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서울연극제 총평/ 박정기

2013 서울연극제 공연총평

 

박정기

***2013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 공연총평 

2013년 제34회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은 서울연극앙상블·극단 인어의 최원석 작, 박찬진 연출의 <불멸의 여자>(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극단 거미의 카렐 차팩 작, 김제민 재구성·연출의 <알유알(R.U.R)>(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극단 지구연극의 김태수 작, 차태호 연출의 <일지춘심을 두견이 알랴>(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극단 연우무대의 이양구 작, 문삼화 연출의 <일곱집매>(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극단 대학로극장의 윤대현 작, 이우천 연출의 <평상(平床)>(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극단 창의 위기훈 작, 홍창수 연출의 <인간대포쇼>(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극단 유목민의 오태영 작, 손정우 연출의 <끝나지 않는 연극>(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그리고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이여진 작, 최원종 연출의 <트라우마 수리공> 등 여덟 편이다.

 

1, 서울연극앙상블·극단 인어의 최원석 작, 박찬진 연출의 <불멸의 여자>(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무대는 대형매장의 화장품점이다. 배경 막에 화살표로 각 매장 방향을 잔뜩 써서 붙였다. 가로 세로 화장품 진열대를 두 줄로 가지런히 배치하고, 화장품을 종류별로 진열해 놓았다. 정면 뒷줄 진열대 중앙에 칼을 든 수호천사 석고상을 장식처럼 올려놓은 게 보인다. 중앙에 직사각의 탁자가 가로 놓이고, 거울 두 개를 올려놓았다. 탁자 뒤로 놓인 투명 플라스틱 의자가 눈에 확 들어온다.

연극은 도입에 암전상태에서 여인들의 음성이 속삭이듯 들려온다. 조명이 들어오면 산뜻한 유니폼을 입은 미모의 여종업원이 자신보다 조금 어린 동료종업원을 맞이하며 술 냄새를 풍기는 동료에게 과음주의와 미소 짓기를 생활신조처럼 강조한다. 두 종업원의 미소 짓기가 훈련하듯 반복되면서 나이든 종업원의 다리 뒤쪽에 지렁이처럼 솟은 핏줄을 보고, 하지정맥류(下肢靜脈瘤) 증세와 치료에 관해 주고받는다. 그 때 전화가 걸려오지만 두 종업원의 대화 때문에 전화 받기가 늦어지고, 어린 종업원이 받자마자, 구입한 화장품을 발랐더니 눈가에 주름살이 더 늘어났다며, 반품을 하겠다는 중년여인의 음성 전화다. 어린 여종업원은 자신들끼리의 일상화된 비속어를 지껄이며 나이든 종업원에게 전화를 건넨다. 나이든 종업원은 정중하고 상냥하게 전화를 받고 상담에 응하는 모습이 천사에 방불(彷佛)하다. 그 때 훤칠하고 잘생긴 중년의 지배인이 등장하고, 고객우선과 미소 짓기를 재차 강조한다. 지배인은 여종업원의 하지정맥류 증세를 듣고는 근무 중에는 외출이 절대금지사항이지만 예외로 병원에 다녀오도록 허용한다. 나이든 여종업원은 자리를 비우자마자 지배인이 어린 여종업원에게 다가가 보이는 행동과 대화를 통해 두 사람이 내연관계임이 객석에 감지된다. 지배인이 퇴장하고, 눈에 띄지 않는 의상차림의 중년여인이 등장한다. 좀 전에 반품 전화를 건 여인이다. 여인은 까다로운 성격인 듯 전화를 늦게 받은 것에서부터 화장품 관련이야기를 따지듯 묻기 시작한다. 어린 종업원은 허둥지둥 임기응변하듯 거짓 핑계를 일상처럼 둘러댄다. 나이든 여종업원이 돌아오고, 중년여인의 질문에 어린 여종업원과는 다른 답변을 한다. 그녀는 성품자체가 거짓말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 객석에 전달된다. 중년여인은 항변꺼리를 장만한 듯 꼬치꼬치 캐물어 거짓답변과 화장품의 부적응을 지적하고, 새 화장품을 받아 챙겨들고 퇴장한다. 여종업원들은 중년여인이 감사(監査)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는다. 곧이어 모습과 차림이 남다르고 세련미가 넘치는 여인이 등장해, 화장품 관련 대화를 나누고, 화장품을 구입해 가지만, 여종업원을 바라보고 대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는 인상을 객석에 남기고 퇴장한다. 중년여인이 다시 등장해, 분을 삭일 수 없다며, 종업원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는 발설을 한다. 여종업원들이 주저하자, 중년여인은 책임자를 데려오도록 호령호령한다. 어린 여 종업원은 자제를 잃고 폭발한다. 지배인이 달려오고, 나이든 여종업원 대신 무릎을 꿇는다. 어린 여종업원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간다. 지배인이 그녀를 뒤따라간다. 중년여인은 반품대금을 현찰로 지급받고 퇴장한다. 지배인이 되돌아 와 나이든 여종업원을 위로하고, 그녀의 하지정맥류를 들여다본다. 그 때 세련된 모습의 여인이 재등장해 이 광경을 지켜본다. 지배인이 어린 여인과 관계를 맺기 이전에는 나이든 여종업원과도 정분을 맺었음이 객석에 전해진다.

대단원에서 세련된 여인이 지배인의 부인임이 알려지고, 평상복차림으로 나이든 여종업원을 찾아온 어린 여종업원도 지배인의 바람기를 비로소 알게 된다. 지배인의 부인 역시 나이든 여종업원의 무릎 꿇은 사과를 받고 떠난다. 홀로 남은 화장품 매장에서 나이든 여 종업원은 눈물범벅이 되어 수호천사의 석고상을 어루만지며 불멸의 의지로 미소 짓기를 계속한다. 그 때 중년여인이 나갈 길을 못 찾았다며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재차 중년여인의 투정이 시작되자, 나이든 여종업원은 수호천사의 칼을 뽑아 중년여인의 가슴을 깊이 찌른다. 두 여인이 탁자 앞에 기진한 모습으로 나란히 주저앉아 정면을 바라보면 조명은 암전상태로 들어가고 도입에서처럼 어둠속에서 여인들의 음성이 속삭이듯 되풀이 되면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강애심이 중년여인으로, 강명주가 지배인의 부인으로, 이승영이 지배인으로 출연해 더할 나위 없는 호연을 보인다.

이은정이 나이든 여종업원으로, 서지유가 어린 여종업원으로 출연해 열연한다. 특히 이은정은 완벽에 가까운 성격창출과 그녀 자신이 수호천사가 아닌가 하는 의지와 열정, 그리고 감동을 객석에 전한다.

조연출 한영수, 무대 박성찬, 조명 이승주, 의상 김정향, 분장 신나나, 음향 이석민, 제작 황동근, 프로듀서 호 진, 기획 조혜랑·박성우, 디자인 심이나, 사진 박종명, 홍보 이지은 등 스텝진의 기량도 돋보여, 서울연극앙상블과 극단 인어의 최원석 작, 박찬진 연출의 <불멸의 여자>를 우수작이자 걸작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2, 극단 거미의 카렐 차펙 작, 짐제민연출·영상의 <알유알(R.U.R)>(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극단 거미의 카렐 차펙(Karel Čapek) 작, 김제민 연출·영상, 김석만 멘토, 오민아 드라마투르크의 <알유알(R.U.R)>을 관람했다.

‘로봇'(robot)이라는 말은 1920년 체코슬로바키아의 극작가 카렐 차펙이 발표한 희곡 ‘로섬의 만능로봇'(RUR.,Rossum’s Universal Robot)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러나 로봇이라는 말이 탄생하기 이전부터 ‘자동인형(automata)’ 살아 움직이는 인형’ 등의 말로 로봇의 개념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카렐 차페크는 1890년 당시 오스트리아의 일부였던 보헤미아에서 태어났으며 프라하의 캐롤라인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다. 졸업 이후 극장에서 무대감독으로 재직하면서 유명 여배우와 결혼하게 된다. 저널리스트, 민주주의의 옹호자로 알려져 있는 카렐 차페크는 희곡 『R.U.R』과 소설 『War With the Newts』을 통해 작가로서의 명성도 함께 얻게 된다. 특히 『R.U.R』은 산업사회와 기계시대의 도래라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예언적인 작품에 주목하게 된다.

로봇이라는 단어가 카렐 차페크의 형인 요제프 차페크(Joseph Capek)에 의해 주창되기는 했으나, 카렐 차페크에 의해서 비로소 로봇으로 명명된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연기를 펼치게 되었다.

1921년 초연 당시 카렐 차페크는 실제 로봇, 그러니까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모형을 직접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작품 속 로봇은 순전히 그의 상상력에 따라 구체적인 형상을 갖추게 되었으며 로봇으로 분장한 배우들이 실제 로봇을 대신하여 무대에서 연기했다.

연극 <R.U.R>의 내용은 바다 한가운데 위치한 작은 섬에 ‘로섬의 유니버설 로봇(Rossum’s Universal Robots)’이라는 로봇 공장이 들어선다. 이곳에서 대량 생산되는 로봇들은 내륙에 사는 사람들의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해 생산되고 있다. 이곳에 공장을 둘러보기 헬레나(Helena)라는 영향력이 막강한 인물의 딸이 방문한다.

헬레나는 일일이 과학자들과 로봇을 대면한다. 그리고 로봇들의 모습이나 형태가 인간을 닮았음에도, 비인간적인 기계자체로서만 취급을 당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그녀는 개선책으로 로봇도 사람처럼 영혼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로봇도 사람처럼 고통을 느끼겠지만, 현재보다는 나은 대접을 받게 될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헬레나는 그의 의지를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한다.

한편,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해 버린 로봇들은 자신들이 사람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고 반란을 일으키기로 결심한다. 반란에 성공한 로봇들은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한다. 궁지에 몰린 사람들은 일찍이 로봇을 탄생시킨 로섬(Rossum) 박사의 로봇 생산 비법이 적힌 문서를 가지고 로봇 폭도들과 협상하려 한다. 하지만 그 문서는 이미 헬레나에 의해 불에 타고 사라진 후다.

대단원에서 인간과 로봇의 대결에 의해 인간과 로봇은 마치 핵전쟁의 여파처럼 느껴지는 엄청난 살상과 파괴로 인해 멸망하고 마는 충격적인 마무리로 연극은 끝이 난다.

인간과 인간이 만든 기계와 살상무기에 대해 고민했던 수많은 예술가와 과학자들 중에서도 카렐 차페크의 『R.U.R』에 주목한 이유는 그가 최초로 무대 위에서 로봇의 형상을 구체화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에도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 구스타프 마이링크의 『골렘』(1915) 등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에 관한 작품은 있었지만 『R.U.R』은 100년 전 로봇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명시하고, 로봇이 지성 뿐 아니라, 감성까지 갖춘 미래형 로봇의 등장을 예고하기도 한 작품이다.

극단 거미의 공연에서는 무대를 팔자(八字) 형태의 두껍고 흰 벽을 객석을 향해 펼쳐놓고, 남녀가 끌어안고 입을 맞추는 모습과 바다로 향하는 장면이나, 로봇의 설계도면의 영상을 투사해 극적효과를 높인다. 조명효과에 따라 벽면 안쪽 인물의 모습이 망사를 통해 들여다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정사각과 직사각의 입체 조형물을 의자와 탁자로 사용하고, 탁자위에는 장식물도 올려놓았다. 출연자들은 각종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로봇의 행동으로 보이는 움직임으로 장면변화에 대처한다.

