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톡톡 by 선연 김수미
연극평론가
**릴레이톡톡은 오랫동안 대학로 무대에 섰던 배우들을 찾아갑니다. 긴 시간동안 무대를 지켜왔던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서 배우의 가치와 의미를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좋은 배우는 어떤 사람들인가요. 그들이 만드는 연극은 어떤 모습일까요. 릴레이톡톡은 배우들이 지목하는 배우들로 이어나갑니다.
“연극에서는 자기 역할에 대한 좌표 설정이 중요해요. 작품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내 역할의 정확한 좌표를 그을 수 있으면 내가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헷갈리지 않아요.”
1.
격정적이거나 애드리브가 좋은 배우들을 보면 천생 배우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무대에서와 일상에서의 모습이 많이 달라서 뜻밖인 경우도 있지만, 배우는 대개 배우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런 면에서 남명렬은 좀 다르다. 적어도 첫 인상이 강렬한 캐릭터는 아니다. 때때로 다소 격정적이거나 이색적인 역할을 할 때도 있었지만, 평소에 보는 그의 외모나 말투는 열정적인 캐릭터보다 비교적 안정적인 역할에 잘 어울렸다.
배우는 외면적인 인상으로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역할을 선택받는 입장에서는 남명렬같은 배우가 오히려 불리하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이런 착한(?) 에너지의 배우는 자칫 자극적인 캐릭터에게 관객의 시선을 빼앗기기 쉽다는 데 있다. 물론 관객이 강렬한 에너지를 뿜는 캐릭터에게 집중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문제는, 이럴 때조차 주변 배우들이 흔들림 없이 자신의 페이스와 에너지를 유지해줘야 한다는 데 있다. 실제로 중심 배우를 에워싼 주변 배우들의 연기가 팽팽하게 받쳐지지 않으면, 아무리 매력적인 배우가 무대에 서 있어도 작품은 쓸쓸하고 공허하다.
남명렬은 작품의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가거나 유지시켜주는 역할이 많았다. 그것들은 쉽게 눈에 띄지 않거나 띄지 않아야 하는 역할일 때가 더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많은 이들이 주목해 온 까닭은 그가 자신의 역할을 바라보는 자세 때문이다. 남명렬은 자신이 맡은 역할의 크기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 작품 속에서 존재해야 하는 무게와 질감을 정확하게 분별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
“연극에서는 자기 역할에 대한 좌표 설정이 중요해요. 내 역할이 작품 속에서 어떤 지점에 있는지를 찾는 거죠. 작품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내가 할 역할의 정확한 좌표를 그을 수 있으면 내가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헷갈리지 않거든요.”
모든 배우가 고민하는 지점이지 않나. 문제는 그 훌륭한 질문의 답을 어떻게 찾아내야하는지 모른다는 데 있다. 한 번 더 반복해서 물었다.
“언젠가 무슨 작품을 하는데, 좀 작은 역할이었어요.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없으면 극이 진행되지 않는 인물이었죠. 장면을 이어주고 끌어주는 역할이라서 연기가 도드라지면 안 되었어요. 어느 날 연극을 본 선배 하나가 그래요. ‘그 인물이 (보기보다) 정말 힘든 역할이다. 그런데 존재를 무너뜨리지 않고 버텨줬기 때문에 이 연극이 이렇게 좋았던 거다. 남명렬이가 무대 위에서 유지하고 있는 힘이 대단하다고 보았다’ 이런 것을 보아주는 사람도 흔하지는 않죠. 이런 사람이 있다면 연극하는 일이 가치가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도드라지면 안 되도록 설정된 역할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관객의 설득력을 얻어내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출발선에서부터 가점을 얻고 시작하는 주역보다 훨씬 섬세하게 많은 고민을 해야 하고, 우물처럼 깊고 큰 울림을 낼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실로 그런 배우들이 연극무대에는 훨씬 많다.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잖아요. 예를 들어서 10년 전에 내게 누군가가 뮤지컬을 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솔로곡 개수가 7개라고 해서 안한다고 했어요. 솔로 하나, 듀엣 하나 정도였다면 어쩌면 가능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7곡은 한두 달 트레이닝으로 되지 않거든요. 노래를 좋아하고, 뮤지컬을 하고 싶은 마음과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것과는 다른 거잖아요.”
