까이 다가와 관객에게 두루마리 액자를 펼쳐놓고, 실에 꿴 바늘을 주며, 액자에 천을 꿰매도록 부탁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마치 노래하듯이 엮어가는 대사를 통해 <햄릿>을 줄거리가 이어지고, 각종 대도구와 소도구, 크고 작은 달구지와 소형 수레, 그리고 각가지 인형을 들고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극을 이끌어 간다. 노래는 중세 십자군시대 기사극에서나 듣던 음악처럼 고풍스럽고 우아한데다가 환상적이기에 관객은 시종일관 음악에 빨려 들어가고, 배우들의 대사 또한 자신의 음성과 가성, 그리고 성악가의 고음발성 같은 절묘한 대사 구사를 함으로써 거의 완벽에 가까운 극적표현을 한다. 연주자들의 연주 또한 능숙 능란한 기량을 나타내고 극적효과를 100% 상승시키는 역할을 한다. 극에 사용되는 각종 인형, 그리고 상징적 조형물이, 그간 일본이나, 유럽의 인형극 연출자들이 사용하던 인형 못지않은 조형물에다 예술성까지 갖추고 있어, 향후 새로운 인형극의 발전적인 방향으로의 제시처럼 느껴지는 공연이다.
황혜란, 최재영, 공병준, 최수진 등 출연자 전원의 출중하고 탁월한 연희는 관객의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한정림의 피아노, 권나형·최은선의 첼로, 이성일의 퍼커션 연주 또한 극적효과 상승을 주도해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총괄 프로듀서 김민후, 작곡·편곡·음악감독 한정림, 보컬코치 명현진, 무대 김경희, 인형 김경희·김성아, 의상 이진희, 조명 강정희, 음향감독 김요찬, 조연출 임소현, 편집디자인 허미경, 기획 김지영, 홍보 이수경, 무대감독 김동영, 기술감독 김혜성, 예술감독 이주야, 무대제작 황규동 등 스태프 모두의 기량이 완벽하게 구현되어,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배요섭 대본·연출의 <노래하듯이 햄릿>을 걸작 인형 연희 극으로 탄생시켰다.
7, 동랑레퍼토리극단의 유치진 작, 오태석 연출의 <한강은 흐른다.>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극단 동랑레퍼토리의 유치진 작, 오태석 연출의 <한강은 흐른다>를 관람했다.
유치진(柳致眞1905~1974) 선생은 경남 거제 출생으로 아호는 동랑(東郞)이다.서당에서 한문 수업 후 통영보통학교 졸업, 통영우편국에 근무하다 3‧1운동 직후 도일하여 일본 도요야마중학(豊山中學)을 거쳐 릿교대학(立敎大學) 영문학과(1926~1931)를 졸업하고. 1931년 귀국하여 극예술연구회(劇藝術硏究會)를 창립하고 본격적인 희곡 창작과 연극 활동을 시작한다.극예술연구회 시기(1931~1939)의 희곡으로는 「토막」(1932), 「버드나무 선 동리 풍경」(1933), 「빈민가」(1935), 「소」(1935), 「춘향전」(1936), 「마의태자」(1937), 「자매(1)」(1938) 등이 대표적인데, 이 가운데 농촌 현실과 식민지 현실을 다루고 있는 1930년대 전반기의 희곡은 특히 경향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이로 인해 그는 카프 문인으로부터 ‘동반자’ 작가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또 이때의 비평으로는 「노동자 구락부 극에 대한 고찰」(1932), 「연극의 대중성」(1932), 「연극 본능 론」(1932), 「연극의 브-나 로드 운동」(1934), 「역사극과 풍자극」(1935), 「낭만성 무시한 작품은 기름 없는 기계」(1937) 등이 있다. 이 비평문들은 연극 입문 시기의 유치진의 진보적‧계몽적 연극의식과 그 이후 의식의 굴절과정을 잘 반영한다.1941년 극단 현대극장을 창립하고, 「흑룡강」(1941), 「북진대」(1942), 「대추나무」(1942) 등의 희곡을 발표하면서 친일연극의 길을 걷기도 하였다. 광복 후에는 극예술협회(1946)를 창립하고, 한국무대예술원장(1947)과 한국연극학회장(1948), 초대 국립극장장(1950) 등에 차례로 취임하면서 한국 연극계의 대표적인 지위를 차지한다.