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평론]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 김향

계재원고 : 『연극평론』2015년 겨울호, 한국연극평론가협회, 2015.

<햄릿>에서 ‘햄릿’ 역할을 벗은 판소리꾼들 –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

 

김 향 (연극평론가)

 

작: 셰익스피어(Shakespeare)

각색/연출: 박선희

예술감독/음악감독: 정종임

단체: 국악뮤지컬집단 타루

공연일시: 2015/10/08-10/25

공연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관극일시: 2015/10/15 8pm

 

hamlet

 

요즘 ‘창작판소리’가 드문드문 그러나 관객들의 관심을 끌며 공연되고 있다. ‘창작판소리’하면 이자람 소리꾼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되지만, 이자람과 매우 친근한 관계를 맺고 있는 국악뮤지컬집단 ‘타루’와 또 판소리 공장 ‘바닥소리’ 역시 15년 정도 창작판소리를 만들어온 집단이다. 이자람은 ‘타루’의 (창단)멤버이기도 했으며 ‘바닥소리’의 최용석 대표와는 뮤지컬 <서편제>에서 함께 출연한 사이이기도 하다. ‘타루’와 ‘바닥소리’는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니고 창작판소리를 제작하고 있는 ‘귀중한’ 민간예술단체라고 할 수 있다. 이 평문에서는 ‘타루’의 최근작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작품은 2012년 12월 두산아트센터의 두산아트랩을 통해 가능성을 엿본 후 2014년 3월 초연(2014.3. 국립극장 별오름극장)되었다가 올해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2015.10.8.~10.25)에서 재공연되었는데, 그 참신한 발상을 주목할 만하기 때문이다.

‘타루’는 판소리의 기교를 뜻하는 ‘다루’라는 말로, ‘타루’ 집단이 추구하는 것은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관객과 함께하는 음악극’이다. 판소리에 대한 무관심을 극복하고 관객과 함께 판소리를 즐기고 싶어 한다고 할 수 있겠다. 다소 모호한 제목인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는 예상되는 바와 같이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판소리화 한다’는 프로젝트를 아예 제목으로 단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프로젝트’라는 말을 달면서 내용 자체가 ‘판소리꾼들이 <햄릿>이라는 작품을 판소리화하는 것’이라는 메타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주요한 대사 내용은 살리면서도 전체적으로 평설적인 사설로 각색했다. 네 명의 판소리꾼들(송보라, 조엘라, 이원경, 최지숙)은 판소리꾼 개인이면서도 동시에 등장인물 ‘햄릿’이고, 때때로 ‘선왕 햄릿’, ‘거투르드’, ‘오필리아’, ‘클로디어스’ 등을 극중극으로 연기한다. 이러한 방식은 판소리와 다른 듯하면서도 판소리 방식을 원용한 독특한 방식이 되었다. 특히 똑같은 복장을 한 네 명의 ‘햄릿’이 전라도 방언으로 노래하며 햄릿의 복잡한 내면을 연기하는 놀이적 성격은 판소리 장르의 ‘언어놀이적 면모’를 색다르게 표현하는 것이 되었다. ‘타루’의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는 언어체계가 다른 영국의 희곡 <햄릿>을 한국 판소리 사설로 재창작하는 가운데 고유의 상상력을 작동시키고 있었다.

 

문화적 혼용 공간의 다의성

 

무대에 대한 첫인상은 요즘 놀이터에서 볼 수 있는 2층 높이의 미끄럼틀의 형상이다. 미끄럼이 있어야 할 곳에 계단을 설치해 놓아 성벽 망루, 왕궁 또는 뱃머리 공간 등 다의적인 공간으로 해석 가능하다. 2층 무대는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맨 왼쪽 공간은 햄릿의 방인 듯 여겨지며 여기에는 배우들이 1인 다역을 연기할 때 필요한 가면들이 가지런하게 걸려 있다. 그 밑 1층에는 북들이 걸려 있고 칼 등 공연에 필요한 장치들이 구비되어 있다. 2층 중간 공간에는 해골과 작은 소품들이 놓여 있고 2층 오른쪽 공간은 배우들이 햄릿 이외의 다양한 역할로 변신하였을 때 등퇴장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무대 왼쪽에 매달려 있는 그네 또한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의 공간이 놀이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계단 사이사이에 놓여 있는 책들은 햄릿의 지적인 면모를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한편 무대 오른쪽에는 1인 악사석이 마련되어 있는데, 악사석에는 북뿐만 아니라 애플컴퓨터로 작동하는 다양한 전자음향세트와 드럼 등 갖가지 음향을 만들어 내는 악기들이 놓여 있다. 이 공간에서 악사(정종임 : ‘타루’대표)는 고수 역할은 물론 모든 극적 음향을 만들어내며 네 명의 햄릿의 노래 연기를 돕고 있다.

