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IS 한담만문]
평론시대의 종말
백승무(TTIS 편집주간 대행)
평론의 위상과 기세가 곤두질 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창작자들은 평론 매개 없이 관객과의 직접 소통을 선호할 뿐만 아니라, 평론의 개입을 무용하거나 무익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관객 수준이 높아져서, 혹은 감성이 달라져서 평론의 정문일침도 필요 없어졌고, 공연의 장단점을 제대로 석명하는 대경대법의 평론도 드물어졌다. 연극평론전문잡지인 <<연극평론>>과 <<공연과 이론>>의 발행부수는 공개하기 부끄러울 정도이다. 이미 기록과 연구 이상의 의미는 찾기 힘들다. 평론은 존재해도 평론시대는 갔다.
오늘날 평론을 지탱하는 권위의 원천은 지원 심사이다. 평론가의 글이 지원서 작성에 도움이 된다거나 심사위원으로 평론가가 배석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런 심사권력이 아니면 평론이 설 자리는 참 무색하다. 예전에 교수직함에 연극평론가 타이틀은 그럴듯했다. 권위와 전문성을 공인받는 이름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현장평론가의 절반 이상은 비정규직 강사들이다. 강사들에게 평론은 생업도 아니고 임용을 위한 효자도 아니다. 10년만 지나도 교수-평론가는 대한민국에서 희귀종이 될 것이다.
헌데 이 심사권력조차 위태롭게 됐다. 블랙리스트 사태는 평론의 공정성과 진정성에 치명타를 날렸다. 심사를 통해 지원배제를 최종적으로 실천한 것은 평론과 말단공무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반성문 하나 없이 얼렁뚱땅 넘어갈 태세다. 평론이 심사권력에서 제외되어도 할 말이 없다. 어쩌면 일정자격자에게 일괄 지원하는 제도가 생겨나 심사권력 자체가 해체될 지도 모르겠다. 종두득두이다.
유일하게 독자와 소통하는 연극잡지인 <<연극인>>(webzine.e-stc.or.kr)의 ‘한줄평’에는 평론의 권력과 권리는 어디서 오는지 묻는 댓글이 허다하다. 공정성의 문제가 아니라 그 권리 자체를 묻는다는 점에서 전복의 기운까지 느껴진다(연극인이라면 방문을 권하는 바이다). 평론은 이에 답해야 한다. 답하지 않으면 퇴출된다. 곰방대 들고 공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훈수 두는 시절은 지났다. 1,000명도 읽지 않는 평문을 써놓고 기록용이니 연구용이니 셀프 ‘쉴드’치는 것도 객쩍다.
평론의 기능과 의미가 바뀌었다. 전통적 권력도 사라지고 있다. 새로운 가치와 역할을 찾아야 한다. 창작물에 비평을 가함으로써 존재증명을 하던 평론이 아니라, 창작 과정에 개입하는 평론, 나아가 창작 환경 개선을 위해 협력하는 평론이 되어야 한다. 만성적자와 온갖 부조리가 판치는 열악한 제작 환경을 외면하고 최종 창작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언어폭력에 가깝기 때문이다.
평론은 더 이상 고고한 영역도, 도도한 신분도 아니다. 앞서서 길을 비추는 선도 시대는 끝났다. 연극평론가는 이제 ‘연극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드라마투르그 활동도 강화해야하고 ‘관객과의 대화’라는 새로운 관극문화에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평론 영역 확장과 소통방식 변화에도 팔 걷어야 한다. 팟캐스트나 앱개발도 서둘러야 하고 SNS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각종 지원제도도 요구해야 한다. 평론은 이제 실천과 활동의 영역이 되어야 한다. 평론이 사는 길이고 연극이 서는 길이다.
만시지탄이라 해야 할지? 늦었지만 ttis에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것은 연극계를 위해 정말 다행한 일이요. 백편집인의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기대가 크오. 먼저 건강이 나뻐져 긴글을 쓰지 못함을 양해해 주십시요.
개그맨이 성공하면 MC가 되듯, 평론이 성공하면 대학의 전임이 되고, 대학에서 경력이 붙으면 ‘심사’로 나서는 게 우리의 풍토인 것 같소. 이제는 ‘정치판’을 기웃거려 소란을 피우기도 하고.
내 개인 소견은 평론가의 글이 ‘해당연극을 보지 않은 사람들’이 읽어도 흥미로워야 한다는 것이요. 그 수준이 되어야 평론가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소. 어렵게 써야 ‘권위’를 인정받는 풍토가 사라진 것을 반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지?
한국연극은 평론가만이 아니라 극작가도, 연출가도, 배우도 ‘남을 위해’ 봉사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배우도 객석에 대사가 들리지 않으니까, 그래서 관객과는 멀어지고, 지원금과는 가까운 사이가 된 게 연극판인 것 같소.
좌우간 백편집인의 건투를 빌고 싶소.
선생님의 진심어린 말씀 잘 새겨듣겠습니다. 능력이 모자라 제대로 건사할지 모르오나 여건이 닿는대로 애쓰겠습니다. 어서 쾌차하시어 연극계를 바로 세우는 좋은 글을 보내주십시오. 선생님의 만강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