광복기의 대표적인 희곡으로는 「조국」(1946), 「자명고」(1946), 「별」(1948), 「흔들리는 지축」(1949) 등이 꼽히는데, 이 작품들에는 좌익 측에 대한 그의 비판의식과 당대의 사회를 읽는 현실인식 등이 선명하게 추출된다. 1950년대에는 한국전쟁을 체험하면서 그의 반공의식과 사회 비판의식이 희곡 작품에 혼재되어 드러나는 양상을 보여 준다. 그러한 작품들로 「조국은 부른다」(1951), 「푸른 성인」(1952), 「나도 인간이 되련다」(1953), 「자매(2)」(1955), 「청춘은 조국과 더불어」(1955), 「한강은 흐른다」(1958) 등을 꼽을 수 있다.이때에 오면서부터 그의 극작 기법은 다양화되는데, 이전의 사실주의극과 역사극에서 벗어나 영화, 음악, 무용 등을 원용하는 새로운 총체극적 기법을 창시한다. 1960년대부터는 희곡 창작에서 거의 손을 놓고 드라마센터 건립 등 연극 교육에 매진해 후학을 양성하고, 국립극장 극장장, 한국연극협회 회장, 동국대학교 교수, 그리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역임한 연극계의 태두이자 큰 스승이다.
<한강은 흐른다>의 주인공인 희숙은 폭탄 파편으로 가슴에 상처가 난 것으로 설정이 된다. 희숙과 정철은 약혼한 사이다. 희숙의 오빠 안 화백의 문하생으로 있던 정철은, 6.25가 일어나고 얼마 후 안 화백이 숨어있는 곳을 인민군에게 알려주게 되고 안 화백 뿐 아니라, 그 역시 북쪽으로 끌려가게 된다. 모두들 남쪽으로 부산으로 피난을 가지만 서울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 중 희숙과 정애는 각각 정철과 안 화백을 기다리느라 떠나지를 못하는 경우이고, 두더지는 가족이 부산에 있지만 갈수 있는 방법이 없고, 또 서울을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날 정철이 서울로 돌아온다. 이에 희숙은 반가워 하지만 곧 정애의 반대에 부딪치게 된다. 자신의 남편인 안 화백을 위험으로 몰아넣었던 사람과 시누이를 결혼 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희숙도 전쟁 중 파편이 가슴에 맞아 남아있는 상처 때문에 정철에게 일부러 사랑이 식었다고 거짓말을 하게 되고, 이런 소리를 진심이라고 믿은 정철은 타락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후 정철은 함부로 몸을 굴리는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지내게 되는데, 클레오파트라와 미꾸리는 정철을 이용하며 한 몫 잡겠다는 의도로 정철을 받아들인다. 정철은 다이아몬드를 훔쳐 숨기는 범죄행위를 저지르기도 하고, 희숙이 남자 때문에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이라 오해하고, 희숙의 의남매를 자처하는 삼룡을 쫒아 다니며 그 울분을 터뜨린다. 정철의 이러한 삐뚤어진 행동에 참다못한 희숙은 그동안 정철을 좋아했다는 로즈메리에게 돈을 주면서 같이 부산으로 떠나라고 하지만, 로즈메리는 이미 현실적인 남자인 구호소장 꿀꿀이죽 소장을 좋아하고 있기에 거절한다. 희숙의 행동이 정애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된 정철은, 정애를 찾아가 용서를 빌고 희숙과의 결혼허락을 받아낸다. 마침 부산에서 일을 하고 있는 친척의 권유로 직장이 생기자 정철은 희숙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그러나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정철을 이용하고자 했던 클레오파트라는 정철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이에 자신을 버리고 희숙과 떠난다는 사실을 알고 떠나는 그 두 사람에게 총을 발사한다. 그 혼란스러운 와중에 희숙이 행방을 감추지만, 얼마 후 정철은 죽은 희숙을 안고 나타난다. 비록 정애의 허락이 있었지만 가슴에 난 상처를 가지고 정철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한 희숙이 자살을 한 것이다.