이 다의적인 무대 공간은 극의 도입부에서는 유령이 등장하는 성의 꼭대기가 되고 곧 결혼식이 거행되는 왕궁이 되었다가 햄릿이 고민하는 방으로 다변화된다. 그리고 원작에서는 구체화되지 않았던, 햄릿이 영국으로 향해 가는 배의 선실이 되기도 하며 햄릿이 레어티즈와 대결을 벌이는 결투장이 되었다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배우들이 죽은 영혼들을 위해 진혼굿을 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공간은 햄릿의 의상으로 인해 영국인 듯 느껴지면서도 햄릿이 쓰는 전라도 방언으로 인해 독특한 ‘사이’ 영역으로 인식되는 것이 특징이다. 검은 망토에 단발머리 영국 남성 치장을 한 여성 배우들이 걸쭉한 입담으로 ‘긍께’, ‘환상하겄네’ 등 방언을 내뱉기 시작하면 관객들은 그 부조화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고 곧 원작의 비극적 정서를 희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다의적인 놀이터 공간, 12세기 영국식 복장 그리고 한국식 전라도 방언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시작하면서 관객들은 그 문화혼용적 이미지에서 다채로운 상상력을 전개하게 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전라도 방언과 평설적 사설의 긴장완화 효과

 

무대 공간의 부조화 이미지만큼이나 이 작품에서 부각되는 것은 <햄릿> 작품에 대한 평설적 사설로의 재창작이다. 이 작품을 각색하고 연출한 박선희는 석사논문을 통해 <햄릿>에 대한 연구를 선행한 적이 있으며 이를 활용해 관객들에게 <햄릿> 이야기를 되도록 쉽고 그러면서도 세세하게 설명하려 노력했다. 이 작품에서는 네 명의 배우들이 한국과 문화적 격차가 있는 희곡 <햄릿>의 정치·사회·문화적 상황을 설명하거나 때론 논평하고 있는 것이다.

 

햄릿-엘 : 내가 이 사건을 해결한다면 지금은 몰라도 언젠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살 인사건 이상으로, 한 젊은이의 고뇌와 극복과정을 담은 명작이라 할 거여.

햄릿-원 : 그래, 오디세우스의 방랑 이야기처럼. 그 이야기도 원래 트로이 전쟁 나갔던 찌질한 그 리스 남자가 집을 못 돌아와서 막 떠돌아다니던 이야긴데 인자는 겁나 유명한 고대 의 서사시가 됐잖애. 앞으로도 한 오백년, 천년은 베스트셀러일거여. 단순하게 아름 다운 이야기는 재미가 없제. 내 이야기는 “덴마크의 젊고 섬세하고 아름답고 명석하 기까지 한 왕자가 겪은 구슬프고 미스테리한 이야기.” 귀신도 나오고 이쁜 왕비도 나 오고 당연히 로맨스도 있어야제. 그라고 화끈한 액션도.

 

위 대사(아니리)는 네 명의 배우들이 관객을 향해, 마치 관객과 대화를 나누듯이 자신들이 선보일 <햄릿> 공연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에서의 것이다. 사설은 기본적으로 관객을 향한 것이며 네 명의 햄릿들이 서로를 향해 하는 말은 엄밀히 보면 분열된 자아들의 혼잣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인용문의 내용을 보면, <햄릿>을 잘 모르는 관객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공감대를 유도하기 위해 대중적인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평설적 사설 대목은 ‘햄릿’ 역할로서의 대사라기보다는 작품 밖에서 <햄릿>이라는 작품을 어떠한 태도로 분석하여 작품화하게 되었는지, 재창작자의 태도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작품 전체에서 구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의 네 명의 판소리꾼들은 ‘햄릿’ 1인을 연기하는 가운데 판소리꾼들이 모노드라마 형태로 연기하는 것과 달리 상대역이 있는 극중극을 전개하고 있는데, 이는 판소리꾼 1인이 설명, 평가 그리고 1인 다역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을 독창적으로 원용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햄릿’ 1인만이 등장하는, 그러나 네 명의 판소리꾼들이 한 명을 연기하는 한국 창작판소리로 문화번역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중 번역자의 의도에 따라 재창작 삽입된 대목들을 통해 ‘타루’의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의 특징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1) 인생가

