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기의 공연산책 2013년 3월 공연총평
박정기
필자가 2월 2일부터 3월 20일까지 관람한 공연은 제1회 여성극작가전 극단 풍등의 오혜령 작, 송미숙 연출의 <일어나 비추어라>,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외젠 이오네스코 작, 오세곤 역, 이윤택 연출의 <수업>, 산울림고전극장 극단 청년단의 셍텍쥐 페리 작, 민새롬 연출의 <야간비행>, 극단 작은 신화의 신은수 작, 신동인 연출의 <봄이 사라진 계절>, 대학로 PMC 자유극장에서 정준 작·작사, 조한나 작곡, 권호성 연출의 뮤지컬 <날아라 박씨>, 제1회 여성극작가전 강성희 작, 노승희 각색·연출의 <꽃 속에 살고 죽고>, 산울림 고전극장 현진건 단편선 박지혜 연출의 <새빨간 얼굴>, 국립극단 봄마당 배삼식 작, 손진책 연출의 <삼월의 눈>, 제1회 여성극작가전 극단 거울의 강추자 작, 백은아 연출의 <당신의 왕국>, 극공작소 마방진의 이진경 극작·연출의 <영호와 리차드>,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신주쿠 양산박·스튜디오 반의 조박 작·작곡, 김수진 연출의 <백년, 바람의 동료들>, 대학로 스타시티SM스테이지에서 셰익스피어 원작, 김강민·이준 재구성, 김강민 연출의 <로미오와 줄리엣 검들의 전쟁>, 극단 노을의 강재림·김태연·박동욱 작, 공동각색, 이신영 연출의 뮤지컬 <한정담>, 극단 시인과 무사의 김동연 작·연출의 <환상동화>, 제1회 여성극작가전 극단 아미의 전옥주 작, 임선빈 연출의 <아가야 청산가자>, 국립극단 봄마당 정의신 작·연출의 <푸른 배 이야기>, 극단 물결의 우고 살세르 작, 송현옥 연출의 <돈데 보이>, 극단 하땅세의 윌리엄 골딩 원작, 윤조병 번안, 윤시중 연출의 <파리 대왕>, 남산예술센터에서 극단C바이러스의 이문원 작, 이현정 연출의 <독살미녀 윤정빈>, 제1회 여성극작가전 김숙현 작, 박은희 연출의 <앉은 사람 선 사람> 등이다. 이들 작품 중 특기할 만한 공연과 2013년 <신춘문예 단막극 제>를 별도로 평하겠다.
1, 게릴라극장에서 외젠 이오네스코 작, 오세곤 역, 이윤택 연출의 <수업>
외젠 이오네스코 (Eugène Ionesco, 1909년~1994년)는 실존주의 파에 속하는 프랑스의 시인·소설가·극작가이다. 루마니아계 프랑스 사람으로 루마니아의 스라티나에서 태어났다. 루마니아식 이름은 에우젠 이오네스쿠(Eugen Ionescu)이다.
유년시대는 프랑스에서, 청년시대는 루마니아에서 보냈고 1938년 이후 파리에 정주하였다. 1950년 <대머리 가희>(부제 <반희곡>)가 상연된 이래 이른바 반연극 파(反演劇派)의 선단에 섰다. 이후 <수업> <의자> 등의 뛰어난 단막물로 종래의 것과는 좀 다른 초현실주의적인 희곡을 차차 인식시키고, 그 후에는 <무소> <빈사(瀕死)의 왕> <갈증과 기아> 등의 장막 물(長幕物)로 국립극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앙티테아트르 작가로서 베케트와 더불어 호칭되고 오늘날에 와서는 프랑스의 대표적 극작가로 확고한 명성을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은 초기의 전위적 부조리극, 가령 <수업>(1951), 중기의 <무소(犀)>(1960) 등 사회풍자극과 <빈사(瀕死)의 왕>(1962) 등 내면적 작품의 3기로 나눌 수가 있다. 초기의 작품일수록 대담하며, 일상적인 회화(會話)를 해체하여 그 무의미성을 폭로하기도 하고, 의자를 무대 일면에 늘어놓음으로써 신이나 진실 또는 사상의 공허함을 표현하거나, 사람을 무소로 변신시킴으로써 현대 획일화(劃一化)의 공포를 우화화(寓話化)하기도 했는데, 항상 라틴적인 경쾌한 리듬을 잊지 않았다. 그는 연극의 줄거리·성격·언어를 해체하는 것으로 연극의 에센스를 뽑아내서 전 세대의 실험적 쉬르 레알리즘 연극에 풍요한 넌센스 유머를 부여함으로써 대중화하는 일에 성공하였다.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었으며 1977년 대한민국을 방문했다.
무대는 배경 막 좌우로 등퇴장 로가 있고, 객석 출입구가 학생이 수업을 받으러 오는 문이다. 배경 막 오른쪽 등퇴장 로 앞에는 검은 벽돌로 쌓은 벽을 만들어 놓았고, 그 벽을 좌우로 이동시키며 강의실의 칠판으로도 사용한다. 무대 왼쪽 벽에 1m 높이의 수도가 있어 손을 씻을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고, 그 옆에 쓰레기를 담는 플라스틱 소쿠리가 바닥에 놓여있다. 무대 중앙에는 직사각의 긴 책상과 그 왼쪽에 등받이가 높은 선생의자와 오른쪽에는 학생용 일반 의자를 놓아두었다.