대단원에서 다이아몬드를 훔친 죄와 총을 발사한 죄로 클레오파트라를 붙잡아가는 경찰에게 희숙을 죽인 것은 바로 정철 자신이라고 말하고, 정철이 대신 붙잡혀가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원작을 따라가기는 했으나, 오태석의 철학과 예술혼이 가미가 되어 극의 도입부터 변형을 이루면서 출발하고, 대단원에서는 핵폭발 후에 폐허가 서울에 새 생명처럼 피어오른 남녀 주인공이 다시 만나고, 억겁을 흐른 한강의 도도한 물줄기처럼 함께 영원을 기원하며 신께 축원을 드리는 모습으로 귀결을 한다.
무대는 온통 쓰레기 더미처럼 보인다. 벽돌로 묘사되는 입체로 된 사각의 스폰지로 된 조형물이 여기저기 널려있고, TV수상기나 가야금도 쓰레기 더미 위에 놓여있다. 쥐 떼가 몰려다니고, 사실 쥐 떼는 출연자들이 탈을 쓰고 분장을 한 모습이지만, 온갖 형상의 동물의 탈을 쓰고 등장을 하고, 의족을 달거나, 한쪽 팔이 없거나, 한쪽 눈이 실명으로 보이는 등장인물과 온몸을 철제붕대로 휘감은 모습으로 해서, 완전히 도깨비굴처럼 느껴지고, 배경 막에 투사되는 영상도, 쥐를 비롯한 동물모습의 애니메이션과 전투기나 폭격기의 폭격, 그리고 각종 전투장면이 굉음과 함께 투사된다. 출연자들 중 주요배역은 충청지방의 사투리를 쓰고, 젊은 출연자는 기계체조 선수마냥 공중회전을 하며 무대를 휘젓는 모습에서, 1950년대 6 25사변 당시의 긴박한 상황과 거리의 모습을 절묘하게 반영시킨 듯 느끼도록 만드는 연출이라, 공감대가 형성이 되고, 원작의 줄거리를 따라가듯 연출되지만 대단원에서, 현재 북의 핵보유와 말끝마다 남쪽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위협처럼, 핵폭발로 폐허가 된 공간 위에 봄날 새 싹처럼 솟아오른 여주인공 희숙과 그녀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리는 정철의 모습, 그리고 수많은 대중들이 무대를 가득 채우고 합장을 하며 큰절을 올리는 장면은 메가톤급 감동을 관객에게 전한다.
전무송, 이호재, 정진각, 염우형, 송영광, 김준범, 윤민영, 정지영, 이승열, 임민지, 유재연, 천승목, 조원준, 이준영, 김봉현, 배건일, 박지훈, 안종민, 김유미, 이보다미, 김명준, 이신호, 임주은, 조유진, 박화영, 김지혜, 장원준, 박보배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은 한국 연극의 발전적 앞날을 짐작케 한다.
앙상블 캐스트로 이병용, 정순욱, 은경균, 김재혁, 손현우, 강민범, 조혜수, 구하나, 김선완, 윤민주, 오남영, 송교빈, 정희진, 김현정, 강은진, 이하늘, 궈유금, 조민경, 박홍근, 천재현, 김종한, 양승진, 정유빈, 임학원, 김창현, 박정아, 김광훈, 김성미, 위성재 등이 출연해 역시 호연을 펼친다.
예술총감독 유덕형, 제작감독 조운용·박상원, 프로두서 정길배, 무대미술 정승호, 조명디자인 나한수·이경천, 음악감독 김영동, 작·편곡 우디박, 의상디자인 이승무, 영상제작 김계원·김보슬, 제작피디 오준현, 무대감독 김동혁, 해금연주 노은아, 움직임구성 장은정·강은지, 디자인 김윤우, 사진 오상택 등 스태프 모두의 열정과 노력이 조화를 이루어, 동랑레퍼토리 극단의 동랑탄생 110주년 기념공연, 유치진 작, 오태석 연출의 <한강은 흐른다>를 원작을 한 단계 넘어서는 새로운 형식의 표현주의연극으로 탄생시켰다.