레지나, 조판수, 황도연, 이준규, 백종승, 김보라, 김동민, 심우섭 등 출연자 전원의 새롭고 독특하고 기계동작 같은 연기는 관객을 흥미로 극 속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했으며, 김병제의 음악, 봉하일의 무대, 김건영의 조명, 양은숙의 안무는 무대를 돋보이는 역할을 했으며, 오민아의 드라마투르크, 송희경의 기획 등 모두의 열정과 힘이 하나가 되어, 극단 거미의 카렐 차펙 작, 김제민 연출, 김석만 멘토의 <알유알(R.U.R)>을 독특하고 창의력이 돋보이는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3, 극단 지구연극의 김태수 작, 차태호 연출의 <一枝春心을 두견이 알랴>(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이 연극은 조선왕조 선조시대 송강(松江) 정철(鄭澈)과 불우헌(不憂軒) 정극인(丁克仁)을 등장시켜 가사문학(歌辭文學)과 선비정신, 그리고 정치철학을 대비시키고, 당대의 정권장악을 위한 당쟁(黨爭)과 임진왜란(壬辰倭亂) 같은 국가적 변란 등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정철의 승승장구(乘勝長驅)와 몰락(沒落)을 시적언어로 그려냈다.

무대는 까마득한 계단이 배경 막을 향해 끝없이 올라가고 끝부분에 기왓골이 높이 올라간 가옥이 아득하게 보인다. 그 앞으로 무대를 삼킬 만큼 크고 둥근 대보름달과 그 앞에 가지가 무성하게 뻗은 나무 한그루가 서있고, 마치 터널을 연상시키는 반원형의 중간 벽이 2중으로 만들어져 묘한 풍경을 연출한다. 장면전환으로 일렬로 선 수목들이 천정에서 내려오기도 하고, 경사진 무대바닥이 회전을 해 극적효과를 높이기도 한다.

선조가 등장할 때에는 옥좌가 마련되고, 정철의 집 장면에는 난간과 탁자, 초벌구이처럼 보이는 술병과 거문고가 풍치를 높이기도 한다.

특히 도입과 대단원에서 청사초롱을 손에 든 남녀출연자들의 군무(群舞)는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느낌을 객석에 전한다.

송강 정철이 불우헌 정극인을 사숙(私淑)했건 아니건 간에 이 극에서는 두 사람의 친교가 이루어지고, 함께 시를 짓고 읊으며 가사문학과 정치철학을 논하고, 두 사람이 교유하는 장면에서는 반드시 백색착의의 아름다운 무희가 춤사위를 펼치고, 송강이 홀로 있을 때에는 흰 적삼에 붉은 치마를 입은 여인이 그를 가까이 모신다. 한 때 그 여인이 자신의 접진 다리를 바로 잡아준 정극인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미모의 여인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그의 바른 자세에 질린 듯 여인은 송강에게 되돌아온다. 정극인은 정철에게 복술가처럼 일종의 예언을 하고, 그 예언이 맞아떨어지는 장면이 벌어진다.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 당시 국문을 주관하던 형관으로 정철은 사건 추국(推鞫)을 직접 담당하였으며, 기축옥사(己丑獄死) 수사 지휘의 공로로 정승의 반열에 오른다. 그러자 정극인이 정철의 추국중 가혹한 행위를 지적하니, 정철은 정극인과 의절(義絶)을 한다. 그러나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는 일에 연관되어 정철이 파직을 당하니, 정극인이 누구보다도 먼저 정철을 찾아온다. 두 사람은 서로 반기고 함께 술을 마셔 대취한다. 취중에 정철은 정극인을 따라 정극인의 고향도 불시에 방문한다. 술이 깨어 홀로 남은 정철에게 지인이 알려준다. 정극인은 정철보다 100여 년 전의 인물일 뿐 아니라, 가사문학의 시조 겸 대가이고, 정철이 불시에 다녀온 정극인의 고향은 수 백리 밖 전라도 땅이라 경성에서 금세 다녀올 거리에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정철은 충격을 받고, 자신이 비몽사몽(非夢似夢)간을 헤매고 다녔다는 생각에 잠김으로써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김태훈이 송강(松江) 정철(鄭澈)로, 조영진이 불우헌(不憂軒) 정극인(丁克仁)으로 출연해 더할 나위 없는 호연으로 연극을 이끌어 간다. 이태린이 을화로, 최아름이 나비로 출연해 호연과 춤사위로 남성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강 력이 선조로 출연해 독특한 성격창출로 폭소와 갈채를 받는다. 나진환, 최재오, 박수용, 김영주, 홍민아, 배진성, 서 철 등의 어우러진 연기는 연극의 버팀목이 되었고, 손철민, 임일범, 우진우, 박종석, 박윤창, 구태영, 황혜수, 임소혜, 김백천 등 출연자 모두의 오케스트라 단원 같은 조화로움과 어울림은 극의 주춧돌이 되었다. 특히 자객으로 출연한 김백천의 기계체조선수 같은 몸놀림은 기억에 남는다.

제작 박병수, 기획 최일규, 작곡 김시형·정순도, 안무 최아름, 무대디자인 권 용, 의상디자인, 김인옥, 조명디자인 최보윤, 분장디자인 백지영, 드라마트루크 이재성, 협력연출 최서은, 조연출 유지윤, 무대미술 임 민, 조안무 황혜수, 마술연출 이영재, 무대감독 박지훈, 편곡 방종서·한예은, 음향감독 허선영, 음향 신창섭, 해금 박수민, 대금 김가령, 의상어시스턴트 문혜민, 조명오퍼 배유리, 녹음 유동준, 피디 이준석, 홍보·마케팅 (주)후, 무대크루 박범진·신윤수·황휘순 등 스텝진의 기량도 돋보여, 극단 지구연극연구소의 김태수 작, 차태호 연출의 <一枝春心을 두견이 알랴>를 풍류(風流)와 정서(情緖) 만점의 시대극으로 만들어 냈다.

 

4, 극단 연우무대의 이양구 작, 문삼화 연출의 <일곱집매>(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이 연극은 일곱 집이 자매처럼 모여 살았던 곳이라 <일곱집매>라는 이름을 붙였다.

무대는 방 일곱 개가 나란히 붙어있고, 방문이 하나씩 달렸다. 방문마다 위쪽에 유리창이 있다. 좁은 마루가 방 앞에 가로 연결되어, 걸터앉거나 누울 수 있게 되어있다. 마루 아래 마당이 펼쳐지고, 마당 왼쪽에는 등나무와 그 아래 조그만 연못이 있고, 그 주위에 긴 나무의자 두 개가 있고, 구석에는 잡동사니와 폐지수거 상자 곽을 모아두었다. 마당 오른쪽에는 수도와 플라스틱 양동이, 물바가지 등이 보이고, 극장 출입구가 이 집의 등퇴장 로로 사용된다.

연극은 도입에 커다란 륙색을 짊어진 젊은 여인이 마당으로 들어오고, 사람을 찾지만 인기척이 없다. 오른쪽 끝 방에 불빛이 보여 열어보지만 사람 없는 빈방이다. 잠시 후 장발청년 한 명이 등장하고, 여인에게 왼쪽 끝에 방을 사용하라고 가리킨다. 여인이 오른쪽 끝에 불빛이 보이는 방을 원하니, 청년은 그 방은 들어오는 사람마다 죽어 나간다는 소리로 만류를 한다. 향후 연극이 진행되면서 죽은 사람이 방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여인과 청년의 대화에서 그 집은 평택부근 미군기지촌에서 머지않은 지역에 있고, 여인은 미국대학에서 기지촌에서 종사하는 여인들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위해 방문한 것임을 알게 된다. 청년은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시위대의 일원이고, 장기 체류자라 마을사람 대부분이 청년을 알고, 청년역시 마을사정을 꿰뚫고 있음도 전해진다. 이윽고 나이든 여주인이 등장하고, 젊은 여인의 취재에 응하지 않는다. 뒤따라 눈에 띠는 옷차림의 역시 나이든 여인이 등장하지만, 취재를 탐탁하게 여지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수염이 더부룩한 청년 한 사람이 들어서자마자 장발청년에게 이 근처에 얼씬거리지 말라고 경고하듯 말하지만 장발청년은 별로 개의치 않는 표정이다. 수염청년이 장발청년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두 청년은 달아나거니 쫓거니 하면서 퇴장한다. 수염청년은 기지촌에서 일을 해 생활을 꾸려나가고, 장발청년은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쪽이니, 두 사람 사이가 좋을 리 만무하다. 수염 남은 이모의 아들로 역시 이 집에서 방 한 개를 사용하고 있음도 밝혀진다. 나이든 집주인 여인은 60년대 후반에 기지촌으로 와서 흑인병사의 아이를 낳아 미국으로 입양을 시킨 후 홀로 지내고 있고, 이모라 불리는 여인은 어려서 말썽꾸러기라 아버지에게 늘 두드려 맞고 살다시피 해, 부친의 매를 피해 70년대 중반에 집주인을 언니라 부르며 기지촌으로 따라 들어오고, 이모 역시 혼혈아로 태어난 딸을 필리핀으로 보냈고, 마침 그 딸이 장성해, 가수의 꿈을 안고 귀국해, 이집의 오른쪽 끝에서 두 번째 방에 들어있음도 젊은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 알려진다. 젊은 여인의 끈질긴 요구와 청에 못 이겨 집주인 여인은 사연을 조금씩 털어놓는다. 자신의 입양 보낸 아들 “마이클”이 이십대 중반에 어머니를 찾아 한 번 귀국한 적이 있지만, 자신은 이미 죽은 것으로 소문을 내고, 아들을 그대로 돌려보낸 눈물겨운 사연이 소개된다. 중간 중간에 시위도중 팔은 다쳐 깁스를 한 장발남과 수염 남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마치 현재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싸움처럼 펼쳐지고, 싸움 끝에 두 사람은 같은 해병대 출신임이 밝혀지기도 한다. 해병대 출신이 미군철수를 주장한다는 게 어울리지는 앉지만, 여하튼 두 청년은 나이와 기수의 차이로 존칭이 서로 바뀌게 되고 어쩔 수 없이 가까워진다. 젊은 여인의 간청에 못 이겨 결국 취재에 응한 집주인은 자신의 아들이름이 “마이클”이라는 것을 알려주며, 자신이 죽지 않고 생존해 있음도 아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학위논문을 완성한 젊은 여인은 미국으로 돌아간다.

몇 해 후, 박사학위를 받은 여인이 다시 이 기지촌을 찾아온다. 그러나 집주인 여인은 고인이 되었고, 장발 남은 여전히 미군철수를 주장하며 평택지역의 유지처럼 되어있고, 수염 남은 면도를 한 얼굴과 깔끔한 차림으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모습이 되어 등장한다. 꿈을 이뤄 가수가 된 이모의 딸이 평택지역에서의 연주회 일정으로 내한을 한 것으로 설정이 되고, 그녀의 남자친구인 혼혈 미군병사가 이 집을 찾아온다. 그런데 그 병사는 이집이 낯이 익은 듯, 등나무 아래 작은 연못가에 주저앉기도 하고, 집주인 여인 살던 방을 열어보기도 하면서 집안을 살핀다. 그때 가수여인이 방 밖으로 나와 병사의 이름을 부른다. “마이클!”이라고.

가수여인이 마이클 잭슨의 “We are the world”를 부르면서, 젊은이들이 모두 따라 부르며 춤을 추는 장면이 전개된다.

그때 이모가 등장해 혼혈병사와 마주친다. 혼혈병사와 이모는 바라보자마자 상대가 누구인가를 깨닫는다. 혼혈병사는 충격을 받았는지 밖으로 뛰어나간다. 가수여인과 청년들이 뒤따라간다. 박사여인이 모든 사실을 알아차리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집주인 김지원, 이모 김시영, 수염 남 조시현, 박사학위 준비여 최설화, 마이클 유명상, 장발 남 김상보, 여가수 나하연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성격창출이 돋보인다.

프로듀서 유인수, 예술감독 정한룡, 제작피디 이지연, 무대소품 김혜지, 조명 박성희, 의상 강기정, 음향 박세연, 분장 송영옥, 사진 김종범, 조연출 최윤희, 기획피디 최상윤 등 스텝진의 노력이 합하여 극단 연우무대의 2013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 이양구 작, 문삼화 연출의 <일곱집매>를 성공작으로 창출시켰다.

