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연극(3)
이재진
I. 기독교와 로마연극 II. 기독교와 중세연극 III. 수난극/오버암마가우 IV. 잔 다르크/요한나 V. 맺는 말
– 우리는 그간 ‘기독교와 로마 연극’, ‘기독교와 중세연극’이란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연극공연을 금지시키거나 거부하던 교회가 예배에 연극형식을 도입했고 성경공부나 라틴어 교육을 위해 학교수업에 연극을 활용했다. 라틴어는 점차 무대에서 떨어져나가고 서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토속어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부활이나 성탄과 같은 내용들은 늘 그 시기에 맞추어 공연이 이루어졌다. 상권이 활발해 지고 상인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시장이 활성화되자 도시가 부흥하기 시작했다. 이제 이런 시민들이 공연을 지원하고 주관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대학이 건립되었고 연극의 수용범위는 더욱 커지게 되었다. 전쟁, 전염병 등도 종교극의 활성화를 부추겼다. 민중축제의 성격을 띠게 된 종교극은 시골로 숨어들었고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III. 오버암마가우(Oberammergau)
예수 수난극
남부 독일 바이에른 지방, 알프스가 멀지 않은 곳에 오버암머가우란 조그만 마을이 있다. 주민이 5천여 명이 되는 이 마을은 예수 수난극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 진 곳이다.
– 2010년 독일에 여행 갔을 때 이 마을에 들려 수난극을 보았다. 10년에 한 번씩 막을 올리는 축제라 만사제치고 힘들여 찾아 갔었다. –
페스트(흑사병)는 아시아에서 시작되어 무역 로를 통해 널리 퍼져나갔고 어느 다른 곳보다도 인구밀도가 높은 유럽에서 극성을 부리곤 했다. 특히 1347년에서 1353년 사이 유럽에 창궐한 페스트로 그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천 5 백만여 명이 사망했다. 예를 들어 피렌체 지방에서는 주민 5분의 4가 죽었고 독일에서는 10분의 1이 죽었다고 한다. 그 원인을 모르던 중세기에는 유태인이 독을 우물에 뿌렸다는 등 협의를 그쪽으로 돌리고 대대적인 학살로 이어지기도 했다. 아니면 하나님에게 매달려 구원의 손길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1633년 페스트가 오버암머가우에 몰려오자 마을사람들은 이 재앙에서 구해준다면 정기적으로 수난극을 공연해서 받치겠다고 하늘에 맹세한다. 전염병이 물러가자 마을 사람들은 그 고마움을 기리고자 1664년 예수의 마지막 5일의 고난을 마당극으로 연출하기 시작했다. 1680년부터는 10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 세계대전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예외 없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수난극을 공연한 이후 페스트로 죽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많은 관객이 찾아오는 것은 중세 신비극 혹은 수난극이 갖는 공연의 특수성에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그 사이 너무나 많은 고난과 고통을 경험했던 인간들은 예수의 고난을 통해 스스로 위로받고 남을 위로해 주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2백여 년은 교회 옆 공동묘지 광장에서 공연을 해오다가 점차 관객이 몰려오자 19세기부터는 정식 공연장을 마련하게 되었다. 교회의 품위를 손상한다는 이유로 대본 때문에 초기에는 금지된 적도 있었고 그 후에도 예수의 죽음에 대한 유태인의 문제 등 반 유태인 정서 때문에 작품에 대한 논란은 끝이지 않고 있다. 마을 주민 전체가 덤벼들어 대략 5개월 동안 110여 차례공연을 올리고 50여만 명의 관객이 다녀간다.