8, 극단 맨씨어터의 브라이오니 레버리 작, 차영화·우현주 역, 고연옥 각색, 김광보 연출의 <프로즌>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브라이오니 레버리 작, 차영화·우현주 역, 고연옥 윤색, 김광보 연출의 <프로즌>을 관람했다.
브라이오니 레버리(Bryony Lavery 1947~)는 영국출생 미모의 여류작가로, 버밍험 대학(Birmingham University)을 졸업한 후 배우로 활동하고, 현재는 극작가 겸 방송작가다. 1988년 두 마리아(The Two Marias), 1992년 그녀의 아픈 심장(Her Aching Heart), 1991년 무언극 피터 팬 (Peter Pan), 1997년 골리앗(Goliath), 1997년 불빛을 더(More Light), 2000년 웨딩 스토리(A Wedding Story), 2001년 마법의 장난감 가게(The Magic Toyshop), 2002년 이릴리아(Illyria), 2004년 마지막 부활절(Last Easter), 2007년 스톡홀름(Stockholm), 레드 스카이(Red Sky), 그것은 눈(It Snows), 2009년 크루크스(Kursk), 2010년 아름다운 화염(Beautiful Burnout), 2012년 먼지(Dirt) 등을 발표 공연했다.
<프로즌(FROZEN)>은 아동살해범과 피해 아동의 모친, 그리고 법의학자인 여교수 3인이 20뒤 그 범인의 행적과 관련해 펼쳐가는 심리극이다. 20년 전에 실종된 한 소녀를 현재까지 돌아오기만 학수고대하던 소녀의 어머니는 소아 성 추행범으로 현재 체포 구금된 남성이 과거의 행적에 대한 자백을 통해 실종된 딸이 그의 추행 후 살해되었음을 알고 망연자실해 한다. 바로 그 범죄자의 심리와 두뇌를 분석 연구하는 법의학자인 여교수가 그 범죄자의 정신분석과정과 실종된 딸의 어머니의 모성과 충격, 그리고 범죄자의 심리추적이 연극의 구성요소다.
무대는 중앙에 테이블이 한 개 놓이고 둘레에 의자 세 개가 놓여있다. 배경 가까이 기다란 줄이 무대 좌우로 연결되어 있고, 거기에 어린이가 사용하던 물건들을 잔뜩 매달아 놓았다.
연극은 도입에 법의학자인 여교수가 등장해 아동연쇄살인범에 관한 심리분석과 자신의 논문에 관한 설명과 범인의 신상명세, 그리고 피해아동의 모친에 관해 강의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흉악범인 답 게 범인은 온몸에 문신 새긴 것을 드러내고, 고성을 지르면서 책상을 쾅쾅 두드려 대는가 하면, 비속어를 남발하고 상욕을 입버릇처럼 지껄인다. 피해아동의 모친은 20년간 애타게 기다려왔던 딸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으로 인한 실의 때문인지, 눈동자가 풀려 보이고, 음성마저 실의의 차 있어 대사전달까지 힘이 없이 내뱉는다. 그러나 가끔 고성을 지르고 헛구역을 하고 기침을 하는데, 객석을 향해 정면으로 설 때면 출중한 미모라는 게 드러난다. 법의학자이자 여교수는 흉악범을 대하는 데, 전혀 두려워하거나,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고, 친구처럼 다정하게 범인에게 접근해 질문을 던지니, 범인도 성질을 가라앉히고 차츰 온건한 모습으로 여교수를 대하고 과거의 행적을 하나하나 고백한다. 연극의 백미는 피해아동의 어머니와 범인과의 대면이다. 행여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닌가 하고 조마조마하게 관극을 하는 관객에게 범인은 성격을 드러낼 듯 말 듯 하면서도 자제를 하고, 어머니는 상면 후 범인에게 용서를 한다는 말을 하고 일어선다. 범인은 입버릇처럼 상욕을 내뱉지만, 곧 미안하다는 말로 진정성을 드러낸다. 피해아동의 어머니가 떠난 후, 범인은 기다란 끈을 천정에 걸고 자신의 목을 매단다. 대단원에서 여교수는 피해자의 어머니와 범인의 면담을 알고 놀라지만, 자신의 범죄 심리분석과 범죄자의 뇌구조에 관한 논문에, 거기에 용서라는 요소와 용서받는 후 목을 매단 범인의 행적과 심정을 두고 미묘한 상념에 빠져드는 듯싶은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박호산과 이석준이 범인으로 더블 캐스팅되어 출연해 호연을 보인다. 우현주가 피해아동의 어머니로 출연해 독특한 성격창출과 호연, 그리고 빼어난 미모로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정수영이 법의학자인 여교수로 출연해, 지성미와 세련된 동작 우아하고 계산된 연기로 실제 여교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관객 모두가 갖게 된다.