연극은 도입에 건장한 체격과 붉은색 치렁치렁한 가발을 쓴 여인이 쓰레기 소쿠리를 정리하다가 강의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객석입구로 다가가 문을 열고, 여학생을 맞이해 들어온다. 그리고 선생에게 학생이 수업을 받으려고 왔으니, 내려오라고 외친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선생이 두툼한 강의록 두 권을 들고 등장하고, 여인은 “수학은 가르치면 안돼요.” 라는 말을 선생에게 의미심중하게 내뱉고 퇴장한다. 여학생은 박사학위과정을 이수하기위해 이곳을 찾아온 것임을 선생에게 알린다. 선생은 제대로 왔다며 반긴다. 향후 첫 번째로 수학강의가 펼쳐지고, 초등수학을 질의문답식으로 하는 수업이 시작된다. 그런데 덧셈은 잘 하지만 어쩐 일인지 뺄셈에서는 전혀 진전을 보이지 않는 여학생의 능력에 선생은 차츰 열을 올리기 시작한다. 선생이 여학생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계속되지만, 여학생은 어처구니없는 답변으로 선생을 노하게 만든다. 선생은 문득 고단위의 곱셈 질문을 한다. 그러자 여학생은 즉석에서 답변을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답이 서로 틀리고, 서로 자신의 답이 맞는다고 주장을 하면서, 선생은 다시 계산을 한다, 그리고 과연 여학생의 답이 맞았음을 알고 경악한다. 여학생은 고단위 곱셈을 암산을 해 푼 것이 아니라, 그 답을 모조리 암기해 대답했다는 고백을 한다. 선생은 다시 한변 충격을 받는다. 인문학 강의가 시작된다. 우선 언어학 강의로 언어의 역사와 배경이 설명된다. 그런데 여학생의 치통이 시작된다. 선생의 강의가 차츰 열기를 띠기 시작하면서 여학생의 통증도 가중되어 “이가 아파요” 하는 소리를 내뱉기 시작한다. 선생은 여학생의 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강의를 계속하고, 여학생은 재차 삼차 통증호소를 한다. 선생은 계속 여학생의 “이가 아파요” 하는 소리에 개의치 않고, 강의에 열을 올린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니, 객석에서도 안타까운 심정이 배가된다. 선생은 학생의 심한 통증을 무시한 채 강의에 집중하지 못하는 여학생을 나무라기 시작한다. 그래도 여학생이 계속 통증만을 호소하니, 인내심을 잃고 폭력을 가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점차 폭력이 성폭력으로 바뀐다. 선생은 하의를 벗고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퍼포먼스를 여학생과 벌인다. 그래도 여학생이 통증호소를 계속하니, 광기와 분기가 탱천한 선생은 여학생을 살해한다. 도입에 등장한 건장한 체격에 치렁치렁한 가발을 한 여인이 다시 등장해 선생을 힐책하고, 자식 다루듯 선생에게 매질을 한다. 선생은 여학생의 시체를 안고 퇴장한다. 건장한 여인은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한다. 그 때 강의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들린다. 쓰레기통을 치운 여인이 객석 출입구로 가서 새로 온 여학생을 맞이해 들이고, 선생에게 학생이 수업을 받으려고 왔으니 내려오시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이승헌이 선생으로 출연해 탁월한 성격창출은 물론 하반신까지 노출시키는 기상천외의 연기로 좌중을 압도한다. 박인화가 여학생으로 출연해 참한 학생으로의 면모를 보이다가 통증을 호소하며 차츰 피 가학적 색정의 대상으로 변모하는 과정이 절묘하기 그지없다. 김아라나가 건장한 여인으로 출연해 독특한 성격창출과 모습으로 객석을 매혹시킨다.
연희단거리패 제작, 외젠 이오네스코 작, 오세곤 역, 이윤택 연출의 <수업>은 출연자와 스텝 진 모두가 2012년 루마니아 부카레스트 국립극장페스티벌에서 그 기량과 열정을 인정받은 공연작품이기도 하다.
연희단거리패(대표 김소희)의 차기작에도 기대를 한다.
2, 극단 작은 신화의 신은수 작, 신동인 연출 <봄이 사라진 계절>(설치극장 정미소)
100여 년 전 대한제국 말기로, 한 인물을 현대에서 과거로 되돌려 보내, 당시 가장 영향력이 있고 친일 매국노라는 소리를 듣는 정치적 인물을 암살하려던 동기와 역사적 배경을 현재의 친미적 정치적 상황과 동일시하는 작가 나름의 시각으로 만들어 낸 연극이다.
무대는 대저택의 거실이다. 배경 가까이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른쪽으로 오르다가 한 단 높여 왼쪽으로 다시 올라가게 만들어 놓았고, 소파와 탁자 그리고 장식장이나 술 진열장, 반다지 같은 가구와 전화기 등을 배치하고, 이층계단과 거실주변을 장미넝쿨과 장미꽃으로 장식했다. 오른쪽 창문 밖 정원에는 달맞이꽃이 피어있는 것으로 설정을 하고 백합꽃을 꽂을 수 있는 화병도 마련했다. 현대에서 과거로 되돌아갔다는 표지는 어린이 장난감 인형 형태를 띤 전자제품의 방출 음으로 누구나 잘 알고 있는 현재의 정치적 상황이나 여론에 부각된 것을 객석에 들려주는 방법으로 처리했다. 그리고 누구나 잘 기억하고 있는 역사적 사건의 연월일의 자막을 영상으로 투사해 현재에서 과거로 진입시킨다. 명필로 소문난 이완용의 필치인 듯싶은 액자가 무대 오른쪽 벽에 걸려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창 씨 개명을 했던 지도자나, 일부집단에 의해 변절자로 묘사되는 유명시인, 그리고 김구를 위시한 애국지사를 열거한다.
연극은 친일재상 이완용의 저택으로 한 젊은이가 경호원의 제지를 뿌리치고 들어오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평소에 술을 마시지 않던 이완용이 음주를 하다가 청년을 맞게 된다. 급작스러운 방문과 기이한 행동에 상대를 않고 되돌려 보내려던 이완용에게 청년은 자신이 미래로부터 왔다고 전한다. 그 소리에 이완용은 웃음을 터뜨리며 비로소 딸의 영어 가정교사로 온 청년 이재명과 응대를 한다. 이 극에는 역시 친일재상 송병준이 등장해 친일파로서의 굴절된 면모를 보인다. 이완용의 며느리와 딸을 등장시키고, 왕실의 엄 귀비가 이완용의 집을 자주 방문해, 양주와 커피 대접을 받는 장면도 소개 된다. 그리고 이완용의 비서였던 만세보의 주필 겸 작가 이인직을 등장시켜 미망인이 된 이완용의 며느리와의 연정을 그려내기도 한다. 이재명에게 영어를 배우며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코니 장면을 애써 영어로 연기하는 이완용의 딸 소화의 모습에서 가정교사를 사랑하는 심정이 들어나고, 매국노의 딸임으로 해서 행패를 당하지 않기 위해 기모노로 차려입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이재명이 이완용을 암살하기에 앞서 고뇌에 쌓이게 되고, 장난감 인형의 방출 음으로 마음을 다지다가, 소희가 가지고 온 자신의 인형과 똑 같은 장난감을 보고 놀란다. 그리고 그 장난감이 이인직이 소희에게 준 선물이라는 것을 알고는 이인직 역시 미래에서 온 인물임을 짐작하게 된다. 향후 이재명과 이인직의 충돌과 갈등국면이 점입가경으로 펼쳐지고, 명장면으로 관객에게 각인된다. 이인직의 처세와 세계관, 그리고 거사를 앞둔 이재명에게 이완용 암살 후 달성 서 씨로 변장하라는 권고와, 대단원에서 달성 서 씨로 변모해 딸의 가정교사로 등장하는 이재명의 모습에서 관객은 충격을 받는다.
