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광화문연가> / 최승연

주크박스 뮤지컬의 음악은 결국 모든 것에 선행한다
뮤지컬 <광화문연가>

 

최승연(청강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 교수, 뮤지컬 평론가)

 

작: 고선웅
작사/작곡: 故이영훈
연출: 이지나
프로듀서: 박민선
제작: CJ ENM
공연일시: 2018/11/02-2019/01/20
공연장소: 디큐브아트센터
관극일시: 2018/11/21 8pm

 

 

 

뮤지컬 <광화문연가>의 막이 올랐다. 2017년 공연에 이어 다시 연말 공연이다. 작년 연말 공연의 성과가 나쁘지 않아 이를 이어가고자 하는 전략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주인공이 가장 찬란했던 생의 한 국면을 추억하고 삶을 정리한다는 내용이 연말의 정서와 잘 어울린다는 제작사의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광화문연가>는 처음부터 이와 같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몇 단계를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정착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2017년 CJ가 제작을 이어 받으면서 작품의 틀을 완전히 변화시킨 것에서 발견된다. 더불어 캐스팅 라인업과 공연 시점을 포함한 마케팅 방식도 함께 달라졌다. 그러나 이런 반복된 변화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광화문연가>를 <광화문연가>로 기억하게 만드는 방식, 즉 2011년 초연 시점부터 <광화문연가>가 하나의 콘텐츠로 뮤지컬 씬에 포지셔닝되는 방식은 줄곧 유지되고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추억, 작곡가, 학생운동

 

<광화문연가>와 같은 주크박스 뮤지컬이 먼저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은 원재료로 제공되는 음악에 드라마를 어떻게 입히는가 하는 점이다. 주크박스 뮤지컬에서 무엇보다도 선행하는 것은 선택된 아티스트의 음악 그 자체다. 특정 아티스트의 음악을 선택하고 라이선스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부터 작품의 방향성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음악은 보통 그 음악이 풍미했던 당대의 맥락을 끌어안으며 향유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주크박스 뮤지컬의 드라마 역시 그 맥락에 맞게 입혀지게 마련이다. 더욱이 애초부터 전략적으로 해당 아티스트의 팬이 뮤지컬의 관객으로 상정되기 때문에, 음악이 향유되는 맥락을 벗어난 드라마는 시도되기 쉽지 않다. 가령, <그날들> 초연 당시 김광석의 음악이 적극적으로 편곡되어 대통령 경호원들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 안에 담기자, ‘뮤지컬은 있지만 김광석은 없다’는 비판이 가해졌던 것을 우리는 쉽게 기억할 수 있다.

 

<광화문연가>는 잘 알려져 있듯 故이영훈이 작곡하고 이문세가 불러 1980년대 한국 발라드 음악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음악들을 원재료로 사용한다. 2011년 초연 이후 2012년 재연, 2013년 광화문연가2(2011년 버전부터 2013년 버전까지는 ㈜광화문연가가 제작을 주도했다), 그리고 2017년 CJ에 의해 새로 쓰인 광화문연가와 2018년 재연(현재)에 이르기까지, 음악의 재료는 고정되어 있는 대신 드라마는 전체 판을 바꿔 두 번 변화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서로 다른 세 가지 버전을 ‘추억, 작곡가, 학생운동’이라는 키워드가 관통한다는 점이다. ‘추억’은 플롯을 조직하는 축으로서, 현재가 과거(1980년대 중후반)를 소환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 작품이 마감되는 방식을 취하게 만든다. 그리고 ‘작곡가’는 남자주인공의 직업이며, ‘학생운동’은 주요 인물 혹은 여자주인공이 과거에 가담했던 일로 설정되어 있다. 다만 <광화문연가2>는 초연 <광화문연가>의 스핀 오프 버전으로 아이돌 주인공과 한물간 인기가수의 이야기가 주요 드라마라서 이러한 키워드에서 다소 비껴나 있지만, 초연 드라마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 흔적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이렇게 정리될 수 있다. 작곡가 이영훈의 음악은, 학생운동이 일상화되어 있던 시대를 소환하여 그 안에서 사랑했던 ‘과거’ 연인들의 이야기라는 맥락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 초연에서부터 설정되었던 이러한 원초적인 틀은 이영훈 음악의 가사가 주로 끝나버린 첫사랑을 노래한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으며, 2008년 이영훈이 작고하기 전 직접 초연 대본의 틀을 만들었다는 점과는 더더욱 무관하지 않다. 대중이 이영훈의 음악을 실제로 향유하는 방식 혹은 작가의 기획에 의해 설정된 향유의 틀이 <광화문연가>의 전체 드라마 안에 녹아 있는 것이다.