무대 정승호. 분장 백지영, 조명 이동진, 의상 박소영, 음악 장한솔, 영상 윤민철, 무대디자인보조 이은석, 의상디자인보조 김보영, 조연출 이은 한상웅, 제작총괄 석재원, 현장크루: 분장 김정연, 조명 이은, 음향 영상 한상웅, 이다은, 진행 안해경 등 스태프 모두의 기량이 제대로 드러나, 극단 맨씨어터의 브라이오니 레버리 작, 차영화 우현주 역, 고연옥 윤색, 김광보 연출의 <프로즌>을 연출력이 감지되는 걸작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9, 국립극단의 김윤철 예술감독,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 작, 김보영 역, 강량원 연출의 <어느 계단 이야기>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Antonio Buero Vallejo) 작, 김보영 역, 강량원 연출의 <어느 계단 이야기(La Historia de una escalera)>를 관람했다.
안토니에 부에로 바예호(Antonio Buero Vallejo 1916~2000)는 스페인의 극작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대의 현대 스페인 극작가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로 평가된다. 1934~36년에 마드리드와 과달라하라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스페인 내란(1936~39) 당시에는 공화국 의무병으로 복무했다. 전쟁이 끝난 뒤 민족주의자들이 사형을 선고했으나 징역형으로 감형되어 6년이 넘게 감옥생활을 했다.
1949년 희곡 〈계단의 역사(La Historia de una escalera)>로 주목을 끌었고, 권위 있는 문학상인 로페 데 베가 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마드리드 빈민가의 가난한 아파트 주민들이 겪는 좌절을 현장감과 객관성을 갖추어 묘사하고 있다. 같은 해에 발표한 단막극 〈모래 위에 쓴 글자 Palabras en la arena〉는 간통과 자비의 필요성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서, 그 뒤에 발표한 많은 희곡처럼 또 다른 스페인 문학상을 받았다. 2번째 장편 희곡 〈불타는 어둠 속에서 En la ardiente oscuridad〉(1951)에 등장하는 맹인들의 집을 소재로 사회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꿈을 짜는 직공 La tejedora de sueños〉(1952)은 신화적인 내용이며, 〈이레네 보물 Irene o el tesoro〉(1955)은 공상적인 이야기이다. 그가 다룬 기본 주제는 인간적 행복에 대한 갈구와 그 성취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오늘은 축제일 Hoy es fiesta〉(1957)에서는 사실적·냉소적인 소재로 다시 마드리드의 빈민가를 묘사했다. 그는 아서 밀러의 문체를 흉내낸 사실주의를 추구했는데, 후기 작품들에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영향이 나타나 있다. 또한 그는 브레히트의 작품들을 번역하기도 했다.
철저한 고증을 거친 역사극들을 썼는데, 이러한 작품으로는 찰스 3세 시대에 스페인을 현대화하려던 개혁의 실패를 다룬 〈나라를 위한 몽상가 Un soñador para un pueblo〉(1959), 벨라스케스에 관한 〈시녀들 Las meninas〉(1961), 프랑스 대혁명 기간의 파리를 무대로 한 〈성 오비디오의 음악회 El concierto de San Ovidio〉(1963), 스페인 내란을 다루고 있는 〈지하실의 창 El tragaluz〉(1968) 등이 있다. 후기에는 〈이성(理性)의 꿈 El sueño de la razón〉(1970)·〈발미 박사의 이중생활 La doble historia del doctor Valmy〉(1978) 등을 썼다. 1971년에 스페인 학술원 회원으로 뽑혔으며, 그에 관한 연구로 R.L.니콜라스의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의 비극 The Tragic Stages of Antonio Buero Vallejo〉(1972)이 있다.