결국 자기 성찰인 셈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고 있어야 나올 수 있는 대답이다. 남명렬의 격정적인 성향은 외면보다 내면에 자리 잡은 듯하다. 들끓는 격정을 끌어안는 자기훈련과 냉철한 자기분석이 잘 된 사람처럼 그와의 대화는 분명하고 담백했다. 이런 배우가 살아낸 연극의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다. 이들의 시간 속에 연극과 배우의 본질이 녹아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죽고 나서 딱 30명 정도만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갈매기>에서 트리고린이 니나한테 하는 말 중에 자기 묘비명에 대해서 하는 말이 있어요. ‘여기 트리고린이 잠들어 있군. 썩 괜찮은 작가였지. 그렇지만 뚜르게네프보다는 못했지.’ 나도 그렇게 기억되는 배우이면 좋겠어요.” 뭔가 굉장한 걸 이뤄낼지는 못할지라도 몇몇의 사람들과 행복한 기억 속에 남을만한 ‘썩 괜찮던’ 사람 정도. 딱 그만큼의 인생.
나는 원래 독고다이였어요. 워낙 아무런 배경이 없었죠. 연극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와 마땅히 기댈 구석이 없었으니까. 살아가는 일에 스스로를 채찍질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셈이에요.
2.
남명렬은 충동적 성향의 내면과 안전 지향적 성향의 상반된 욕구를 잘 운용해서 자신의 밸런스를 잘 맞춰내는 배우다. 젊은 연출가들의 실험적 과정에 지속적인 러브콜을 받는 까닭은 아무래도 이 조화와 균형 때문인 듯하다.
“젊은 연출가들과 작업하는 건 무대 위에서 지속되는 배우가 되고 싶은 나 나름대로의, 일종의 몸부림이에요(웃음). 나는 원래 독고다이였어요. 워낙 아무런 배경이 없었죠. 연극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와 마땅히 기댈 구석이 없었으니까. 살아가는 일에 스스로를 채찍질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셈이에요.”
연출가 서재형의 러브콜도 그 중 하나다. 남명렬은 인터뷰 당시 예술의전당에서 서재형의 <오이디푸스>에 출연 중이었고, 3월에는 구리아트홀에서 연장공연도 계획 중이다. 남명렬은 코린토스의 사자 역할을 맡았다.
“내 역할은 짧고 작아요. 서재형 연출가는 프라모델처럼 연극을 만든다고 하더군요. 계획이 구체적이고 분명해서 효율적으로 작업할 줄 아는 영리한 연출가죠. 주인공 황정민 배우는 스타캐스팅에 대한 편견을 깨뜨려줄 만큼 엄청나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에요. 이름값에 대한 책임감을 무겁게 지고 있는 친구죠. 덕분에 작업이 꽤 즐거웠어요.”
그 ‘별로 중요하지 않은’ 배우 17명이 보여준 형형색색의 연기는 관극의 묘미였다. <오이디푸스> 작품은 주인공 황정민의 설득력 있는 연기만큼이나 각각의 배우 연기가 돋보였고, 덕분에 유난히 크고 감동적인 관객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깔끔하게 텍스트를 정리해낸 한아름 작가의 노력을 바탕으로 효율적인 무대 쓰임새, 이목을 끄는 분장과 의상, 영상을 활용한 미쟝센의 조화로움은 서재형 연출가의 능력을 재확인시켜준 반가운 부분들이었다.
