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게 자자 죽음의 문턱까지/ 오유경

<깊게 자자 죽음의 문턱까지>

그리움의 소환 

39회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

 

 

오유경(극단 그룹動·시대 연출)

 

작: 오가와 미레이

번역: 박순주

연출: 김관

단체: 극단 행

공연일시: 2018/05/04-05/13

공연장소: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

관극일시: 2016/05/12

 

 

파도가 높이 치는 한밤중 바닷가. 폭풍과 같은 비바람 속에 수상한 마대자루 하나를 두 남자가 낑낑대며 끌고 온다. 한 남자는 늙은 노인. 다른 한 남자는 젊은이다. 젊은이는 노인을 박사님으로 부르고 그는 노인의 충실한 조수인 듯하다. 노인은 매우 약았다. 자루를 뒤에서 미는 척만 했지 전혀 힘을 쓰지 않고 슬쩍슬쩍 젊은이를 속인다. 그는 그게 재밌나 보다. 젊은이는 바보스럽게 순진한 자다. 열심히 자루를 끌지만 힘에 겹다. 문득 노인이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약이 올라 강력히 항의도 하지만 결국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태도에 배어있다. 그래도 그의 불만에는 노인에 대한 정과 믿음이 담겨있다. 요란스런 날씨 속에서 한 참을 계속하는 그들의 수선스런 언쟁은 엷은 미소와 함께 묘한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아! 그런데 그 자루가 수상하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 우리는 그 자루 속에 담긴 것이 죽은 남자의 시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의 궁극적 목적은 획기적인 방식으로 죽은 이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 마대자루에 담겨있는 시신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방금 죽은, 살아날 확률이 가장 높은 신선한 시체라는 점에서 이 두 남자를 흥분시키고 있다. 어찌 보면 놀라울만한 엄청난 성공 앞에서 기대감에 잔뜩 부푼 그 둘의 분위기는 무섭고 공포스럽다기보다는 유쾌하고 익살스럽다. 저런! 늘 그렇듯 바로 장애가 등장했다! 빨간 꽃무늬 원피스에 검정 코트를 입은-아..이 극의 배경은 겨울이다. 일본 어느 겨울 바닷가- 젊고 아리따운 여인이 비바람 속에서 서둘러 그들을 좇아 등장한다. 야리야리한 신체적 이미지와 달리 그녀의 목소리는 폭풍우보다 더 크고 요란스럽다. 그녀의 괄괄한 신체적 행동도 금방이라도 두 남자의 멱살을 쥐고 흔들 만큼 거침없고 과격하다. 그녀는 그 마대자루에 담긴 시신이 자신의 남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 그 시체를 내놓으라고! 오랜 숙원인 일대의 성공 앞에서 두 남자는 여자에게 쉽사리 승복하지 않는다. 세 사람의 실랑이는 날씨마냥 요란스럽고 거칠고 시끄럽다. 논쟁자체도 돌림노래처럼 살짝 길고 지루하다. 그런데도 그 모습에 비식이 웃음이 난다. 유쾌하다. 

 