 

5, 극단 대학로극장의 윤미현 작, 이우천 연출의 <평상(平床)>(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연극 <평상>은 한 철거민(撤去民) 가족의 이야기다. 철거대상지역 반파(半破)된 가옥, 평상에서 거주하는 가족의 일상을 적나나(赤裸裸)하게 묘사했다.

무대는 배경 쪽 다 허물어진 세멘벽돌 벽에 창문만 덜렁 달려있고, 좌우의 벽도 마찬가지이다. 구멍 뚫린 천정도 곧 내려앉을 듯한 형상으로 매달려 있다. 무대 왼쪽의 이 집 출입문 역시 문만 앙상하게 서있고 무대 후면 오른쪽 등퇴장 로는 화장실 겸 욕실의 출입구로 설정이 된다. 후면 벽 가까이 낡은 의자와 가구가 쌓여있고, 무대중앙에 크고 넓적한 평상(平床)이 자리를 잡았는데, 평상은 한쪽 다리가 낮아 갸웃 둥하게 기울어진 상태로 놓여있다. 평상 뒤 무대 왼쪽천정에서 줄에 매단 그물침대 해먹(hammock)이 흔들거리고, 평상 앞 무대바닥에는 종이지도와 화투짝, 카지노용 모조지폐등이 널려 있다.

배달용역을 하던 아버지와 음식배달을 하던 아들, 그리고 그 집 주부가 철거지역 안 폐 가옥에 칩거(蟄居)하고, 부근 중국음식점에서 배달원이 자장면을 철가방에 담아온다. 아버지는 부재중이고, 어머니와 아들의 독특한 일상이 펼쳐진다. 모자(母子)는 마치 대저택에서 지내는 부호인양 행동거지와 사용하는 언어의 독특하기가 “몰리에르”나, “에드몽 로스탕”의 작중인물처럼 현란(絢爛)하지는 않지만, 언어의 유희가 자못 능란(能爛)하고, 대사마다 세태가 반영되어 폭소를 유발시킨다. 비록 자장면 배달을 시키고, 음식외상값이 누적되었어도, 아들은 음식배달원 선배로서의 위용(?)을 보이며 음식 값을 추후로 미루고, 어머니를 대하는 모습이 재벌회장부인을 대하듯 정중하기 그지없다. 어머니 역시 아들의 대사에 부응하듯 재벌부인인양 거들먹거리고, 하녀를 자주 부르지만, 하녀가 있을 리 만무하다. 아들이 피곤해 눕고 싶다고 하면, 어머니는 해먹을 가리키며 이층 방으로 올라가 쉬라고 이른다. 아들은 흔들거리는 해먹에 누웠지만 건물철거소음이 폭발음처럼 들리면서 점차 가까워지니, 불안감과 공포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그러나 모자는 자연스럽게 평상심을 유지하는 듯 보인다. 이러한 장면이 한동안 지속되다가 반백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강원도의 어느 한적한 지역에 있는 폐 가옥을 발견하고, 집주위에 농사지을 터전이 널려있다는 소식과 함께 그리로 이사를 하자고 아내와 아들에게 이야기한다. 부근에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는 곳이 있어, 무 배추를 출하할 때 트럭에 옮겨주면 품삯을 받을 수도 있고, 닭이나 토끼를 기르며 살 수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무위도식이 몸에 밴 어머니와 아들은 아버지의 건의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노숙자 생활이 몸에 배면 일자리를 주어도 대부분이 거부하거나, 얼마 못가일자리를 때려치우듯, 이들 모자에게는 아버지의 말이 당나귀 귀에 찬송가 부르는 것처럼 들릴 뿐이다.

모자는 이 철거대상가옥에 그대로 머무르기를 고집한다. 그러면서 아들은 넓적한 평상 한쪽을 잡아끈다. 평상이 분리되면서 평상 세 개를 합쳐 놓은 것이라는 걸 관객은 그제에야 알게 된다. 대단원에서 어머니와 아들, 그리고 아버지가 평상 한 개씩 차지한 듯 평상을 갈라놓은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정재진이 아버지로, 이양숙이 어머니로, 성노진이 아들로, 김장동이 배달부와, 철거반원으로 등장해 독특한 성격창출과 능숙한 연기로 객석으로부터 갈채를 받는다.

진용남의 조명은 작중인물의 심리변화에 까지 미쳐 기량이 돋보였고, 황수연의 무대는 철거가옥을 한 점의 조형예술로 창출한 감이 든다. 서상완의 음악, 김정향의 의상, 한지윤의 소품, 박팔영의 분장, 김동수의 음향오퍼, 이진우·조문경·김현수·백하림의 조명크루, 기획 김선화, 무대감독 박인서, 조연출 조혜영·주애리 등 스텝 모두의 기량과 열정이 조화를 이루어 극단 대학로극장의 윤미현 작, 이우천 연출의 <평상>을 문제작이자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6, 극단 창의 위기훈 작, 홍창수 연출, 홍원기 협력연출의 <인간대포 쇼>(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연극 <인간대포쇼>는 고교 불량학생 서클과 관련된 폭력, 따돌림, 갈등, 자살 등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청소년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가 극의 대사 속에 표현되기에 “일진”, “셔틀” 같은 표현이 낯설 수도 있으나, “일진”은 불량소년의 우두머리를 지칭하는 말이고, “셔틀”은 빵 심부름이나, 담배, 돈 같은 걸 심부름하는 무리라는 뜻임을 알면 이해하기 쉽다.

무대는 왼쪽에 바닥에서 천정까지 의자를 하나하나 연결시켜 쌓아놓았다. 무대 오른쪽에는 한때 어린이 놀이터에서 많이 볼 수 있었고, 건축공사장 외곽에 철제 파이프를 가로세로 엮어 꼭대기로 기어오르도록 만든 구조물과 그 안에도 의자를 잔뜩 쌓아놓았다. 구두를 칸칸이 쌓아놓은 구두닦이 코너와 문제학생의 부친의 일하는 장면도 그럴듯하고, 배경에 맑은 하늘과 화염, 그랜드 캐년 등 의 영상을 투사해 학생들의 심리변화와 극적 효과를 높이는데 적절하게 사용했다. 소품인 학생들의 책가방인 배낭의 활용, 마네킹의 고공추락 대용물, 그리고 인디언추장의 독수리날개 관(冠) 등도 절묘한 표현물이 되었고, 심리변화를 조명의 색상으로 처리한 것도 볼거리가 되었다.

현재 사회적으로 교육적으로 중시되고 있는 학교 불량서클과 연관된 제 문제가 일일이 극의 내용으로 전개되고, “일진”에서 “셔틀”로 추락하는 과정과 문제학생의 자살이 극의 마무리가 된다. 특히 색맹이나, 색약 같은 유전인자가 극에 내용에 포함이 되고, 패션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이 자신이 색맹임을 안 후 부모를 원망하고, 절망과 함께 삶 자체를 포기하는 장면은 충격적이기도 하다. 남녀학생으로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가 실제 고교생과 방불(彷佛)해, 관객의 폭소와 갈채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강현식, 김성효, 우윤구, 유수동, 장진우, 정초롱, 황두현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이 기억에 남는다.

무대디자인 표종현, 조명 공연화, 음악 송기영, 음악 홍승현, 영상 김장연, 조연출 강동수, 안무 김정윤, 연기지도 노은미, 기획 최세아, 작곡 김티모, 무대감독 김동건, 분장 정경자, 의상 탁민경, 사진 김일환 등 스텝 진의 기량이 극의 수준을 높여, 극단 창의 위기훈 작, 홍창수 연출, 홍원기 협력연출의 <인간대포 쇼>를 문제작에다 걸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

이 연극은 청소년연극제에도 어울리리라는 생각이다.

 

7, 극단 유목민의 오태영 작, 손정우 연출의 <끝나지 않는 연극>(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끝나지 않는 연극>은 한 가장이 낙인을 지워버리거나, 붉은 딱지를 털어버리기 위해, 한풀이 같은 연극연습을 끝없이 되풀이 하지만 끝내 마무리를 짓지 못 한다는 내용이다.

무대에는 배경 가까이 놓인 TV 모니터에서 1995년에 제작된 제라르 코르비오 (Gerard Corbiau) 감독의 영화 파리넬리(Farinelli)의 영상과 함께 거세된 남자 소프라노 파리넬리 역의 스테파노 디오니시((Stefano dionisi)의 열연과 열창이 계속된다.

모니터 옆에는 잡동사니가 잔뜩 쌓여있고, 이 집 아들이 텅 빈 무대를 서성이다가 어선의 고기잡이 그물 같기도 하고, 전투 벙커 은닉용 같은 커다란 그물을 쳐 잡동사니를 가린다. 또 커다란 접는 나무사다리를 들어다 출입문 앞에 벌려 세우고, 페인트 용 붓으로 문짝을 칠하는 시늉을 한다. 어머니와 딸, 그리고 아들의 처가 등장하고, 마지막으로 60대의 아버지가 등장해 가족연극연습이 시작된다.

첫 장면은 한풍이 몰아치는 것으로 설정을 하고, 아버지는 문 앞에 놓인 사다리를 지적하며, 망치로 문의 유리창을 깨려 다가간다. 어머니는 그러는 아버지를 말리며 벌써 수없이 창의 유리를 깨뜨렸으니, 이제는 깨어진 것으로 하고, 그만 깨뜨리라고 만류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막무가내다. 이런 가족들의 티격태격하는 모습과 함께 연극연습이 가족의 일상인 듯 시작되고, 의자에 놓은 대본을 수정 또는 집필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간간히 보이면서 아버지의 연출에 따라 가족이 일거수일투족 하는 모습이 가관이라 객석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온다. 가끔 가족의 의견에 따라 내용이 수정되기도 하고, 아버지가 연기를 직접 시연해 갈채를 받기도 하면서 가족의 연극연습장면이 되풀이된다.

아들과 딸은 연극연습에 회의를 느끼고, 연습을 중단하거나, 아예 이러한 생활을 때려치우자고 어머니에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버지의 뜻을 천명처럼 따르자고 자식들과 자부에게 권한다. 자식과 자부는 마지못해 순종하는 모습이 연출된다.

이들 가족은 거짓말 않고 대답하는 진실놀이도 펼친다. 진실놀이는 음주와 함께 계속되고, 듣기 거북한 질문에 답변을 피하려는 듯 자부는 만취상태가 되어 대답을 못한 채 쓰러져 잠이 들기도 한다. 연극연습 중 가족사가 전개되면서 아버지의 이념적 갈등이 노출되고, 사상문제로 곤욕을 치렀던 과거사가 객석에 전해진다. 붉은 딱지는 공소시효가 없이 평생을 따라다닌다는 통한의 발언과 함께 아버지의 고뇌의 모습이 객석을 숙연케 한다. 유산을 바라고 연극연습에 참여한 듯싶은 아들과 딸의 모습과 가족 간의 갈등이 노정되고, 상속할 유산이라고는 연극밖에 없다는 아버지의 발언이 마치 연극인들의 자화상 같아 가슴에 잔잔한 슬픔이 스며들기도 한다.

대단원에서 아버지는 기관원에게 강제로 연행되어가는 장면이 연출되고, 총성과 함께 생을 마무리 하는 듯 암전된다, 그러나 무대가 다시 밝아지면 기관원은 그물막 뒤에서 철가방을 찾아 든 음식점 배달원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고, 가족의 연극연습이 다시 시작되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이봉규, 오민애, 김 결, 조선주, 동규찬, 홍정연 등 출연자들의 호연과 열연이 관객을 1시간 30분 동안 영화에서의 파리넬리의 일생을 관람하듯 연극을 관객의 가슴과 뇌리에 각인시킨다.

