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듣는 연극(2)/ 임야비

음악으로 듣는 연극

– 뮤즈를 울린 극작가,  셰익스피어 (2)

임야비

2. 햄릿

O, from this time forth  My
thoughts be bloody or be nothing worth!

오, 이 시간부터 내내 생각이여 피비리라, 아니면 전혀 쓰잘 데 없든지!

– Hamlet; Act 4 Scene 4

햄릿은 연극으로서의
유명세에 견줄 만한 걸출한 음악 작품이 많지 않다. 아마도 셰익스피어가 글로서 창조해낸 심오한 비극성의
중량에 후대 작곡가들이 지레 압사 당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작곡가들은 이 극을 음악화 하면서
햄릿의 고뇌에 느리고 묵직한 저음을 조심스레 할애한다. 격렬하게 몰아치는 음표들은 비극적인 운명을 상징하거나
결투 장면(5막2장)을
묘사하면서 곡 전체의 분위기를 어둡게 눌러준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팽팽한 긴장과 고막의 피로는, ‘오필리아’의 주제에 의해서 음악적으로 완화 된다.

프랑스의
작곡가 앙브르와즈 토마는 1868년
오페라 햄릿을 작곡했다. 오페라의 대본은 쥘 바르비에와 미셸 카레가 개작했는데 훼손의 정도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단지 오필리아와 클로디어스만이 죽고, 햄릿, 폴로니어스, 거트루드, 레어트스는
죽지 않는다. 심지어는 햄릿이 덴마크의 새 왕이 되고 모두가 ‘햄릿
만세! 햄릿 만세! 새 국왕 만세!’를 합창하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다. 이 어이 없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오페라는 작품이 가질 수 있는 가치의 절반이상을 까먹고 들어간다. 발레까지 포함되는 전형적인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 형식으로 3시간에 걸친 긴 곡이며 솔직히 아주 지루하다.
전곡 감상은 전혀 추천 하고 싶지 않고, 4막의 ‘오필리아의
매드씬(Mad scene)’에서 소프라노의 넋 나간 아리아 그리고 2막 2장에서 햄릿과 합창이 부르는 ‘오 와인이여 슬픔을 가져다 다오’ 정도만이 귀가 주목 할 만한 부분이다.

차이콥스키는 셰익스피어로부터 영감을 받아 총 3곡의 관현악 곡을 작곡했는데, 전편에 소개한 ‘로미오와 줄리엣(1869)’, 뒤에 소개할 ‘템페스트(1873)’ 그리고 지금 소개할 ‘햄릿(1888)’이다. 앞선
작품들이 극의 내용과 배경에 초점을 맞춘 표제 음악적인 면이 강했던 반면 햄릿에서는 원작이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비극성’에 비중을 두었다. 즉 드라마를 단순히 소리로 옮겼다기 보다는 좀 더 심리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으로 새로운 비극을 창조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햄릿, 오필리아, 유령, 결투,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주제가 다양하게 등장하여 듣는 재미를
더하지만, 주제간의 연결이 유연하지 못하고 분절된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분절은 약 15분 길이의 이 곡에 완전한 몰입을 방해하는 큰 약점으로 작용한다.

교향시의
창시자 리스트는 그의 교향시 제
10번을 햄릿으로 장식했다. 1858년에 연극 상연의 서곡 용도로 곡을 쓰기 시작했으나
길이와 편성이 커지는 바람에 독립적인 교향시로 발표되었다. 우울, 분노, 광란 등 햄릿의 비관적인 심리 상태에 해당하는 여러 주제가 빈번히 교대되면서
15분 내내 팽팽하게 전개된다. 중간에 목관으로 연주되는 오필리아의 주제는 아름답고 몽환적이지만, 차이콥스키의 햄릿과 마찬가지로 각 주제간의 분절은 어딘가 어색한 느낌을 주면서 곡의 몰입도와 통일성을 크게
감소 시킨다.

