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기의 공연산책 2013년 4월 공연총평
박정기
필자가 3월20일부터 4월말까지 관람한 작품은
- 극단 집현의 김태수 작, 이상희 연출의 <트라우마 in 인조>(인천 학산소극장),
- 극단 프랑코포니의 7번째 공연 장 뤽 라갸르스(Jean-Luc Lagarce)작, 임혜경 번역·드라마트루기, 까띠 라뺑(Cathy Rapin)연출의 <단지 세상의 끝(Juste la fin du monde)>(장충동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 극단 작은신화의 김숙종 작, 최용훈 연출의 <콜라소녀>(학전블루소극장), 극단 고래의 이해성 작·연출 <빨간 시>(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김현탁 작·연출 <열녀춘향>(게릴라극장),
- 국립창극단의 이청준 원작, 김성녀 예술감독, 김명화 극본, 윤호진 연출, 안숙선 작창, 양방언 음악, 계성원 지휘의 <서편제>(국립극장 해오름극장),
- 극단 여행자의 산울림고전극장 마지막 작품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작, 이대웅 연출의 <라쇼몽>(산울림소극장),
- 광명시 주관, 광명시의회 후원의 시민어울림프로젝트로 허현호 총제작, 이상용 작·연출의 악극 <부모님 전상서>(광명시민회관),
- 마이크 바틀렛 (Mike Bartlett) 작, 이상우 역·연출의 <Love, Love, Love>(명동예술극장),
- 극단 한네의 전국연극제 경기도대회 참가작 최병화 작·연출의 <그 여자, 이브>(의정부예술의전당),
- 故 윤영선 작, 황두진 연출의 <파티>(게릴라극장),
- 극단 작은신화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서광일 각색, 이곤 연출의 <맥베드>(예술공간 상상 화이트홀),
- 롤란트 시멜페니(Roland Schimmelpfennig)히 작, 이원양 역, 윤광진 연출의 <황금용(黃金龍)>(대학로예술극장대극장),
- 손숙, 연기50주년 기념공연, 오증자 작, 임영웅 연출의 <나의 황홀한 실종기>(산울림소극장), 서울시극단의 김혜련 예술감독, 강철수 원작, 장경섭 각색, 위성신 연출의 <칼잡이>(세종M시어터),
- 극단 성(城) 30주년기념공연 나혜석 원작, 김성열 연출의 <파리의 그 여자>(수원청소년문화센터),
- (주)악어컴퍼니의 김유리 원작, 박은혜 작, 강유선 연출의 <옥탑방 고양이>(대학로 틴틴 홀),
- 국립극단의 소포클레스 원작, 강태경 번역, 김민정 각색, 한태숙 연출의 <안티고네>(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 2013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인 서울연극앙상블과 극단 인어의 최원석 작, 박찬진 연출의 <불멸의 여자>(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 역시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인 극단 거미의 카렐 차펙(Karel Čapek) 작, 김제민 연출·영상, 김석만 멘토, 오민아 드라마투르크의 <알유알(R.U.R)>,
- 공식참가작 극단 지구연극연구소의 김태수 작, 차태호 연출의 <일지춘심(一枝春心)을 두견이 알랴>(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 기획초청작, 극단 창세의 백석현 작·연출의 <살아남은 자들>(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 한강아트컴퍼니의 김인경 작, 위성신 연출의 <염 쟁이 유씨>(예술공간 혜화),
- 서울연극제 미래야 솟아라, 극단 후암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차현석 작/연출의 <미디어 콤플렉스>(예술공간 서울),
- 역시 미래야솟아라 극단 원형무대의 최원종 작, 김현진 연출의 <삿포로에서의 윈드서핑>,
-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 극단 연우무대의 이양구 작, 문삼화 연출의 <일곱집매>,
- 극단 창의 위기훈 작, 홍창수 연출, 홍원기 협력연출의 <인간대표 쇼>,
- 극단 대학로극장의 윤미현 작, 이우천 연출의 <평상>,
- 극단 광대무변&The Well 제작·기획, 유인촌 연출, 강혜정 예술감독의 낭독공연 <괴테와 구노의 만남, 파우스트>(청담동 유시어터),
-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의 미래야솟아라 오세혁 작·연출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너를 지켜줄 거야 친구야>(예술공간 서울),
- 서울연극제 기획초청작 부산극단 예도의 이삼우 작·연출, 이선경 각색의 <선녀 씨 이야기>(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 그리고 한국연극연출가협회가 마련한 아시아연출가전의 3작품, 대만 여류연출가 부유혜(傅裕惠)의 안톤 체호프 작 <바냐 아저씨>,
- 일본 여류연출가 코바야시 나나오(小林 七緖) 연출의 <벚꽃동산>,
- 그리고 한국 이정하 연출의 <결혼피로연> 등이다.
이중 특기할만한 공연을 평하고, 아시아연출가전은 별도로 평하겠다.
1, 극단 프랑코포니의 장 뤽 라갸르스 작, 임혜경 번역·드라마트루기, 까띠 라뺑 연출 <단지 세상의 끝>(장충동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극단 프랑코포니의 7번째 공연 장 뤽 라갸르스(Jean-Luc Lagarce)작, 임혜경 번역·드라마트루기, 까띠 라뺑(Cathy Rapin)연출의 <단지 세상의 끝(Juste la fin du monde)>을 관람했다.
장 뤽 라갸르스(1957~1995)는 프랑스 작가로 <난 집에 있었지, 그리고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J’etais dans ma maison et J’attendais que la pluie vienne)>와 <단지 세상의 끝(Juste la fin du monde)>이 숙명여대 임혜경 교수 (문과대학장)에 의해 번역·공연되어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극장을 들어서면 배경 가까이 사다리 한 개가 천정까지 연결되어 걸쳐져 있고, 흰색 옷을 입은 남성이 사다리 중간쯤에 정지된 모습으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배경전체가 하늘과 구름문양으로 온통 뒤덮이고, 사다리 오른쪽에 등퇴장 로가 만들어져 있어, 통로의 외벽에는 직사각의 창이 뚫려있고, 내벽도 마찬가지다. 왼쪽 벽면과 오른쪽 벽면에 커다란 합판을 비스듬히 기대놓았고, 무대 주위에 철로의 레일을 원형으로 깔아놓고, 객석 출입구에 연결된 레일은 직선이다. 무대 중앙에는 긴 대형소파와 작은 소파를 비치했고, 무대 앞 왼편 객석 가까이에 흔들의자 한 개 놓이고, 오른쪽에는 네 댓 칸짜리 발틀이 놓여있다.
연극이 시작되면 사다리에 멈춰있던 남성이 내려와 객석 가까이 다가온다. 자신은 34세의 나이로 죽을 것임을 이야기하고,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이 책임 있는 자의 모습이고, 자신의 삶의 주인이라는 독백을 한다.
장 뤽 라갸르스가 젊은 나이에 지병으로 요절한 것처럼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고, 지난번에 이 극단에서 공연한 <난 집에 있었지, 그리고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의 속편이라는 느낌이 드는 독백이다. 그리고 가족들, 어머니, 남동생 내외, 그리고 여동생이 등장하고, 세상의 모든 가족처럼 10년 만에 귀가한 장남을 반기는 모습이 각자 신상발언처럼 이어진다. 예쁘고 발랄한 누이동생은 누이동생대로, 동생의 미모의 아내는 제수씨다운 모습으로, 어머니는 자애롭고 부드럽게 장남을 반긴다. 다만 동생은 반가운 기색을 보이지 않아 이상스럽게 여겨지지만, 후에 그것은 동생의 성격이 그래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알게 된다.