 

 

 

현재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런데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소환하여 구성되는 드라마는 그 해결점이 결국 현재에 놓인다는 것, 다시 말해 ‘현재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점에 놓여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과거는 반드시 현재의 ‘문제적 상황’을 풀기 위해 조명된다. 초연의 드라마가 상훈, 여주, 현우의 얽히고설킨 삼각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과거 그들의 인연이 시작되던 시점부터 시작한 것, <광화문연가2>의 가을이가 산하에게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아이돌 아담이 산하와의 관계를 회복하게 된 것 역시 산하의 과거를 이해하면서부터였던 것이다. 이 지점에서 CJ버전 <광화문연가>는 가장 적극적이고 파격적이다. 1분 후면 죽을 운명인 주인공 명우가 맺은 인연들을 초월적 존재인 ‘월하’가 개입하여 해결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처음부터 한계 상황을 긴박하고 명확하게 설정해 놓고 현재의 명우가 어떻게 죽음을 맞는지에 주목한다. 얼마 남지 않은 현재에서 해결해야 할 점들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초점을 맞춘다는 이야기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광화문연가>는 관객의 기대를 배신함으로써 현재를 해결한다. 작품은 명우가 이승에서 제대로 풀어야 할 인연이, 첫사랑 수아가 아니라 현재 명우 옆을 지키고 있는 아내 시영이라고 이야기한다. 수아에 대한 기억은 지나간 사랑에 대한 집착이고 시영은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곁에 있는 존재’라는 논리다. 작품은 이 논리를 관객에게 인지시키기 위해 여러 설정과 상황을 반복했다. 한 살 연상인 수아와 풋사랑을 나누던 명우는 훈련병 시절 첫 휴가를 나와 수아와 헤어진다. ‘붉은 노을’이 펼쳐지는 그림 같은 상황 속에서 그들은 그렇게 인연을 끝낸다. 이후 수아는 운동권 투사의 삶을 더욱 심화시키는 반면 명우는 수아를 잊지 못해 괴로워한다. 이제 작품은 명우의 기억과 바람 안에 존재하는 수아를, 작품 속 사건과 동일 선상에 놓아 사건과 상상을 혼재하게 만든다. 마치 오랫동안 그들의 인연이 지속되고 있던 것처럼. 하지만 작품은 두 사람이 헤어지던 시점에, 월하가 자신의 기억을 더 이상 소환하지 못하도록 중년 명우가 막고, 대신 중년 명우는 청년 명우를 직접 수아에게 데려다 줌으로써, 명우가 수아를 그리워한 나머지 상상으로 기억을 만들어내기 시작함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시점에 시영이 등장하여, 명우와의 인연을 끝까지 이어갔던 사람은 수아가 아닌 시영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두 사람의 인연이 끝나는 ‘붉은 노을’ 장면을 두고 “이 장면은 두고두고 생각나겠지?”라고 말하던 월하의 대사는 사건과 상상의 경계를 나누는 신호였다.

 

<광화문연가>는 그러니까, 명우가 수아와의 첫사랑을 지우고 현재 사랑인 시영을 ‘기억 속의 빈 집’에 그려 넣는 과정을 다루는 작품이다. 시영을 현재 사랑으로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명우의 ‘문제적 상황’을, 수아와 함께 했던 과거를 소환하여 사건과 상상을 분리함으로써 시영을 인정하게 만드는 것. 이를 통해 명우의 기억의 갤러리에 수아가 아닌 시영과의 추억으로 가득 차게 만드는 것이 작품의 목표점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2막에 잠깐 등장하는 중년 수아는 명우와의 추억을 이미 기억의 저편으로 돌린, 쿨하고 냉담한 여성으로 묘사될 수밖에 없다.