남명렬은 책을 제대로 읽는 사람 중의 하나다.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책에서 길을 발견하기 마련이다. 마치 생명체를 가진 것처럼 책은 스스로의 지표를 따라 계속해서 길을 낸다. 그 길을 따라 걷던 남명렬은 요즘 <마르크스와 다윈의 저녁식사, 두 사람>과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에 닿아 있다. 남명렬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두 사람>은 현대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두 사상가의 상관관계 속에서 ‘진화’와 ‘혁명’의 상관관계를 생각해보는 내용이다. 사회적 이슈와 최근 연극계의 변화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행동하는 남명렬에게 마르크스와 다윈의 사상은 어떤 실마리를 던져주었을까. 가난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제관념은 연극인으로서의 남명렬의 경제적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남명렬이 책읽기는 단순히 연기와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한 명의 연극인으로서 혹은 인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가치관을 세워가는 남다른 노력이기도 하다.
3.
이야기를 나누고 분장실로 돌아간 남명렬은 청천벽력 같은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인터뷰 날짜는 2월 7일이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었어야 했을 것이다. 모든 공연 배우들의 운명이 그러하듯 공연을 앞둔 분장실에서 듣는 가족의 부고 소식이란 – 당장 달려가 볼 수도 없고, 공연에 집중하기도 어려운 그 힘든 시간이란, 가파른 경사에서 커다란 돌을 묵묵히 밀어 올리는 것처럼 막막하고 처절한 기분일 것이다. 2시간짜리 연극 말미의 짧은 2개의 장면에 등장하는 코린토스에서 온 사자, 남명렬은 마침내 자신의 좌표에 우뚝 섰고 초연한 사자의 얼굴로 연극을 완성시켰다.
며칠 후,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제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인터뷰 때 부족한 듯싶었는지 자신이 읽고 있다던 책 두 권의 이미지를 찍어 보냈다. 해야 될 일과 하고 싶은 일, 해야 될 말과 하고 싶은 말, 해야 될 무엇과 하고 싶은 무엇. 그것을 분별해내고 실행해나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삶의 작은 수행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배우 남명렬에게 우리는 이것을 배운다. * 남명렬이 지목한 다음 배우는 김종태다.
대전에서 연극과 공연장 관련 일을 하고 있다.
10년전 아파트로 이사하는데 앞 집 할머니께서 필요할 거라며 수건과 걸레 몇장을 건네 주셨다.
아드님이 연극을 한다기에 성함을 여쭤보니 잘 모를거야 라며 “남명렬이라구 있어” 라고 하셨다.
항상 온화한 미소였고 1층 베란다에 꽃 가꾸는걸 좋아하셨다.
부고를 전해들은 날 고등학생인 아들이 슬퍼하며 말했다.
” 그 할머니 내가 물총 가지고 놀 때 이뻐해 주셨는데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났구나…”
고인이 되신 남명렬선생님 어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남명렬선생님의 어머님과 특별한 인연을 갖고 계셨군요.
인연의 기억으로 더욱 의미가 남다른 글이 되셨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강경호님의 기억을 통해서 저까지 다시 한번 환기가 되는 기회를 얻습니다.
기억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전에서 하시는 연극과 공연장에 건승을 빕니다.
환한 미소와 진지한 내적 에너지가 꿈틀대는 지적인 연기자 남명렬님의 연기를 늘 좋아합니다.
불의 가면을 통해 인간의 격정적인 욕망의 불가마를 온 몸으로 끌어간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안석환 님과 함께 한 거미여인의 키스를 보러 서울로 올라가 극장에 들어섰을때 온몸에서 나오는 두 배우의 앙상블과 좁은 공간과 숨소리가 들리는 그 앞에서 인간적 고뇌의 속깊은 연기에 전율했던 그 시간도 참 많이 그립군요.
늘 건강하시고, 좋은 작가, 연출가 님들과 무대위에서 당당히 연기하는 모습을 항상 응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