드라마트루크 강문주, 예술감독 심재민, 조명 김용주, 무대 이진석, 의상 조현정, 안무 이영일, 영상 최종찬, 음악 박용신, 조연출 심현우, 무대감독 유태선, 오퍼 이용호·노우란·문건우, 진행 김민지, 기획 동규찬, 기획보 김지원, 촬영 조성원·김재정·김양우·최정인 등 스텝 모두의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극단 유목민의 오태영 작, 손정우 연출의 <끝나지 않는 연극>을 작가의 창의력과 연출가의 기량,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력까지 돋보이도록 하는 수준급 연극으로 창출시켰다.

 

8,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이여진 작, 최원종 연출의 <트라우마 수리공>(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이여진 작, 최원종 연출, 차근호 예술감독의 <트라우마 수리공>을 관람했다.

무대는 배경 막 가까이 높고 낮은 고층건물의 옥상이 연결되어 있다. 건물의 왼쪽 뒤편으로 옥상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고, 오른쪽 옥상으로 오르는 계단은 건물 중앙부분에 있고, 객석에서 계단의 측면만 보인다. 두 계단은 조명이 비추었을 때만 관객의 눈에 보인다. 무대 좌우에 등퇴장 로가 있고, 전화박스 형태의 대도구를 사용해, 꿈의 제조기와 사람을 가둔 밀폐공간으로 사용된다. 장면에 따라 사각의 입체조형물을 배치해 의자로 사용한다.

귀에 익은 노래 “You are my sunshine”을 출연자들이 기타를 연주하며 부르기도 하고, 같은 노래를 “Anne Murray”의 노래나 ”Mitch Miller”합창단의 노래로 들려주기도 하고, 쇼팽의 피아노곡을 배경음악으로 깔거나, 현재 우리나라 젊은 가수들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연극은 도입에 금발의 성매매 여인과 역시 금발의 소녀들에게 둘러싸여 헤어나지 못하는 친구의 꿈속으로 들어가 주인공 청년이 친구의 황음(荒淫)을 치유(治癒)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친구는 조카를 부탁하고, 청년은 종이컵으로 탑 쌓기 놀이를 하는 친구의 조카인 소녀를 찾아간다. 소녀는 꿈속에서 낚시를 하는 아버지와 만나 고기를 잡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연출되고, 바로 그 장소에서 테러리스트인 아버지가 경찰에 포위된 결정적인 순간, 낚시터로 연상되던 고층건물에서 투신해 자살하는 충격적인 장면이 벌어진다. 청년은 소녀의 꿈속에 등장해 참혹한 기억을 치유하려 애쓴다. 청년의 과거가 소개가 된다. 남성편력이 많은 어머니와 청년까지 한 명의 남성으로 대하는 어머니의 포옹에서 벗어나, 그러한 어머니 때문에 번민하고, 어머니를 치유하려는 열의가 노출되기도 한다. 청년은 꿈 치료로 소문이 난다. 그리고 친구가 소개한 기업가인 회장의 꿈을 재생시키고 치유해 줌으로써, 회장은 청년에게 동업을 제의한다. 꿈으로 많은 사람의 고통과 번뇌를 치유하는 사업을 벌이자는 계획이다. 청년은 그러한 황당한 사업에 반대의사를 표하지만, 반 강제로 이끌려 들어가게 된다. 꿈 치료 사업은 성공해 고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게 되지만 청년은 연구실에서 감금상태로 꿈 작업을 계속하는 것으로 설정이 된다. 친구가 소식을 듣고 청년이 있는 기업체를 찾는다. 그러나 꿈 치료를 받으려면 친구라고 예외가 없다. 고객이 한 번 치료를 받자면 1천 만 원의 비용과 함께 순번을 1, 2개월이고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친구는 포기를 할까 망설이다가 돈을 지불하고 청년을 만나기로 약정한다. 드디어 친구와 청년과의 조우가 이루어지고, 감금상태에서 반 폐인이 되다 시피 한 청년을 만난 친구의 놀라움은 크다. 그리나 꿈 치료가 시작되고, 친구가 금발머리 소녀들에게 둘러싸여 황음에 빠졌던 시절이 재현되면서 친구의 조카 역시 성매매 여인으로 변하고, 조카 아버지 대신 청년과 조카가 낚시를 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그러나 고공에서 조카의 아버지 대신 청년이 투신을 하는 충격적인 장면과 함께 암전이 된다.

대단원에서 금발머리 소녀들이 등장하고, 리본체조를 하는 인물들과 청년이 그들 틈에 끼어 함께 리본을 휘두르며 율동하는 모습이 한 동안 계속되다가 청년이 혼자 남아 능숙하게 리본체조를 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이정미, 승의열, 김동현, 정선철, 백선우, 유재돈, 김정란, 노여주, 정소영, 김설빈, 박윤서, 박민지, 이소아, 배보경, 김은정 등 출연자들의 호연과 노래, 그리고 율동은 관개의 갈채를 받는다.

예술감독 차근호, 무대 심채선, 조명 최보윤, 의상 한복희, 음악 김건호, 사진 이지락, 포스터디자인 우민혁 등 스텝 모두의 기량이 돋보여,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 이여진 작, 최원종 연출의 <트라우마 수리공>을 창의력이 돋보이고, 연출기량이 드러난 우수작이자 걸작연극이라 평하겠다.

 

화가들은 귀신이나 도깨비, 또는 용을 그리는 것보다 개나 고양이를 그리기가 어렵다고들 이야기한다. 개나 고양이는 우리 주변에서 늘 상 볼 수 있어 잘못 그리고 잘 그리고를 금방 식별할 수 있지만, 귀신이나 도깨비는 볼 수 없기에 대충 그려도 나무라지 않기 때문이다.

연극도 마찬가지다. 리얼리즘 연극은 우리의 생활 속에 펼쳐지는 인생사를 바탕으로 극적구성과 내용을 적나라하게 펼쳐나가기에 장단점이 극명하게 노출되지만, 공상과학연극이나 비현실적인 극은 그 반대라 극구성과 내용전개가 엽기적이고 외설적이라도 나무라지 않고, 극에 눈요기 감을 마냥 첨가해도 그저“ 쇼 쇼 쇼”를 구경하듯 즐길 뿐 비판을 않는 게 대부분이다.

물론 공상과학물 중에서도 “줄 베르느”의 소설에서처럼 <해저 2만 리>가 후에 “노치라스 호”라는 원자력 잠수함 탄생의 계기가 되기도 했고, <지저탐험>의 말미에 분출되는 용암을 타고 지상으로 탈출하는 장면은 후에 “로켓”발사의 원리가 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공상과학물은 오락물로 마무리가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연극은 관념 극이나 공상과학물도 있어야 하겠지만, 현실 극이 있어야 한다. 특히 서울연극제에서는 우리 생활주변에 널려있는 우리의 자화상 같은 리얼리즘 극이 절실히 요구되고, 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2013 서울연극제 기획초청작 공연총평

 

2013년 제34회 서울연극제 “기획초청작”으로는 극단 창세의 백석현 작·연출의 <살아남은자들>(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극단 예도의 이삼우 작·연출, 이선경 각색의 <선녀씨 이야기>(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그리고 극단 무브먼트 당당의 김민정 구성·연출의 <소외(疏外)> 등 세 작품이다.

 

1, 극단 창세의 백석현 작·연출 <살아남은 자들>(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연극 <살아남은 자들>은 노숙자 칩거지(蟄居地)에 사교집단 같은 곡마단이 방문하면서 노숙자가 동화되어가는 모습을 그린 연극이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등 빈부격차가 현저한 나라일수록 노숙자의 수가 증가하고 있고, 사회적 국가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미국의 노숙자 수는 350만 명에 이르고, 일본은 5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우리나라도 서울역과 영등포 역 주변에 칩거하는 노숙자가 3000명에 가까워 서울시와 보건복지부, 그리고 여러 종교단체에서 그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무대는 중간의 검은 막 양쪽으로 천정부터 바닥까지 종이 상자 곽을 잔뜩 부착시킨 벽이 객석의 시야를 압도한다. 벽 가까이 침구와 식기, 교통 통행차단 플라스틱 원추형 표지물, 밧줄, 접는 사다리, 이불보따리 등과 그 밖에 노숙자 생활용품이 빈 플라스틱 막걸리 병과 함께 널려있고, 남녀 노숙자들의 거동이 보인다. 노숙자 중에는 부부도 있고, 외톨이도 있고, 딸과 함께 있는 것으로 설정이 된다. 가끔 팬터마임이기는 하지만, 이들에게 정기적으로 음식물을 제공하는 남성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새로운 노숙자가 합류하기도 한다. 장면이 바뀌면 중간 막과 함께 상자 곽 벽이 천정으로 올라가고, 무대 후면에서 사교집단(邪敎集團)의 우두머리처럼 보이는 백색착의(白色着衣)와 구척장신(九尺長身)의 목발거인이 붉은 의상의 일행과 등장해, 마치 서커스 단원처럼 노숙자에게 각종 기예(技藝)를 펼쳐 보인다. 그들 중에는 꽹과리를 두드리며 경을 읊듯 오케스트라 박스에 다리를 내리고 소리를 하는 남성과 거문고 연주를 하는 남성, 그리고 태권도를 예술적으로 펼쳐 보이는 여성단원 등이 등장해 객석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백색착의의 장신단장의 지휘에 따른 행동을 보인다. 노숙자의 생활과 서커스단원의 볼거리 제공이 반복되면서 노숙자들은 한 명 한 명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재능 하나하나 펼쳐 보이기 시작한다. 서투르면 되풀이 해 재주를 익히기를 계속하고, 대단원에서 서커스단원 대신 노숙자들만의 재주만으로 객석에 볼거리를 제공해 갈채를 받는 장면은 감동적이기도 하다.

작가 겸 연출은 극적 플롯 대신 퍼포먼스를 통해 노숙자 문제와 그 해결책을 이 연극을 통해 제시하고, 수많은 장면변화마다 극에 어울리는 음악이 절묘하게 흘러나와 기억에 남는다.

김경동, 김미림, 김성모, 김선호, 김자영, 김찬미, 권소랑, 권오승, 나승재, 문성주, 박민경, 신동길, 신민재, 신은지, 안 훈, 윤덕웅, 윤미정, 장우용, 정재은, 정해연, 하솔림, 황위재, 한재용, 윤석기 등이 출연해 각자 독특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기획총괄/음향디자인 김민경, 연출부 하연숙·조용완·명지수, 기획부 오지선, 조명디자인 성미림, 의상디자인 김정향, 작곡 미셸K, 편곡 안요셉, 미디편곡 이호성, 사진/영상 황규백, 디자인 유 정, 분장 장진영·김애리, 진행 김혜영·임주미, 무대감독 조민기, 미술 김보라, 움직임지도 김선권, 화술지도 김혜진, 오퍼레이터 허남중·박제선 등 모두의 노력과 열정이 돋보인 극단 창세의 백석현 작/연출의 <살아남은 자들>을 문제작이라 걸작연극이라 평하겠다.

 

2, 극단 예도의 이삼우 작·연출, 이선경 각색의 <선녀 씨 이야기>(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선녀씨 이야기>는 2012년 전국연극제 대상수상작이다. 집을 나간 지 15년이 된 아들이 어머니가 저 세상으로 가자, 장례식장 어머니 빈소를 찾아와 누나들과 그들의 자녀와 상봉하고,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지난 일들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무대는 배경 막 가까이 대형 영정을 만들어 놓았고, 사진 대신 어머니가 그 안에 앉아있다. 두 계단 아래 오른쪽에 손님 접대용 상이 있고, 가족은 검은 수의를 입고 문상객을 맞이한다. 관객은 문상을 하는 느낌으로 관극을 하게 된다.