장용철이 이인직으로 등장해 발군의 기량으로 호연을 보이고, 탁월한 성격창출과 눈부신 열연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장성익이 송병준으로 출연해, 작중인물의 굴절된 인생을 더할 나위 없는 성격창출로 묘사해 낸다, 송현서가 엄귀비로 등장해 그녀 나름대로의 중후한 연기력과 호연으로 극의 품격을 높이고 향을 흩날린다. 임형택은 실제 이완용이 환생한 것이 아닌가 싶도록 완벽에 가까운 이완용을 무대 위에 그려낸다. 김준태가 이완용 대신 살해당하는 경호원 역으로 등장해 절제된 동작으로 호연을 보이고, 오현우가 암살자 이재명 역으로 등장해 그의 탄탄한 연기력을 과시한다. 박소정이 미망인 임부인 역으로 등장해 관객에게 은근한 자태와 매혹적인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고, 주재희가 딸 소화역으로 등장해 호연을 보이며 그녀의 창창한 앞날을 예측케 한다.
권용의 무대, 최보윤의 조명, 김철환의 작곡, 박진희의 의상, 장경숙의 분장, 김혜지의 소품, 정재진의 자막, 령혜의 조연출, 박혜정의 무대감독, 최순영의 조명오퍼, 김해린의 음향오퍼, 이동녕의 사진(연습사진), 다홍디자인의 그래픽, 코르코르디움의 기획.홍보 등 각자의 역량이 하나가 되어, 극단 작은 신화의 신은수 작, 신동인 연출의 <봄이 사라진 계절>을 성공작으로 창출시켰다.
3, 신주쿠양산박·스튜디오 반의 조박 작·작곡, 김수진 연출의 <백년. 바람의 동료들>(두산아트센터 SPACE111)
이 연극은 일본 오사카에 살고 있는 재일교포 2세와 3세들의 삶을 한 이카이노 주점을 배경으로 하여 그려낸 연극이다.
연극은 도입에 텅 빈 무대로 각자 악기를 연주하며 악대의 등장에서 시작된다. 이들이 주점의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무대는 주점으로 바뀐다. 왼쪽이 주방이고 오른쪽에 식탁과 테이블이 있다. 무대왼쪽에 별도로 작곡가의 방을 마련하고, 오른쪽에는 주점의 대문이 있다.
악대가 들어서면 개업20주년이라고 커다랗게 쓴 글씨가 보이고, “바람 따라 사람 따라” 라는 액자도 가로 걸려있다.
그런데 2010년 8월 29일은 이카이노 주점 개업 20주년뿐이 아니라, 한일강제병합 100주년이 되는 해라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친지와 친척이 찾아오고, 이름이 난 화가의 고가품이라는 그림도 축하선물로 들어와 주점의 중앙벽면에 걸기도 한다. 그리고 개업기념 특별공연으로 작곡가 겸 가수인 한 인물의 가요100년사 <백년절>의 발표가 마련된다.
극이 진행되면서 “희망가”와 재일교포 명가수인 고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가 소개되고, “황성옛터”의 원곡인 일본가사, 엔가와 그리고 “김일성 찬가” 같은 재일동포가 부르던 노래도 소개된다.
가요 사를 되새기며 재일동포의 애환이 펼쳐진다. 식민지시절 현해탄을 건거 가니, 일본인에게 푸대접과 왕따를 당했던 이야기, 해방이 되고, 2세나, 3세들에게 한글교육을 시키기 위해 설립된 학교는 남에서 건립한 학교는 전무하고, 북에서 세운 학교에서 한글을 배웠던 일, 제주 4.3사건, 유신시절 등이 거론되고, 남쪽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면, 몰매를 맞았던 당시를 회상하기도 하면서,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열창한다.
이제는 유명주점이 된 아카이노 주점의 개업20주년을 취재하러 온 일본인 기자도 차츰 재일동포들의 애환에 공감하고 그들과 일희일비를 함께 하며 막걸리의 맛에 빠져든다. 그리고 한국여인에게도……
민주화투쟁시위에 참가했다가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인물의 일화라든가, 주점 여주인의 북송남편의 일화가 소개가 된다. 자신이 잉크로 편지를 써 보내면 북으로 오되, 연필로 편지를 썼으면, 결코 북에 오지를 말라는 내용과 향후 편지마다 연필로 쓴 게 도착한 이야기, 사회주의 지상낙원이라는 북이 김 씨 세습 독재왕국으로 변해, 세계의 외면과 함께 굶주림의 지옥으로 변하고, 남쪽은 민주국가가 되면서 세계적인 부국의 대열에 서게 된 현시점이 거론된다.
작곡가 겸 가수의 가요 <백년절>의 완성과 더불어 이카이노 주점의 앞으로 다가올 또 한 번의 20주년축하잔치를 모두 기대하면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조박, 미우라 신코, 후쿠하라 케이치, 와타라이 쿠미코, 히구치 코지, 미즈시마 칸나, 히로시마 코, 덴다 케이나, 소메노 히로다카, 이마무라 요시노, 고바야시 요시나오, 구라타 토모미, 젠바라 노리카즈, 세키네 마호, 신대기, 가토 료스케, 시마모토 카즈토 등이 출연해 열창과 열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무대디자이너 오츠카 사사시, 안무 오카와 타에코, 음향·작곡 오누키 타카시, 조명디자이너 이즈미 카츠오, 무대감독 다케하라 타카후미, 제작감독 이강선, 기획 김영미·정민교, 자막 김연미·최강자, 기록 손광은, 음향 전민배, 그래픽 아트그램, 티켓 김연미·이유정 등 스텝진의 힘이 하나가 되어, 스튜디오 반/신슈쿠양산박/두산아트센터 제작의 조박 작, 김수진 연출의 <백년, 바람의 동료들>을 걸작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4, 아트피이컴퍼니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김강민·이준 재구성, 김강민 연출의 <로미오와 줄리엣 검들의 전쟁>(대학로 스타시티SM스테이지)
이 연극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펜싱결투장면을 모아 극의 내용과 부합시켜, 원수지간인 두 가문의 젊은이들의 대립과 운명적인 사랑, 혈투, 살해, 자살 등에 무용과 음악을 가미함으로써 재구성한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도 숙부인 클로디어스가 레어티즈에게 칼에 독을 바르도록 하고 햄릿과 벌이는 대단원에서의 펜싱장면은 명장면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훨씬 많은 펜싱장면이 극의 도입부터 시작된다. 숙적인 두 집안 젊은이들의 대결, 로미오의 가장 가까운 친구 머큐시오를 줄리엣의 오라비 티볼트가 죽이니, 로미오가 티볼트를 살해하는 장면, 그리고 줄리엣의 약혼자 패리스와 무덤에서 벌이는 펜싱장면은 극적이기도 하고 명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이 연극에서는 <검들의 전쟁>이라는 부제를 달았듯이, 펜싱장면이 다채롭다. 펜싱장면 뿐 아니라, 로마시대의 검투사들의 혈투장면에서 볼 수 있는 각종무기와 방패를 가지고 목숨을 내놓고 벌이는 결투장면도 연극의 도입에 잠시 소개가 된다. 펜싱장면이 이어지면서 칼부림 속에서 운명적인 사랑의 꽃망울이 피어난다. 친구가 죽거나, 오라비의 죽음까지도 극복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줄리엣의 약혼자까지 죽도록 만들고, 연인끼리의 동반자살로 이어지지만, 두 사람의 죽음까지 초월한 사랑은 결국 철전지 원수지간이던 두 가문의 화해를 이끌어 낸다. 이 극에서는 두 가문의 화해까지는 보여주지를 않고 신부 겸 해설자가 연극을 이끌어 가도록 만든 것도 독특하다. 거기에 아름다운 율동이 가미되고, 음악을 곁들여, 환상적인 조명과 함께 한편의 조형예술로 재구성된다. 특히 천정에서 쏟아져 매달린 수많은 검이라든가, 교회의 웅장한 종소리, 그리고 올리비아 핫세 주연의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유진 월터 (Eugene Walter) 작사, 니로 로타(Nino Rota) 작곡의 주제가 “A time for us”를 배경음악으로 흐르게 한 것도 이 연극에서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다.