‘햄릿’은 아버지 유령 등장 이후 복수를 결심하고 그 단계로 미친 척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인생가’를 부른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네 명의 햄릿들은 각기 다른 풍으로 솔로를 하면서 개성을 들러낸다. 다만 이 노래들이 각 인물들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유형화하기 위해 구상된 것은 아니었다. 기획자(정경화)의 귀띔에 의하면 이 장면은 네 명의 햄릿들이 노래 한소절씩 부르면서 놀이적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한, 다소 긴장완화적 장면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각 인물들은 탱고풍, 왈츠풍, 스윙재즈, 셔플 등 서구음악적인 리듬으로 노래를 하는데 이러한 설정으로 햄릿의 다중적 성격을 드러내려 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에서는 자식들이 각각 용기, 정직, 순수를 상징하고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네 인물들의 노래가 햄릿의 성격을 기호적으로 구분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이 노래를 통해 구분되는 햄릿들의 성격은 각 소리꾼들의 실제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송보라, 조엘라, 이원경 그리고 최지숙은 각기 다른 성격을 지닌 판소리꾼들이며 이들이 자신들의 성격에 따라 햄릿을 연기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각 배우들에 따른 네 가지 형태의 햄릿의 다중성을 굳이 구분하여 보자면, 송보라는 분노에 정의가 섞인 성격을 지녔다면 조엘라는 염세적인 면모에 우유부단한 면모를, 이원경은 소극적이고 여성적이면서도 삶에 대해 허무한 인식을 보이며 최지숙은 명예를 중시하고 씩씩한 기상을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후 오필리어(이원경 분)가 부르는 ‘꿈이었네’는 오필리어의 내면을 드러내는 노래였다고 할 수 있다면, ‘인생가’는 극 중 ‘햄릿’의 다채로운 내면을 분석한 대목이었다기보다는 ‘햄릿’을 맡고 있는 네 명의 소리꾼들이 자신들의 성격과 목소리의 특징에 따라 소리 한자락식을 뽑은 ‘햄릿과 판소리꾼 개인 사이’의 소리 연기였다고 할 수 있다.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는 ‘햄릿’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작품의 서사만큼이나 판소리꾼 출연진의 성격을 부각시키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장면의 개별적인 노래 역시 판소리 고유의 다채로운 장단과 길을 원용한 것이었다면 더 좋았을 듯하다.

 

(2) 액팅가

조엘라가 부르는 액팅가는 ‘클로디어스’가 실제로 선왕을 살해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극중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연기에 대해 노래하는 장면이다.

 

소리는 배에다 힘을 꽉 주고 입을 오물대지 말고 쫙쫙 벌려서 소리를 앞으로 쭉쭉 뻗어가게 해야지 / 소리는 이면에 맞게 꼬기작꼬기작 꼬기작꼬기작 하지 말고 꺾을 땐 꺾고 (꺾고) 뻗을 땐 뻗고 (쭉쭉) / 소리는 알차고 공력 있게 속소리와 겉소리를 구별해 근다해서 속소리를 바깥으로 안 내면 들을 것이 없는 소리지 / 절제 절제 또 절제 슬픔이 밀려와도 그 끝을 꾹꾹 눌러 목구멍 뒤로 넘겨야 참소리지. 슬픔을 겉으로만 표현하면 (오겡끼데스까) 이건 가짜여 / 좀 고급스럽게 해봐. 목표를 정해, 소리를 꽂아, 시선은 명확하게, 중심 딱 잡고.

 

이 노래는 판소리꾼들이 소리 훈련을 할 때의 광경으로 보이며, 원작의 내용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노래는 판소리 연기에 대한 것이면서도 신재효의 ‘광대가’와 구분되는 노래라 할 수 있다. 소리를 만들어내는 목청쓰기와 더불어 마음의 정서적 흐름에 따른 소리 연기를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실제 물리적인 소리 움직임과 마음의 흐름에 대해 논하고 있다는 점이 이채롭지만, 판소리 연기 역시 과대한 감정 표출이 아닌 절제를 통해 소리의 맛을 살려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액팅가’를 시작으로 이들은 <햄릿>의 극중극을 한국의 판소리로 연기하고 있음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햄릿’ 역할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 ‘사이’ 문화적인 공간에서 노래하고 있음을 드러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3) 해적가와 결투가

네 명의 햄릿이 부르는 ‘해적가’는 특히 원작에서는 구체화되지 않은, 새롭게 창작 삽입된 대목으로 병사들이 해적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그린 노래이다.