구소련의
천재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햄릿을 두 차례 작곡했는데, 첫 번째 것은 1932년 니콜라이 아키모프 연출의 극 부수음악(연극 무대용 음악) Op.(작품번호)32
이고, 두 번째 것은 1964년 그리고리 코진체프
감독의 영화를 위한 영화 음악 Op. 116 이다. 두 곡
모두 연극의 줄거리에 맞춰진 1분에서 3분 정도의 개별적인
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1932년의 햄릿은 아키모프의 전위적인 연출로 인해 쇼스타코비치의 음악까지 바래질 뻔한 사연이 재미있다. 아키모프는 햄릿을 유쾌한 술주정뱅이로 오필리아를 과음으로 사망하는 창녀로 재창조 했는데, 연극이 최악의 혹평을 받는 바람에 쇼스타코비치의 음악까지 같이 사장 될 뻔했다. 80년이 지난 지금 아키모프와 그의 연출은 완전히 잊혀졌지만,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찬란히 빛을 발하고 있으니 불행 중 ‘큰’ 다행이다. 보통 13곡으로 모아진 모음곡 Op.
32a의 형태로 연주되며 1.햄릿과 야경-2.장송행진곡-3.팡파르와 댄스-4.사냥-5.배우들의
판토마임-6.행진-7.음악적 판토마임-8.연회-9.오필리아의 노래-10.자장가-11.레퀴엠(진혼곡)-12.토너먼트-13.포틴브라스의 행진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곡들은 무거운 비극성을
벗어 던지고 가벼운 풍자로 가득한 좀 특이한 햄릿의 분위기를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한다.

쇼스타코비치의
말년 작품인 1964년의 영화음악 햄릿은 32년 전의 햄릿보다는
조금은 더 중후한 느낌이지만, 쇼스타코비치의 발레음악, 영화음악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색채와 요란법석한 사운드의 기조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곡이 너무 많기 때문에
보통 발췌되어 연주-녹음 되는데, 그 중 Prelude, Ball at the Palace, The Ghost, Poisoning Scene의 4 곡이 연극의 해당 장면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훌륭하다.

두 모음곡
모두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 보다는 쇼스타코비치의 천재적인
작곡능력과 음악자체에 더 무게가 기울어지게 된다. 그 이유는 예술성이 떨어지는 아키모프의 연극, 코진체프의 영화에 쇼스타코비치가 음악으로서 현란한 보완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대나 영상에 음악의 내용과 길이를 맞춰야 하는 극히 제한적인 작곡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신랄하고
세련된 음악을 탄생시킨 쇼스타코비치의 천재성은 다시 한번 놀라운 경탄을 자아낸다. ‘쇼스타코비치가 햄릿을
교향곡이나 관현악곡 또는 오페라로 작곡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운 상상을 해본다.

Ophelia (sings):

How should I your true love know / From another one? –

By his cockle hat and staff, / And his sandal shoon

 

He is dead and gone, lady, / He is dead and gone.

At this head a grass-green turf, / At his heels a stone.

 

White his shroud as the mountain snow – / Larded with sweet flowers,

Which bewept to the grave did-not-go / With true-love showers.

 

오필리아(노래한다):

어떻게 제가 당신의 진정한 사랑을 구별하지요, 다른 사랑과? –

그의 조가비 장식 모자와 지팡이, 그리고 그의 샌들 신을
보면 알지요.

 

그는 죽고 없어요, 부인 그는 죽고 없어요.

그의 머리엔 풀빛 푸른 잔디 그의 발꿈치엔 돌 하나.

 

하얗다, 그의 수의, 산을
덮은 눈처럼. – 부드러운 꽃들로 장식했네,

그리고 꽃들은 눈물 젖은 채 무덤으로 정말 갔네 – 가지
않았어 – 진정한 사랑의 소나기로

– Hamlet; Act 4 Scene 5

셰익스피어의
마법과도 같은 대사로 빚어낸 여주인공 오필리아는 청순 가련함, 정신 착란 그리고 비참한 죽음의 전형적인
캐릭터이다. 이러한 오필리아의 비극적인 운명을 주옥 같은 대사의 훼손 없이 – 물론 번역은 피할 수 없지만- 음악화하기에는 가곡만한 형식이 없을
것이다.