가족들 각자의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정작 귀향한 장남의 그간의 행적에 관해서는 별반 관심이 없는 듯하고, 귀가한 남성자신도 묵묵히 듣기만 할 뿐 자신의 의사나 행적을 가족에게 꺼내놓지 않는다. 소위 현재 각종 언론이나 미디어에 회자(膾炙)되는 가족 간의 소통부족임이 분명하다. 대신 장남은 장면이 바뀔 때마다 객석에 독백으로 의사를 전달시킨다. 향후 계속되는 어머니, 누이, 동생 댁, 그리고 동생과 대화가 각기 장남과 개별적으로 이어지고, 각자의 개성과 생각이 드러나지만, 장남이 떠나갈 기색을 보이지 않았음에도 등을 떠밀다시피 하며 형을 차로 바래다주겠다며 일어서기까지 하는 동생의 모습과 그것을 당연시 하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가족관과 서구의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가족관의 차이를 감지하게 되지만, 점차 서구화 되어가는 우리의 모습과 가족 간의 소통부족이 우리의 앞으로의 모습을 예견하게 되는 듯싶어 씁쓸한 느낌이다.
대단원에서 장남은 배낭을 들쳐 메고 집을 떠나며 수직으로 깔린 레일을 한 걸음 한 걸음 밟으며 독백을 한다. 소리 지르지 않고, 후회하지도 않고, 일 년 뒤에 다가올 죽음과 함께 영원한 망각으로의 길로 발을 옮기며.
김은석이 장남, 지영란이 어머니, 강일이 남동생, 김혜영이 동생댁, 박묘경이 누이동생으로 출연해 나름대로의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연극을 이끌어간다.
심채선의 무대디자인, 최보윤의 조명디자인, 황강록의 작곡, 강기정의 의상, 장경숙·박경희의 분장, 김우정의 안무, 김보경의 웹마스터·사진, 박소윤의 조연출, 이은현의 자막오퍼, 박재현의 다자인, (주)문화아이콘의 기획 등 모두의 기량이 돋보인, 프랑코포니극단 제작의 장 뤽 라갸르스 원작, 임혜경 번역·드라마트루기, 까띠 라뺑 연출의 <단지 세상의 끝>을 쌀쌀한 봄바람처럼 살갗을 스치며 몸과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길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2, 국립창극단의 이청준 원작, 김성녀 예술감독, 김명화 극본, 윤호진 연출, 안숙선 작창, 양방언 음악, 계성원 지휘의 <서편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국립창극단의 이청준 원작, 김성녀 예술감독, 김명화 극본, 윤호진 연출, 안숙선 작창, 양방언 음악, 계성원 지휘의 <서편제>를 관람했다.
이청준(李淸俊 1939~2008)의 <서편제>는 1976년 “뿌리깊은 나무”에 처음 발표되었고, 연작소설집<남도사람>에 수록되어 있는 단편이다. 한과 소리, 억압과 예술에 대한 주제를 다룬 총 8편으로 구성된 연작소설집, <남도사람>중에 제일 먼저 창작되었다.
내용은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소리꾼 남매의 가슴 아픈 한에서 피어나는 소리의 예술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일정한 직업 없이 떠돌아다니는 소리꾼이 자기 딸 또한 소리꾼으로 묶어두기 위해 두 눈을 멀게 한다. 딸이 잠자는 사이 두 눈에 청강수를 넣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눈으로 뻗칠 사람의 영기가 귀와 목청 쪽으로 옮겨가서 목소리가 비상해진다는 것이다. 좋은 소리를 위해서 일부러 두 눈을 멀게 한다는 비극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다. 소설의 작중화자와 주인공이 이중, 삼중으로 겹쳐지는 방법을 통해 진술되어 각 연작소설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 작품과 이어지는 7편의 연작소설에는 <소리의 빛> <선학동 나그네> <새와 나무> <다시 태어나는 말> <살아 있는 눈> <눈길> <해변아리랑>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소리의 빛> 은 <서편제>의 속편이라 할 수 있다.
<서편제> 와 <소리의 빛> 을 묶어서 김명곤의 시나리오로 임권택이 영화화한 것이 <서편제>이며, 백만이 넘는 많은 관객의 호응을 얻기도 하였다. 그 후 <선학동 나그네> 를 원작으로 하여 임권택 감독 100번째 영화 <천년학>이 제작되었다.
뮤지컬로는 2011년에 조광화 극본, 윤일상 작곡, 이지나 연출로 공연이 되었고, 창극으로는 1993년에 영화 <서편제> 개봉이후 20년 만인 2013년 3월에 국립창극단(단장 김성녀)에 의해 최초로 창극 <서편제>가 공연된 것이다.
무대는 문경새재 첩첩산중의 산골짜기를 동양화처럼 펼쳐놓았다. 이 산골짜기는 영상이나, 조명효과에 따라 넘실대는 파도로 묘사되기도 하고, 봄꽃이나 단풍의 영상을 투사해, 계절의 변화를 나타내기도 한다. 또한 천정에서부터 흰 천을 드리우고 폭포의 장관을 연출해 내기도 한다. 특히 배경 막에 한 쌍의 학이 서서히 날아가는 영상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무대중앙에는 평상이 있고, 장면에 따라 무대 밑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된다. 오케스트라 박스에서는 국악관현악단이 연주를 하고, 무대 안쪽에서의 피아노 연주음도 들린다.
창극의 도입에는 영화 서편제의 명장면을 연상시키는 소리꾼과 그의 아들과 딸이 진도 아리랑을 부르며 산길을 돌아 내려온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부르는 소리와 함께 이들의 어려운 삶과 생활이 하나하나 펼쳐진다. 아비는 소리를 가르치고, 아들은 고수로 장단을 맞추고, 딸은 명창이 되려고 노력하는 장면이 자못 비장하기까지 하다. 남매지간이기는 하지만 오라비는 의붓아들이라, 배고픔과 아비의 닦달을 견디다 못해 가끔 대어들기도 하지만, 누이동생의 제지로 화를 가까스로 가라앉힌다. 어느 땐가 비에 젖어 기진한 누이를 오라비가 온몸으로 따뜻하게 안아주려는 것을 아비의 눈에는 불측한 행동으로 비추어져, 오라비는 실컷 두드려 맞고 내쫓기는 운명 같은 이별장면이 펼쳐진다. 그 후 아비는 딸을 붙잡아 두기 위해 청강수를 먹여 장님을 만드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눈이 멀어야, 지고의 득음으로 명창이 될 수 있다는 변명 비슷한 말을 늘어놓으니, 객석은 분노와 안타까움으로 술렁댄다. 하지만 맹인 테너 조진걸이라든가, 세계적인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의 음색이 아름답고 기량이 탁월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맹인이 된 딸 때문인지, 이 창극에는 <심청가>가 복선으로 깔린다, 극의 중간에 아비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간 내용이라든가, 대미에 심 봉사가 눈을 뜨는 장면은 극의 내용과 절묘하게 어울려 객석으로부터 우레와 같은 갈채를 이끌어 낸다.
