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극 일시: 2013/03/22 20:00
공연 장소: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작: 장-뤽 라갸르스
연출: 까띠 라뺑
번역/드라마트루기: 임혜경
극단: 프랑코포니
장 뤽 라갸르스가 젊은 나이에 지병으로 요절한 것처럼 연극 <단지 세상의 끝>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고, 지난번에 프랑코 포니 극단에서 공연한 까띠 라뺑 연출의 <난 집에 있었지, 그리고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의 속편이라는 느낌이 드는 연극이다. 연극의 도입에 장남이 귀가하면, 세상의 모든 가족처럼 10년 만에 귀가한 장남을 반기는 모습이 각자 신상발언처럼 이어진다. 예쁘고 발랄한 누이동생은 누이동생대로, 동생의 미모의 아내는 제수씨다운 모습으로, 어머니는 자애롭고 부드럽게 장남을 반긴다. 다만 동생은 반가운 기색을 보이지 않아 이상스럽게 여겨지지만, 후에 그것은 동생의 성격이 그래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알게 된다. 가족들 각자의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정작 귀향한 장남의 그간의 행적에 관해서는 가족들은 별반 관심이 없는 듯하고, 귀가한 장남 자신도 묵묵히 듣기만 할 뿐 자신의 의사나 행적을 가족에게 꺼내놓지 않는다. 소위 현재 각종 언론이나 미디어에 회자(膾炙)되는 가족 간의 소통부족임이 분명하다. 대신 장남은 장면이 바뀔 때마다 객석에 독백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한다. 향후 계속되는 어머니, 누이, 동생 댁, 그리고 동생과 대화가 각기 장남과 개별적으로 이어지고, 각자의 개성과 생각이 드러나지만, 장남이 떠나갈 기색을 보이지 않았음에도 등을 떠밀다시피 하며 형을 차로 바래다주겠다며 일어서기까지 하는 동생의 모습과 그것을 당연시 하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가족관과 서구의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가족관의 차이를 감지하게 되지만, 점차 서구화 되어가는 우리의 모습과 가족 간의 소통 부족이 우리의 앞으로의 모습을 예견하게 되는 듯싶어 씁쓸한 느낌이 든다. 대단원에서 장남은 배낭을 들쳐 메고 집을 떠나며 수직으로 깔린 레일을 한 걸음 한 걸음 밟으며 독백을 한다. 소리 지르지 않고, 후회하지도 않고, 일 년 뒤에 다가올 죽음과 함께 영원한 망각으로의 길로 발을 옮기며.
– 박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