유다의 은화 30냥
줄거리는 늘 똑같이 닷새 동안 벌어지는 십자가에 달리는 예수의 고난이다. 하지만 그때그때마다 연출은 강조점을 조금 달리 잡는 모양이다. 내가 찾아갔던 2010년 공연에서는 베드로와 유다가 중심에 서 있었다. 특히 유다의 배반을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유다가 예수를 배반할 수밖에 없었던 고민과 아픔을 강조해서 연출했다. 유다는 내가 아니면 누군가 다른 제자가 배반을 하게 되고 그 고통을 받게 된다는 고민 속에 자신을 희생한다. 그래서 예수를 배반하고 로마병정에게 팔아버린다. 유다는 예수의 죽음은 원하지 않았다. 십자가에 끌려가는 예수를 보며 유다는 괴로움 속에 몸부림치다 은화 30량을 집어던진다.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는 밖으로 나가 부끄러움과 후회 속에 눈물을 흘린다. 베드로는 예수가 자신을 용서하리라 기대한다. 유다에게는 그런 믿음이 없다. 예수의 용서를 기대하지 도 않는다. 절망 속에서 유다는 스스로 목을 매단다. 이런 연출의 해석이 설득력이 없고 무언가 내 마음에는 다가오지 않았다
신의 연출
예수 등 주인공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는 특별히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코러스는 정말 멋있었다. 2010년 공연을 위해 새롭게 단장한 극장은 객석 위와 무대 앞은 천장으로 덮어 놓았고 무대 뒤쪽 반쪽은 막지 않아 하늘로 입을 벌리고 있고 그 뒤는 제법 높은 산이 막아주고 있다. 자연조명 등의 효과를 고려해서겠지만 2부는 저녁 먹고 늦으막하게 시작해서 밤 10시 반에 끝나도록 공연시간을 조정해 놓았다. 극이 끝나가면서 예수는 높은 십자가 위로 세워진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점차 숨을 거두어 드리고 있을 즈음 갑자기 검은 구름이 천둥번개를 대동하고 무대 뒤편에 몰려왔다. 정말 2천여 년 전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어갈 때 그랬던 것처럼 어두운 무대 뒤 뚫린 하늘로 천둥번개가 몰려오며 요란하게 불꽃을 내리치는 것이었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자연의 음향효과며 조명이 너무나 실감이 났다. 나는 오늘 공연은 신이 직접 연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매달려 신음하며 죽어간다. 쇠못이 살을 뚫는 고통을 견디기가 무척 힘들었다. 점차 감각을 잃어가고 오히려 고통까지도 잊고 있었다. 그사이 얼마나 피를 쏟았는지 십자가 위 높이 달려있는 몸뚱이도 많이 가벼워졌다. 이제 견딜만하였다. 잠시 빌려 입었던 육신을 벗어버리고 있었다. 홀가분했다. 하지만 자신을 십자가에 매단 저들을 용서할 수는 없었다.
– 예수는 하늘에 대고 끝내 소리친다. “아버지, 미욱한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 순간 나는 성경구절을 다시 한 번 되씹어 보았다. 사실 예수는 아무리 그리하고 싶어도 미움과 고통 속에서 정말이지 자신이 직접 저들을 용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자기 대신 용서해줄 것을 부탁한 것이리라! –
IV. 잔 다르크/요한나
오를레앙의 소녀
기독교와 연극이란 주제를 이해하려면 잔 다르크 (Jeanne d’Arc. 1412 -1431)의 죽음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화형을 당한 이 소녀의 비극적 죽음은 많은 희곡작가들이 애호하던 소재이기 때문이다. 잔 다르크를 소재로 다룬 드라마 중에는 ‘낭만적 비극’이란 부제가 붙은 실러의 [오를레앙의 성 처녀]가 있다. 실러의 드라마 중에서는 작가 생존 시 이 작품이 가장 많이 공연되었다. 이밖에 잔 다르크를 소재로 극화된 작품들은 3부작의 1부에 등장하는 셰익스피어의 [헨리 6세] (King Henry VI, Part 1, 1591), 조지 버나드 쇼의 [성 조엔], 극중 극 형식으로 된 장 아누이의 [종달새](Jean Anouilh, L’Alouette. 1953), 1920년대 말 경제공항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브레히트의 [도살장의 성 요한나] 등이 있다.