지금까지 이 모든 장면이 극장의 본 무대가 아닌 객석 옆 무대로 가는 길목의 간이무대에서 거의 30분가량 지속된다. 참 이례적인 무대사용구성안이라고 생각했다. 작품의 1/3 가량이 고개를 거의 꺾어 봐야하는 옆 무대에서 한 참 지속되고, 가장 커다란 주 무대의 공간을 장시간 비워두는 설정이 그리 일반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관객에겐 익숙하지 않고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이 아이디어가 오히려 관습적이지 않아 좋았다. 물론, 개인적인 감흥이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 그럼 과연 누가 마대자루 속 시신을 차지했는가 하면, 결론적으로 두 남자가 여인을 설득해 자신들의 실험장소로 여인과 함께 이동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매우 춥고 배고프고 지쳤기 때문에 당장 이 을씨년스런 비바람 속에서 더 이상 지루한 논쟁을 하기 싫어서다. 상황 때문에 잠깐의 타협을 한 것. 참고로 그녀는 배고픈 걸 절대 참지 못한다. 그리고 또 많이 먹는다. 세 인물의 특징과 그 어우러짐이 즐겁다. 딱! 익숙한 느낌! 좋아하던 일본만화의 감성이라고 한다면 너무 일반화시키는 것일까! 관습적이지 않은 설정이 또 하나 발견된다. 물론 희곡상에 이미 설정되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의상과 무대디자인의 관습적이지 않은 설정이다. 재밌는 것은 ‘박사다! 죽은 이를 살리는 실험이다!’ 연상한다면, 하얀색 가운을 입은 엄청난 논리적 사고로 무장한 과학자들과 해부학실처럼 차가운 스테인레스로 둘러싸인 무시무시한 최첨단 과학실험실일텐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박사는 일본 고유의, 게다가 살짝 남루하기까지 한 전통의상에 비바람을 피하기 위한 도롱이까지 걸쳤다. 박사의 조수도 그저 일반 바지에 흔히 입는 짧은 야상점퍼다. 어딜 봐도 과학자 같지 않다. 박사의 실험실도 바닷바람에 적당히 소금끼 먹은 굵은 나무판자들이 얼기설기 울타리를 치고, 흙바닥에 구덩이를 파고 화덕을 만들어 천장에서부터 길게 내려뜨린 고리에 주전자를 달고 뜨겁게 물을 끓이는, 정말 흔히 만날 수 있는, 전통을 간직한 여느 어느 일본 시골 바닷가마을의 창고, 그 자체다. 이러한 설정이 그 유쾌한 친근감을 더욱 높여주고 그들의 비논리적, 비현실적인 상황조건이 그다지 따질 필요 없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마대자루에 담긴 시신은 여인의 남편이 맞다. 그녀는 그의 죽음으로 사망보험금을 타기 위해 시신이 필요하다. 박사는 자신의 고유의 한방(?)약초요법으로 시신을 살리려고 의도한다. 박사 조수는 그녀를 달래려 그녀의 배고픔을 위해 계속 음식을 제공하고 그러는 와중에 그녀에게 매력을 느낀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 시신이 깨어난다. 그는 사실 죽지 않았던 것. 그러나 그의 기억은 죽었다 살아난 사람처럼 자신의 아내를 전혀 기억해내지 못한다. 네 사람의 장면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 한 곳에서는 어느 중년여인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소를 끌고 마을 어느 곳을 향해 계속 길을 가고 있다. 그녀의 독백은 매우 서정적이고 풍경이 그려지는 시적 정서를 담고 있다. 시신이 살아나 모두의 이해관계가 엉망이 되어 우왕좌왕 우스꽝스런 소동이 일어나는 가운데 그들 사이에 갈등보다는 서로를 향하는 인간적 이해의 정이 피어오른다. 그렇다. 마침내, 그 중년의 여인이 박사의 실험실에 보이지 않는 소와 함께 도착한다. 아! 그녀는 박사의 죽은 아내였다. 그녀와 함께 온 보이지 않는 소는 그들이 애지중지 키우던 소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남편은 보이지 않고 오직 죽었다 깨어난 시신이었던 젊은 여인의 남편만 보인다. 그래서 박사와 아내는 그를 통해서만 서로의 그리움을 전할 뿐이다. 죽었다 살아난 남자도 그의 본 아내가 죽고 그 아내가 그리워 아내와 얼굴이 닮은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박사는 소원하던 아내의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죽은 자를 살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자족한다. 그가 그토록 죽은 자를 살리고자 했던 것은 한 번이라도 다시 보고 싶었던 그의 아내를 향한 진한 그리움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리움.’ 이 작품의 키워드다. 이 모든 소동의 근원은 죽은 이를 향한 산 이의 그리움의 사무침이다. 다시 보기를! 그저 살아있을 때 그 모습 그대로! 짧은 한 순간만이라도 다시 그 모습을 소환할 수 있다면! 그리운 이를 향한 그리움의 소환! 이 작품의 핵심이다.

 

박사의 아내는 담담하게 일상적인 부탁만을 전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상투적인 이별의 절절함이나 사무치는 그리움에 터져 오르는 눈물이나 서로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낱낱이 나열되는 거창한 세월의 고백 같은 것은 없다. 잠깐 피어오르다 코끝에 살짝 냄새만 묻히고 사라지는 한 줄기 바람처럼. 박사의 아내는 가던 길에 잠시 들러 ‘잘 있어?’ ‘밥 먹었어?’ ‘오늘 추우니까 따뜻이 입어.’ 같은 정도의 가벼운 안부만 부탁하고 무심한 듯 떠난다. 죽은 아내를 살려보려는 욕망만큼 죽은 이까지 살리려 노력했던 박사의 그리움의 열망의 무게. 가히 짐작할 수 있지만 그에게 그의 아내의 그 짧은 방문은 그 모두를 보상할 만큼 충분히 족했다. 그리운이를 향한 그리움은 무슨 거창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생전의 그 모습을 다시 한 번 그저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라는 진실! 작품 《깊게 자자 죽음의 문턱까지》는 잘 보여주고 있다. 두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요란하고 우스꽝스럽고 시끌벅적한 유쾌한 소동 속에 문득 그리움의 무게의 순간을 잠시 즈려밟듯 눌러 침묵으로 보내는 순간이 있다면 좋았겠다… 생각한다. 또 한 가지는 그 화로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살살 피어올랐다면 일본만이 가지는 미학적 정취가 훨씬 살지 않았을까…여겨진다.

 

마지막은 해피엔딩이다. 죽었다 깨어난 남자도 자신의 죽은 아내를 향한 그리움의 정체를 깨닫는다. 그의 죽은 아내를 닮은 현재의 아내는 자신이 그녀의 대용품임을 알고 더 이상의 결혼을 지속할 의무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박사는 죽은 아내를 만났음으로 더 이상 죽은 이를 살리려는 노력을 멈추기로 한다. 그의 조수는 더 이상 박사와 함께 할 이유가 없다. 대신 그는 젊은 여인과 새로운 사랑을 꿈꾸고 그 두 남녀는 새로운 미래를 향해 사랑의 손을 맞잡는다. 모든 것이, 모두가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일상을 다시 시작한다. 

 

극장을 나가며 문득 내게도 잠시 소환하고 싶은 그리운 이들이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이봉은 무대디자이너. 특히 봉은씨가 그립다. 지나가는 그녀에게 여느 때 그녀를 부르듯 ‘뽕!’하며 잠시 불러 세워, 가는 길에 손을 흔들어주고 싶다. 그러면 아버지가 서운해 하실까? 하지만 아버지를 만나면 아직은 그냥 바로 가시게 해드릴 여유가 없을 것 같다. 에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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