<어느 계단 이야기>는 2000년에 서울대학교에서 송지현 기획, 노성민 연출로 공연되었고, 2007년에는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서 오태석 예술감독, 이송 연출로, 백성희, 이승옥, 오영수, 최상설, 이혜경, 이상직, 서상원, 계미경, 이은희, 이문수, 우상전, 김종구, 조은경, 남유선, 김진서, 곽명화, 한윤춘, 안민석 등이 출연해 성공을 거두었다.
<어느 계단 이야기>는 마드리드의 한 허름한 연립주택 계단을 배경으로 한다. 모든 사건의 중심적 공간은 계단으로서, 이곳을 중심으로 한 네 가족, 등장인물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대를 물려 이어가는 사랑, 증오, 갈등과 반목이 이어지며 사건 들이 전개되어 나간다.
모두 3막으로 구성되어 제1막은 1919년의 어느 날, 제2막은 10년이 흐른 1929년의 어느 날, 제3막은 20년이 지난 1949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막은 1919년의 어느 날이다. 홀아버지의 무남독녀인 엘비라, 홀어머니의 외아들인 페르난도, 철도 공무원인 아버지 그늘 아래서 어머니와 건달 오빠 페페와 살아가는 카르미나, 걸걸한 성격의 소유자인 파카와 잘못된 딸 로사를 못 마땅히 생각하면서도 아버지로서의 정 때문에 조용히 딸을 돕는 후안, 그리고 그의 장남이면서 노동자인 우르바노. 한 연립주택의 1호, 2호, 3호, 4호의 1실을 차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잘생겼지만 게으른 낭만주의자인 페르난도와 현실적이지만 희망이 없는 우르바노는 친구 사이. 상대적으로 부유한 편인 엘비라는 아버지를 이용해 잘생긴 페르난도를 차지하려고 하지만 페르난도는 아름다운 카르미나를 사랑한다. 페르난도는 카르미나에게 이 구질구질한 연립주택을 떠나자며 장미빛 미래를 약속한다.
2막은 1929년의 어느 날이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것으로 설정이 된다. 페르난도의 어머니와 카르미나의 아버지, 엘비라의 아버지가 죽어나갔을 뿐 이 연립주택의 사람들은 그다지 변화가 없다. 카르미나에게 사랑을 약속했던 페르난도는 결국 현실에 굴복하여 돈 많은 엘비라와 결혼하고, 배신당한 카르미나는 곁을 지켜주는 우르바노와 사랑 없는 결혼을 하게 된다. 그 사이 자유분방한 로사와 바람둥이 페페, 트리니 등 주변 인물들의 자잘한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희망 없는 생활에서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3막은 1949년의 어느 날이다. 또 다시 200년의 세월이 흘렀다. 페르난도와 엘비라 사이에서 난 아들 페르난도와, 카르미나와 우르바노 사이에서 난 딸 카르미나가 자라 성숙해지고, 이들은 부모의 맹렬한 반대에도 무릅쓰고 연애를 시작한다. 서로 맞닿지 못했던 부모들의 애정은 배신과 절망, 혐오와 비난으로 어긋나 있지만 두 젊은이는 사랑을 약속한다. “카르미나,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앞으로 십장이 되어 돈을 많이 벌 것이고 즐겁고 깨끗한 가정을 꾸밀 거야. 여기서는 멀리 떨어진 곳에. 나는 공부를 더해 이 나라 제일가는 기술자가 될 거야….” 아들 페르난도는 딸 카르미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20년 전에 페르난도가 카르미나에게 했던 것과 똑 같은 말로 새로운 약속을 하며 둘은 끌어안고 입 맞추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무대는 중앙에 이층으로 오르는 긴 계단이 있고, 계단 위 무대 좌우로 연결된 통로가 있다. 그 통로 좌우 벽면에는 마치 연립주택이나, 다세대 주택처럼 1실마다 문이 있고, 모두 네 개의 방문이 달린 것으로 보아 4가구가 사는 건물임을 알 수가 있다. 통로 밑은 커다란 공간인데, 오래된 가구를 쌓아두거나, 마시고 버린 럼주나 데킬라(Tequila) 술병이 여기 저기 잔뜩 놓여있다. 출연자들의 의상이 회색과 갈색계통이라 마치 후기인상파 화가들의 움직이는 그림을 대하는 느낌이다.