– 잔 다르크는 프랑스 중부 오를레앙(Orleans)지방 출신의 소녀이다. 영어권에서는 성 조엔(St. Joan/Joan of Arc/The Maid of Orléans), 독일어권에서는 성녀 요한나(heilige Johanna/Jungfrau von Orléans)라고 부른다. 나는 여기서 독일식 이름을 따른다 –
Rouen
프랑스 왕권의 계승문제로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백년전쟁(1337 – 1453)이 일어난다. 이 와중에 오를레앙 지방에 살던 13세의 시골처녀 요한나는 영국을 몰아내고 프랑스의 왕권을 지키라는 천사의 소리를 듣는다. 요한나가 투쟁하고 예언한대로 도팽(Dauphin)은 카알 7세 프랑스 왕으로 즉위한다. 요한나는 대관식에도 참석한다. 이 소녀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 드높아지자 왕과 신하들은 요한나의 위세를 두려워하게 된다. 평화협정을 원하는 왕은 요한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요한나는 영국군과 가까운 브루군더 군에게 잡힌다. 여러 번 도주를 시도하다가 결국 브루군더 군은 돈을 받고 요한나를 영국군에게 팔아넘긴다. 이어 미신, 신성모독 등의 죄목으로 루앵(Rouen)에 있는 가톨릭 종교재판소로 이송된다.
1431년 시작한 재판은 3개월 지속된다. 최고의 논리(수사력)와 달변으로 단련된 주교들 앞에서, 어떤 변호인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하지만 자기 신분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의젓하고, 당당하게 요한나는 이들과 맞서게 된다. 유도질문이 이어진다. “요한나, 그대는 확신하고 있는가, 하늘의 자비를 받았다고?” 자비를 받았다고 답변하게 되면 하늘을 욕보이는 신성모독임으로 이단자란 죄목으로 끌려 나가게 된다. 교리에 따르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자비를 받는다고 확신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다고 대답하면 실제 유죄를 인정하는 꼴이 된다. 요한나는 대답한다. “내가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은 나를 그곳으로 인도해 주실 겁니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그 안에 잘 보호해 주시겠지요.”
재판이 열리기가 무섭게 마녀를 불에 태워 죽이라는 고함소리가 요란했다. 요한나는 자신이 들었다는 소리를 부인하지 않으면 화형당할 처지에 놓인다. 두려움 속에 자신의 신념을 저버린다. 하지만 그 대가로 자유가 아니라 이단의 죄목으로 지하 감옥에서 일생을 보내도록 판결이 떨어진다. 이제 요한나는 재심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이단이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자 요한난가 감방에서 남자 옷을 입은 것이 들어났다. 간수는 여성복을 빼앗았고 요한나는 그나마 어쩔 수 없어 던져준 남자 옷을 입었던 것이다. 결국 요한나는 67개의 기소항목 중 12개 항목에서 유죄를 받았다. 천사들의 환영을 보았으니 마귀와 통했으며, 약초를 사용하는 등 마법을 썼으며, 이단이며, 요한나는 군인이 아니니 전쟁에서 죽은 군인들은 직접 살해한 셈이 된다는 등 등. 요한나가 자신의 행위를 미신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오히려 화형선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종교재판소가 원하는 바와 달리 요한나는 ‘소리’가 거짓이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고질적인 이단자”라는 죄목으로 요한나에게 화형이란 판결을 내린다.
장작더미가 높이 쌓인 화형대로 올라가며 요한나는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천사를 불러 보았다. 늘 나타나던 천사가 이제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직 스물이 되지 않은 처녀였다.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몸을 돌려 십자가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기적같이 영국군인 하나가 얼른 나뭇가지 두 개로 십자가를 만들어 요한나에게 건네주었다. 두 시간이 가까워지자 군인들 중 누군가 소리를 치며 이러다가 점심시간까지 끌 지 모른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별 법적 요식행사를 거치지 않고 요한나를 산채로 그대로 불에 태웠다. 루앵의 광장에서 한줌의 재로 변한 요한나를 어떤 추종자도 그 흔적을 성유물로 기념하고 기릴 수 없도록 세느 강에 뿌려 흘려보낸다. 1431년 5월 30일이었다. 그 후 여러 번 요한나의 타고 남은 신체 일부가 발견되었다고 세상이 떠들썩했으나 모두 거짓임이 증명되었다.