중간에 양념처럼 끼어 넣은 명창선발대회도 관객의 흥미를 진작시키는 장면이다.
노년의 아비가 저세상으로 가고, 홀로 된 딸이 소리로 생활을 영위할 때, 드디어 20년간 헤어졌던 오라비가 찾아와 누이와 마주 앉아 내력을 캐묻고, 누이가 소리를 시작하니 북채로 장단을 맞춘다. 북채장단소리에 누이는 오라비가 왔음을 깨닫는다는 원작의 내용이지만, 이 창극에서는 남매의 소리와 장단이 <심청가>의 마지막 대목인 왕비가 된 심청의 아비 심학규의 눈뜨는 장면에서 마무리가 된다.
안숙선, 이소연, 민은경, 김준수, 임현빈, 왕기석, 박애리, 김금미, 김미진, 왕기철, 그 외 국립창극단원이 출연해 열창과 열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남녀 명창들이 딸 역과 아들 역을 연령별로 나누어 출연하는 것도 볼거리다.
작창 안숙선, 작곡·연주 양방언, 편곡·지휘 계성원, 무대 박동우, 조명 구윤영, 영상 정재진, 한국화 김묵원, 의상 김지연, 조연출 안재승, 장병욱 등 모두의 기량이 드러난, 국립창극단의 이청준 원작, 김성녀 예술감독, 김명화 극본, 윤호진 연출의 <서편제>를 한편의 명화 같은 명작창극으로 탄생시켰다.
3, 광명시민회관, 허현호 총제작, 이상용 작·연출의 악극 <부모님 전상서>
광명시민회관에서 광명시 주관, 광명시의회 후원의 시민어울림프로젝트로 허현호 총제작, 이상용 작·연출의 악극 <부모님 전상서>를 관람했다.
1930, 40년대에 활발한 공연을 펼쳤던 악극은 당시 전성기를 이루었다. 1950년대 6 25 동란 중에도 전방에서는 병사들을, 후방에서는 피난민들을 위한 악극공연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피난시절 악극단들과 군 예대는 문화적으로 공동화(空洞化)된 서울보다는 피난민들이 모인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그 활동은 전전(戰前)의 것을 반복, 재생산하는 데 그치고, 공연은 계속되었지만 새로운 창작물은 없는 형편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전후에는 악극이 영화나 여성국극, 그리고 각종 쇼 등의 다양한 볼거리의 홍수 속에서 서울의 중앙 무대에서 차츰 사라지게 된다. 1950년대에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악극단은 전옥이 이끄는 백조가극단이었는데, 이 단체는 1930년대 <화류비련> 같은 통속적 신파극의 영향 아래 여주인공의 수난을 부각시켜 관객의 동정을 이끌어내는 <노래하는 신파비극>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백조가극단처럼 전쟁 중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악극단들도 전후에는 흥행의 부진 속에서 <버라이어티 쇼>를 첨가하는 등의 자구책을 탐구했지만, 결과는 악극의 퇴조만 더욱 가속화시켰을 뿐이었다. 1950년대 중반 악극단 출신 연예인들이 대거 영화나 쇼로 활동무대를 옮기고, 관객들은 새로 등장한 대중연예들로 눈을 돌리면서, 악극은 궁핍하고 어려웠던 시절의 ‘노스탤지어’로 호명될 뿐 빠르게 잊혀져갔다.
그러나 2000년대를 전후해 극단 가교를 비롯한 몇 개 극단에서 악극공연이 이루어지고, 현재는 한국연극배우협회(회장 최성웅)와 한국악극보존회(회장 허현호)에서 대도시 및 지방순회를 통한 악극공연이 중장년층과 노년층의 관람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음은 주목할 일이다.
악극 <부모님 전상서>는 부모의 병 치료와 호구지책으로 부자 집 씨받이로 팔려간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이 내용이다.
1950년대 농촌지역 서민들의 애환과 빈한한 삶이 펼쳐지고, 부잣집 가장의 뻔뻔스런 엽색행각이 아들을 얻기 위해서라는 변명으로 계속되고, 씨받이 구실을 못해 결국 그 집에서 쫓겨난 여주인공이 술집작부신세로까지 전락하지만, 여주인공을 사랑하던 고향 청년의 도움으로 귀향을 한다. 그러나 그리워했던 부모는 이미 저세상으로 떠난 뒤라는 비통한 이야기다.
무대는 첩첩산중, 소나무와 참나무가 우거지고, 손바닥 만 한 논밭이 그림처럼 펼쳐진 한 가난한 농가와, 장면이 바뀌면 기왓골이 번듯한 부잣집 가옥과 너른 마당이 눈에 들어오고, 그리고 도시 철로주변 술집밀집지역의 한 주점이 무대가 되는가 하면, 대단원에서 다시 고향마을이 펼쳐지게 된다.
노래는 귀에 익은 흘러간 대중가요에서부터 동요, 그리고 흑백영화시절의 영화주제가와 각설이타령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악극에 등장하고, 남녀의 활기차고 역동적인 무용이 악극의 도입과 마무리를 장식한다. 특히 해설자로 등장한 한국연극배우협회 최성웅 회장의 사회에서부터, 각설이 역, 작중인물이나 일인다역은 단연 볼거리로 객석의 갈채를 받았고, 최근에 부군 상을 당한 전원주 여사에 대한 관객의 위로와 격려의 박수는 가슴을 뭉클케 하는 광경이었다. 또한 광명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명배우 나기수에 대한 광명시민들의 지원과 호응은 열렬한 것이었다.
주인공 모녀와 그를 돕는 동리청년의 열연과 열창은 악극의 수준을 상승시키는 역할을 했고, 전원주 여사의 열창과 앵콜 쏭이 일품이었음은 더 이를 것도 없다.
홍순창, 장희진, 최서연, 이경영, 박선주, 김명자, 유지연, 강신구, 허인범, 박경구, 김성영, 김재훈, 관진주, 김혜영, 김원철, 이창익, 전다슬, 박지현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합창 그리고 무용도 객석의 갈채를 받았다.
총제작 허현호, 총감독 김승만, 무대감독 한혜성의 열정과 노력이 어우러져 광명시 주관, 광명시의회 후원, 이상용 작·연출의 악극 <부모님 전상서>를 성공적인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4,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극단 한네의 최병화 작·연출 <그 여자, 이브>를 보고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극단 한네의 전국연극제 경기도대회 참가작 최병화 작·연출의 <그 여자, 이브>를 관람했다.
<그 여자, 이브>는 핵실험에 관한 새로운 발견이라는 세계최초의 논문을 가지고, 천재과학자부부가 논문표절을 이유로 부부가 상대를 살해하고, 아이까지 살해한 사건을 정신병원에 스스로 입원한 부인을 통해 밝혀가는 내용이다.
무대는 정신과 병원의 원장실, 환자수감병동, 그리고 배경 막에 영상을 투사하거나, 조명효과로 배경 속 과학자인 남편의 모습과 음주장면이 드러난다. 무대에는 의자와 탁자, 그리고 장면변화에 따라 침상도 배치한다.
