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임야비의 음악으로 듣는 연극

부록(16)

글_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연출가(총체극단 ‘여집합’), 클래식 연주회 기획가     파우스트의 음악화 대장정. 정상 목전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지난 산행에서 놓친 음악들을 주워담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 리스트, 라프 그리고 잊힌 파우스트 작곡가들을 정리한 후 ‘부록’ 캠프를 끝내고자 한다.     [1] 리스트의 작은 곡들    자신이 메피스토펠레스이자 파우스트라 생각했고, 더 나아가 괴테가 되고 싶었던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 장장 5년에 걸친 ‘음악으로 듣는 연극 – 파우스트 편’에 가장 많이 등장했음에도 아직 관련 작품이 남았다.      뛰어난 편곡가이기도 했던 리스트는 다른 작곡가의 음악은 물론, 자기 작품도 다양하게 편곡했다. 자신의 가곡 ‘툴레의 왕 (S.278/1)’을 성악 없이 피아노 연주곡으로 편곡한 ‘노래 책 1권(Buch der Lieder I)’의 제4곡 리스트 작품 번호 S.531/4도 그러한 예 중 하나다.   노래 부분을 피아노 선율로 옮겼기 때문에 어딘가 빈 느낌이 나지만, 무언가(無言歌)의 휑한 분위기가 전혀 다른 연극적 효과를 낸다. 가곡(S.278/1)이 무대 위 등장인물 그레트헨이 부르는 노래와 정서를 직접적으로 표현한다면, 피아노 연주곡(S.531/4)은 그레트헨의 방이라는 무대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https://www.youtube.com/watch?v=o3xmU4m1-vc&list=RDo3xmU4m1-vc&start_radio=1    바단조 3/4박자가 부드럽게 바닥 공사를 하면 그 위로 부점이 강조되는 멜로디 라인이 얹힌다. 36마디 전조되는 부분에서 공간이 잠시 환하게 확장하지만, 다시 원조로 돌아와 무대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후 조금씩 추락하는 공간은 기교적인 아르페지오를 지나 조명이 옅어지듯 점점 작아진다. 마지막 94마디에 이르러 그레트헨의 가난한 방은 그녀의 운명처럼 완전히 소멸한다.       4분 남짓한 음악은 뚜렷한 종지음 없이 끝나는데, 평생 낭만 가득한 삶을 산 리스트의 멋들어진 마무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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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15)