– 요한나는 그 후 복권이 되고 20세기에 이르러 성녀가 되었다. 재가 되어 강물에 떠내려갔으니 요한나는 아무도 용서할 수가 없다. 처형되던 그 날도 소녀는 예수처럼 무지한 저들을 용서해주라고 애원하고 싶었지만 장작불이 너무 뜨거웠기에 그럴 경황이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이들을 용서하고 이들을 위해 기도하려고 손을 펴 보려 했으나 두 손에 꼭 쥐고 있던 나무 십자가는 어느새 타서 이미 재가 되어 있었으니! –
프리드리히 실러, [오를레앙의 성 처녀](Friedrich Schiller, Die Jungfrau von Orleans. 1801)
실러는 여성을 원래 하이에나와 같다고 여러 곳에 표현했다. 실러는 [군도], [간계와 사랑], [오를레앙의 성 처녀]등 여러 작품 속에서 그 반대되는 여성상을 찾고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영원히 변화지 않는 여성스러움이 우리를 저 높은 곳으로 이끌어 준다.”고 끝맺는다. 실러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은 초기 작품에서 후기 작품에 이르면서 점차 변화해 나간다. 초기 작품의 여주인공들은 여성적이고 아름답고 우아하다. 남자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가부장적인 18세기 사회의 전형적인 여성상을 지니고 있다. 후기 작품에서는 이와 반대로 이성을 내세운 적극적이고 정치적인 여인상이 등장하게 된다. [군도]의 아말리아(Amalia)는 전형적인 18세기 형 순박한 이상적 여인상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말리아는 프란츠와의 사랑이 불가능해졌음을 알고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한다. [간계와 사랑]의 루이제(Luise)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의 결백을 밝히며 여성으로서의 제한된 신분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후기에 이르면서 점차 이런 가정적인 폐쇄된 공간에서 뛰쳐나와 고귀함을 지닌 한 개체로서, 가부장적 규범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주인공이 되기 시작한다. 후기 드라마에 나오는 여성은 복종하는 가정주부의 틀에서 벗어난다. 남성들에게서 해방되어가부장적 규범에서 해방하려는 사상(Emancipation!)을 가지고 있다. 매우 적극적이고 자립적이고 자주적이다. 남성에 의지하거나 의존하지 않는다.
요한나는 순종하고 복종하는 여성성을 지녔으면서도 동시에 여인의 강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실러는 요한나를 ‘사자와 같은 담보를 가진 여인’이라고 표현한 적도 있다. 물론 초기 드라마에서처럼 후기 드라마에서도 여주인공들은 여성적인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여전히 갖추고 있다. 남성들이 사랑을 갈구하는 표적이 된다. 순수함을 지니고 순박함을 지키고 있다. 요한나는 육체적으로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처녀여야 한다. 어떤 사내도 사랑해서도 안 된다. 역사적인 인물인 요한나는 프랑스 궁중에서도 검사를 받았지만 영국군대에서도 처녀성을 성스러운 순수함의 증표로 삼고 ‘처녀성 검사’를 했었다고 한다. (간수가 요한나를 강간했다는 주장도 있다. 마녀로 죽이기 위해 우선 요한나의 성스러움을 더럽혔다는 이야기지만 얼마나 신빙성 있는 지는 알 수 없다.)
요한나는 하지만 전선을 누비는 거친 하이에나는 아니다. 스스로 결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소리의 부름에 따라 행동하는 여인이다. 스스로도 마력을 지닌 여인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친 아버지가 마녀라고 욕을 하자 묵묵히 이를 참고 듣는다. 아버지는 하나님 대신으로 받아드리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딸로서 가부장적 지위를 인정한다. 그로서 교회의 부당한 비난을 수용하기에 이른다. 성모 마리아는 요한나에게 여인의 역할에 대해 말한다.
마리아
복종함은 이 지상에서는 여자의 의무이다
힘들어도 인내함은 무거운 여자의 운명이니
엄한 봉사를 통해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이곳에서의 봉사는 저 높은 곳에서는 위대함이니.