음악은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피아노, 기타 등으로 연주해, 연극의 도입이나, 장면전환, 그리고 마지막장면에까지 사용한다.
또한 월광 소나타를 편곡, 작사한 노래를 여주인공이 부르기도 한다.
연극은 도입에 천재 여류핵과학자가 정신병원을 찾아가 김병호라는 인물을 찾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행방불명이 된 김병호가 그녀의 남편이자 핵과학자라는 사실이 원장과의 대화를 통해 밝혀지지만, 부부사이에서 태어난 아기 이야기가 나올 때에는 여류 과학자는 심한 두통증세와 발작을 일으키고,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원장인 여 닥터는 알약을 제공해 복용토록 한다. 여류과학자는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해 수감환자들과 함께 원장의 치료를 받는다. 한 사나이가 핵과학자의 논문표절과 남편과 아기 살해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정신병원을 방문한다. 사나이는 여류과학자를 남편과 아기 살해범으로 규정하고, 거짓 정신병자행세를 하는 것이라고 원장에게 주장한다. 그러나 원장은 그녀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감싼다. 향후 여류과학자의 입원동태가 같은 병실에 수감된 여 환자와의 일상을 통해 전개되고, 그녀의 정신병증세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를 않는다. 그녀와 같은 병실에 있던 여환자, 사실은 그녀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원장이 들여보낸 여의사이지만, 그 여의사도 그녀가 정신병자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결국 사나이와 판정 관까지 등장해 여류과학자의 정신질환의 진위를 가리려 들지만, 무위로 끝나고, 그녀는 원장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치료를 받으러 떠나게 된다.
얼마 후 긴급뉴스로 미국에서 핵실험에 관한 새로운 발견이라는 제목과 함께 여류과학자의 이름이 거명된다. 동시에 원장에게도 여류과학자의 편지가 송달된다.
편지의 내용은 핵실험에 관한 새로운 발견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 남편의 논문을 표절한 사실과 자신의 논문을 표절한 것에 대한 분노와 함께 경멸을 표하는 남편을 죽이려고 타놓은 치명적인 음료를 남편은 물론 아이에게까지 잘못 먹여 죽도록 한 사실과 살인사건의 책임을 회피하기위해, 대학시절 연극반활동을 통해 배워 익힌 연기로 정신질환자 연기를 편 것이고, 원장의 배려로 미국의 정신병원으로 이송되니, 세계적인 권위지에 남편에게서 표절한 논문을 자신의 것인 양 발표했다는 고백이다.
여류과학자의 편지낭송은 세발의 권총소리와 함께 마무리가 된다.
최병화가 여류과학자, 전영옥이 정신병원장, 서영삼이 사나이, 유준식이 .남편, 김연희가 환자, 최금옥이 중년 여인, 이호영이 판정 관으로 출연해 호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특히 최병화, 전영옥, 서영삼의 탁월한 성격창출과 열연은 시종일관 관객을 극 속에 몰입시키고, 연극의 수준을 상승시키는 역할을 했다.
박민정·이상수의 무대, 이재호의 조명, 임효성의 음악, 김두원의 무대감독, 윤미란의 분장, 문인옥의 음향, 오세와의 진행 등 스텝 진의 기량 또한 돋보여, 극단 한네의 최병화 작·연출의 <그 여자, 이브>를 독특한 내용과 함께 걸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
5, 극단 작은신화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서광일 각색, 이곤 연출의 <맥베드>
예술공간 상상 화이트홀에서 극단 작은신화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서광일 각색, 이곤 연출의 <맥베드>를 관람했다.
원작의 내용을 요약하면, 스코틀랜드의 장군 맥베스와 뱅코는 개선 도중 3명의 마녀를 만난다. 마녀들은 맥베스에게 “코다의 영주, 미래의 왕”, 뱅코우에게는 “자손이 왕이 되실 분”이라고 부른다. 맥베스는 예언을 빨리 이루고 싶다는 야망을 품게 되고, 레이디 맥베스와 흉계를 꾸민다. 마침 국왕 던컨 부자가 손님으로 자신의 성에 방문한 것을 기회로 마침내 그는 잠들어 있던 던컨을 살해한다.
그리고 도망친 왕자에게 그 혐의를 씌우고, 맥베스는 왕위에 오른다. 그는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뱅코우 부자를 없애기 위해 자객을 보내 뱅코우를 살해하지만 그의 아들은 도망친다. 그 후 맥베스는 뱅코우의 망령에 시달리게 되고 귀족들에게도 의심을 사게 되니, 맥베스는 다시 마녀들을 찾아가 자신에게 예언을 해줄 것을 청한다. 마녀들은 여자에게서 태어 난 자는 맥베스를 쓰러뜨리지 못하고, 버넘 숲이 움직이기 않는 한 맥베스는 전쟁에서 패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편 뱅코우의 아들 맥더프는 잉글랜드에 있는 왕자 맬컴에게 합류하고, 맬컴은 자신의 진심을 숨기고, 엉뚱한 말로 맥더프의 심중을 떠본다. 맥더프가 맬컴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고, 맬컴을 질타하며 그를 주군으로 삼지 못하겠다며 절망에 빠지자, 비로소 맬컴은 자신의 본심을 맥더프에게 토로한다. 두 사람은 충정으로 맺어진다.
레이디 맥베스는 귀족들의 반감과 죄책감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전쟁이 벌어지고, 맬컴을 옹립한 잉글랜드 군이 진격해 들어오면서 그들은 버넘 숲에 있는 나뭇가지들을 꺾어 몸을 숨기고 성으로 접근하기 시작하니, 맥베스는 버넘 숲이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리고 그는 전쟁터에서 맥더프와 대결을 하며 자신은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에게는 패하지 않는다고 알려준다. 그러자 맥더프는 자신은 여자에게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달이 차기 전에 어머니의 배를 가르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알려준다. 절망에 빠진 맥베스는 결국 맥더프의 손에 의해 죽게 되고, 맬컴이 왕좌에 오른다.
무대는 배경 막에 영상을 투사해, 장면변화와 극의 흐름에 시각효과를 높인다. 틈이 간 벽면이 영상으로 투사되는가 하면, 수목이 울창한 숲의 영상, 구름처럼 안개가 덮인 벌판,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영상이 투사된다.
원작과는 달리 마녀는 3인의 남성출연자가 마녀 역을 한다. 던컨왕도 한쪽 눈을 실명한 것으로 설정하고, 유리알 눈을 낀 여성출연자가 던컨 역을 한다. 레이디 맥베드와 여왕 던컨이 동성애를 하는 장면의 영상도 투사된다.
마녀는 코러스 역과 함께 신하나, 병사들 역 등 1인 다 역을 해낸다.
맥베드와 뱅코우의 호연은 살만하다. 맥베드에게 보이는 뱅코우의 망령은 극을 기괴한 분위기로 이끌어간다. 레이디 맥베드의 관능적인 모습과 열연도 기억에 남는다, 유리알 눈의 던컨도 출중한 기량이 감지되고 인상적이다. 남자마녀들도 독특한 인물설정으로 해서 관객의 주목을 받는다. 또한 맥더프와 맬컴의 심중 고백 장면은 감동적이다.