연극은 도입에 객석 뒤쪽에서 남자배우 한 사람이 “아이고 두야” 소리와 함께 등장해, 너스레를 떨고 대화도 나누며 무대 위로 올라가 관객에게 인사하면 시작된다. 빈소에 조명이 들어가면 사진이 아닌, 백발의 어머니가 실제로 자리를 잡고, 딸과 손자가 문상객을 대한다. 집을 나간 아들이 15년 만에 빈소에 등장하면, 누이들이 반가움과 원망을 동시에 표하면서 남동생을 맞이한다. 문상객이나 아들이 영정 앞에서 큰절을 올릴 때, 상주인 손자가 호곡을 하는 모습이 젊은이들에게는 낯설지만, 연세든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다. 아들은 손님접대용 상에 가 앉는다. 그러자 영정 속에 앉아있던 어머니가 허리를 두드리며 내려와 아들에게 다가가 상 오른쪽에 앉는다. 그리고 아들과 지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아버지와의 첫 만남, 젊은 시절부터 대머리인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고, 생활 때문에 나물을 캐어다 팔고, 아내가 집을 자주 나가니 남편이 의처증을 갖게 되고, 내외가 그로인해 티격태격하던 일들을, 젊은 여자배우가 등장해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다. 원래 의처증은 강한 사랑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 나이가 지긋해지면 자연히 사라지기 마련이다. 한편 영정 앞에서 졸던 손자는 삼촌의 두런거리는 소리에 눈을 번쩍 뜨고 그리 바라보니, 삼촌이 혼자서 열심히 지껄이는 모습에 실성한 사람이라 착각을 하고 상위에 놓은 수박그릇을 들고 어머니와 이모에게 달려간다. 향후 나이든 어머니와 젊은 시절의 어머니가 각기 연기를 펴고, 동시에 등장해 연기를 하기도 하면서 가족사가 펼쳐진다.

원래 전생(前生)의 원수지간(怨讐之間)이 금생에 부부로 맺어진다는 속담이 있듯이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이가 원만하지 않았음이 하나하나 소개가 된다. 그러나 부부는 하늘에서 바늘 하나가 떨어져 겨자씨에 꽂히듯 귀하게 맺어지는 인연이기도 하기에, 부부싸움에 제3자가 뛰어들면 비록 자식이라도 내치는 정경이 연출된다. 바로 그러한 사연으로 집에서 쫓겨난 아들과 집나간 아들을 애타게 그리는 어머니의 마음이 극에 펼쳐진다. 나이 들면 병들어 눕게 되듯, 이 연극에서의 어머니도 병석에서 운명을 한다. 아버지는 그보다 일찍 저세상으로 간다. 재산상속문제가 자녀들 간에 대두되지만 아들은 상속재산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대단원에서 가족 간의 화해가 이루어지고, 영정 속 어머니는 젊은 시절의 어머니가 자리를 잡으면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이 연극은 2012년 전국연극제 대상수상작으로 2013년 서울연극제 기획초청작이다.

고현주, 김진홍, 김현수, 진애숙, 조진희, 이삼우, 송대영, 정철종, 김재훈, 김영실, 임동완, 한재호, 황지영, 차영우 등 부산극단 예우의 출연자 전원의 열연과 호연이 관객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최태황, 심봉석, 이선경, 고재경, 심봉기, 소길호, 천경란, 김 현, 구길화, 신숭영, 양해지, 이상희, 이정유, 이금철, 이상현, 정진영, 김병훈, 이규성, 이효원, 서성화, 전영지, 백연화 등 스탭 전원의 기량이 돋보여. 극단 예도의 이삼우 작·연출, 이선경 각색의 <선녀 씨 이야기>를 서울무대에서도 그 찬란한 빛을 발하듯 성공적인 연극으로 창출시켰다.

 

3, 극단 무브먼트 당당의 김민정 구성·연출의 <소외(疏外Alienation)>(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연극 소외(疏外)는 1789의 프랑스 인권선언문을 시작으로 1948년의 세계인권선언문과 1960년 4.19혁명 선언문에 이르기까지의 각종 선언문의 탄생배경과 민중의 투쟁사를 100명에 가까운 출연자들에 의해 재현시킨 연극이다.

무대는 텅 빈 공간에 조명을 투사해 시대적 변화와 민중 심리를 극적으로 구현해 냈고, 기존의 극장시설인 무대안의 이층 발코니를 섹소폰과 기타 연주자의 좌석, 그리고 창을 부르는 사람의 무대로 사용하고, 또한 시위대의 선언문 낭독 장소로도 사용된다. 배경 막에 영상을 투사해 시위현장과 진압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연극은 도입에 삼삼오오 짝을 지어 시위대가 집결하는 광경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프랑스의 인권선언문을 낭독한다.

1789년 제3신분회의 국민의회 선언으로 시작된 프랑스 혁명은 루이 16세가 재정상의 어려움을 타개하고자 삼부회를 소집했고, 구체제의 폐정에 분노한 평민회가 프랑스 전체를 대표하는 국민의회를 구성한 다음에 채택한 선언문이다.

“프랑스 인권 선언”은 근세의 자연법과 계몽사상을 통해 자라난 인간 해방의 이념을 담고 있으며, 근대 시민 사회의 정치이념을 명확히 표현하고 있다.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을 제1조로, 종교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법률로서 보호되어야 하고, 소유권은 신성불가침이며, 공직과 지위는 중산층에도 개방되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라파예트 등이 기초한 이 선언문은, 구체제의 모순에 대한 시민 계급의 자유 선언이면서, 헌법 제정을 위한 강령으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1791년 프랑스 헌법의 전문으로 채택된 “프랑스 인권 선”〉은 세계 각국의 헌법과 정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1948년에 발표된 “세계인권선언문”은,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인간은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므로 서로에게 형제자매의 정신으로 행해야 한다. 모든 인간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 또는 그 밖의 견해, 민족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다른 지위 등과 같은 그 어떤 종류의 구별도 없이, 이 선언에 제시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 더 나아가 한 사람이 속한 나라 또는 영토가 독립국이건 신탁통치지역이건, 비자치지역이건 또는 그 밖의 다른 어떤 주권상의 제한을 받고 있는 곳이건, 그 나라나 영토의 정치적, 사법적, 국제적 지위를 근거로 차별이 자행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인간은 생명권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을 누릴 권리가 있다. 아무도 노예의 신분이나 노예의 상태에 얽매어 있지 아니한다. 노예제도와 노예매매는 어떤 형태이건 금지된다. 아무도 고문이나 가혹하거나 비인도적이거나 모욕적인 처우 또는 형벌을 받지 아니한다. 모든 인간은 어디에서나 법 앞에서 한 인격체로 인정받을 권리를 갖는다.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며,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고 법의 동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갖는다는 선언문을 출연자들이 암송하거나, 낭독해 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이 외에도 금과옥조 같은 선언문을 배우들이 열거 낭독함으로써, 훌륭한 선언문임을 감지하게 되고, 감동을 받지만, 역으로 그동안 얼마나 인권이 유린되고, 도외시되고, 소외되어 왔으면, 이런 선언문까지 만들게 되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1960년에 서울대 학생회가 발표한 “4.19선언문”은 “상아의 진리 탑을 박차고 거리에 나선 우리는 질풍과 같은 역사의 조류에 자신을 참여시킴으로써 이성과 진리 그리고 자유의 대학 정신을 현실의 참담한 박토에 뿌리려 하는 바이다.”

“오늘의 우리는 자신들의 지성과 양심의 엄숙한 명령으로 하여 사악과 잔학의 현상을 규탄광정하려는 주체적 판단과 사명감의 발로임을 떳떳이 선명하는 바이다.”

“우리의 지성은 암담한 이 거리의 현상이 민주와 자유를 위장한 전제주의의 표독한 전황에 기인한 것임을 단정한다. 무릇 모든 민주주의의 정치사는 자유의 투쟁사다. 그것은 또한 여하한 형태의 전제도 민중 앞에 군림하는 “종이로 만든 호랑이” 같이 어설픈 것임을 교시한다.“

“민주주의와 민중의 공복이며 중립적 권력체인 관료와 경찰은 민주를 위장한 가부장적 전제권력의 하수인으로 발 벗었다. 민주주의의 이념의 최저의 공리인 선거권마저 권력의 마수 앞에 농단되었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및 [사상의 자유]의 불빛은 무식한 전제권력의 악랄한 발악으로 하여 깜박이던 빛조차 사라졌다. 긴 칠흑과 같은 밤의 지속이다.”

“나이 어린 학생 김주열의 참시를 보라! 그것은 가식 없는 전제주의 전제주의 전황의 발가벗은 나성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저들을 보라! 비굴하게도 위하와 폭력으로 우리들을 대하려 한다. 우리는 백보를 양보하고라도 인간적으로 부르짖어야 할 같은 학구의 양심을 강렬히 느낀다.”

“보라! 우리는 기쁨에 넘쳐 자유의 횃불을 올린다. 보라! 우리는 캄캄한 밤의 침묵에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의 일익임을 자랑한다. 일제의 철퇴아래 미칠 듯 자유를 환호한 나의 아버지 나의 형들과 같이…

양심은 부끄럽지 않다. 외롭지도 않다. 영원한 민주주의의 사수 파는 영광스럽기만 하다.“

“보라! 현실의 뒷골목에서 용기 없는 자학을 되씹는 자까지 우리의 대열을 따른다. 나가자! 자유의 비밀은 용기일 분이다.”

“우리의 대열은 이성과 양심과 평화, 그리고 자유에의 열렬한 사랑의 대열이다.”

“모든 법은 우리를 보장한다.”

위의 선언문을 출연자들이 장면마다 하나하나 낭독하면서 진압 자들의 의해 끌려가는 장면이 연출되고, 출연자들이 반라(半裸), 또는 전라(全裸)의 모습으로 항의표시와 함께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를 펼칠 때에는 관객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극에 몰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거기에 남녀 출연자들이 윤동주, 김수영, 김광규, 박노해 같은 시인들의 시를 읊고, 여성 출연자가, 풀, 동자가, 고백, 안개 같은 가요와 창을 부르기도 하면서, 대단원에 이르러 신중현 곡 “봄비”가 흘러나올 때에는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젊음을 불태운 청년들에게 관객의 공감대가 형성이 되고, 민주회복과 인권신장을 위한 투쟁사가 관객 모두의 가슴에 파도더미 크기의 감동으로 밀려옴을 감지할 수 있는 연극이었다.

김현아, 이승훈, 김수진, 신현실, 강정윤, 김곽경희, 천창훈,권택기, 백운철, 한은주, 김영은, 김영조, 나종민, 원종철, 최정현, 마광현, 서재영, 이신실, 전우열, 박찬우, 조아라, 이현경, 원채리, 이규리, 왕용석, 이장환, 홍석하, 오미영, 김대순, 장명진, 임정아, 유난희, 이수정, 김효정, 김도현, 권민주, 방선혜, 김상준, 임유나, 유태선, 박찬윤, 박계영, 이승환, 전윤희, 유병조, 김성현, 배아영, 이주리, 이성열, 허정이, 강신곤, 임소연, 이경훈, 김창원, 선유영, 최현준, 김찬송, 신현우, 조재영, 이규빈, 김송희, 김은비, 홍지인, 윤형오, 김현우, 김경빈, 명성제, 오도명, 강 혁, 김가람, 김경종, 노수연, 서보라, 신슬기, 여정태, 유원규, 한정민, 홍수환, 차종민, 오세준, 한선화, 김기범, 김노연, 박한결, 박현지, 신동한, 여찬구, 유범열, 이수미, 최혜승, 이현지, 이진우, 유대광, 최규하, 정유미 등 출연자들의 열연과 무용, 팬터마임과 노래는 관객으로부터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조명디자인 김철희, 작곡·사운드디자인 신성아, 영상 김일현, 분장 채송화, 보컬 정마리, 섹소폰 김오키, 기타 조한결, 사진 김명집, 촬영 최홍준, 조연출 이재민, 코오퍼레이터 김미영, 기획 컬쳐버스, 디자인 서재영, 안무트레이너 이규리 등 스텝 모두의 기량이 드러난, 극단 무브먼트 당당의 김민정 구성·연출의 <소외>를 창의력이 높고, 연출기량이 돋보이는 문제작이자, 걸작공연으로 탄생시켰다.