끝에 가서 성모마리아와 요한나의 모습은 하나로 녹아버린다. 요한나가 전투를 부치기며 외치는 방면에서 이는 분명해 진다. “하나님과 성처녀가 너희들을 이끌어 줄 것이다!” 여기서 요한나가 말하는 성처녀는 성모 마리아인지 요한나 자신인지 분명치 않다.
처음부터 요한나는 몸과 마음이 고결하고 순수하다. 그러므로 요한나는 순수함과 우아함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요한나에게 천사가 등장해서 임무를 부여한다. 하나님의 뜻을 받고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로부터 우러름을 받으며 품위를 얻게 된다. 순수함을 지녀야 요한나는 강하며 그러기에 남자를 사랑하면 안 된다. 라이오닐을 보는 순간 사랑을 느끼고 그 영국 군인을 죽이지 못한다. 이 순간 요한나는 품위를 상실하고 스스로 무너진다. 이로서 요한나는 죽음으로서만 다시 자신의 우아함과 품위를 되찾을 수 있게 된다. 요한나는 이성에 따라 움직이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인물은 아니다. 그 반대로 불합리한 부름에 따라 움직인다. 요한나는 항상 “하나님과 성모 마리아가” 원하는 데로 행동한다. 그러므로 ‘낭만적 비극’이란 부제를 작가는 붙어 놓았다. 온통 믿기 어려울 정도의 초자연적 이야기가 전개된다. 신비적이고 기적으로 가득 차 있다. 부름을 받은 요한나, 집시가 건네준 묘한 투구의 유래, 흑기사의 등장, 대관식 장면의 천둥번개, 감옥소에서 쇠사슬을 풀고 탈출, 죽을 때의 성모 마리아의 환영 등.
요한나
저 하늘의 무지개가 보이나요?
하늘은 황금으로 된 성문을 열어놓았습니다:
천사들의 합창 속에 성모님은 빛을 발하며 서 있습니다,
가슴에 영생의 아드님을 품고 계십니다,
웃으시며 두 팔을 내게 벌려 주시네요.
내 몸이 왜 이러지 – 가벼운 구름처럼 떠오르네 –
무거운 갑옷은 천사의 날개옷 같구나.
오르리라 – 오르리라 – 땅덩이가 저 아래 멀어지누나 –
고통은 잠시 뿐이다, 하지만 기쁨은 영원하리라!
조지 버나드 쇼, [성 조엔](George Bernard Shaw, Saint Joan. 1923)
아일랜드의 풍자시인 버나드 쇼는 극작가, 음악평론가, 평화주의자 정치가 등 많은 수식어가 붙어 다니지만 그 어느 명칭보다도 일반대중을 가르치는 민중의 영원한 교육자라 함이 옳을 것 같다. 로마 가톨릭이 요한나를 1920년 성녀로 시성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버나드 쇼는 [성 조엔]을 쓴다. 이 작품으로 1925년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수상은 했지만 상금은 받지 않았다. 버나드 쇼의 이상주의가 수상의 배경이지만 인간애를 담은 작품세계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 안에 신선하게 다가오는 풍자성과 독특한 시적 아름다움 또한 가미되어 있다. 작가는 1939년 [피그말리온] (Pygmalion)으로 시나리오 부문에서 오스카상을 받았다.
버나드 쇼는 지적 연극을 위해 새로운 주인공을 만들어냈다. 이 주인공들은 이념논쟁을 마다하지 않는다. 버나드 쇼의 관심사는 사건의 흐름이 아니다. 철학적, 도덕적, 정치적 문제에 관한 논쟁, 토론, 의견대립 등을 극화시키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때로는 극단적인 풍자성을 띄우거나 때로는 그로테스크한 기법을 마다하지 않는다. 버나드 쇼는 주제를 설명하고 문제점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면 작품보다 더 긴 서문을 쓰려고 덤벼든다. 떠도는 말이기는 하지만 버나드 쇼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위해 작품을 쓰지만 서문은 지식인들을 위해 쓴다고 말했다고 한다. (“I write my forewords for the intellectuals and my plays for the dummies.”)