장이주, 정선철, 성동한, 서광일, 이규동, 최복희, 최성호, 이연희, 송인서, 이승현, 그리고 동명이인 이승현 등이 출연해 호연을 보여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조연출 김미란, 무대감독 이서연, 영상촬영 박유진, 조명오퍼 권미영, 음향오퍼 조영은, 조명 팔로우 박소아, 무대크루 김성준, 작곡·사운드디자인 피정훈, 보조 백인성, 오퍼 최준환, 조명·영상디자인 신재희, 영상제작 남윤아, 조명·영상보조 이승원, 2D제작 이재복, 프로젝터 추봉길, 무대디자인 김수희, 무대제작 이강원, 의상디자인 정민선, 의상보조 황수풀, 안무 정성태, 보이스코치 최정선, 사진 이동녕, 그래픽 다홍디자인, 기획·홍보 코르코르디움 등 스텝 진의 기량도 돋보여, 대학로 스타시티극장(대표 차현석) 주관, 극단 작은신화 제작,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서광일 각색, 이곤 연출의 <맥베드>를 성공작으로 만들어 냈다.
6, 공연제작센터의 롤란트 시멜페니히 작, 이원양 역, 윤광진 연출의 <황금용>
대학로예술극장대극장에서 롤란트 시멜페니(Roland Schimmelpfennig)히 작, 이원양 역, 윤광진 연출의 <황금용(黃金龍)>을 관람했다.
<황금용>을 번역한 이원양 교수는 서울대 독문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뮌헨대, 함부르크 대학에서 독문학과 연극학을 연구했으며 지난 80년부터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 독문과 교수로 재직해왔다. 저서로는 ‘브레히트 연구'(1984), ‘우리시대의 독일연극'(1998), ‘독일어기초과정'(1995) 등이 있고, 한국 브레히트학회 회장(93-95), 한국 독일어교육학회 회장(97-99), 한국 독어독문학회 회장(2000)을 역임하면서 국내 및 국제학술대회를 조직하여 학회의 발전을 힘쓰고, 1980년대부터 한·중·일 3국간 학술대회를 정례 화시켜 동아시아 3국간 독어독문학 국제교류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로 2001년에는 독일연방공화국 1등 십자공로훈장을 받았다.
롤란트 시멜페니히(Roland Schimmelpfennig 1967~)는 <그라이프스발트 가(街)> <아라비안 나이트> <과거의 여인> <동물의 제국> <황금용>을 비롯해 30 편에 이르는 희곡을 집필하고, 뮐하임 페스티발, 테아터 호이테 등에서 극작가상을 수상한 현재 독일연극을 대표하는 극작가다.
2007년에는 롤란트 시멜페니히의 <아라비안 나이트>를 인도의 떠오르는 여성 연출가 줄레이카 차우다리(Zuleikha Chaudhari) 연출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인도참가작으로 공연된바 있다.
2008년에는 연희단거리패의 김경화 작 이윤택· 연출의 <산 넘어 개똥이>를 이원양 교수 의 독역으로 <베를린 개똥이: 이윤택·알렉시스 부크 공동제작>독일공연이 이루어져 대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무대는 30cm 높이의 정사각의 대를 무대전면에 설치하고 그 좌우에 출연자들이 앉을 의자와 철제 조리대를 비치했다. 조명을 바꿔 장면변화에 대처하고, <황금용>이 그려진 휘장을 늘어뜨리거나, 두루마리 천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연극은 도입에 베짱이 한 마리가 깡충 깡충 뛰어 들어오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조명이 바뀌면 철제 조리대 주변에 다섯 명의 남녀 요리사가 크고 작은 프라이팬을 들고 요리를 만드는 장면이 보이고, 향후 식당 손님인 항공사 여승무원 역, 개미와 베짱이 역, 노인과 손녀딸 역, 줄무늬 옷을 입은 젊은 남자와 빨간 원피스를 입은 젊은 여자, 웨이트리스, 바비퍼커 등의 역을 다섯 배우가 번갈아 해낸다. 독특한 점은 나이와 상관없이 나이든 남성이 젊은 여성으로 출연하거나, 나이든 여성이 젊은 남성으로 출연해 무대 위에서 의상을 바꿔 입고, 장면변화에 대처한다.
우리나라에 중국음식점이 많듯 독일의 대도시나 중소도시에 진출한 태국-중국-월남인 등 중국계 음식점에서는 <황금용>을 그린 간판을 달고 식당업을 한다.
우리나라 다문화 가족 수가 현재 150만에 이르듯 독일에 이주한 중국계 사람들도 100만을 넘어서고 있다. 그들 중에는 불법체류자도 부지기수이고, 이 연극에서는 독일거주 한 불법체류자 남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오라비는 요리를 만들다가 치통을 호소하지만, 치료를 받으러 병원을 가려해도 불법체류자임이 드러나 추방을 당하게 되니, 통증이 심해도 치과에 갈 수가 없다.
누이는 언어장벽과 의사불통으로, 한 겨울에 개미집을 찾은 베짱이 신세와 다름이 없다. 베짱이는 음식구걸을 하다가 개미들의 성노리개 감으로 전락한다. 낯선 이국에서 홀로된 여성은 호구지책으로 성노리개 감으로 전락하는 경우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식당 위층의 조그만 방에는 젊은 남녀의 혼전동거 장면이 펼쳐지고, 혼인의사와 관계없는 동거도 우리나라나 독일이나 다름이 없다. 사랑이 식은 여성 쪽에서 다른 남자와 정분을 나누고, 동거남과 헤어지는 장면은 세태를 반영한 듯싶고, 지성보다는 관능적이거나 색정적인 몸매와 차림에 치중하는 것도 동서양이 매일반이다. 이 장면은 극의 말미에 노인과 손녀딸에게로 이어져, 성노리개로 전락했다가 지옥의 개미굴에서 탈출한 베짱이가 노인의 회춘의 대상으로 다시 한 번 성적가혹행위를 당하고 온몸에 선혈이 낭자해 축 늘어진 모습은 비통과 비감을 객석에 전달한다. 어쨌건 치과대신에 오라비는 병든 치아를 동료 요리사들에 의해 파이프렌치로 강제 제거하게 되고, 그 뺀 치아가 잘못 프라이팬으로 날아 들어가, 그것이 항공기 여승무원 2인이 주문한 음식물에 들어가 31세 된 여승무원 식기에서 발견된다. 28세의 동료는 자리를 박차고 식당을 뛰쳐나가지만, 31세는 그것을 핸드백에 보관하고 집으로 간다. 치아를 뺀 젊은 요리사는 과다출혈로 사망하고, 동료들은 시체를 <황금용> 문양이 들어간 휘장에 말아 강물에 버린다. 시체가 발견된들 거주등록도 아니 된 불법체류자의 신원을 어찌 밝혀내랴? 죽은 오라비와 죽은 듯 늘어진 누이의 모습은 불법체류자들의 삶과 고통을 적나라하게 반영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대단원에서 시체를 버리고 떠나는 요리사들과 마주친 31세의 여승무원이 자신의 음식에 들어간 이빨 이야기를 애써 참으며 요리사들에게 잘 가라고 하는 인사는 우리 모두의 잘못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씨와 용서로 받아들이게 되는 감동의 마무리로 느껴진다.