전승현, 이지윤, 이우림, 양예은, 이진동, 배재원, 이명범, 조두현, 김정하, 권예림, 이영균, 조문홍 등 출연자들의 넘치는 젊음과 약동, 그리고 세련미가 도입부터 대단원까지 관객을 극 속으로 몰입시킨다.
예술감독 차현석, 무대감독 이준, 안무 조하영, 음악 박나영, 의상 배은수, 기획 임현정, 조연출 이승복·전경배, 오퍼레이터 황인규, 펜싱 배재원·주두현, 그래픽 김수용, 홍보 HJ Company 등 모두의 열정과 기량이 하나가 되어 아트피아컴퍼니의 김강민·이준 재구성, 김강민 연출의 <로미오와 줄리엣 검들의 전쟁>을 한편의 움직이는 조형예술로 탄생시켰다.
5, 극단 노을의 강재림·김태연·박동욱 작, 공동각색, 오세곤 예술감독, 이신영 연출의 뮤지컬 <한정담 한우물 이야기>
노을소극장에서 강재림·김태연·박동욱 작, 공동각색, 오세곤 예술감독, 이신영 연출의 뮤지컬 <한정담 한우물 이야기>를 관람했다.
이 작품은 금천구청 금나래 아트홀에서 2월22, 23일에 공연된바가 있다.
작품의 소재는 관악산의 지봉인 해발 400m의 호압산 일명 호암산 정상 25m 아래에 있는 한우물이다.
작은 연못 규모의 우물. 한우물을·‘용보’(龍洑) 또는 ‘천정(天井)’이라도 부른다. 길이는 22m, 너비 12m이다.
이 우물에는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온다. 첫째로는 기우제와 관련된 설로, 동국여지승람에 “호암 산에는 견고한 성이 있다. 성안에 한 연못이 있어 가물 때면 비를 빈다(虎巖山有固城城內有一池 天旱祈雨)고 하였으며, 둘째로는 군대의 음료용이었다는 설로, 임진왜란 때 선거이(宣居怡)장군이 이 부근에 진을 쳤다고 전하므로, 이 우물이 많은 군인의 음료수로 사용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셋째로는 소화용(消火用)의 설로, 이곳에 있던 해태는 조선조 태조가 한양천도 후 도성과 궁궐을 창건할 때 만든 경복궁 해태와 시대를 같이하는 것으로, 방화신(防火神)인 해태를 세우고 우물물로써 화재에 대비하였을 것이라는 설이다. 끝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 금천현조(衿川縣條)에 의하면, “호암산은 현의 동편 5리에 있는데, 그 곳 바위가 호랑이와 닮았으므로 그렇게 이름하였다(虎巖山在縣東五里 有巖如虎故爲名).”고 기록되어 있다.
그 산이 약호형(躍虎形)이어서 한양의 안위에 크게 영향을 끼치므로, 그 호세(虎勢)를 진압하기 위한 풍수설을 인용하여 이 지방에 사자암(獅子庵)과 궁교(弓橋)를 가설하였다고 한다. 한우물의 사면 벽은 화강암을 쌓아올려 이루어진 것이다.
뮤지컬 한정담은 극장의 객석까지 무대로 만들어 산록에 위치한 한 우물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놓았다. 방화에 대비한 석상을 조각하는 바위라든가, 대가 집의 대문이라든가 담장도 장치로 손색이 없었고, 중앙의 벽면을 이동시켜 여주인공을 광에 감금시킬 때의 장면 설정이나, 의상과 소품에 이르기까지 공을 들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입에 아기를 우물에 빠뜨려 죽이려다가 차마 그러지 못하고 개 짖는 소리에 아기를 우물가에 내려놓고 도망치듯 사라지는 인물에서 극이 시작된다.
석공의 망치소리와 함께 장면전환이 되면, 석상을 조각하는 석공 2인의 모습이 보이고, 양반 댁 미모의 규수가 하녀와 함께 기우제를 올리려 산에 오르다가 산 도적에게 납치를 당할 위기에 처하고, 이때 인물이 준수한 석공이 등장해 뛰어난 무예로 그녀를 구한다. 이때부터 미천한 신분의 석공과 귀한 가문의 여식의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다. 하녀와 또 한사람의 석공과의 연정도 은연중에 솟아오른다. 그때 대가 집 호위무사가 규수를 찾아 등장하고, 무사가 밝힌 규수의 아비인 대감이 바로 석공의 집을 폐족으로 만든 원수임이 드러난다. 원수의 딸이지만 석공과 규수의 운명 같은 사랑은 석공의 발걸음을 대갓집으로 향하도록 이끈다. 규수 역시 석공을 그리워하며 문을 나서면서 두 사람의 재회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대가 집 호위무사 역시 딸을 연모하는 심중을 드러내고 석공을 제지하고 핍박한다, 대감이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딸의 정념을 제지하기 위해 광에 가둔다. 그리고 석공의 접근을 금하기 위해 아예 그를 추방시키는 조처를 취하면서 마음에 내키지는 않지만 대감은 딸과 호위무사와의 혼례 날자 까지 정해놓는다. 그러나 딸은 광에서 탈출하고, 석공은 추방지에서 되돌아와 두 사람의 상봉이 이루어진다. 그러니 대감의 분노가 절정에 이르고, 호위무사 역시 석공을 처지하기 위해 칼을 뽑아든다. 두 사람의 사생결단의 결투가 벌어지고 결국…….