브람스는 1873년에 연극 햄릿의
오필리아역을 맡은 여배우 올가 프라이차이슨을 위해 ‘오필리아를 위한 가곡(Ophelia-Lieder WoO 22)’ 5곡을 작곡했다. 5곡 모두 햄릿의 4막 5장에서
정신착란의 오필리아가 부르는 노래의 텍스트에 음악을 붙인 것으로 독일어 번역은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August
Wilhelm Schlegel 1767-1845 독일낭만주의 문학가이자 평론가 번역가)의
판본을 쓰고 있다. 1-2분 내외의 짧은 곡들로 가련한 오필리아의 슬픔이 갸녀린 소프라노의 서정적인
목소리와 눈물을 머금은 듯한 피아노 반주 위로 흩어진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역시 1918년에 작곡한 ‘6개의
가곡’ 중 첫 세 곡(Drei Lieder der Ophelia Op.67 –
Nr. 1,2,3)에 브람스와 똑같이 오필리아의 텍스트를 그대로 가사로 사용했다. 브람스는
오필리아의 서정성에 주목한 반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그녀의 광기에 더 비중을 두었다. 다소 전위적이고
자극적인 소프라노의 섬뜩한 목소리는 ‘슬픈 가곡’보다는 ‘광란의 아리아’에 더 가깝다. 참고로
잘 알려지지 않은 벨기에 출신의 지휘자 겸 작곡가 에두아르드 라센(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바이마르 시절에 선임 지휘자이자 스승이었다.)도
같은 텍스트를 이용해 소프라노가 부르고 피아노가 반주를 하는 ‘오필리아를 위한 7개의 가곡(7 Ophelia-Lieder aus Hamlet für
Sopran)’을 1883년에 작곡했지만, 거의
연주되지 않으며 악보와 음반조차 구하기 힘든 실정이다.

3명의 독일계 작곡가들이 공통적으로 파고 들었던 햄릿의 4막 5장의 ‘미친 오필리아의 노래’를
읽어 본 후에 또는 읽으면서 음악을 듣는 다면 그야말로 ‘귀로 보는’
연극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3. 오셀로

Of one that loved not wisely but too well,

Of one not easily jealous but, being wrought,

Perplexed in the extreme; of one whose hand,

Like the base Indian, threw a pearl away

Richer than all his tribe;

현명하게 사랑하지는 못했으나 너무도 잘 사랑한 자라고,

쉽게 질투심을 갖지 않았으나 남에게 조정되니 극단으로 당혹했던 자라고,

그 손이 비천한 인디언처럼 그의 종족 전체보다 값비싼 진주를 내던져 버린 자라고,

– Othello; Act 5 Scene 2

앞선 햄릿편에서
소개한 많은 음악들은 연극이 가지는 위대한 비극성의 구현에는 아쉬운 점이 많은 음악들이다. 하지만 지금
소개할 오셀로에서는 정반대이다. 단 하나의 위대한 음악 작품이 약
300년이라는 터울을 건너 원작의 예술성에 바짝 접근한다. 그리고 약 130년이 더 지난 현재, 베르디의 오페라 오텔로(Otello; Othello의 이탈리아어식 발음 및 표기)의 악보와 음반을 감히 셰익스피어의 책 옆에 살며시 꽂아놔 본다.

영국 국민들이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을 만큼 문화적 자부심이 넘친다면, 이탈리아 국민들은 베르디를 로마 또는
그들의 성욕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또한 오페라 애호가들 사이에서 작곡가 베르디의 위치는 연극 애호가들
사이에서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위상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며, 베르디의 만년작 ‘오텔로’의 음악적 가치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의 문학적 가치에 비견 될 수 있다.

4막의 오페라 오텔로는 1886년에 완성하고 1887년에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아이다(1871), 팔스타프(1893)와 함께 베르디 노년의 완숙기 작품
군에 속하는 오페라로, 대본은 오페라 작곡가이자 음악 평론가인 아리고 보이토가 썼다. 셰익스피어 원작의 제 1막이 생략되어 있지만 그 외의 원작과의 일치도, 내용의 충실도 그리고 이탈리아어 가사의 음악성에 있어서 최고의 명대본으로 손꼽힌다.