이호성, 남미정, 이동근, 방현숙, 한덕호 등 출연자들의 1인 다 역 혼성연기가 독특하고 탁월해, 연극의 도입에서부터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고, 출중한 기량으로 폭소와 비감을 동시에 창출해 낸다.
박은혜의 무대디자인, 조인곤의 조명디자인, 신주연의 분장디자인, 김상회의 의상디자인, 미스미 시니치의 음향디자인, 허유미의 안무, 이채경의 조연출, 김성현의 무대감독, 김정현의 소품제작 등 스텝진의 기량이 합창단원들의 음향조화처럼 느껴지는 공연으로, 덕우기획과 공연제작센터 제작의 롤란트 시멜페니히 원작, 이원양 역, 윤광진 연출의 <황금용>을 봄바람처럼 싸늘하면서도 따뜻하게 몸과 가슴에 스며드는 한 편의 잊지 못할 연극으로 창출시켰다.
7, 서울시극단의 김혜련 예술감독, 강철수 원작, 장경섭 각색, 위성신 연출의 <칼잡이>(세종M시어터)
<칼잡이>는 커다란 고층건물이 보이는 배경하늘과 상호와 간판이 다닥다닥 붙은 재래시장 주점 겸 음식점이 여기저기 보이는 장터의 한 횟집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노래와 춤이 가미된 연극이다.
선배의 고시쪽방 신세를 지던 한 청년이 벼룩시장 구인광고를 보고 저녁나절에 서운시장의 한 횟집으로 찾아오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노파 한 사람과 젊은 알바 삼수생 처녀가 청년을 맞이하고, 문을 닫을 시간이 되자 청년을 남겨둔 채 두 여인은 퇴근을 한다. 청년은 배달 온 물건을 냉장고에 받아 넣고, 어항에는 횟감 물고기와 틀어놓은 산소기의 물방울이 보인다. 나타난 주인이자 횟집사장은 비대한 몸집의 백발로 회 칼잡이 장인 티가 온몸에 배어있고, 청년을 대하며 다그치는 모습이 여느 인물과 확연히 다르다. 박한 월급이지만 청년은 회집에 머무르게 되고, 언제 칼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청년은 알바 여학생에게 자연스럽게 마음을 기울이게 된다. 횟집 맞은편은 간이음식점으로 중년 여주인이 벙어리 조선족여인을 거느리고 장사를 하고, 손수레로 여러 종류의 차를 싣고 다니며 파는 여인과 주변의 꽃다방 레지 아가씨, 음식점을 하며 돈을 꼬박꼬박 저축한 노총각이, 간이음식점을 오가며 조선족여인에게 마음을 쏟는 장면도 연출된다. 횟집에서 숙식을 하게 된 청년은 한 밤에 어항에서 횟감을 훔치는 도둑과 대결을 하게 되고, 격투를 벌이다 경찰의 등장으로 둘 다 잡혀간다. 횟집 사장이 청년을 경찰서에서 데리고 나온다. 소식이 알려져서인지 조폭청년 두 사람이 횟집에 나타나 행패를 부리고, 흉기와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 생긴다. 사장은 단숨에 조폭청년을 제압시키니 조폭은 혼비백산해 줄행랑을 친다. 사장은 청년에게 칼잡이 노릇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그런데 알바 여학생이 자신도 칼잡이가 되겠다며 투정을 부리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사장은 절대 반대지만 여학생은 막무가내다. 벙어리 조선족여인이 전화를 받는 장면과 여인은 조선족 특이의 어조로 전화를 받으면서 그녀가 벙어리가 아님이 드러난다. 그런 모습을 주변의 한 상인에게 들키지만 그녀는 상인에게 그러한 사실을 알리지 말아달라고 애원하기도 한다. 재래시장이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존폐의 위협을 받듯, 이 연극에서도 시장 바로 옆에 대형마트가 생기는 것으로 설정이 되고, 그것에 대비해, 상인들은 시장을 정비하고, 물건 값을 내려 받으며 각종 편의시설과 장비를 비치해 대형마트를 이겨내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한편 횟집에서 일하는 노파의 아들이 찾아와 대형마트가 들어설 부근에 위치한 노파소유의 4층 건물을 팔아 자신의 사업자금으로 쓰겠다며, 문서봉투를 내보이며 노파와 승강이를 벌이다가 달아난다. 알바여학생은 노파에게 건물까지 있는 부자이면서 가난한 척 하며 자신에게 돈을 꾸어가면서도 갚지를 않는다고 항의 하다가 급기야 머리칼을 서로 끌어당기는 싸움을 벌이게 되고, 알바여학생은 돼지 껍데기 술집에 친구와 앉아있는 사장에게 찾아간다. 사장친구가 자리를 피하자, 사장에게 항의하며 아빠라고 부르는 모습을 뒤따라 온 청년이 듣게 된다. 알바여학생이 아닌 딸에게 엄격하게 대하며, 자신의 힘든 가업을 잇지 않도록 하겠는 아버지의 배려와 자신의 회칼솜씨를 혼자만 소유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고루 나누겠다는 아빠의 스승대의 교훈을 실천하려는 의지가 객석에 전달된다.
대단원에서 진검 같은 원조회칼을 청년에게 물려주고, 횟집도 청년소유로 넘기면서, 딸을 맡기고 떠나는 사장의 모습은, 서부활극에서 악당을 물리치고 늠름한 모습으로 떠나가는 멋진 주인공의 뒷모습과 다름이 없다.
종장은 조선족여인에게 구혼하는 음식점 노총각과 동리사람들의 한 덩어리가 되어 결혼을 성사시키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이창직, 강지은, 강신구, 김신기, 주성환, 이재훤, 김 현, 양말복, 전 영, 양현석, 최나라, 차정화, 이병권, 구옥분, 조현식, 유승락, 한윤서 등 출연자 전원의 열연과 열창, 그리고 무용이 관객을 도입부터 극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하고, 흥겨운 관극이 되도록 만들었다.
예술감독 김혜련, 각색 장경섭, 무대 이윤수, 조명 이중우, 음악 박소연, 의상 김민경, 영상 정재진, 분장 김숙희, 안무 이지영, 소품 서정인, 무대감독 이종덕, 조감독 장연희, 음향 이유진, 조연출 방성창 기획 박진아, 홍보 박한나 등 제작진과 무대기술진의 기량이 돋보인 공연으로, 강철수 작, 위성신 연출의 <칼잡이>를 제목 그대로 유쾌한 연극이고 연출의 기량이 돋보이는 음악극으로 창출시켰다.
8, 국립극단의 소포클레스 원작, 강태경 번역, 김민정 각색, 한태숙 연출의 <안티고네>(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국립극단의 소포클레스 원작, 강태경 번역, 김민정 각색, 한태숙 연출의 <안티고네>를 관람했다.
<안티고네>는 소포클레스(Sophoklēs 496~406), 장 아누이(Jean-Anouilh 1910~1987), 베르톨드 브레히트(Brecht, Bertolt 1898-1956) 등의 작품이 소개 공연된바 있다.
소포클레스(Sophoklēs 496~406)는 그리스 3대 비극 시인의 하나로 그리스 비극의 완성자이다. 아테네에서 부유한 기사(騎士) 신분으로 태어나 디오니소스 제(祭)의 비극 경연에서 선배인 아이스킬로스(Aiskhylos)를 물리쳤다. 작품 구성의 치밀성, 중용성(中庸性), 기교(技巧)의 완벽 등으로 비극의 최고봉으로 인정받았다.