프랑스 고속도로를 타고 가며 요한나의 흔적을 밟아 이 작품을 썼다. 로마 가톨릭이 1922년 요한나를 성녀로 선포한 직후였다. [성 요한나]는 출간되자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에 못지않게 공연수입 또한 기록적이었다. 그 어느 작가도 누리지 못할 정도로 평생 세계적인 명성이 따라주었다. 이 작품에서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모두 같은 비중으로 다루었다. 아일랜드의 프로테스탄트 집안에서 태어난 버나드 쇼는 영국이란 가톨릭 사회에서 성장했다. 이제 가톨릭으로 전향하는 것이 아닌 가 추측이 무성하자 두 주인(교황)이 교회를 이끌 수는 없는 것이며 자신은 역사적인 자료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그런 소문을 일축했다. 사악한 마녀로 등장하는 셰익스피어의 [헨리 6세] (1부)의 요한나와 성격상의 연관성은 없지만 버나드 쇼도 요한나를 동화속의 소녀 같은 모습으로 그려놓았다.
요한나는 교회에 복종하는 대신 알 수 없는 ‘소리’를 듣고 그에 따름으로서 교회의 권위와 힘을 무력화 시키고 조롱한 셈이 된다. 그 대가는 엄청난 것이다. 마녀에게나 내리는 화형이란 형벌이 요한나를 기다리게 된다. 종교 재판소에서 고문을 받은 후 요한나는 고민에 빠진다. 너무나 두려웠다. 천사의 ‘소리’가 거짓이었다고 고백하고 서류에 서명하면 삶을 얻을 수 있다. 삶을 얻을 수는 있지만 일생을 지하가옥에서 지내야 한다. 마지막 순간 하지만 진실을 버리지 않는다. 요한나는 서류를 찢어버리고 죽음을 택한다. 이로서 마녀인 소녀는 불에 태워 죽여야 한다는 판결이 떨어진다. 화형대로 끌려가며 요한나는 절규한다.
요한나
… 삶이란 한낮 보잘 것 없는 죽음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당신들은 생각하나 봅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빵이나 마실 물이 아닙니다. 나도 빵을 먹어야 살 수 있겠죠. 하지만 내가 빵을 달라고 애걸한 적이 언제 있었던가요? 물이 깨끗하면 물론 나도 마시려 들 겁니다. … 하지만 하늘의 불빛이며 들판이나 꽃을 바라보지 못하게 막아버린다면, 내 두 발을 쇠줄로 묶어서 다시는 언덕에 오르지 못하게 한다면 … 이런 것들이 없다면 그러면 나는 살수 없을 겁니다. 당신들은 지금 내게서 그런 것을 모두 빼앗아 버리려 합니다. 내게만 그런 것도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서! 그러니 이제 나는 알겠습니다, 당신들을 이끌어 주는 존재는 악마입니다, 나를 이끌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베르톨트 브레히트, [도살장의 성 요한나](Bertolt Brecht, Die heilige Johanna der Schlachthöfe. 1929)
브레히트의 희곡 중에서 [도살장의 성 요한나]보다 더 무서운 작품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작품은 1932년 방송극으로 처음 소개되었다. 무대에 올리려고 브레히트는 여러 번 시도했으나 1930년대 독일의 정치적 상황으로 매번 좌절하고 만다. 보수적이고 국수주의적인 세력들은 완강하게 이 작품의 공연을 방해하고 저지했다. 때로는 공연지원금의 삭제로 해당 극단들을 위협했다.
이 작품은 신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에 대한 견해’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신의 존재나 믿음에 관한 논쟁이 이 작품의 핵심주제는 아니라고 브레히트는 주해에서 밝히고는 있다. 브레히트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59년 함부르크에서 그륀트겐스(Gustaf Gründgens)가 연출하여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 연기로 유명한 그륀트겐스는 반기독교적인 요소나 표현은 모두 삭제했다.
철저하게 고전비극으로 연출했다. 시카고 도살장 공장주들은 마피아처럼 정장을 하고 하얀 구두에 우산을 칼처럼 휘두른다. 통조림공장주들이나 도살장 주인들은 햄릿과 같은 고전작품의 주인공들처럼 고양된 언어를 사용한다. 이상주의의 냄새를 풍기는 시카고의 권력자들은 바로 귀족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여주인공은 브레히트의 딸 히오프(Hanne Hiob)가 맡았었다.