 

 

 

드라마와 음악의 분리

 

그러면 이제 가장 핵심적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위와 같은 <광화문연가>의 목표점과 테마가 실제 관극에서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명우가 시영을 기억 속의 빈 집에 받아들이는 장면과 수아와의 사랑이 묘사되는 주요 장면들은 어떤 연계성을 갖고 움직이고 있을까. 사실 답은 정해져있다. <광화문연가>의 끝 맛은 별로 개운하지 않다. 목표점과 테마에 대한 설득력이 별반 없는 것이다. 극중 월하가 ‘과거의 인연은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라고 아무리 주장한다고 해도, 관극 후 남는 것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한 질문들뿐이다. 작품은 수아와의 첫사랑을 왜 그렇게 공들여 보여준 것일까? 수아와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명우가 일순간 각성하듯 시영을 진정한 인연으로 인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죽기 직전’이라는 드라마틱한 설정이 이러한 명우의 각성을 뒷받침해줄 수 있을까? 첫사랑에 대한 명우의 기억에 의존하여 탄생한 노래들은 ‘마지막 인연’ 수아의 드라마와 잘 부합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드라마의 개연성 문제와 결부되어 있는 이 질문들 외에 사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수아가 운동권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학생운동은 <광화문연가>에서 다뤄지듯 단순히 1980년대에 유행하던 정신적 모드로 묘사되기에는 부담스러운 소재이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방식을 통째로 바꿔버린 현재진행형의 문제일 수 있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현실에 적응하며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죄의식을 갖게 만드는 원심력일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학생운동이 명우와의 갈등을 만드는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용기가 없어 곤란에 빠진 수아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명우의 죄의식이 그들의 이별에 중요한 동기로 작용하고 명우는 그 죄의식에 오랫동안 시달리지만, 정작 현재의 수아는 수입차 딜러인 운동권 선배였던 남편과 함께 잘 살고 있다. 허무한 결말이다.

 

역설적이지만, <광화문연가>는 이런 문제들 때문에 결국 주크박스 뮤지컬의 핵심으로 되돌아간다. 작품 전체에 걸쳐 이영훈의 음악이 등장할 때마다 드라마의 약점들을 잠시 잊고 음악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는 것. 그리고 결국은 드라마적 긴장을 놓고 콘서트를 즐기듯 ‘음악’을 즐기게 된다는 것. 커튼콜 이후 진행되는 ‘붉은 노을’ 싱얼롱 타임은 중년 이상의 관객들을 모두 포괄하는 축제의 시간으로서, <광화문연가>가 포지셔닝 되고자 하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양식적으로 완전한 뮤지컬 대신 콘서트처럼 소비되는 뮤지컬이면 된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이런 종류의 뮤지컬도 관객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젠더 프리 캐스팅(2017년에는 월하에 정성화, 차지연이 캐스팅되었고 현재 공연되는 재연 버전에서는 구원영, 김호영, 이석훈이 캐스팅되어 있다)으로 월하를 무정형의 캐릭터로 만들고, 월하와 함께 등장하여 쇼의 측면을 강화하는 극중 캐릭터 ‘그대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방식은 뮤지컬의 콘서트적 정체성을 더욱 강조한다. 흐르는 음악을 ‘듣고’ 극의 외부에 놓이는 인물들의 쇼를 ‘보며’ 음악과 드라마를 분리시키는 뮤지컬로 <광화문연가>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드라마의 개연성 결여로 음악과 드라마가 분리되는 이러한 현상이 ‘이영훈’이라는 원재료를 현실적으로만 고려한 결과라면 재고할 여지가 있다. 이영훈은 생전 첫사랑의 추억을 일관되게 작곡의 원천으로 삼았으며 부인은 이 상황을 어찌할 도리 없이 항상 불만스러워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광화문연가>에 이 실화가 겹쳐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죽기 직전의 명우가 수아가 아닌 시영에게 비로소 진정한 인연의 의미를 부여한 <광화문연가>는 ‘이영훈 뮤지컬’이라는 부제를 달고 부인에게 헌정되는 작품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광화문연가>가 안정적인 창작뮤지컬 레퍼토리로 발전되려면, 원재료에 대한 저작권 문제가 주크박스 뮤지컬의 한계를 결정짓는 상황에 대한 진지한 고려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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