모두 123편의 작품이 집필했고 현존하는 것으로는 <안티고네(Antigone)>, <엘렉트라(Elektra)>, <오이디푸스 왕>(Oidipus Tyrannos)> <필로크테테스(Philoktetes)>, <트라키아의 여인(Trachiniai)>등이 있다.
원작의 배경을 소개하면, 오이디푸스 사망 이후 그의 두 아들 간의 불화가 깊어져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다. 큰아들 폴리네이케스는 아르고스로 도망쳐 그곳에서 아르고스 공주와 결혼한다. 그 후 아르고스 동맹국들과 연합해 일곱 장수들을 이끌고 그의 조국 테베를 공격하고, 그의 동생 에테오클레스는 테베를 방어한다.
이 전투에서 테베가 승리했지만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은 전사한다. 크레온은 테베를 지키다 죽은 에테오클레스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르도록 명한다. 그러나 조국을 상대로 싸움을 벌였던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는 들판에 그대로 방치토록 해 매장을 금하고, 이 명령을 어기는 자는 죽음을 당하게 되리라 경고한다. 폴리네이케스의 시신 매장을 금하는 크레온의 명령에 백성들은 침묵한다. 그러나 그의 동생인 <안티고네>는 테베의 왕인 크레온의 명령을 어기고 오빠의 시체를 묻어준다.
연극은 <안티고네>가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묻어주는데서 시작된다. 향후 폴리네이케스의 매장을 둘러싼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대립, 즉 신의 법을 왕의 명령보다 우위에 두는 <안티고네>와, 국법을 고집하는 크레온의 갈등이 이 극의 내용이다.
<안티고네>는 신의 법에 위배되는 인간의 법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주장하며, 오빠의 시신을 매장도 하지 않은 채 개와 독수리의 밥이 되도록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크나큰 죄악이라고 주장한다.
<안티고네>가 오만하다싶은 강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녀는 또한 이 극에서 왕의 명령에 맞서 남매간의 도리를 실천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자매인 이스메네에게도 자신에게 동조하지 않기를 바란다. 약혼자 하이몬에 대한 사랑도 진실하기 그지없다. 따라서 그녀의 죽음은 관객에게 깊은 연민을 자아내도록 이끈다.
<안티고네>가 죽자, 완강한 의지로 일관하던 크레온도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크레온은 <안티고네>와 약혼까지 했던 아들 하이몬의 자살과, 아들의 죽음을 안 크레온의 왕비 유리디케의 자살소식을 접하자, 비로소 자신의 과오를 뉘우친다. “난, 내 아들과 아내를 죽게 한 어리석고 못난 인간이오. … 무거운 운명이 날 짓누르고, 나의 인생 이 무(無)로 사라져 버렸으니, 이 세상 모든 것은 오직 헛될 뿐이로다!”
크레온의 후회에 찬 울부짖음과 함께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무대는 마치 미끄럼틀처럼 객석을 향해 15도 가량 기울도록 만들었고, 배경에 상징적인 영상을 투사해 극적효과를 높이고, 농무 속에 흙먼지를 뒤집어 쓴 백성들의 발작적인 몸놀림으로 진흙구덩이 속의 삶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는가 하면, 피투성이로 객석을 향해 굴러 떨어지는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은 단번에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는 충격적인 연출이었다. 무대바닥에 지진으로 갈라진 듯 보이는 거대한 틈을 만들어 그 안에 <안티고네>가 빠져있도록 함으로써 절대절명(絶代絶命)의 순간에 처해있음을 객석에 전달시키고, 까마귀의 지저귐이라든가, 동굴내부에서의 물 떨어지는 소리는 <안티고네>의 고독과 절망감을 절묘하게 표현한 효과음이 되기도 했다. 크레온의 옥좌대신 무대중앙에 세자, 여섯 자의 직사면체의 대를 돌출토록 한 설정도 좋은 착상이고, 원작의 코러스 대신 남루한 옷차림의 군중을 등장시키고, 지옥의 마귀를 연상시키는 예언자 테레시아스의 분장과 의상은 물론 그녀가 든 기괴한 지팡이까지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설정이었다. 특히 주요등장인물들의 장화(長靴)야말로 장차 세간 유행물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눈길을 끄는 작품이었다면 이는 필자만의 생각일까?
신구, 박정자, 김호정의 열연은 살만하였고, 이갑선, 윤현길, 우현주, 손진환, 서경화, 신덕호의 호연은 극의 동력이 되었으며, 강진휘, 박종태, 황성대, 심완준, 이지혜, 최순진, 전운종, 허 진, 이경은 등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은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기에 충분한 구실을 해냈다.
무대디자인 임일진, 조명디자인 김창기, 안무 이경은, 의상디자인 김우성, 음악 홍정의, 음향디자인 지미 세르, 거문고 연주 박은혜, 분장디자인 백지영, 소품디자인 강민숙, 김장연, 조연출 김 정·명지선, 무대감독 변오영, 무대조감독 신지혜 등 스텝 모두의 기량 역시 출중함이 드러나, 국립극단(단장 손진책)과 예술의전당(사장 고학찬)이 마련한 소포클레스 원작, 강태경 역, 김민정 각색, 한태숙 연출의 <안티고네>를 기억에 길이 남을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9, 한강아트컴퍼니의 김인경 작, 위성신 연출, 박정석 협력연출의 <염 쟁이 유씨>(예술공간 혜화)
예술공간 혜화에서 한강아트컴퍼니의 김인경 작, 위성신 연출, 박정석 협력연출의 <염 쟁이 유씨>를 관람했다.
<염 쟁이 유씨>는 선대로부터 시신(屍身)을 염습(斂襲)을 해온 유 씨가 평생 하던 염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마지막 염을 하는 과정을 기자와 관객에게 보여주는 연극이다.
무대는 배경 막 가까이 붉은색 글씨를 가로쓴 병풍이 펼쳐있고, 그 뒤에 시신(屍身)을 모셔놓았다. 그 오른쪽에 책상높이의 염습탁자가 있고, 탁자에는 가지런히 절단한 삼베 천 자락이 책상 아래로 늘어뜨려져 있고, 한지로 책상 윗부분을 가려놓았는데. 한지에 잔뜩 쓴 붓글씨가 눈에 띈다. 무대 중앙에 관(棺)이 가로놓여있다. 배경 가까이와 무대 양쪽 기둥에 시신에 입힐 수의(壽衣)와 노끈을 나무걸이에 늘어뜨려 놓았고, 무대중앙에는 헝겊으로 만든 제웅 세 개를 천정에서 늘어뜨린 수평으로 달린 나무걸이에 나란히 매달아 놓았다.
연극은 도입에 <염 쟁이 유 씨>가 흰 가운을 걸치고 등장한다. 관객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관객에게 하는 일을 묻기도 한다. 유 씨의 질문에 명쾌한 답을 하는 관객에게는 품에서 봉투를 꺼내 주기도 한다. 필자가 관람을 할 때에는 홍 씨 성을 가진 훤칠하고 건장한 남성이 유 씨의 대화상대로 되고, 극의 전개에 따라 염습 후 시신을 관으로 옮길 때 보조자 역할을 한다.