연극은 도입에 나이든 페르난도가 높은 계단에서 서서히 내려오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러다가 페르난도는 다리를 휘청거리게 되고, 다시 몸의 중심을 잡으면 암전과 함께 1막의 첫 장면인 전기요금 수취인이 방마다 노크를 하며, 문을 열고 나온 여인들에게 고지서와 요금을 수취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연극은 원작의 줄거리대로 전개되고, 100년 전의 스페인 서민들의 삶이 5, 60전의 우리의 삶과 별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되고, 20대 젊음에서부터 50대의 연령으로 되기까지 출연자들의 사랑과 삶, 고통과 애환이 펼쳐지면서, 공감대가 형성되고 연극에 시종일관 몰입하게 된다. 대단원에서 아버지나 어머니 대의 구애를 하던 모습과 말투를 꼭 빼어 닮은, 원수지간 같은 상대가족의 자녀의 사랑이 부모대의 모습대로 펼쳐지면서 공연은 끝이 난다.
곽정환, 권수진, 김계남, 노창균, 박주영, 박한솔, 박혜미, 방미라, 배수진, 안소영, 연해성, 이정근, 정보현, 정수지, 지석민, 허진 등 새 세대 출연자 전원의 열정과 노력이 공연에 드러나 신선한 느낌으로 관극을 하게 된다.
제작총괄 박현숙, 프로듀서 정선미, 무대 박상봉, 조명 설미림, 의상 김우성, 음악 장영규, 분장 이지연, 조연출 김지영·변호진, 무대감독 김탁수, 기술감독 최슬기, 조명팀 정하영·정주연·정호진, 분장팀 변금슬·조진솔, 조명오퍼 홍유진, 무대제작 스테이지, 홍보물인쇄 문성인쇄, 옥외광고 모티브, 그래픽 박미옥, 전단 김영숙, 웹 홍보 원성연, 사진 임영환, 기록영상 최민석 등 스태프 모두의 예술적 기량이 합하여, (재)국립극단의 김윤철 예술감독,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Antonio Buero Vallejo) 작, 김보영 역, 최용진 연기지도, 강량원 연출의 <어느 계단 이야기(La Historia de una escalera)>를 기억에 길이 남을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10, 유시어터와 주한 포르투갈 대사관 공동주최, 페르난두 페소아 원작, 조안 질 음악, 디에고 인판테 출연 연출의 모노드라마 <바다의 시가>
청담동 유시어터에서 한국최초 포루투갈 연극팀의 내한공연, 페르난두 페소아 (一名:알바루 드 캄포스)작, 조안 질 음악, 디에고 인판테 연출 출연의 모노드라마<바다의 시가>를 관람했다.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1888~1935)는 1888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태어났으며, 그가 4세 무렵에 아버지가 사망했다. 그 후 남아프리카 주재 포르투갈 영사와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더반으로 이주하여 학창시절을 보낸다. 17세에 리스본으로 돌아온 그는 리스본 대학교에 들어가지만 1년도 채 못 되어 학교를 그만둔다. 이후 그는 영어를 번역하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는 ‘오르페우;라는 평론지에 주요 논객으로 활동했으며, 1918년에는 영어로 쓴 시집을 출판했다. 그의 방대한 분량의 시는 시집(詩集)으로 발간되어 중판이 거듭되고 있다. 그는 1935년 4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바다의 시가(Ode Maritima)>는 포르투갈 시인이자 20세기 유럽을 대표하는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가 바다를 주제로 지어낸 904개의 시구로 구성된 작품이다. 페소아(Pessoa)는 출신, 이름, 성격, 용모, 문체 등이 완전이 다른 각각의 독립된 수많은 異名(이명)을 가지고 있었으며, ‘바다의 시가(Ode Maritima)’는 그 중 알바루 드 캄푸스(Álvaro de Campos)라는 다른 이름으로 쓰여 진 작품이다.