구세군 장교 요한나는 시카고의 노동자들을 위해 국을 끓이고 빵을 주며 찬송가를 부른다. 북을 치며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라고 외친다. 요한나는 구세군 장교이다, 노동자들에게 국과 빵을 주며 하나님 말씀으로 위로해 준다. “비는 늘 아래로 떨어지듯이”(이 작품의 원래 제목이다!) 지상에서 겪는 가난과 고난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며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하나님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다고 노동자들을 위로하고 설득한다. 도살장의 공장주들에게 이 보다 더 듣기 좋은 말은 없다.
요한나
저 높은 곳을 향해 노력하라, 낮은 곳이 아니고, 저 높은 곳에 자신의 자리를 장만하라, 낮은 곳이 아니고, 저 높은 곳에서 첫째가 되려고 노력하라, 낮은 곳이 아니고. 정말이이지 이제 여러분들은 이 지상의 행복에 매달리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알게 될 겁니다. 오직 헛된 일일 뿐이랍니다! 불행이란 비처럼 내려옵니다. 누가 손을 쓰지 않는다 해도 떨어지는 비처럼 말입니다.
브레히트의 요한나는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구세군이지만 폭력을 거부한다. 하지만 끝내 성전을 외치는 실러의 요한나처럼 총파업이란 전선에 뛰어든다. 노동자와 공장주 사이의 갈등이 고조되자 이를 중재하고 해결하기 위해 요한나는 뛰어다닌다. 요한나 때문에 오히려 총파업은 실패로 끝난다. 길을 잃고 헤매던 요한나는 끝내 급성폐렴으로 쓰러진다. 실러의 낭만적 비극에서처럼 요한나는 화려한 죽음을 맞이한다. 도살장의 공장주들은 요한나를 성녀로 치켜 올리며 칭송한다. 뜨거운 장작더미가 아니라 차가운 눈보라 속에서 숨을 거두며 요한나는 조용히 절규한다.
도살장 주인들
아래는 아랫것들에게 중요할 것이니
위에는 옳은 자에게 옳을 것이다.
…
요한나
그러나 아래 있는 자들은 아래에 머물게 될 것이다
위에 있는 것들이 위에 머물 수 있도록.
…
그러니 누군가 아래에서
하나님은 계시다고
그렇지만 아무에게도 보이지는 않는다고
보이지는 않으시나 자기들을 도와줄 거라고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사람의 머리는 아스팔트에 태질을 처야 할 것이다.
실러는 연극무대를 ‘도덕적 산실’로 보았다. 하지만 브레히트는 이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100여 년 전 실러가 살던 사회상황과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19세기 초 지식인들은 온통 이상주의에 들떠 여러 가지 요구를 크게 떠들어댈 수 있는 주체였지만 이제는 그런 요구자체와 맞서 싸우는 투사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연극은 이제 실러가 말하듯 도덕적 산실이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켜, 결국 인간을 변화시키는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고 브레히트는 주장한다.
실러의 요한나가 일종의 천사의 소리에 따라 성전을 부르짖지만 브레히트의 요한나는 처음에 폭력을 거부하는 평화주의자이다. 브레히트의 요한나는 스스로 체험해 나가며 끝내 폭력을 통하지 않고는 문제해결이 불가능함을 인식하게 된다. 죽은 다음에는 올바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위안은 인간에게 투쟁을 잠재우기 위한 거짓임을 깨닫는다. 종교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다. “죽은 후에 찾아가는 저 세상의 행복”을 약속해 주는 종교의 환상에서 요한나는 벗어난다. 브레히트 드라마 중 가장 혁명적인 [도살장의 성 요한나]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라고 내게 강요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아래 대사를 인용한다.
요한나
서둘러 이 세상을 하직하며, 아무 결실도 맺지 못한 채
여러분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발 손을 쓰십시오, 이 세상을 떠나면서
여러분들이 착하게 살았다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좋은 세상을 떠나날 수 있도록!