김인수, 강명환, 이세나, 임한나, 이일균, 한명진, 황진우, 조장미, 강아름, 신유식, 고준이, 강원모 등이 출연해 열창과 열연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주인공의 아리아와 듀엣, 그리고 출연자들의 합창은 창작뮤지컬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열창이었다. 이용규와 조슬비, 그리고 박새롬이 더블캐스트로 출연한다.
특별연주 대고 박행주, 해금 이희정, 국악연주 우리두리풍물단, 협력연출 이형돈, 음악감독(작곡 및 보컬지도) 김기현, 편곡 길석, 국악연출 박행주, 아무 최성호, 드라마트루기 박호영, 무술 차재근, 무대대자인 정숙희, 의상디자인 정현정, 조명디자인 박상준, 조명오퍼 한종엽, 기획 휴먼컴퍼니·김승호·이아라, 기술/무대감독 이동현, 조연출 이동우·최영호, 기획단원 이희숙·백지연·최지영·우정훈, 홍보팀장 노정희, 홍보단원 송기쁨·김초롱, 무대크루 백성수·오준호, 조명크루 이솔애·서선영 등 스텝 모두의 기량이 하나가 되어 극단 노을의 오세곤 예술감독, 강재림·김태연·박동욱 작, 공동각색, 이신영 연출의 뮤지컬 <한정담>을 우수창작뮤지컬로 창출시켰다.
6, 극단 시인과 무사의 김동연 작/연출 <환상동화>를 보고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극단 시인과 무사의 김동연 작/연출의 <환상동화>를 관람했다.
개막전 무대에 광대 3인이 등장한다. 신의 창조물 중 전쟁, 예술, 사랑을 광대 3인이 맡아 저마다 자신이 으뜸이라는 주장을 편다. 광대들은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전쟁과 예술, 그리고 사랑을 소재로 무대를 엮어나간다. 시대는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나치군대의 행진과 비행기의 공습, 그리고 프로펠러 비행기들이 대공포에 맞아 파괴되는 장면이 영상으로 투사된다. 모두 철수한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한 독일병사와 적군(프랑스인 듯)병사가 서로 총을 겨누며 다가가지만, 각자 상대를 죽이기를 주저하고, 두 병사는 친구가 된다. 프랑스 병사의 안내로 두 사람은 한 도시(프랑스처럼 느껴짐)의 카페로 들어간다. 거기에는 프랑스 병사의 누이가 무용수로 일을 하고 있다. 독일병사는 원래 피아니스트이기에 연주솜씨가 남다르다. 광대 3인은 지배인과 사환노릇을 하고, 마술과 마임, 그리고 노래도 부른다. 카페에서 술을 마시며 잠시 즐기기만 전쟁은 계속되고 있어 언제 끝이 날지 기약할 수가 없다. 프랑스 병사의 간호와 안내로 독일병사는 프랑스 병사의 누이가 무용 활동을 벌이는 카페를 찾아가다가, 포화에 그만 프랑스 병사는 누이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독일병사에게 전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사망한다. 독일병사는 귀머거리가 된다. 두 사람이 포화를 맞은 것과 거의 동시에 프랑스 병사의 누이도 포화에 실명을 하고 만다. 독일병사의 이름은 “한스”이고, 프랑스 병사의 누이의 이름은 “마리”이다. 실명을 한 마리는 물론 무용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 귀머거리가 된 한스도 피아노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그러나 한스는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마리가 있다는 카페로 찾아온다. 그러나 한쪽 테이블에 힘없이 앉아있는 여인이 마리라는 것을 알 리가 없다. 마침 그때 광대들이 마리 오빠의 전사통지서를 들고 들어오고, 마리에게 편지를 읽어 들려주려하지만 차마 오빠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지를 못하고, 편지의 서두만 읽다가, 한스 앞에 편지를 떨어뜨리고 물러간다. 한스는 그 전사통지서를 보고, 앞을 보지 못하는 여인이 마리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한스 역시 광대3인처럼 통지서를 읽어주지 못하고, 대신 오빠가 남긴 편지를 마리에게 읽어준다. 마리도 한스가 귀머거리라는 것을 알고는 한스의 손바닥에 글씨를 써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한다. 하루 이틀이 지나가고, 한스와 마리의 운명적인 사랑의 싹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한스는 마리를 위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마리는 연주음에 맞춰 춤을 다시 추기 시작한다. 연주와 춤이 어우러져 두 사람의 사랑이 깊어가지만 전쟁은 그칠 줄을 모른다. 그리고 그 전쟁의 포화 속에서 두 사람의 예술혼은 그 빛을 발한다.
대단원에서 3인의 광대는 뜻하는 바대로 전쟁과 파괴 그리고 살상과 부상, 그 속에서 피어오르는 예술혼, 그리고 죽음을 불사한 영원한 사랑을 한스와 마리를 통해 <환상동화> 속에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그려내면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이현철, 이원, 송재룡, 성종완, 김태근, 황지노, 김호진, 신성민, 양잉꼬, 김보근 등 출연자들의 성격창출과 열연으로 객석으로부터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제작 이다엔터테인먼트&극단 시인과 무사, 안무 송희진, 작곡 이재원, 조명 김광섭, 무대 김수현, 의상 김은영, 영상 서양범, 분장 김숙희, 무대감독 김유신, 조연출 정현 등 모두의 기량이 돋보인 김동연 작/연출의 <환상동화>를 한편의 명화 같은 명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
7, 국립극단 봄 마당 정의신 작·연출 <푸른 배 이야기>를 보고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정의신 작·연출의 <푸른 배 이야기>를 관람했다.
이 작품은 작가자신이 글을 쓰기 위해 한동안 거주하던 어느 바닷가 마을에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찾아가 보니, 개발로 인해 옛 풍경은 사라지고, 사람들도 변모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기억조차 희미해져 가는 것을 연극으로 그려냈다.
<푸른 배 이야기>는 야마모도 슈고로(山本 周伍郞)의 소설 <아오베카 모노가타리>를 재창작한 연극이다. 일본 도쿄 부근 지바 현 한 바닷가 마을에 1980년대 말에 디즈니랜드가 들어서면서 개발이 이루어져 가난한 마을이라 불리던 옛 모습을 현재는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된 것을 정의신이 인천의 소래포구지역으로 바꾸어 재창작했다.