이 작품은 서울연극제보다는 5월1일 노동절이나, 4.19 기념일에 서울광장 같은 넓은 장소에서 공연하면 어울리리라는 생각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2013 서울연극제 “미래야 솟아라.” 공연총평

 

2013년 제34회 서울연극제 “미래야 솟아라.”는 혜화동 “예술공간 서울”에서 일곱 편의 참가작이 차례로 공연되었다.

극단 후암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차현석 작·연출의 <미디어 콤플렉스>를 비롯해, 극단 원형무대의 최원종 작, 김현진 연출의 <삿포로에서의 윈드서핑>,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의 오세혁 작·연출의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너를 지켜줄 거야 친구야>, 극단 아날로그 앤 디지털의 김보람 원작, 조 영 작, 전윤환 연출의 <미래도둑)>, 극단 종이로 만든 배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하일호 작, 하일호·김영표 연출의 <락앤롤 맥베스>, 극단 가변의 박미현 작, 이성구 연출의 <끔찍한 메데이아의 시(詩)>, 그리고 극단 다(Da)의 가네시타 다쓰오 원작, 기무라 노리꼬 번역, 임세륜 각색·연출의 <어른의 시간> 등이다.

 

1, 극단 후암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차현석 작/연출의 <미디어 콤플렉스>

 

예술공간 서울에서 극단 후암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차현석 작/연출의 <미디어 콤플렉스>를 관람했다.

<미디어 콤플렉스>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의 시대적 배경을 현대로 옮기고, 던컨 왕을 스코트랜드 방송국 사장으로, 맥베스와 뱅코우를 기자로, 레이디 맥베스를 작가로, 멜컴을 사주의 아들로, 맥더프를 사주의 심복이자 해결사로 등장시켜 <맥베스>가 보도국장을 거쳐 방송국사장이 되는 전 과정과 그의 몰락을 그려낸 연극이다.

무대는 긴 탁자와 의자 두 개, 그리고 텔레비전 카메라가 비치되어 있다. 무대 좌우에 등퇴장 로가 있고, 오른쪽은 욕실출입구로 설정되었다.

연극은 도입에 재즈 왕 루이암스트롱(Louis Armstrong)의 명곡 “What a Wonderful World”가 흘러나오고, 이 노래는 계속 던컨을 위시해, 맥베스와 뱅코우가 열창을 하기도 한다.

내용은 스코트랜드 방송국 기자로 중동지역에 파견된 맥베스와 뱅코우는 반군지도자 처형장면을 촬영함으로써 특종 감으로 이름을 떨치게 되고, 스코트랜드 방송국은 시청률 80%로 부상(浮上)을 하게 된다. 맥베스는 보도국장으로 승진된다. 그러나 인터넷과 각종 미디어를 통해 맥베스가 사장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팽배해 지니, 레이디 맥베스는 소심한 맥베스를 부추겨 사장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오르도록 종용한다. 한편 던컨은 고령을 이유로 은퇴를 선언하고, 사장자리를 아들인 멜컴이 계승토록 한다. 이 연극에서는 던컨과 맥베스가 사촌 간으로 설정이 되고, 방송국을 장악하기 위한 가족 간의 암투로 그려진다. 맥베스는 자신의 저택 비데변기에 휘발유를 뿌려두고, 던컨이 사용을 할 때 불을 붙인 라이터를 던져 넣어 결국 던컨은 불에 타 죽게 된다. 맥베스는 방송으로 자신이 사장이 되었음을 발표한다. 멜컴은 사촌형 맥베스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의심을 품고 그 증거로 아버지 손에 꽉 쥐고 있던 라이터를 증거물로 제시하고, 사장직에서 물러난다. 뱅코우 역시 맥베스에게 사장살해혐의를 두니, 맥베스는 동료인 기자 뱅코우를 살해한다.

대단원에서 모든 사실이 밝혀지게 되자, 레이디 맥베스는 자신의 손목동맥을 끊고 자진(自盡)을 하고, 맥베스는 처형장에서 많은 시청 객이 주시하는 가운데 맥더프에 의해 사살된다.

공호석이 던컨, 김진환이 맥베스, 백경희가 레이디 맥베스, 이용근이 뱅코우, 박세용이 멜컴, 이영범이 맥더프로 출연해 더할 나위 없는 호연으로 연극을 이끌어 간다.

공호석과 김진환, 그리고 이용근이 부르는 “What a Wonderful World”는 이 연극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노래가 되었고,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가 추는 춤 장면은 기억에 남는다.

제작감독 황보연, 조명 류백희, 의상/소품 백은수, 조연출 최창수 등의 모두의 노력이 연극의 수준을 상승시켜 극단 후암의 미래야솟아라 참가작,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차현석 작/연출의 <미디어 콤플렉스>를 창의력이 높고, 박진감 넘치는 독특한 <맥베스-미디어 콤플렉스>로 탄생시켰다.

연극의 제목을 <맥베스-미디어 콤플렉스>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은 필자의 노파심일까?

 

2, 극단 원형무대의 최원종 작, 김현진 연출 <삿포로에서의 윈드서핑>

 

<삿포로에서의 윈드서핑>은 무대전체에 모래를 쌓아놓아 바닷가나 강변느낌이 들게 했다. 중앙에 탁자와 의자를 놓고, 파도소리, 갈매기소리, 항공기의 엔진 음 등을 효과음으로 들려줌으로써 관객의 상상을 높인다. 수트케이스를 끌고 크게 원형을 그리며 무대를 도는 항공기 여승무원 때문에 모래에는 원형의 자국이 남아있다.

연극은 도입에 장발남성이 모래바닥에 앉아 객석을 주시하며 독백을 한다. 탁자 옆 의자에 앉은 몸집이 비대한 여인이 모래바닥으로 내려앉고, 두 사람의 주위를 시계반대방향으로 마른 여인이 수트케이스를 끌고 돈다. 비대한 몸이지만 예뻐 보이는 여인이 모래바닥에서 팔다리를 벌리고 운동을 하며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를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지만, 실제는 일반인보다 훨씬 유연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언니의 집에 있는 것으로 소개가 되고, 언니는 스튜어디스이고, 사망한 것으로 설정이 된다. 언니는 삿포로를 오가는 항공사에 근무했고, 항상 승객에게 “위스키”라는 소리로 미소를 지으며, 음료를 제공하는 등 친절이 몸에 배고, 동생과는 달리, 마른체구지만 단아한 모습의 여인이다. 그러나 행동이나 모습과는 달리, 업무 스트레스와 비행기 멀미에 시달렸는지 대량의 멀미약을 복용하고 사망한 것으로 소개가 된다. 동생이 언니 집에 와서 언니 대신 형부인 장발남성의 시중을 한다. 그러나 형부는 그저 무덤덤하게 동생을 대한다.

동생은 늘 삿포로에서의 윈드서핑 이야기를 형부에게 들려준다. 산더미 같이 밀려오는 파도, 포말과 함께 서퍼를 사람을 집어삼키듯 지나가며, 짠 바닷물 맛을 입과 몸 전체에 남겨놓은 맑고 푸른 바다. 그리고 형부에게 자신이 언니라고 생각하게끔 최면을 걸어주도록 요구하기도 한다. 형부는 요구에 응한다. 동생은 최면에 걸린 듯싶지만, 언니와의 추억에 빠져있는 형부에게 동생이 언니로 보일 리 만무하다. 형부는 결국 동생에게 집을 내어주기로 하고 떠날 결심을 한다. 죽은 아내와 아내의 환상을 결코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생의 자포자기와 형부의 독백, 그리고 언니의 배회가 각기 계속되면서, 끝없는 파도소리, 갈매기소리와 더불어 드넓은 바다에서의 한없는 고독감이 출연자와 관객의 가슴마다 아로새겨지며 삿포로에서의 윈드서핑은 마무리가 된다.

김지희, 황재희, 배태원 등 출연자의 호연과 깊은 감성전달은 관객을 모처럼 수준급 공연의 감흥 속에 빠지게 한다.

무대 오태훈, 의상 최윤희, 음악 김정용, 움직임 양은숙, 분장 조용선, 사진 Josee Han, 조연출 차종찬 등 모두의 기량이 잘 드러나, 극단 원형무대의 최원종 작, 김현진 연출의 <삿포로에서의 윈드서핑(Surfing Sapporo)>를 서정적이고 감성만점의 연극으로 창출시켰다.

 

3,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의 오세혁 작·연출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널 지켜줄 거야 친구야>

 

연극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너를 지켜줄 거야 친구야>는 근현대사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호남지역의 비옥한 농토를 중심으로 지주와 소작인, 그리고 그의 자녀들의 우정과 사랑, 일제치하에서의 처세, 해방직후의 남북 분단과 이념적 갈등, 남녘땅에서 빨치산 활동, 6 25사변의 발발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친구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게 되고, 결국 그 총에 목숨을 잃게 되는 우리의 자화상을 비극이 아닌 희극적인 표현으로 그려낸 연극이다.

무대는 곡식창고다. 창고 뒤로 복도가 있어 등퇴장 로로 사용되고, 객석 가까이 무대좌우로도 등퇴장 로가 나있다. 창고 안에는 곡식을 담은 종이포대를 여기저기 쌓아놓았고, 그 뒤에 사람이 숨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연극은 도입에 청년 한 사람이 포대 뒤에 숨어있고, 순사복장에 일장기 마크가 달린 모자를 쓴 청년이 들어와 숨어있는 친구를 발견한다. 두 사람은 놀라며 서로를 경계하듯 바라보다가 친구인 것을 알고는 서로 반가워하며 손을 마주잡는다. 그러자 밖에서 순사복장청년의 아버지인 대지주의 음성이 들리면서, 소작쟁의를 일으켜 체포령이 떨어진 청년이 우리 집 창고부근에 나타났다는 소리와 함께 꼭 잡아들여야 순사보조원에서 정식 순사로 승진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친구를 어찌 잡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자 역시 또 한 사람의 대지주의 아들이자 일본형사제복을 임은 청년이 등장을 하고, 형사 역시 이들과 친구지간이지만 순사복장을 한 청년과는 달리 숨어있는 청년을 반드시 체포해야한다는 소리를 한다. 헌병복장의 청년의 누이가 등장해 숨어있는 청년에게 마음을 주고 있음이 알려지고, 또 한 친구가 등장해 이태리 가곡을 부르는데, 가곡을 부르는 청년을 좋아하는 여학생의 모습도 뒤따라 나타난다. 순사복장의 청년은 뒤에 나타난 여학생에게 연모의 정을 품고 있음이 알려진다. 향후 숨어있던 청년은 형사복장의 청년에게 체포되기 직전, 순사복장청년과 서로 옷을 바꿔 입고 피신을 해, 중국으로 망명을 하는 것으로 설정이 된다.

장면이 바뀌면 손에 붉은 완장을 두른 청년들이 등장해 일본형사복장을 했던 청년을 대지주의 아들이고 친일파라며 다그치기 시작한다. 일본순사복장의 청년도 역시 지주의 아들이라 다그침을 당하지만, 창고에 숨어있던 청년의 도움으로 화를 면한다. 이태리 가곡을 부르던 청년은 그동안 독일서적을 읽고 사회주의사상을 갖은 열성당원이 되어 빨치산이 즐겨 부르던 노래와 함께 친구들을 지휘한다. 친구보다 이념이 우선인 듯 붉은 완장 패거리들은 두 사람을 다그치지만, 창고에 숨어있던 청년과 여학생의 도움으로 두 사람은 피신을 하게 된다.

