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프랙탈 : <기막힌 동거>
2013년 신춘문예 단막극제 서울신문 당선작
박연숙(공이모 평론가/ 숭실대 교수)
공연일시: 2013년 3월 21일- 26일
공연장소: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
작: 임은정
연출: 박원경
출연: 박정재 임은연 이승기 홍의준 김세희 김예림
관람일시: 3월 22일, 26일
<기막힌 동거>는 서민들의 주택문제를 코미디로 풍자한 작품이다. 무대가 예쁘다. 좁은 방 한 칸의 중앙 뒤편에는 큰 벽시계가 있고, 전면에는 테이블과 의자 둘, 오른편에는 간이침대와 옷걸이, 왼편에는 간단한 주방과 상자가 배치되어 있다. 조명으로 방의 크기를 좁게 잡아두어 서민들의 단칸방 이미지를 살려냈다. 음향은 시계 초침 소리를 제외하고 최대한 절제하였다. 깔끔한 무대, 절제된 음향, 동작의 완급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필자는 22일과 26일 2번 공연을 보았는데, 22일 공연에서는 배우들의 연기가 다소 겉돌고 성급하게 대사를 치는 바람에 완성도가 낮았지만 26일에는 이런 문제들이 많이 극복되었다.
<기막힌 동거>의 중심인물은 휴학한 대학생 아영이다. 야간에 사우나(또는 찜질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하고 있다. 그녀는 보험사에 다니며 전남편의 카드빚을 갚아나가는 숙자의 월세 방에 살고 있다. 한 방을 같이 쓰는 것이 아니라 오전 8시에서 밤8시까지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아영이, 밤 8시에서 아침 8시까지는 회사에서 퇴근한 숙자가 지낸다. 엄밀히 말하면 이 둘은 같은 방을 다른 시간에 살고 있는 개별 세입자이다. 이처럼 세든 방에 또 다른 세입자를 구하는 구조는 이 작품의 결말에까지 반복되고 있다. 단칸방에 세를 든 숙자, 숙자에게 12시간을 세든 아영, 아영에게 6시간을 세든 동곤이 기본적인 틀이다. 여기에 주인집 아들이 등장하고 아영은 그에게도 자신에게 남은 6시간을 세준다. 아영은 숙자에게 월세를 전혀 내지 않아도 되는 조건으로 동거를 제안한다. 동곤의 대사에서처럼, 세 준 놈, 그 위에 세 준 놈, 그 위에 세 준 놈의 컨셉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결말을 너무 일찍 예측하게 한 점이다. 소재는 좋은데 스토리 전개가 밋밋하고 사건이 반복되어 아쉽다.
이 작품의 인물들은 모두 우리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아영은 값비싼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내몰린 대학생들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동곤은 꿈도 목표도 상실한 채 연애할 겨를조차 없이 고단하게 살고 있는 청년의 모습이다. 숙자는 결혼의 실패를 뒤로하고 혼자의 힘으로 애쓰며 살아가고 있는 중년의 생활을 보여준다. 집주인은 월세 보증금을 올려 받기 위해 꿍꿍이를 꾸미는 소시민의 모습이다. 사실, 이 작품의 인물들에게서는 선과 악의 대비가 없다. 모두가 살기위해 아등바등 몸부림칠 뿐이다. 집주인조차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군식구가 눈에 보일 때마다 수첩에 추가 사용료 내역을 꼼꼼히 적을 때는 악독하게 보이지만 세입자에게 내줄 보증금이 없어 쩔쩔맬 때는 안쓰럽기도 하다. 고단한 몸으로 쉬고 있는 아영의 모습은 동정을 사지만, 동곤에게 더 많은 세를 올려 받을 때는 주인집 여자와 다르게 보이지 않고, 주인집 여자에게 세를 더 올려줄 것처럼 연기하다가 보증금이 없다는 약점을 이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달성할 때는 얄미워 보인다. 동곤은 숙자를 인정머리 없는 사채업자로 부를 때는 약자처럼 보이지만 아영 몰래 또 다른 세입자를 들이는 담대함에서는 앞서의 인물들과 다르지 않다. 뚜렷한 대비 대신 서로가 서로를 닮아가고 더 작은 가지치기의 무한대로 나아간다.
연출에 있어서 의문이 드는 점이 있다. 중앙의 큰 시계가 중요한 오브제이긴 하지만 시간의 흐름을 정확히 보여주지 못할 바에는 시간을 가리키는 시계는 혼동을 야기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극 초반의 8시는 숙자와 아영이 서로 교대하는 시간으로서 의미 있는 시간이지만, 이후의 시계는 오후인지 오전인지의 혼동과 더불어 교대할 시간을 정확히 가리키지 못할 때가 있었다. 시침과 분침은 정지해있고, 배우가 시계로 다가가 시간을 맞추는데, 그 동작을 매번 하는 것도 번잡스럽고, 그 동작을 생략하면 극의 시간과 일치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애초에 디지털 시계를 사용하면서, 정확한 시간에만 불이 들어오고, 그렇지 않은 때는 불이 커지는 것은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세입자들로서는 자신이 점유할 수 있는 시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숙자와 아영은 휴대폰을 보고 시간을 맞춘다. 그런데 동곤은 둥근 벽시계를 몸 위에 얹어 놓고 잔다. 전혀 그럴법하지 않은 오브제이다. 더구나 동곤에게는 이불과 세면도구 등 살림살이가 한 짐이다. 짐이 많은 것을 강조하기 위해 둥근 벽시계를 지정했는지는 몰라도 동곤에게는 어울리지 않은 소도구이다. 코메디 요소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주인아들이 방에 들어왔을 때 아영이 도끼 같이 큰 칼로 위협할 때도 마찬가지 이유였을 것이다.
연기에 있어서 집주인 역의 임은연 배우의 연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자연스럽고 긴장되지 않은 연기가 돋보였다. 숙자 역의 김세희 배우와 아영 역의 김예림 배우의 앙상블은 공연 횟수가 더해지면서 좋아졌다. 동곤 역의 이승기 배우, 장여사 역의 박정재 배우, 주인아들 역의 홍의준 배우도 무리 없이 소화해주었다. 6인의 배우들간에 연기의 폭이 크게 차이나지 않은 점이 강점이었다. 다만 주인 아들의 연기는 다소 약했다. 그래서인지 주인 아들의 비중 또한 상대적으로 약했다. 세입자들이 각자의 시계를 들고 문 앞에서 시계 음향에 따라 원을 그리는 장면에서도 주인 아들은 제외되었고, 세입자들이 시간에 맞춰 웅크리고 잠들다 출근하는 장면에서도 주인 아들만 빠져있었다. 주인아들이 아영의 6시간을 사용하기로 한 엄연한 시간 세입자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장면에서만 등장하고 마는 것은 의아했다.
이 작품에서는 의도적으로 연기를 느리게 한 지점이 있다. 숙자가 거울을 보며 로션을 바르고 있을 때 아영이 들어오는 장면인데, 방문이 열리기 전까지 슬로우 모션으로 연기한 점이 재미있었다. 이때 시계가 8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그 시간이 오전인지 오후인지가 처음에는 분명하지 않았다. 조명은 어두웠고, 여자들은 퇴근 후 밤에도 로션을 꼼꼼히 바르고 머리단장도 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오후 8시라고 생각했었다. 숙자가 출근하기 위해 나가는 것을 보고서야 오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대 위의 시계만으로는 오전과 오후의 차이를 알 수 없어 혼동이 야기되었다.
이 작품은 신선한 소재의 블랙 코미디이다. 작가 임은정의 후속작을 기대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