오텔로는
베르디가 기존에 작곡했던 수많은 오페라들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빈약한 플롯, 뻔한 신파조의 내용, 어딘가 모르게 가벼운 음악성을 단번에 뛰어 넘은 명작으로, 베르디
자신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심오하고 완벽한 오페라로 평가 받음과 동시에 오페라사에서도 길이 남을 거대한 족적을 남긴 명작 위의 걸작이다. 초연은 공연이 끝나고 격한 감동에 흥분한 수많은 관객들이 베르디가 머물던 호텔 앞까지 몰려와 새벽까지 그의
이름을 연호했을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2시간 반정도 분량의 오페라를 완주해 들을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1막
초반부의 Esultate! L’orgoglio
musulmano sepolto è in mar;
(기뻐하라! 이슬람의
자존심은 깊이 묻혔다.)는 무어인 명장 오텔로의 강인한 남성성을
드러내는 극적인 부분이다. 합창과 관현악을 뚫고 나오는 굵직한 테너(오텔로)의 영웅적인 목소리가 압도적인 효과를 연출한다. 1막의 피날레는 오텔로와
데스데모나의 사랑의 이중창 Già nella notte densa s’estingue ogni clamor. (어둠이 깊어가고 모든 소란은 고요해졌으니)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된다. 2막의 압권은 단연 ‘이아고 신조(信條)의 노래’이다. 불길하고 악마적인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Credo in un Dio crudel che m’ha creato simile a sè
e che nell’ira io nomo.
(나는 나를 만들어낸 그
잔인한 신을 믿지.)를 노래하는 바리톤의 음색은 이아고의 교활함과 사악함을 실감나게
표현한다. 3막에서 오텔로는 질투심에 정신을 잃고 홀로 자신의 비통한 심정을 Dio! mi potevi
scagliar tutti i mali della miseria,
(신이시여! 당신은
나에게 불행을 안겨주었나이다)
라는 격정적인 모놀로그로 표현한다. 4막은 데스데모나의 ‘버들의 노래’와 바로 이어지는 ‘아베마리아’가 유명하다. ‘버들의 노래’는
세익스피어의 원작에도 있는 부분으로 베르디는 여기에 영국 민요 풍의 멜로디를 붙여 그 사실감을 더했다. 이어지는
‘아베마리아’는 원작에는 없는 부분이지만 데스데모나의 서러운
운명을 소프라노의 절절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오페라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리아이다.

냉소적인
평론으로 유명한 버나드 쇼마저 이 작품을 본 후에 ‘오텔로는 셰익스피어가 이탈리아 오페라풍으로 쓴 희곡이다’라고 극찬을 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상상이지만 원작자인 셰익스피어가
베르디의 이 오페라를 관람한다면, 크게 흡족해 할 것이라고 필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셀로와
관련된 음악으로 영국의 작곡가 엘가의 대표작 ‘위풍당당 행진곡 Pomp and Circumcetance March’이
있다. 이 음악은 수많은 CF와 영화에 쓰이면서 우리의
귀에 아주 익숙한 행진곡으로, 곡의 중간 부분에 가사를 붙인 ‘희망과
영광의 나라’는 영국의 제 2의 국가로 불릴 만큼 큰
사랑을 받는 곡이다. 이 곡과 오셀로와의 연관성은 바로 곡의 제목이다. ‘위풍당당’으로 다소 무리가 있게 번역되는 ‘Pomp and Circumcetance’는 오셀로 3막 3장에서 오셀로가 이아고에게 울부짖는 대사이다. 아래에 원문과
번역을 덧붙인다.

Farewell the neighing steed and the
shrill trump, The spirit-stirring drum, th’ear-piercing fife,

The royal banner, and all quality, Pride, pomp, and circumstance of glorious
war!

 

안녕 히힝대는 전투마와 날카로운 나팔 소리여, 영혼을 일깨우는 북소리, 귀청을 꿰뚫는 피리 소리,

당당한 깃발, 그리고
영광스러운 전쟁의 온갖 면모, 자부심, 위용 그리고 의식이여!

– Othello; Act 3 Scene 3

*
다음 호에는 ‘뮤즈를 울린 극작가 – 셰익스피어’ 비극 제 3편으로 ‘맥베스’와 ‘리어왕’이 연재됩니다.

*
원문은 Stanley Wells, Gary Taylor의 ‘William Shakespeare The Complete Works Second Edition’ (Oxford), 번역본은
김정환 번역의 ‘셰익스피어 전집’(아침이슬)을 참조 인용하였다.

* 임야비(tristan-1@daum.net)
– 자유기고가, 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 극단 듀공아 / 극단 동맹 연출부 드라마투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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