다시 세월이 바뀌면 헌병복장의 청년은 미군병사복장으로 등장을 하고, 순사복장의 청년은 국군이 되어 등장한다. 붉은 완장을 찬 청년들은 이제는 이리저리 산속으로 도망을 다니는 신세가 된다. 그들을 추종하던 여학생들 역시 빨치산의 일원으로 국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국군복장의 청년이 연모하던 여학생은 쌍방간의 총격전으로 결국 절명하고 만다.

이념적 대립으로 친구지간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상대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되고 쫓고 쫓기는 장면이 숙명처럼 계속되면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김태현, 류 성, 차준호, 강동효, 최현미, 이정미 등이 출연해 열과 성을 다해 희극적인 분위기와 비극적인 분위기 창출에 진력하고, 객석을 폭소로 이끄는가 하면 눈물의 홍수 속에 잠기도록 한다.

박정길과 황재민 등 스탭 진의 노력이 작가이자 연출을 한 오세혁의 기량과 합하여,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의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널 지켜줄 거야 친구야>를 웃음과 눈물이 어우러진 독특하고 탁월한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4, 아날로그 앤 디지털 시어터(Analog&Digital Theatre)의 김보람 원작 조 영 작, 전윤환 연출의 <미래도둑>

 

연극 <미래도둑>의 무대는 왼쪽과 오른쪽에 책상 두 개, 정면에 세 개를 놓은 취조실이다. 중앙에 의자 한 개가 있고, 배경에 스크린이 있어 외계인의 유전인자나, 주인공의 모습을 크게 확대한 영상을 투사해 극적효과를 높인다. 천정에 사각으로 넓게 부착된 형광등은 출연자들의 심적 변화에 따라 깜빡이며 역시 극적효과를 높인다.

연극은 시작 전부터 출연자들이 무대에 등장해 서성거리고, 머리를 짧게 깎은 남자가 객석을 향해 의자 앞에 서있다.

연극이 시작되면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의자 앞에 있는 남자를 착석시킨다.

건장한 남자가 호남방언과 비속어 욕설을 해가며 의자에 앉은 남자를 취조하기 시작한다.

내용은 외계인의 인자를 갖고 태어난 아이가 점차 늘어나고, 그것이 가정파탄의 요인이 되자, 국회에서 그런 아이들을 강제로 수용하는 법적근거를 마련하고, 보호대상이 되도록 했기에, 취조중인 남성이 수용소에 침입해 경비를 살해하고 아이를 데려온 것으로, 취조관이 그 남성의 일기장과 대조해 가며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으로 소개가 된다.

일기의 내용은 외계인의 씨라서 그런지, 태어난 여아가 눈에 띠게 빨리 자라나, 일주일 만에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하고, 일 개월이 되었을 때에는 언니의 몸집을 훌쩍 넘어서더니, 출산한지 6개월 만에 성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한 돌연변이 아이의 유전인자를 병원에서 알게 된 남편은 아내가 불륜을 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아내를 내쫓는다. 아내는 항의하며 당신의 씨가 분명하다고 내뱉는다. 남편은 수용소로 아기를 찾으러 가니, 수용소 앞에서는 아기를 돌려 달라는 시위대가 들어찬 것으로 설정이 되고, 남편은 근처를 배회하는 미성년자에게 담배 한 개비를 주고, 수용소의 잠입 로를 알아낸 후 경비 2명을 살해하고, 아기를 빼내온 것으로 진술을 한다. 그런데 여아의 모습이 연애시절 아내의 모습과 같아 남편은 여아와 통정을 하게 되고, 거기에서 자신과 닮은 아기까지 출산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라, 남편이 진술을 주저할 때면, 취조관이 욕설과 함께 가차 없이 폭행을 가하기에 동료 취조관들이 제지를 하는 광경이 연출된다. 한 편 이와는 반대로 여성이 살해범으로 취조를 당하는 장면이 복선으로 깔린다. 여성 역시 출산한 아이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여아가 자신의 처녀시절 모습과 같아 남편이 아내대신 여아와 동침하기에 발생한 살인사건이다.

취조관의 혹독함이 재연되고, 이 두 사건을 통해 취조관 역시 돌연변이 아이의 아비라는 것이 밝혀진다.

대단원에서는 취조관이 동료들의 취조에 응하기 위해 무대중앙 의자에 앉는 것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근친상간은 희랍극으로 잘 알려지고, 원래 아이들은 부모의 모습을 닮고 태어나기에 구태여 외계인을 내세울 건 없다 하겠으나, 공상과학물이 범람하는 세상이고, 미디어 매체나 뉴스로 가족 살해가 보도가 빈번하니, 세태와 어울리는 작품이고, 일종의 경고로 제시되는 연극이라 하겠다.

김형준, 우상백, 고홍진, 유진희, 김은아, 이정혜, 강보미, 신아리 등 출연자 전원이 취조실 근무자, 돌연변이 인간, 담배를 요구하는 미성년자 등 1인 다 역을 연기하며, 독특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도입에서부터 관객을 극에 몰입시킨다.

무대 이혜미, 조명 손정은, 을향 윤민철, 작곡/안무 김재덕, 무대감독 싱아리, 기획 추예원, 포스터 류재홍 등 스텝 모두의 기량이 잘 드러나, 2013 미래야솟아라 출품작 아날로그 앤 디지털 시어터(Analog&Digital Theatre)의 김보람 원작, 조 영 작, 전윤환 연출의 <미래도둑>을 문제작이자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5, 극단 종이로 만든 배의 셰익스피어 원작, 하일호 작, 하일호·김형용 연출의 <락앤롤 맥베스(Rock`& roll)>

<락앤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각색해 출연자들이 Rock`& roll의 음률에 따른 내용전개와 마치 춤을 추듯 연기를 펼치도록 만들었다.

배경 막과 무대 좌우의 벽 가까이 출연자들이 앉을 수 있도록 의자높이의 긴 단을 설치해 놓았고, 객석 중앙에도 정사각의 입체조형물 한 개를 비치했다. 연극은 시작 전부터 샹송가수 에디뜨 삐아프(Edith Piaf)의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가 계속 흘러나온다. 서커스단의 삐에로처럼 원형의 장식물을 코에 부착한 출연자가 신발 두 짝을 들고 무대를 서성이고, 다른 출연자 역시 만화영화 피터 팬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복장이라, 친근감이 든다. 연극이 시작되면, 세 쌍의 팀이 출연하여 인체조각을 하거나, 로봇을 만들 듯 상대의 팔을 이리저리 이동시키거나 고정시키며, 인체조형물을 작업에 몰두한다. 인간조형물은 아크로바트를 하거나 팬터마임을 하듯 동작이 이어지고, 경쾌한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니, 객석의 흥미가 진작되고, 관객을 연극에 몰입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삐에로 같은 등장인물들의 연극놀이가 시작되고, 마녀의 운명적 예언이 맥베스와 뱅코우에게 전해지면서, 맥베스가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던컨왕을 암살하고, 뱅코우까지 죽음으로 몰아가면서 맬컴과 맥더프가 국외로 피신을 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락앤롤의 박자에 따른 동선창출로 보인다. 레이디 맥베스와 맥베스의 결단이 던컨왕의 암살로 이어지면서 극은 원작의 플롯을 축약해 전개되지만, 출연자들이 무대를 누비고, 뛰고, 구르며, 춤까지 보이며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은 객석의 분위기를 최고의 락앤롤 분위기로 상승시킨다. 중간 중간 우리의 정치현실을 빗댄 대사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객석 중앙에 자리한 의자에 맥베스가 앉아 결단을 내리는 장면은, 마치 관객과의 공감대가 형성된 후에 던컨을 살해하는 듯싶어 관객 모두가 맥베스와 공범자가 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레이디 맥베스가 양심의 가책에 못 이겨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맥베스 역시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자에게는 결코 패하지 않고, 버남의 숲이 움직이기 전에는 전투에서 패하지 않는다는 마녀들의 두 번째 예언마저 반전처럼 뒤집어지면서 맥베스는 맥더프의 손에 의해 쓰러지면서 음악은 비장 침울한 곡으로 바뀐다.

대단원에서 출연자 전원이 벽 가까이에 늘어앉아 손으로 입을 두드려 빈병울리는 소리를 내며 락앤롤의 경쾌한 음률에 맞춰 춤을 추듯 퇴장하면 연극도 끝이 난다.

양승한, 김지영, 홍재옥, 손인수, 박 연, 이훈희, 김영표, 김지민, 서청란, 주선옥, 김범린의 아크로바틱한 호연은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안무 둠 벙, 무대 김지영, 의상 이명아, 음악 전송이 등 스텝 모두의 기량과 열정이 합하여 극단 종이로 만든 배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하일호 작, 하일호·김형용 연출의 <락앤롤 맥베스>를 한 편의 실험극적 음악무용극으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선을 보였다.

첨언해 출연자들 모두가 노래까지 곁들였다면 금상첨화가 되었으리라는 생각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6, 극단 가변의 박미현 작, 이성구 연출 <끔찍한 메데이아의 시(詩)>

 

연극 <끔찍한 메데이아의 시(詩)>에서는 임신한 여인이, 임산부인 자아(自我)와 작가인 자아로 분리된 인격을 두 명의 출연자가 한 여인의 역을 하고, 부인보다는 태어날 아기에게 더 관심을 갖고, 매일 지나치게 임산부의 몸을 검사하는 남편과의 갈등을 그렸다.

무대는 배경 막 사이로 객석을 향한 조명이 시야를 어지럽힌다. 무대 바닥에는 여섯 자(尺) 폭과 20자 길이의 판에 수영장처럼 물을 채워놓았으나 발목에 찰 정도다. 역시 20자 길이의 또 하나의 마루를 객석방향으로 나란히 놓고, 나란히 놓은 두 개의 조형물 가운데에 모래를 채운 사각의 공간도 만들었다. 마루 끝에는 소파가 있고 임산부가 누워있다. 물을 채워놓은 조형물 끝에는 욕조가 있고 그 안에 반라의 여인이 들어가 앉아있다. 무대 좌우에는 의자를 나란히 놓아두고, 출연자들이 등장해 거기에 앉는다.

연극은 도입에 남녀 출연자들이 무대 오른쪽 중앙 등퇴장 로에서 한 명 씩 등장해 시계를 보고, 무대주위를 걷기 시작한다. 시계방향으로 걷거나, 시계반대방향으로 걸으며, 서로 얻 갈리기도 하면서 차츰 빠른 걸음을 내딛는다.

그들 중에는 우산을 쓴 사람도 있고, 모자를 쓴 사람도 보이는데 모두 검은색 옷차림이다. 각종 시계의 시계추 뻐꾸기 시계소리, 시계의 자명종 소리가 섞여 들리기 시작하고 점차 그 소리가 커지면서 웅장한 종소리를 끝으로 암전과 함께 고요해진다.

조명이 들어오면 욕조 속 여인과 소파 위 여인이 눈에 들어오고, 남녀 출연자들은 의자에 앉아 신문을 수직으로 들고 들여다본다. 욕조의 여인은 담배연기를 내뿜고, 소파의 여인은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고 있다.