작가가 한 때 머무르던 작은 마을에는 낡고 오래된 푸른색의 배가 한척 있었고, 마을의 터줏대감 격인 한 노인의 권유로 그 배를 사게 된 동기와 서로 얽히고설키며 힘든 삶을 영위했던 마을사람들과 맺은 인연, 그리고 사랑의 회고를 풍부한 문학적 감성과 시적인 언어, 거기에 음악과 율동을 가미해 한편의 동화나 전설처럼 서정만점의 연극으로 그려냈다.
무대 전체에 널려 있는 빨래는, “망태 할아범이다!” 하면, 우는 아이도 울음을 멈추던, 옛 서울의 넝마주이와 그들의 거주지를 연상시키고, 보릿고개와 헐벗고 굶주렸던 세월, 집집마다 마당에 줄을 매고 널어둔 빨래를 떠오르게 한다. 우굴 주굴 한 양철지붕도 그렇거니와 평상처럼 덜렁 바닥만 남은 대청마루 끝머리에는 울긋불긋한 색동천을 막처럼 가로막아 마치 꼭두각시놀음 “박첨지 전”의 무대를 연상시키기고, 일인 다역이 아니라 다인 일역의 연기도 볼거리려니와 소년역이나 장정 역, 순진무구한 여인이나, 억척스런 직업여성, 악마 같은 아내와 그녀의 위세에 눌려 고개를 못 들고 죽어지내는 남편, 건달 남성과 왈패 같은 여인들 그리고 그들의 한결같은 음주벽이 풍경화처럼 소개되고, 소년소녀들의 행진과 노래, 마을사람들의 불륜남녀에 대한 집단 관심과 은밀한 관찰 등 극적인 장면이 계속되면서 연극은 점입가경(漸入佳境)을로 펼쳐지고, 푼수 소년의 영화 관람과 그 소감은 극의 백미(白眉)로 남는다. <푸른 배 이야기>는 시종일관 관객에게 일순의 유예도 주지 않고 2시간 30분 동안 극 속에 몰입을 시킨다.
서상원, 박수영, 김문식, 김정영, 송태영, 김민선, 조영우, 이철희, 장정애, 조정문, 이정주, 이현웅, 정지은, 심재현 등 출연자 전원의 열연과 열창은 인상적이다.
무대디자인 김수희, 조명디자인 김창기, 의상디자인 김지연, 작곡 김철환, 안무 김재리, 분장디자인 최은주, 격투지도 쿠리하라 나오키, 통역·조연출·노래지도 손지형, 무대감독 변오영, 대본번역 박현숙, 홍보 송지숙, 프로튜서 강민경, 등 스텝 진 모두의 기량이 잘 드러났고, 국립극단 제작, 손진책 예술감독, 정의신 작·연출의 <푸른 배 이야기>를 기억에 오래 남을 연극으로 관객의 가슴과 뇌리에 심어놓았다.
8, 극단 물결의 우고 살세도 작, 김선욱 역, 송현옥 연출의 <돈데 보이>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우고 살세도(Hugo Salcedo) 작, 김선욱 역, 송현옥 연출의 <돈데 보이(Donde Voy)>를 관람했다.
원작의 제목은 <가객들의 여행(El viaje de los cantors)>이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멕시코계 미국인 티니 이니호사(Tish Hinojosa)가 1989년에 발표한 노래 <돈데 보이(Donde Voy)>로 제목을 바꿨다. 이 연극의 내용인 멕시코 인들이 좀 더 낳은 삶을 살기 위해 미국으로 불법 이민을 시도하는 절박한 상황을 노래로 표현한 것이기에 어울리는 제목이라 여겨진다.
우고 살세도(Hugo Salcedo)는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지난 2월 14일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멕시코 계 극작가로 <오나니아(Onania)> <페르베르소스(Perversos)> <가객들의 여행(El viaje de los cantors)>등의 작품이 있다.
연극은 도입에 출연자 전원이 망사막 뒤에 등장해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한 곳을 바라보는데서 시작한다. 장면이 바뀌면 저마다 손에 트렁크를 들고 무대를 가로질러 가고, 그 다음 통로로 해서 되돌아가는 장면이 반복된다. 그러다가 여인들이 기차 길 주변에 모여들어 자기 자신의 이야기와 다른 여인의 이야기를 하며 공통된 삶의 모습을 표방하면서 떠나간 남편을 생각한다.
남편은 인접국가로 밀입국하기 위해 기차를 탄 것으로 설정이 된다. 굵은 철제 파이프로 엮어 만든 직사각형의 입체조형물이 기차의 곳간이다. 스무 명 가까이 됨직한 남정네들이 비좁은 곳간 안에서의 정경이 펼쳐진다. 밀입국을 알선한 인물을 다짐하듯 닦달하며, 반드시 국경을 넘어야 할 각자의 의지와 입장, 그리고 별명에 어울리는 모습과 저 나름대로의 성격이 하나하나 드러나기 시작한다.
기차의 움직임은 여인들의 열망으로 움직이는 양, 여인들이 가로로 놓인 철제조형물을 밀고 끌어당기고 빙글 돌리면서 기차의 달리는 모습을 연출해 내고, 기차가 고장으로 멈춰선 장면은 철제조형물을 세로로 세워 정지된 상태를 절묘하게 표현해 낸다.
밀입국을 하려는 남정네들이 철제 파이프에 매달리거나, 붙들고 오르내리는 장면은 아슬아슬하기 그지없어 관객의 손에 땀을 쥐도록 만든다.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기차가 고장으로 멈춰서면서, 남정네들은 탈출을 시도하지만 곳간 문 뿐 아니라, 바닥의 숨구멍조차 낼 수 없이 밀폐된 것을 알고는 밀입국 알선자를 목조라 죽이고, 탈출을 해보려는 긴박하고 처절한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자 무대 앞뒤로 수많은 철제계단이 천정에서부터 내려와 밀입국자들이 사면팔방으로 철통 같이 감금되었음을 상징물처럼 부각시키기도 한다.
결국 법정에서 살아남은 한 사람의 증언으로 밀입국자 대부분이 질식사했음이 밝혀진다.
대단원에서 남편과 자식 그리고 연인을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로 떠나보낸 여인들이 다시 무대에 등장하고, 나이든 맹인여인의 슬픔에 잠긴 보행은 그녀의 지팡이와 더불어 비장 침울한 여운을 남긴다.
마지막 장면은 출연자 전원이 트렁크를 들고 등장해 바삐 무대를 가로질러가고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장면이 반복되면서 연극은 마무리를 한다.