2000년대 말, 미국 조각가 리처드 세라는 너비 9m, 높이 3m, 두께 20cm의 스틸 작품을 완성한 뒤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라는 제목을 붙였다. 단순한 작품명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사실 페르난두 페소아는 리스본에서 태어난 명망 높은 철학가이자 시인이다. 페소아의 흔적은 리스본 번화가인 시아두 역 주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붐비는 쇼핑객 때문에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지만 ‘카페 아 브라질레이라(Café a Brasileira)’ 앞에는 중절모를 쓰고 슈트 차림으로 앉아 있는 그의 브론즈 동상이 있다. 조금 더 걷다 보면 생전 거장이 ‘가장 좋아하는 카페’라고 밝힌 ‘카페 마르티뉴 다 아르카다 (Café Martinho da Arcada)’도 찾을 수 있다. 한편, 알랭 드 보통은 저서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에서 리처드 세라의 ‘페르난두 페소아’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이 작품은 슬픔을 부정하지 않는다. 힘내라고 말하지도 않고, 인생의 밝은 면을 보라고 하지도 않는다. (중략) 슬픔에 침잠하라고 한다.” 실제로 세라의 작품은 “여러 항구로 떠나는 수많은 배들, 그러나 단 한 척도 고통 없는 삶으로 가지 않는다.”는 페소아의 글을 떠올리게 한다.
유시어터 개관 15주년 기념 페스티벌의 일환이자, ‘바다의 시가(Ode Maritima)’ 출판 100주년 기념, 한국-포르투갈 문화 교류의 첫 걸음으로 시작 된 이 공연은 아직은 생소한 포르투갈과 한국과의 문화 교류의 장을 넓히고, 일반 시민들의 문화 다양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자 하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포르투갈 최고의 배우 디에고 인판테(Diogo Infante) 가 열연하고, 음악가 조안 질(Joãn Gil) 이 연주를 맡았다. ‘바다의 시가(Ode Maritima)’는 6월 27일(토) 오후 4시 단 한번 공연되었다.
무대는 부두가 선착장이다. 선박을 붙들어 매는 밧줄이 길게 원을 그리며 늘어져 있다. 이 선착장으로 내려오는 높다란 계단이 배경 가까이 있어 위층 통로로 연결된다. 계단 아래에 연주석이 있어 극의 진행에 따라 기타연주를 한다.
모노드라마는 도입에 계단에서 바다를 바라보던 남성이 선착장 가까이 다가서면서 시작된다. 남성의 대사는 한글자막으로 배경에 투사된다. 남성이 바다를 바라보며 독백하듯 읊조리는 대사는 시적이면서도 철학적이고 감성적으로 객석에 전달된다. 각종 선박, 승객, 파도의 변화, 기상 그리고 펼쳐놓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는 잔잔한 물결에서 시작해 점차 파고가 일고, 격랑처럼 치밀어 오르는가 하면, 해일같이 객석을 엄청난 파고로 덮쳐버린다. 낭랑하던 음성도 차츰 고성이 되고, 호통 치듯 울부짖듯 변하다가도 부드러운 바람결처럼 객석에 스며든다.
필자는 “에드가 알란 포”의 명시 “아나벨 리”나, 고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를 <바다의 시가>처럼 모노드라마로 만들면 좋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단원에서 남성은 벗어둔 상의를 단정히 입고 평온한 감정으로 공연을 마무리 하면서 관객의 우레와 같은 갈채를 이끌어 낸다.
포르투갈 최고의 배우 겸 연출가 디에고 인판테(Diogo Infante 1967~)가 열연하고, 음악가 조안 질(Joãn Gil) 이 작곡과 연주를 맡았다.
우리나라와 포르투갈은 1961년 4월 15일에 수교를 맺고, 1988년에 주한 포르투갈 대사관이 건립되었다. 현재 주한 포르투갈의 안또니우 낀떼이루 노브르(Antonio Quinteiro Nobre) 대사는 이번 공연을 시작으로 한국과 포르투갈과의 연극교류가 계속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6월 27일 박정기(朴精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