그 외 관객 너덧 명도 시신, 즉 고인(故人)의 가족으로 등장해 시신을 두고 상속재산을 두고 싸움을 벌이는 즉석 연기로 객석의 갈채를 받기도 한다.
유 씨는 가운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직업에 따른 가족사를 이야기 하고, 염습을 차례대로 해가며 좀처럼 보기 힘든 염습의 전 과정을 관객에게 소개한다. 자신은 반대했지만 부친의 강권으로 가업을 계승하게 된 사연과 평생을 해온 시신에게 수의를 정성스레 입히던 일을 이제는 그만 마무리를 해야 하겠다는 결심으로, 언젠가 염습에 관해 취재를 왔던 기자에게 연락을 해 마지막 염습을 참관 취재토록 한다. 그리면서 장례절차, 제례형식, 염습과정, 그리고 유 씨의 인생관과 철학을 솔직담백하게 털어놓는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 현실 속에서의 치열한 생존경쟁, 그리고 죽음보다 두려운 삶에 관해 털어놓을 때에는 객석은 숙연한 심정이 되기도 한다. 홍 씨 성을 가진 관객과 염습을 마친 시신을 관에 집어넣고 뚜껑을 닫고, 한 송이 흰 꽃을 그 위에 얹어놓으면서 유 씨는 말한다. “죽는 거 무서워들 말아, 잘 사는 게 더 어렵고 힘들어” 라고.
신현종이 <염 쟁이 유 씨>로 출연해 1시간 30분 동안 일인 다역을 해가며 관객과의 소통과 명배우로써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의 소탈한 성품과 진성성이 배인 연기는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고, 마치 고인이 된 자신의 가족이나 친지의 염습을 대하는 느낌으로 시종일관 관극을 하게 된다.
프로듀서 김현(한강아트컴퍼니 대표) 무대감독 이진호, 조명감독 김상민, 조명·음향·오퍼레이터 이영미·한재영, 사진 강 현·박주혜, 홍보·마케팅 이창훈·장윤미,·표유리·이수진·하지영 등 스텝 모두의 열정과 노력이 하나가 되어 김인경 작, 위성신 연출, 박정석 협력연출의 <염 쟁이 유 씨>를 성공작이자 장기공연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10, 극단 광대무변&The Well 제작·기획, 유인촌 연출, 강혜정 예술감독, <괴테와 구노의 만남, 파우스트>
청담동 유시어터에서 극단 광대무변&The Well 제작·기획, 유인촌 연출, 강혜정 예술감독의 낭독공연 <괴테와 구노의 만남, 파우스트>를 관람했다.
이 작품은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와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를 하나로 엮어 만든 공연이다. 그렇기에 무대에는 연극배우와 오페라 가수가 함께 출연해 공연을 이끌어 간다. 피아노와 오르간 반주, 그리고 무용이 포함된다.
<파우스트>는 샤를르 구노(Charles Gounod 1818~1893)가 1859년에 작곡한 전5막의 오페라이다. 대본은 괴테(J. W. Goethe: 1749-1832)의 <파우스트> 1부를 줄르 바르비에르(Jules Barbier: 1825-1901)와 미셸 카레(Michel Carre: 1821-1872)가 오페라 대본으로 만들었다.
줄르 바르비에르는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et Juliette), 시바의 여왕 (La Reine de Saba), 필레몬과 보시스 (Philemon et Baucis)를 오페라대본으로 각색했다. 그중 ‘로미오와 줄리엣’은 파우스트와 마찬가지로 미셸 카레와의 합작이다. 미셸 카레는 구노의 미레이유(Mireille), 비제의 진주잡이 (Les Pecheurs de Perles),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 (Les contes d’Hoffmann)를 오페라대본으로 만들었다. 파우스트는 1859년 3월 파리 시민회관(Theatre-Lyrique : Theatre de la Ville)에서 초연이 이루어졌다.
무대왼쪽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있고, 오른쪽에는 붉은 테이블보를 덮은 책상과 의자가 있다. 그리고 책상 앞쪽의 4각의 입체조형물이 의자구실을 한다. 중앙에는 샹들리에가 천정에 매달려 있고, 무대 왼쪽 이층 발코니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계단이 있다.
극장을 들어서면 연극은 시작이 되기 전인데도 파우스트 박사가 책상 앞에 앉아 집필을 하는 모습이 관객의 눈에 들어온다.
극이 시작되면 악마의 무리가 등장하고, 발코니와 연결된 계단 중앙에 앉은 소녀모습의 신이 사탄과 대화를 편다. 원작의 내용대로 신과 사탄이 내기를 하는 장면에 이르면, 백발이 성성한 낭독자가 극장 출입구 쪽에서 서서히 등장해 책상에 다가가 앉아서 원고를 펼친다. 향후 낭독자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역을 낭독하기도 하고 실제 대사처럼 읊기도 한다.
<파우스트>는 나이 먹음을 비관하고, 악마의 문서에 피를 묻혀 서명한 후 젊음을 되찾아 젊고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을 나누게 된다는 기상천외(奇想天外)의 설정이 관객을 극에 몰입시킨다.
배우들의 열연은 물론이고, 거기에 금상첨화(錦上添花) 격으로 최고기량의 성악가들이 출연해 구노의 오페라의 명곡을 장면마다 열창을 하니, 관객은 꿈이나, 환상에 빠진 듯 공연에 심취하게 된다. 작중인물을 배우와 성악가가 번갈아 하며, 공연을 이끌어 가니, 오페라와 연극을 동시에 관람하는 느낌의 공연이다.
괴테 원작의 내용대로 누이를 농락한 파우스트와 결투를 신청한 오라비가 죽자, 여주인공의 비탄과 절망이 극에 달해, 정신이상상태에서 마르 게리테는 자신의 갓 태어난 아기까지 죽이니, 결국 감옥에 갇히게 되고, 여주인공은 발광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을 접한 <파우스트>의 후회와 뼈저린 반성, 그리고 그의 자살이 메피스토의 쾌재(快哉)와 악마의 승리로 귀결이 되는 시점에서 대반전이 이루어진다. 신의 구원의 손길로.
유인촌이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1인2역을 하며 극을 최고수준의 낭독공연으로 이끌어간다.
정주영, 김정음, 마정석, 김성진, 김진아, 이훈민, 김화랑, 변세희 등 극단 광대무변의 출연자 전원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은 2시간여의 공연을 수준급으로 이끌고, 김동원, 정경호, 최광호, 이명희, 인구슬, 임희성, 최종현, 등 The Well의 성악가 출연자들도 최고의 기량으로 열창과 열연을 해, 관객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는다. 특히 피아니스트 노성희의 연주는 출중하고, 김영미의 독무와 안무 역시 극의 품격을 상승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술감독 강혜정, 조연출 남윤호의 열정과 기량이 잘 드러나, 극단 광대무변과 The Well 공동제작, 유인촌 연출의 <괴테와 구노의 만남, 파우스트>를 강남지역에 어울리는 수준 높은 공연이라 평하겠다.
상기작과는 별도로 아시아연출가전을 평하고, 제34회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과 “기획초청작”, 그리고 “미래야 솟아라”는 5월 공연총평에 수록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