<돈데 보이>는 멕시코와 미국 접경지역을 넘어가려는 멕시코 밀입국자들과 그들의 가족이나, 여인들의 이야기이지만, 남북 간의 군사분계선과 탈북자 문제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떠오르게 한다.
이 연극은 원작의 변형과 각색이 재창작 수준에 가깝고, 연출의 기량이 돋보인 공연이다.
정아미, 김충근, 이주원, 나현민, 조환준, 강경래, 송아영, 홍기준, 윤국희, 오주원, 안태영, 강지은, 장진호, 김예샘, 김수지 등 출연자 전원과 도상란, 정수영, 설옥순, 차명희 등 특별출연자, 그리고 김수정, 김지현, 김정한, 김경업, 박지연, 정초연 등 코라스 전원의 열연과 열창, 그리고 무용은 관객의 갈채를 받았다.
미술감독 표종현, 음악감독 김은정, 기술감독 정진철, 의상 류선정, 조명디자인 이주환, 악사 최윤혁, 디자인 송지연, 기획·홍보 김연정, 음향오퍼 박선봉, 조명오퍼 백하림, 조연출 박연주·서리나, 사진 브랜든 김, 등 스텝진의 기량도 돋보였고, 장경욱의 드라마트루기, 김유진 각색은 물론 극단 물결의 우고 살세도 작, 김선욱 역, 송현옥 연출의 <돈데 보이>를 독특하고 기억에 길이 남을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9, 극단 하땅세의 윌리엄 골딩 원작, 윤조병 번안, 윤시중 연출의 <파리 대왕>을 보고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극단 하땅세의 윌리엄 골딩 원작, 윤조병 번안, 윤시중 각색의 <파리 대왕>을 관람했다.
윌리엄 골딩(William Gerald Golding 1911~ 1993)은 영국의 소설가로<파리대왕>에서 인간악의 일면을 교묘하게 묘사했다. 또 인간의 극한상황을 설정하고 환상적이면서도 박진감이 있는 문체로 인간을 근본적으로 악으로 보는 심각한 인간관을 제기한 작품을 집필했다.
오랫동안 교직에 있어서 문단 데뷔가 늦었으나, 1954년 고도(孤島)에 상륙한 소년들이 원시적 생활을 전개하는 우화풍의 소설 <파리대왕 Lord of the Flies>(1954)에서 인간악의 일면을 교묘하게 묘사해 내고, <계승자들 The Inheritors>(1955)에서는 고대 원시인의 생활을 그렸으며, <핀처 마틴 Pincher Martin>(1956)에서는 대양(大洋)의 무인도에 혼자 남겨진 사나이의, 살았다고도 죽었다고도 할 수 없는 연옥(煉獄)과 같은 세계를 다루었다.
또한 교회 건축에서 자료를 얻어 인간의 본질적인 허무 위에 서서 그래도 노력을 계속하는 사나이를 그린 걸작 <첨탑(尖塔) The Spire>(1964) 발표, 이 작품에서 인간의 극한상황을 설정하고 환상적이면서도 박진감이 있는 문체로, 인간을 근본적으로 악으로 보는 심각한 인간관을 제시했다.
이 밖에 희곡 《구리 나비 The Brass Butterfly》(1958), 에세이 《열문(熱門) The Hot Gate》(1965) 등이 있고, 198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파리 대왕>의 원제인 ‘Lord of the Flies는 성경에서 나온 표현이다. 그리스도가 예로 든 마귀의 이름 “바알세불”이 바로 “파리”들의 “주님”이다. <Lord of the Flies>는 그 “바알세불”의 의미를 윌리엄 골딩이 영어식으로 표현한 것이고, <파리 대왕>이라는 제목의 원래 뜻은 “악마”를 의미한다.
무인도에 표류한 소년들이 사냥을 해 산돼지를 잡아 모닥불에 익힌다. 그러자 산돼지 대가리에 새까맣게 달라붙은 파리 떼, 이 파리들의 대왕이 극의 주제다. 비행기로 불시착한 소년들은 문명국에서 온 어린이들답게 무인도에서도 민주적인 회의를 소집한다. 거수투표로 대장을 뽑고, ‘소라 고동’이라는 발언권의 상징을 만들어 질서를 지키려한다.
주인공 랠프는 이성과 상식을 중시하는 문명인을 대변한다. 맨 먼저 소라를 발견하고 크게 불어 젖혀 아이들을 모은 것도 그다. 랠프에 대적하는 이는 잭이다. 사냥과 놀이를 좋아하며 호전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잭은 맘 속 깊은 곳에 잔인한 야수성을 숨기고 있는 권력 지향형 인간이다. 이 둘의 대립구도가 시종일관 팽팽하게 지속되면서 이야기는 일견 정치적 성향을 띤다.
불을 지켜 구조를 바라는 랠프와 산돼지 포획으로 배를 불리면 그만인 듯한 잭, 그 안에 끼지 못하는 나약한 몽상가 사이먼도 있다. 사이먼은 영적 구도자를 상징하는 듯하나, 종국엔 야만인들에 의해 집단 살해 당한다.
물론 ‘꼬마들’로 대변되는 무력한 복종자들도 등장한다. 우리 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류들이다. 권력이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서 이들은 울고, 소리를 지르고, 먹을 것을 주면 먹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다. 재미있는 건 이 꼬마들 가운데서도 강자와 약자가 갈린다는 사실이다.
이 한 편의 연극 속에 축약된 이 세계는 참으로 우스꽝스럽고, 단순하며, 비극적이다. 우화의 탈을 쓰고 있지만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가슴이 철렁할 정도다. 폭력을 휘두르고 평화를 외면하던 소년들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이 구조대가 나타나고, 악의 상징이던 소년은…..
무대는 반원형의 커튼으로 내부를 가득 채우고, 빈 무대에는 커다란 소라껍질이 한 가운데에 놓여있어 관객의 시선을 끈다. 반원형의 커튼은 흑과 백의 두 가지 색으로 구분해, 전제를 움직이거나, 부분을 이동시켜, 낮과 밤, 폭풍과 파도, 동굴, 화재 등의 극적변화에 대처하고, 조명으로 화재, 모닥불, 괴물의 형상, 기상의 변화, 그리고 이성적인 사고로의 전환으로까지 효과를 높인다. 의상과 소품도 <로빈손 크루소>나, <15소년의 표류기> <걸리버 여행기>에서처럼 완벽을 기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1992년에 제작된 “해리 후크” 감독의 영화 <파리 대왕>에서 크리스 퍼, 게리 룰, 다누엘 피폴리, 발타자르 게티 외 출연자들 전원이 자연 속에서 펼치는 연기도 볼거리였지만, 하땅세의 연극 <파리 대왕>에서 연출가의 기량으로 관객의 상상력을 이끌어내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대자연의 변화와 극적인 긴장감의 고취, 연기자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 등은 시종일관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는 요소가 되었다.