– 좋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이 세상을 떠나라고, 그런 삶이야말로 가장 보람되리라 브레히트는 우리에게 외치고 있다. –
– 오버암마가우에서 수난극을 보고 귀국하면서 뒤셀도르프 역에서 책을 한 권 샀다. 도킨스 (Richard Dawkins, [The God Delusion]. 2006)의 [妄想의 神](우리의 경우 [만들어진 신]으로 번역 출판됨)이란 책이다. 책 겉표지에 이렇게 적혀 있다: “나는 종교를 반대한다. 종교는 우리를 안심시키기에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종교(기독교)는 우리를 현혹시키고 현실에 안주케 하고 결국 현실을 직시할 능력을 빼앗아간다는 도킨스의 지적은 [도살장의 성 요한나]의 주제와 상당부분 일치한다. –
– [도살장의 성 요한나]는 90년대 대학로 문예회관 대극장 무대에 이미 한 번 오른 적이 있었다. –
V. 맺는 말
그리스의 연극은 로마로 계승되었다.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규율과 복종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던 로마는 몸과 마음을 나약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연극을 거부했다. 더구나 검투사, 마차경주 등과의 경쟁에서 연극은 밀려났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자 희극의 소재가 되어 웃음거리가 된다는 이유로 연극공연을 제한하거나 때로 금지시켰다. 교회가 연극을 죄악시하고 척결의 대상으로 삼았다. 기독교가 국교로 된 시기부터 중세기까지 수백 년간 무대는 조용했다. 더구나 말씀의 기독교는 표현의 연극을 우상숭배의 논리로 받아드릴 수가 없었다. 서양연극을 유지, 다시 발전시킨 주체는 무어라 해도 하지만 극장 문을 닫게 했던 바로 그 교회였다. 예배의식에 연극형식을 받아들였고 성경공부나 라틴어 교육을 위해 학교수업에 연극을 활용했다. 더구나 표현하려는 인간의 본능은 이 모든 장애를 극복하며 뛰어넘었다. 르네상스가 찾아오고 인간중심의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중세기 연극은 언제나 기독교 축제와 결부되어 있었다. 마을에서는 성탄절, 부활절, 예수의 수난, 사육제, 성체축일에는 사제들이 주축이 되어 거리나 시장에서 축제를 벌였다. 성경에 나오는 사건이나 이야기를 주제로 연극으로 꾸몄으며 이때 사용되는 언어는 라틴어였다. 어떤 연극은 며칠 걸리는 경우도 있었고 배우들은 마을 사람들이 주를 이루었고 관객은 각계각층이 모두 모여들었다. 성경의 소재가 점차 세속화되고 이와 더불어 유랑하는 수도승이나 학생들의 유람기가 술과 춤이 어울러져 공연되었다. 이제는 말할 것도 없이 라틴어 대신에 토속어가 무대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카니발이 벌어지는 사육제기간에는 중세기의 일상생활이 노골적으로 표현되었다. 익살스런 일상생활이나 전설, 동화에서 소재를 즐겨 찾았다. 농촌이나 기사계급, 귀족에 반해 도시민들은 자신들의 부와 자존심을 키워가며 과시하고 싶었다.
15세기 중엽 유럽에서도 금속활자가 발견되자 일부 지식인에게만 허락되던 지식은 점차 일반시민들에게도 스며들기 시작한다. 오스만제국은 1453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을 정복한다. 비잔틴제국이 이로서 붕궤되자 지식인들이나 예술가들은 이태리로 도주해서 새로운 문화와 예술의 길을 찾는다. 오스만제국이 바닷길을 가로막자 새로운 길로 인도를 찾아가던 콜럼버스는 1492 인디언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던 아메리카 대륙을 얼떨결에 찾아낸다. 16세기 초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종교개혁은 가톨릭교회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교회와 얽혀있던 봉건주의를 무력화시킨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의 결말을 우리는 르네상스(Renaissance)라 부른다. 문예부흥이라고 일반적으로 옮기지만 르네상스라는 프랑스 글자를 그대로 번역하면 ‘다시 태어남’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하나님 속에 갇혀있고 가려있던 창조적 인간의 다시 태어남을 말한다. 1564 셰익스피어가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