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의 세계로 향하는 용기를 응원하며
윤진현
작 : 남현정・정찬수
작곡 : 천필재・유수진
연출 : 민준호
단체 : 한다 프로덕션
공연일시 : 2018/05/25~05/26 pm
공연장소 : CKLstage
관극일시 2018/05/26 pm3:00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지만 우리 인간은 그다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 않다. 우리의 선택이 언제나 우리 자신의 이익을 향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합리적, 경제적 사고와 판단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어리석은 결정을 때때로 저지르고 심지어 그러한 선택과 결정을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숭배하기까지 한다.
근대를 지탱하는 이성과 합리의 세계가 인간의 일부만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문학과 예술은 언제나 이러한 근대의 프레임에 이의를 제기하며 마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기억해왔다. 현실을 넘어서지 못하고 비극적으로 패배하는 인간의 절망조차도 거대한 현실에 도전했던 인간정신을 통해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예술을 통해 이러한 인간은 현실을 향해 끝없이 환기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현실적 타산은 때로 움직일 수 없는 거대한 절벽 같은 존재감을 자랑해왔고 이러한 현실에 예술 속의 인간마저도 어쩐지 맥이 빠진 듯 안이하였다.
한다프로덕션의 뮤지컬 <인간탐구생활>은 아직 리딩쇼케이스를 공개했을 뿐이다. 미완성의 작품에 지면을 할애하는 것이 어쩌면 시기상조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이들의 작품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들의 앞길에 축복과 격려를 보내고 싶은 작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들은 워낙 배우 중심의 소규모 창작 뮤지컬을 지향하는 듯하다. 뮤지컬이 기본적으로 대자본을 기반으로 상상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구상부터 도전적이다. 게다가 리딩, 트라이아웃 등의 과정을 계속 공개하면서 관객의 피드백을 받아 작품을 완성해간다는 진행전략도 흥미롭다. 마치 재능있는 인디밴드가 작은 팬덤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이들과 소통하고 심지어 토론하면서 활동을 넓혀가는 것과 같은 새로운 트렌드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음악과 드라마가 함께하면서 발신하는 극적 메시지가 규모를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과 시스템을 넘어서고자 하는 이들의 구상이 계속 성장하길 바란다.
작품의 시작은 얼마간 상투적이지만 암울한 현실을 유쾌하게 통과한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인물들의 이름이다. EMI7, JYP5, BBQ3, DDR4, 끄트머리의 숫자는 복제된 숫자를 의미한다. EMI. JYP 따위의 문자들은 거대 문화자본을 연상케한다. 복제로 영원히 살겠느냐는 풍자적 질문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이 사는 곳은 지구와 쌍둥이별이다.
쌍둥이 지구의 존재를 발견한 인류, 처음에는 친구가 되자는 시그널을 보낸다. 그러나 곧 지구는 대멸망에 이르게 되니 인류는 종족끼리 싸우다 멸종되고 만다. 이 멸망은 비통하기보다는 유쾌하다. 획기적이고 새로운 출발을 꿈꾸는 패기가 느껴진다.
쌍둥이 지구는 유토피아이다. 유토피아인들은 복제를 통해 불멸하며 DNA 편집을 통해 질병과 죽음을 극복하였다. 다만 적정인구를 유지하기 위해 임신과 출산을 금지하고 정기적으로 호르몬제와 감정조절제를 투약한다. 합리적 상수의 세계를 전제하는 현실세계에서 마성적 존재인 인간이 살아남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이었다. 졸음을 참으며 공부하고 화를 누르며 타협하고 모멸감과 수모를 이겨내며 품위를 유지해야 정상적인 사회적 인간으로 간주된다. 요컨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욕구와 욕망과 싸워야 했고 이를 이겨낼 때 칭찬받고 보상받아 왔다. 이 모든 것이 스스로의 뼈를 깎는 수신(修身)을 통해 이루는 것이 아니라 ‘DNA 편집’을 통해 이룰 수 있다면 정말 쌍수를 들어 환영할 듯하다.
그런데 이 유토피아에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임신 호르몬’이 감지된 것이다. 임신한 ‘마리아’는 임신과 관련한 어떠한 불법적인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맹세하고 AI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판단한다. 유토피아는 ‘아기 탄생’을 두고 찬반격론이 벌어지고 이들의 대립은 극한으로 치닫는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토피아의 사회시스템 책임자 EMI7과 지구언어를 최초로 해석한 지구학자 JYP5는 비슷한 문화를 갖고 있던 지구를 찾아가 해답을 찾아보기로 한다. 핵폭발이 발생하여 종말이 시작되었던 워싱턴으로 좌표를 정했지만 오류를 일으켜 서울 대학로에 불시착한 우주선, 인간이 사라진 황폐해진 거리에서 <오셀로> 한 권을 건져 간신히 탈출하여 귀환한다.
유토피아에 도착한 EMI7, JYP5는 멸종의 해답을 찾기 위해 지구에서 수집한 <오셀로>를 공연하여 변수와 모험의 위험성을 보여주어 유토피아 주민을 계몽하고 진정시키기로 한다. 공연을 위해 음악, 춤, 연기에 강력한 DNA를 가진 자를 모아 오랫동안 비활성화되어 있던 재능을 활성화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공연에 성공한다. 억압된 재능을 소환하는 이 코믹한 상상력이 즐겁다. 진로에 도움에 되지 않는다고 억압되고 무시되는 수많은 청년들의 재능을 환기하는 이 발랄한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그런데 왜 <오셀로>였던가?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라고 하지만 <오셀로>의 인기는 상대적으로 덜하다. 못나고 성급한 질투심의 어리석은 주체, 검은 무어인 ‘오셀로’는 인기가 덜한 편이다. 셰익스피어 문학은 불멸의 유산이지만 개인 셰익스피어는 시대의 소산이었다. 그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왕당파에 가까웠고 인종차별주의자였으며 엘리자베스 시대의 제국주의적 세계관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신과 운명에 도전하는 특출한 인간을 의미하던 ‘영웅’이 많은 인간에게 정치적 사회적 영향을 끼치는 인간으로 해석되던 그의 시대를 고려해도 검은 피부의 무어인 ‘오셀로’의 어깨에 도시의 운명을 얹어둘 수밖에 없다는 상상은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허다한 셰익스피어가 끝없이 공연되는 연극계를 감안해도 ‘오셀로’에 주목하는 이들의 선택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이다.
400년 전의 작품을 해석하면서 이들이 겪는 어려움이 다른 차원의 세계로 재조명되는 방식도 유쾌하였다. 무엇보다도 작품이 진행되면서 ‘바른생활’ 유토피아인이던 바비가 스스로 내면의 이아고를 발견하고 질투 위해서 새로운 결정을 해내는 역설 또한 인상적이었다. 아직 세부적인 설득력은 부족하지만 보완을 통해 이 사악한 반동인물의 내면에 실재하는 욕망조차 우리 자신의 것임을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무엇보다도 어리석음, 질투, 허다한 비경제적인 욕망들이 오히려 우리를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라는 지혜로운 깨달음을 응원한다. 가정된 이성과 합리 위에 기초된 제도적 세계를 넘어, 그것이 비록 우리 자신을 필멸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 해도 미친 듯이 사랑하고 뜨겁게 욕망하기를 바란다. 하여 이 거친 변수의 세계로 용감하게 나아가 빛나는 삶을 만들어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