글_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연출가(총체극단 ‘여집합’), 클래식 연주회 기획가      한 명이 연주하는 파우스트부터 일이백 명이 연주하는 파우스트까지 연재하다 보니 중간에 누락된 작품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2022년 4월과 5월 그리고 2024년 1월부터 2025년 4월까지 ‘부록’이라는 형식으로 놓친 작품들을 정리했다.   마지막 등반일 ‘일이백 명이 연주하는 파우스트’ 서너 편과 정상 정복인 ‘천 명이 연주하는 파우스트’까지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최후의 캠프를 정리하면서 놓친 것은 없는지, 두고 가는 것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하면서 길고 길었던 ‘부록’ 편을 2회에 걸쳐 마무리하려 한다.      [1] 멘델스존 남매의 소곡들.    파우스트와 관련해 남동생 펠릭스 멘델스존은 1825년에 현악 8중주(TTIS 2021.11월호)와 1832년에 칸타타 ‘첫 번째 발푸르기스의 밤’(TTIS 2023.2월호)을 작곡했고, 네 살 터울 누나 파니 멘델스존 헨젤은 1843년에 합창곡 ‘천사들의 합창’(TTIS 2022.5월호)과 1846년에 아카펠라 ‘아리엘’(TTIS 2022.5월호)을 작곡했다.   재밌는 지점이 있다. 남동생은 16살과 21살에 비극 1부의 하이라이트인 ‘발푸르기스의 밤’에 관한 두 곡을 작곡했고, 누나는 38살과 41살에 비극 2부 초반에 등장하는 요정 ‘아리엘’에 관한 두 곡을 작곡했다는 사실이다. 반면 안타까운 지점도 있다. 두 남매가 1847년 42살과 38살의 나이로 같은 해에 요절했다는 점이다. 먼저 떠난 누이를 위해 동생은 레퀴엠(op.71)을 작곡하지만, 실의가 너무 커서인지 6개월 뒤 누나를 따라 숨을 거둔다.   조숙한 천재 작곡가 남매는 위에 소개한 4곡 말고도 괴테의 텍스트에서 가사를 따온 소곡들을 작곡했다. 누이는 ‘서동시집’의 ‘우리는 당신을 노래해(Wer will mir wehren zu singen)’와 ‘중국과 독일의 계절과 일시’의 ‘Dämmrung senkte sich von oben(황혼이 내려왔다.)’를 노래로 만들었다. 파우스트와 관련 있는 곡은 동생의 작품 ‘Gretchen (Meine Ruh ist hin)’이 작품 번호 MWV K 27로 남아 있는데, 악보도 구하기 힘들고 연주 자료도 없다. 하지만 이 곡들은 천재 남매가 짧은 평생 괴테와 파우스트에 얼마나 천착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2] 헤르만 로이터의 굵직한 두 오페라    독일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헤르만 로이터(Hermann Reuter; 1900~1985)는 파우스트를 소재로 굵직한 오페라 두 개를 남겼다.   하나는 ‘요하네스 파우스트 박사(Doktor Johannes Faust)’ op.47로, 규모가 큰 3막의 오페라다. TTIS 2025년 3월호에서 체코 인형극의 아버지인 마테이 코페츠키의 인형극에 스메타나가 곡을 붙인 파우스트를 분석한 적 있는데, 로이터의 작품도 오래된 인형극 대본을 기초로 오페라 리브레토를 만들었다. 1936년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극장에서 올린 초연은 발레 장면과 무곡이 많아서 꽤 성공을 거뒀다.   다른 하나는 ‘돈 주앙과 파우스트’ op.75로 1950년에 완성했다. 7개 장면으로 이루어진 오페라로 색소폰이 추가된 목관 군에 각양각색의 타악기 그리고 피아노까지 포함된 오케스트라와 내레이터까지 필요한 대곡이다. 특이할 점은 두 이야기의 주연인 돈 주앙과 파우스트는 바리톤이 맡고, 조연인 레포렐로와 메피스토펠레스는 테너가 맡는 점이다. 아마도 두 주인공에게 무게를 두고 조연을 가볍게 연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서양 문학사와 연극사에서 가장 굵직한 남자 주인공인 돈 주앙과 파우스트를 한 무대 위에서 합친 시도가 무척 혁신적이다. (참고로 2020년, 나진환 연출이 정동환 배우의 일인극으로 올린 ‘파우스트와 대심문관’도 같은 취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유명 작곡가들의 걸출한 파우스트에 밀려 로이터의 두 오페라는 거의 연주되지 않는다.     [3] 마이어 루츠의 두 작품 – 심각한 ‘파우스트와 마르게리테’ vs 가벼운 ‘파우스트 최신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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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ies: 기획 연재, 임야비의 음악으로 듣는 연극

부록(14)