문숙경, 임세윤, 권제인, 박영희, 최병준, 임세환, 염용균, 유성주, 조정훈, 채충명, 민주홍, 이수현 등 출연자 전원의 일치된 호흡과 호연은 관객의 우레와 같은 갈채를 이끌어 냈고, 번안 윤조병, 보이스트레이닝 서상권, 작곡·음악감독, 남수한, 조명 조인곤, 의상 김상희, 오브제 옥종근, 분장 전인미, 음향 피정훈, 음향보 백인성, 사진 염용균, 그래픽 김솔·전현아, 기획 이길준·김휘연 등 스텝 모두의 기량과 열정이 잘 드러난, 한 팩 차세대공연예술가시리즈 극단 하땅세의 윌리엄 골딩 원작, 윤조병 번안, 윤시중 연출의 <파리 대왕>을 실험극적 성격과 상상력 우위의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10, 남산예술센터에서 극단C바이러스의 이문원 작, 이현정 연출의 <독살미녀 윤정빈>
이 연극은 일제치하인 1924년에 발생한 한 평범한 촌부의 남편살해사건에 일요신보의 말단기자가 절세미녀의 살인사건이라는 선정적인 제목을 붙이고, 자살을 택한 남편을 독살을 누명을 씌운 것이라 보도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대중의 무죄탄원을 이끌어내는 등 실제사건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사형선고를 받을 촌부가 재심에서 10년으로 감형이 되고, 또 잉태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3년 만에 석방이 된 사건을 내용으로 극적구성을 한 작품이다.
무대는 책상 세 개가 나란히 놓인 일요신보의 사무실이다. 말단기자가 기사작성에 몰두하는 장면이 극이 시작되기 전부터 보인다. 무대왼쪽에 조명이 들어가면 남편에게 포도주잔을 먹이는 촌부의 모습이 보이고, 남편이 잔을 마시고 쓰러지면 시어머니가 나타나 “살인이야!”하고 외치기 시작한다. 조명이 꺼지면서 다시 신문사로 전환되면, 국장과 여직원이 촌부의 남편살해사건을 말단기자에게 특종감이 되도록 기사를 부풀리라고 종용한다. 기자는 고민 끝에 “독살미녀 윤정빈 경성에 나타나다”라는 선정적인 제목으로 기사를 작성해 단숨에 독자들의 시선을 끌고, 판매부수의 급상승은 물론 여론의 총아가 된다. 법정에 선 독살여인의 모습은 흰 수의와 함께 당연히 절세미녀인 것으로 대중에게 인식, 파급된다. 대중은 독살미녀를 옹호하며 그녀의 무죄추정은 물론 석방탄원을 한다. 일부대중은 조선인 핍박이라며 품에 감춰둔 태극기를 펼쳐들고 독립만세를 부르기도 한다. 기자는 신보사 사장의 보너스 지급은 물론 당대 제일의 문필가인 이 춘원과도 상봉하게 된다. 그러나 춘원은 기사가 과장되었음을 알아차린 듯 기자를 대한다. 소설가지망생이기도 한 기자는 이 춘원에게 항의하며 친일파라는 호칭까지 하며 덤벼든다. 그러나 춘원은 그의 발언에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검찰에서는 그 기사로 인해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되니, 일심에서 무기수가 되었던 여인은 여론의 질타로 재심에서 10년 형으로 감형이 된다. 검찰은 일본인 담당 검사를 신보사로 파견해 말단기자를 접견하도록 한다. 일인 검사는 기자에게 거짓 과장 기사에 대한법적인 책임을 지울 것임을 명시하고, 진실을 밝히는 정정 보도를 하도록 명한다. 기자는 수감되어 있는 윤정빈을 면회한다. 윤정빈은 기자를 단번에 알아보고, 고마움을 표하면서 흰털실로 기자의 옷을 짜고 있음을 고백한다. 기자는 여인에게 남편을 살해한 것인지, 자살을 한 것인지를 묻는다. 여인은 쥐약을 먹고 자살한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기자에게 고마워하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든다. 결국 기자는 기사에 대한 책임을 물어 감옥살이 신세가 된다.
한편 윤정빈은 수감 중 아기를 잉태한 것으로 밝혀져 감형이 되고, 아기가 죽으니, 3년 형기를 채우고 석방된다.
기자와 여인은 해후를 하게 된다. 완성된 기자의 털옷을 건네며, 여인의 고백이 시작된다. 여인은 중매로 결혼을 했고, 남편이라는 인물은 첫날밤부터 성병에 걸린 불결한 몸으로 아내를 대했고, 그 후 지옥 같았던 성생활과 결혼생활이 계속되고, 여인은 우연한 기회에 다른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그 남정네와 계속 통정을 해온 사실을 고백하고, 또 쥐약을 탄 와인을 먹여 남편을 실제로 살해한 사실도 털어놓는다. 기자는 충격을 받고 실신한 듯 눕는다, 진실을 은폐라도 하려는 듯 여인은 털옷 속에 감춰둔 독이 든 와인을 꺼내 기자에게 먹인다. 기자 역시 그녀의 남편처럼 절명한다.
대단원에서 춘원에 의해 기자가 이 내용을 소설화하려던 것으로 소개가 된다. 기자를 혹독하게 담당했던 일인 검사는 춘원의 절친한 친구인 것으로 드러나고, 검사는 일본인이 아니라 조선인이라는 것이 객석에 충격적으로 전달되면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선명균, 김지영, 이종윤, 김태훈, 신용진, 신동선, 이은주, 강해랑, 김승기, 김청순, 신현진, 이두리, 장 선, 한아름솔,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은 관객을 시종일관 극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작곡/음향 오현진, 무대디자인 유영봉, 조명디자인 공연화, 의상디자인 최 원, 소품디자인 김동영, 분장디자인 이동민, 조연출/무대감독 권혜영, 기획 홍앤유 등 스텝 진 모두의 기량이 돋보였고, 극단C바이러스의 대표이자 작가인 이문원의 출중한 극작과 함께 이현정의 비범한 연출력이 하나가 되어 서울문화재단 주관, 남산예술센터&극단C바이러스 공동제작 <독살미녀 윤정빈>을 새봄과 더불어 활짝 피어난 꽃망울처럼 향기 만발하고 흥미로울 뿐 아니라, 볼품 있는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3월20일 박정기(朴精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