잠시 후 남편이 등장해 소파로 다가가 부인을 일으켜 세우고, 음식물과 아기관련 질문을 하며, 마루 중앙으로 데려와 옷을 들치고, 부인의 아랫도리를 들여다 본 후, 체중 기에 올라서게 해 몸무게를 달아보도록 한다. 몸무게가 늘어나지 않았음을 알고는 매일 3, 4백 그램씩 증가해야 한다며, 음식물 섭취를 제대로 할 것을 지시하듯 언급한다. 그리고 몇 번을 실패한 출산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한다. 남편은 오디오를 켜 이탈리아 저널리스트인 페피노 투르코(peppino turco)가 가사를 쓰고, 작곡가 루이지 덴자(luigi denza)가 1880년에 작곡한 나폴리 민요 후니쿨리 후니쿨라(funiculi, funicula)를 틀어놓는다. 임산부는 바닥에 여지저기 널려있는 아기 옷을 하나하나 챙겨 차곡차곡 개면서 자신은 굵은 음성의 남성노래가 싫다고 심정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남편은 뱃속의 아기를 위해서라며 계속 들려주다가 끄고 퇴장한다. 의자에 앉은 남녀 출연자들은 신문을 든 채 부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안 보는 듯 냉담한 척 하는 자세를 유지한다. 두 여인은 아이와 글쓰기에 관해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아이보다는 글쓰기에 비중을 둔다. 욕조에 앉은 여인은 태어날 아이의 옷을 붉은색 실로 뜨개질을 한다. 재차 남편이 등장해 부인을 마루중앙에 앉히고, 부인의 가랑이 사이에 머리를 디 미는 동작과 체중을 달아보는 동작, 그리고 음식물 섭취에 관해 이야기 하고, 또다시 후니쿨리 후니쿨라를 들려주다가 퇴장하면, 두 여인은 욕조와 소파에서 일어나 한 여인은 물속으로 다리를 내딛고, 한 여인은 또다시 바닥에 널려있는 아기 옷을 하나하나 챙겨 차곡차곡 개면서 역시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가 똑같이 반복된다. 욕조에 있던 여인이 가운데 모래구덩이에 다가가 모래를 들추면, 그 속에서 사용 후 버린 콘돔, 담배 갑, 그리고 아기 옷 등이 나온다. 다시 남편이 등장해 부인의 아랫도리를 살피고, 늘어나지 않은 체중을 이야기 하며, 소파 깔개 밑을 들쳐보다가 많은 담배꽁초를 발견하고는 부인의 따귀를 사정없이 때린다. 아기의 건강을 생각지 않고 담배를 피웠다며 부인을 밀쳐 마룻바닥에 넘어뜨리고, 큰소리로 나무라는 모습이 자못 신랄하기까지 하다. 남편은 아내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기도 하지만 아내에 대한 애정을 표시로는 부족하다. 남편은 가운데 모래구덩이에서 아기 옷을 집어들고, 분노를 표한다. 욕조에서 나온 반라의 여인이 남편의 따귀를 때린다. 아기에게만 관심을 갖는 남편에 대한 항의표시인 듯싶다. 두 사람의 옥신각신하는 모습과 다툼이 이어지고 남편은 분에 못 이겨 후니쿠니 후니쿨라 노래의 볼륨을 최대한 높게 틀어놓고 퇴장을 한다. 두 여인이 서로에게 다가간다. 글쓰기와 뱃속 아기 건강이 마주서는 장면이다. 산모는 반라의 여인에게 털어놓는다. 남편의 지나친 간섭, 자신보다 아이를 챙기려는 이기심, 글 쓰는 임산부임을 고려치 않고, 마치 옛 이야기의 씨받이 같은 느낌으로 자신을 대하는 남편의 일방적이고 이기적 사고가 자신에게는 견딜 수 없는 요소로 성장하고 있음을 털어놓으며, 열화를 이기지 못하는 듯 차가운 물속에 그대로 주저앉는다. 그러다가 임산부는 뜨개질 감을 집어 직접 자신이 뜨게 질을 한다. 뜨개질로 고뇌를 털어버리려는 심정인 듯싶다. 그러나 뜨개질을 하면서도 쌓인 응어리가 풀리지 앉자, 심화를 폭발시키기 시작한다. 임부는 자신을 해방시키려는 듯, 뜨개 질 실을 풀어버리고, 뜨게 질 감에서 뽑아든 두 개의 날카로운 뜨게 바늘로 자신의 배를 깊이 찌르고 물속에 쓰러진다. 수직으로 펴 들었던 신문을 내린 남녀 출연자들이 의자에서 일어나,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서로 엇갈려 무대 주위를 돌다, 하나하나 퇴장하면 연극은 끝이 난다.

부부지간이라도 대부분 감추고 있고, 노출시키기를 꺼려하는 내외간의 엇갈린 사고와 어긋난 행동은 좀처럼 화합하기가 어렵다는 사례를 폭로한 듯싶은 연극이다.

임정은, 배우진, 박혜영, 임형섭, 신진철, 유정훈, 송지나, 김병석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은 객석의 갈채를 받는다.

예술감독 송형종, 무대디자인 이윤수, 드라마트루크 김형선, 조연출 김남영, 기술감독 김성태, 퍼포먼스 이희란 등 스텝 진의 열정과 노력이 일치되어 극단 가변의 송형종 예술감독, 박미현 작, 이성구 연출의 <끔찍한 메데이아의 시(詩)>를 우수작이자 걸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

 

7, 극단 Da의 가네시타 다쓰오(鐘下辰男)작, 기무라노리꼬(木村典子) 번역, 임세륜 각색·연출의 <어른의 시간>

 

연극 <어른의 시간>은 한 중학교에서 왕따와 관련된 학생이 급우를 살해하고, 복역 후 20년이 지나 출소해, 당시의 선생님과 부인, 살아남은 급우와 재회해 벌이는 과거사에 대한 갈등과 그 해결에 대한 모색이다.

무대는 스레트 지붕이나 철판 창고 벽 같은 자재로 만든 집이다. 마치 학교의 교실처럼 보이게 만들었고, 정면 벽에는 액자에 넣은 태극기가 붙어있고, 교단과 그 위에 책상이 있다. 중앙에 책상 여러 개를 붙여서 커다란 식탁을 만들어 놓았고, 의자도 배치했다. 실내의 벽좌우로 포개놓은 의자들이 보이고, 오른쪽 벽에는 낮은 장과 그 위에 술병과 잔, 그리고 잡동사니를 올려놓았다. 정면 벽 왼쪽과 오른쪽에 실내로 들어오는 통로가 있어 등퇴장 로가 된다.

연극은 시작 전부터 배경에 영상으로 근자에 발발한 테러사건의 영상이 투사된다. 연극은 도입에 암전상태에서 동리 이장의 음성이 방송을 통해 들려나온다. 무대가 밝아지면, 왕따로 인한 급우살해사건이 발생한지 20년 만에 당시의 담임선생과 그의 부인, 그리고 현재 이 지역에서 가장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는 당시의 급우, 그리고 현재 그 학교 교사인 급우가, 출감하는 급우를 기다리고, 당시의 사건을 되새기며 조마조마해 하는 광경에서 시작된다. 그들의 이야기로는 인터넷에서 현재까지 당시의 사건에 관한 글들이 떠다니고 있고, 당시의 담임선생에게 편지가 계속 오는 것으로 소개가 된다. 급우들은 출소자를 반기지 않는 눈치지만, 담임선생은 이제 모두 어른이 되었으니, 다시 만나 한풀이를 하자고 제안해 모이는 것으로 설정이 된다.

드디어 출소자가 동료 한 명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고, 선생과 급우는 애써 반기는 모습을 보인다. 선생부인이 깡통맥주를 들여오고, 선생은 건배제의를 한다. 그러나 출소자의 행동은 차갑고 마지못해 건배에 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선생은 출소자에게 당시 살해당한 급우들의 무덤에를 가서 절을 하라고 권한다. 출소자는 자신이 왜 절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급우들의 집단 따돌림에 대한 항거로 저지른 행동인데, 원인제공자에게 절을 왜 하느냐는 태도를 보인다. 선생은 이제는 어른이 되었으니, 어른다운 행동에 따른 고인(故人)에 대한 추모가 있어야한다는 설명이지만, 출소자는 납득할 수 없다는 태도를 견지한다. 그러면서 당시 사회를 보았던 급우와 부호가 된 급우에게도 마음을 열어 보이지 않는다. 냉랭한 분위기 지속과 함께 과거 사건으로 인한 갈등이 노출되기 시작한다. 선생의 설명이나 설득이 출소자의 귀에는 당나귀 귀에 찬송가 부르는 격이고, 게다가 출소자의 동료까지 이 일에 참견을 하며 마치 폭력배 같은 행동을 보인다. 분위기가 차츰 폭발직전의 화약고처럼 변해가고, 이런 험악한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는 선생부인의 노력이 계속되지만, 수습은커녕 악화일로로 치닫고, 출소자의 동료는 차츰 거친 행동과 말씨로 출소자의 편을 든다. 동료는 하나하나 트집을 잡고, 기물을 걷어차고, 이 건물을 지을 때 사용하던 전기톱을 휘두르기도 한다. 출소자는 당시의 사회 보던 급우에게 무덤에 가는 일을 다수결로 정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의한다. 이들의 옥신각신 실랑이가 한동안 계속이 되고 선생부인의 화해노력이 무산되는 듯싶을 때, 선생이 나이프를 뽑아든다. 선생은 폭력배 같은 출소자의 동료를 단숨에 제압을 한다. 동료는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이 연출된다. 사태가 바뀌자 부호인 급우의 분노가 폭발해, 전기톱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이지만, 한번 틀어진 분위기는 수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선생은 출소자에게 모든 게 자신의 탓이니, 자신을 용서하라고 빌기까지 한다. 그러나 출소자는 요지부동이다. 왕따를 당해 절치부심(切齒腐心)의 심정으로 벌였던 급우살해가 출소자에게는 당연지사로 가슴과 뇌리에 새겨진 듯싶다. 출소자의 동료가 다시 한 번 행패를 부리니, 선생의 칼이 번뜩이고, 동료는 교탁 옆에 실신한 듯 쓰러진다. 선생의 부인이 약그릇을 챙겨들고 다친 출소자의 동료를 일으켜 약을 발라준다. 동료는 어린아이처럼 고분고분한 모습으로 상처를 맡긴다.

이윽고 밤이 찾아온다, 얼음 짱 같이 냉랭한 분위기는 긴 밤을 지새울 듯싶다. 선생의 부인이 흩어진 책상들을 모아달라고 이르고, 책상을 합쳐 원래 모습대로 식탁처럼 모아놓는다. 의자도 가지런히 놓이니, 선생부인은 커다란 쟁반에 저녁밥과 반찬을 들여온다. 식탁에 내려놓으며 모두들 둘러앉아 저녁을 들자고 한다. 늦게까지 난동을 부렸으니 다들 배가고플 것은 다시 이를 것도 없다. 모두 식탁에 둘러앉는다. 선생은 출소자에게 어서 식탁으로 오라고 권한다. 한동안 뜸을 들이다가 출소자도 식탁 가까이 다가간다. 그러나 자신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니 반성하는 기분으로 마룻바닥에 앉아 먹겠다며, 출소자는 밥그릇을 집어 들고 마루에 앉아 “잘 먹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먹기를 시작하는 데서 암전이 되고, 도입에 암전상태에서처럼 동리이장의 방송 음이 흘러나오고, 테러사건의 영상이 배경에 투사가 되면서 연극은 끝이 난다.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학교에서의 왕따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이고, 평생 동안 영향을 끼치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연극이자 한 편의 문제작이기도 하다.

한성식, 송현서, 유승일, 송영학, 이종윤, 최영열 등 출연자 전원의 독특하고 탁월한 성격창출과 호연이 돋보인 연극이다.

사진 김명집, 무대 이소영, 의상 정현정, 사운드·음악 김민주, 조연출 박장혁, 무대감독 김묘진 등 스텝 모두의 기량도 돋보여, 극단 Da의 가네시타 다쓰오(鐘下辰男)작, 기무라노리꼬(木村典子) 번역, 임세륜 각색·연출의 <어른의 시간>을 우수작으로 만들어 냈다.

 

2013년 제34회 서울연극제 “미래여 솟아라.”는, 작은 묘목(苗木)을 한국연극이라는 텃밭에 심은 것이라 하겠다. 그 나무가 자라 잎이 풍성해지고, 거대한 나무로 성장해 가지가 무성해지면, 그 가지의 그늘에 우리의 연극인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참가자 모두가 열과 성을 다해 계속 정진(精進)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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