글_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연출가(총체극단 ‘여집합’), 클래식 연주회 기획가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인 베르디. 민족성도, 성향도, 작품도 골수 이탈리아인 그가 괴테 파우스트를 오페라화하려 했었다. 이 계획은 폐기되었지만 파우스트 1부의 텍스트를 바탕으로 2개의 가곡 – 로만체(Romanze)를 남겼다. 너무나 이탈리아적인 작곡가 베르디가 음악으로 연출한 파우스트를 톺아보자.      베르디는 주로 대문호의 작품을 오페라 텍스트로 선택했다. 빅토르 위고의 작품을 바탕으로 오페라 ‘에르나니’와 ‘리골레토’를 작곡했고, 바이런 경의 텍스트를 대본 삼아 ‘포스카리가의 두 사람’, ‘일 코사로(해적)’을 완성했다. 위대한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작품도 ‘맥베스’, ‘오셀로’, ‘팔스타프’로 오페라화했다. 특히 프리드리히 실러의 작품이 많다. 오를레앙의 처녀, 군도, 간계와 사랑, 돈 카를로스를 오페라 ‘조반나 다르코(잔 다르크)’, ‘이 마스나디에리’, ‘루아지 밀러’, ‘돈 카를로’를 작곡했다.   위대한 글에 자신의 음악을 얹고자 했던 베르디가 괴테의 파우스트를 간과했을 리 없다. 리브레티스트(오페라 대본 작가)인 피아베는 베르디에게 오페라 ‘파우스트’를 제안했다. 이에 작곡가는 루이지 발레스트라(Luigi Balestra)가 이탈리아어로 번역한 파우스트를 읽었지만, 오페라로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은 작품이라고 판단하고 작곡 계획을 접었다. 만약 이 오페라가 완성되었다면 구노의 ‘파우스트’를 능가하는 명작이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정은 가정일 뿐이다.       하지만 1838년 베르디는 파우스트에서 영감을 받은 두 곡의 노래를 남겼다. 그의 나이 25살 때로 첫 오페라인 ‘산 보니파초의 백작 오베르토(Oberto, Conte di San Bonifacio)’를 쓰기도 전인 초기작이다. 두 곡은 ‘6개의 로만체’로 묶인 가곡집에 속해 있는데, 다섯 번째 곡 ‘Perduta ho la pace(나의 평화 사라졌네)’와 여섯 번째 곡 ‘Deh, pietoso, oh Addolorata(아, 굽어살피소서, 당신 고통 많으신 이)’이 이탈리아어로 번역한 파우스트를 가사로 삼았다. 번역 텍스트를 참고하여 음악을 감상해 보자.   그레트헨의 방   그레트헨 (물레 옆에서 혼자)   나의 평화 사라졌네, / 내 가슴 무겁네. / 평화를 못 찾겠네 / 다시, 다시는. 그이 없는 곳은 / 내게는 무덤 / 온 세상이 / 내게는 쓰디쓰네. 내 가엾은 머리 / 돌아버렸네, / 내 가엾은 생각 / 갈가리 끊겼네.   나의 평화 사라졌네, / 내 가슴 무겁네. / 평화를 못 찾겠네 / 다시, 다시는. 오직 그이 오시나 보네 / 창밖을 내다보네, / 오직 그이 오시나 가보네 / 집 밖으로 나가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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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ies: 기획 연재, 임야비의 음악으로 듣는 연극

부록(12)

글_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연출가(총체극단 ‘여집합’), 클래식 연주회 기획가     파우스트는 무겁다. 원작은 심오하고 연극은 심각하다. 당연히 파우스트와 관련된 대다수 음악도 끝없이 아래로 가라앉는다. 파우스트를 음식으로 빗대자면 최고의 요리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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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ies: 임야비의 음악으로 듣는 연극

부록(11)