 

<아니리> (모두) 아 이렇듯 내가 묘안을 짜낼 적에, 갑판 위에선 선원들이 해적 놈들 손에 하나 둘씩 죽어 나가는 디,

<자진몰이> (모두)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야단법석일제

(엘)가다죽고 오다죽고 앉어 죽고 서서 죽고 울다 웃다 죽고

(보,엘)실없이 죽고 할 일없이 죽고 어이없이 죽고

(보,엘,지)칼에 찔려 도끼에 찍혀 이빨에 물려 물에가 풍풍풍 (모두) 빠져 죽고

(원)어떤 놈은 걸음아 날 살려라 달려가다 넘어져 부서진 바닥 판자에 (모두) 찔 려 죽고

(모두) 한적한 북해 바다 한가운데 그림처럼 떠있는 두 척의 배

그 사이를 가르고 보니 노을인 양 붉은 물결이 넘실대는 구나

갑판위에 쌓여가는 시체들은 육회비빔국수 말듯 둘둘 말려있고

(엘) 바다위에 시체들을 보니 (모두) 시큼한 오이냉국 떠있는 참깨처럼 둥둥 떠있 는디

스멀스멀 피비린내가 진동 허는구나

 

이 장면은 <적벽가>의 적벽대전을 환기시키는데, 물론 <적벽가>를 직접적으로 차용하지는 않은 듯하다. 다만 민초들의 삶이 어려울 때 도적이 출몰하는 것처럼 해적들이 들끓던 때를 환기시키면서 이들이 살던 때의 시대적 배경이 그리 안정적이지 않으며 정치적으로는 혼란스러운 때였음을 이 장면을 통해 유추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와중에 무고한 군사들이 안타깝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 묘사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의 눈대목 중 하나인 ‘결투가’ 역시 배우들의 무대 액션이 아닌 소리로 진행되는데 이때는 조엘라를 제외한 나머지 송보라, 이원경 그리고 최지숙 배우들이 무대의 2층 공간에 올라 북과 징을 잡고 고수 역할을 하며 동시에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연출되었다. 정종임 고수 역시 북을 잡고 있기에 세 명의 고수의 북소리와 네 명의 소리꾼이 한 목소리로 부르는 ‘결투가’는 힘이 넘치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경험하게 한다. 특히 자진모리이면서도 씩씩한 우조에 계면조의 서글픔이 경험되었다. 소리꾼들의 힘찬 노래를 듣는 중에, 극중 인물들이 한명씩 한명씩 몸에 독이 퍼져 쓰러져 가는 것이 머릿속으로 상상되는 장면이었다.

이 작품은 판소리의 특징을 살려 의도적으로 시각적인 형상화를 지양하면서 대신 유려하고 다채롭고 재담 섞인 사설을 통해 관객들이 머릿속으로 특정 장면을 상상하도록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는 특히 여러 대의 북과 징을 동원하여 타악기의 웅장함과 활기 그리고 역동적인 에너지로 결투 장면을 형상화했다고 할 수 있겠다.

 

햄릿역할을 벗은 판소리꾼들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에서는 모든 인물들이 죽고난 뒤 ‘진혼가’를 부른다.

 

햄릿-보 : 길떠난다 길떠난다 산다 죽는다 뭐가 다른 것이냐

길떠난다 길떠난다 산다 죽는다 뭐가 다른 것이냐

햄릿-원 : 죽음이란 세상 고통에 눈감는 것

조용히 잠드는 것 모두가 간절히 바라는 그것

모 두 : 길떠난다 길떠난다 산다 죽는다 뭐가 다른 것이냐

햄릿-보 : 죽음너머에 무엇이 있느냐

너는 아느냐 너는 아느냐 갔다가 돌아온 사람이 아무도 없네

 

중모리로 시작하는 <진혼가>는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점차 빨라지고 그 사이 네 명의 햄릿들은 차례차례 가발과 의상을 벗기 시작한다. 노래가 끝난 뒤 네 명의 배우들은 객석으로 올라와 관객들 사이로 사라지고 공연의 막이 내린다. 커튼콜 때 다시 등장하는 네 명의 소리꾼들은 흰 원피스에 짧은 커트머리, 긴 검은 머리 또는 갈색머리를 지닌 어여쁜 30대 초 여인들의 모습이었다. <햄릿>에서 ‘햄릿’ 역할을 벗어버리는 마지막 장면은 현실로 돌아오는 소리꾼들의 의식일 수 있다. 이들은 비로소 현실 속 판소리꾼들로 돌아온 것이다.

이들은 ‘햄릿’이라는 등장인물을 연기하는 중에도 개별적인 배우 개인으로 존재하며 역할에 감정이입하지 않고 거리를 두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시각적으로도 ‘햄릿’ 역할을 벗고 실제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반영적인 연기는 궁극적으로 그들 자신 역시 ‘햄릿’처럼 삶에 대해 고뇌하고 있음을, 그리고 이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관객들 역시 고뇌하는 햄릿일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햄릿’ 역할을 벗은 판소리꾼들이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를 통해 추구했던 것은 명작 <햄릿>이 한국 판소리화 되는 ‘사이’ 영역에서 형성되는 독창적인 상상력, 또 그것을 관객과 함께 즐기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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