글_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연출가(총체극단 ‘여집합’), 클래식 연주회 기획가     지난 4년 동안 괴테의 ‘파우스트’와 관련된 수많은 음악과 음악적 연출을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90% 이상이 심각하고 무거운 음악이었다. 그럴 만하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비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학자 파우스트를 주제로 한 음악은 어두웠고,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주제로 한 음악은 기괴했으며, 여주인공 그레트헨을 주제로 한 음악은 비극적이었다. 음악과 글의 깊고 심오한 맛도 좋지만, 지나치면 질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듣는 이의 고막과 읽는 이의 정수리를 짓누르는 무거운 쇳덩이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음악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스트리아 왈츠의 왕족인 요제프 슈트라우스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가볍고 신나는’ 파우스트다.      슈트라우스 가문이 ‘왈츠’라는 영지에 왕이 된 것은 요한 슈트라우스 1세(1804~1849)의 공이 크다. 빈 군악대 악장으로 근무하다 궁정 무도회 음악감독을 맡았던 그는 왈츠, 폴카, 카드리유 등 수많은 춤곡을 작곡했는데 그중 가장 집중한 음악이 왈츠였다. 왈츠의 대유행에 크게 이바지한 그는 ‘왈츠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얻었고, 대표작 ‘라데츠키 행진곡’은 매년 빈 신년 음악회의 마지막 앙코르곡으로 연주된다.   아버지가 닦아놓은 탄탄대로 위에서 장남 요한 슈트라우스 2세(1825~1899), 차남 요제프 슈트라우스(1827~1870), 사남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1835~1916)는 왈츠 작곡가로 승승장구했다.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장남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빈 기질’, ‘봄의 소리’ 등 수많은 왈츠 곡으로 가문의 전성기를 이끌면서 ‘왈츠의 왕’이 되었다. 두 동생 요제프와 에두아르트도 형과 경쟁하며 아름다운 왈츠로 빈을 넘어 유럽 전체를 춤추게 했다.    이중 장남 요한 슈트라우스 2세와 차남 요제프 슈트라우스가 파우스트와 관련된 음악을 작곡했는데, 제목이 ‘파우스트 카드리유(Faust Quadrille)’로 동일하다.       카드리유(Quadrille)는 무엇인가? 프랑스어 ‘카드리유’라는 단어에는 왈츠, 미뉴엣, 탱고처럼 춤의 뜻과 음악의 뜻이 함께 있다.   어원상 ‘넷’이라는 의미인 ‘quad’가 눈에 띄는데, 카드리유 춤이 총 네 명(남자 두 명과 여자 두 명)이 사각 대형으로 추기 때문이다. 19세기 프랑스에서 크게 유행했지만, 춤의 기원은 이탈리아의 연극 ‘코메디아 델라르테 (Commedia dell’arte)’에서 배우들이 추는 춤, 영국에서 건너온 ‘콩트라당스 (Contredanse)’가 한 데 섞였을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으로부터 춤의 지분을 받은 카드리유지만, 음악으로서 카드리유는 오스트리아의 지분이 가장 크다. 왈츠의 왕가 슈트라우스 가문이 왈츠 외에도 수많은 카드리유를 작곡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19세기 유럽의 무도회에는 카드리유를 들으며 카드리유를 추는 흥으로 가득 찼다.   음악 카드리유는 6개의 개별적인 곡이 연달아 연주되는 구성인데, 각 곡마다 고유의 이름과 악곡 형식이 있다.   제1곡 팡타롱(Pantalon)은 이탈리아의 연극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영향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연극에서 욕심쟁이 늙은이로 등장하는 전형적인 인물 판타로네(Pantalone)가 그 어원으로, 음악은 세 개의 짧은 주제를 엮어 쾌활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제2곡 에떼(Été)는 여름이란 뜻이다. 팡타롱의 쾌활한 분위기는 이어가지만, 여성이 치마끝을 들고 넓은 공간을 쓰며 움직이기 때문에 단순하고 우아한 멜로디가 주를 이룬다.   제3곡 풀(Poule)은 암탉이란 뜻으로 6/8박자의 빠른 론도 형식이다.   제4곡 트레니스(Trénis)는 가장 춤곡의 색이 두드러진다. 당시 유명했던 안무가 트레니츠(Trenitz)가 2/4박자에 맞춘 춤을 추기 위해 삽입한 부분이다.   제5곡 파스투레유(Pastourelle)는 ‘양치기 소녀’라는 뜻으로 비교적 목가적이고 다소곳한 분위기의 음악이다.   제6곡 피날레(Finale)는 두 마디의 서주 후, 강한 음이 터져 나오고 음악과 춤이 절정에 이른다.     각 곡의 마지막은 짧고 강한 총주(Tutti)로 끝나고 사이에 약간의 쉼이 있다. 그래서 다음 곡과 구분이 명확하고, 춤을 추는 사람들은 다음 동작을 준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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