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2일 국회 세미나 ‘대학 구조조정 문제, 해결될 것인가?’ 토론문)
국회 토론: 예술대학과 취업률
오세곤(한국 예술대학 ․ 학회 총연합 의장, 순천향대학교 교수)
전 국민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한다. 그것의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 자신이 대학에 안 가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다. 예술대학 또는 예술전공자가 너무 많다는 얘기들을 한다. 심지어 예술 전공학과 교수들마저 그런 얘기들을 쉽게 던진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자기나 자기 소속 학과가 그 과잉의 대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듯하다.
60년대 서울의 무허가 판잣집들을 철거하고 그들을 모두 경기도 광주로 내몰았다. 현재 성남시가 된 광주대단지이다. 눈에 보이는 문제 요소를 눈에 안 보이도록 치우면 된다고 생각했던 그 어리석음이 현재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다. 바로 전국 대학들을 일렬로 줄 세워 그중 뒤진 학교를 걸러내는 것이나 각 학교에서 역시 모든 학과들을 늘어세운 뒤 이른바 구조조정이라는 단어 아래 수술해 버리는 것이 그것이다.
이쯤 되면 목적은 단순해진다. 어떻게든 줄을 세워야 한다. 그러자니 가장 중요한 것이 이른바 변별력이다. 취업률은 그래서 뽑힌 효자 지표이다. 정부의 한 마디에 전국의 대학들이 전전긍긍하며 그 지표에 충성하고자 온갖 수를 다 동원하지 않는가. 제거 대상을 결정하는 것은 늘 잔인하다. 그러나 요즘의 대학을 보면 차라리 추첨이나 가위바위보로 정하는 게 훨씬 인간적일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자식이 하나건 열이건 일단 낳으면 모두 중요하다. 대학도 마찬가지고 학과도 마찬가지다. 이미 생겼는데 어떤 건 중요하고 어떤 건 중요하지 않다고 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변화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 변화는 생물의 진화처럼 점진적이고 부작용이 없는 것이어야 한다. 졸속으로 무조건 줄을 세워 잘라버리는 식의 변화는 결코 그런 발전적인 진화라 할 수 없다.
물론 일에 따라 평가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평가가 현장에 좋은 영향을 미칠 때 가치가 있는 법이다. 그러니까 평가 점수가 높은 학교가 좋은 학교가 돼야 한다.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좋은 교육이 좋은 평가 점수를 받아야 한다. 그것은 현장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그러려면 대단히 정교한 평가 지표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세밀한 지표 마련은 번거롭고 까다로울 뿐 아니라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므로 피한다.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인 것을 망각하고 오로지 변별력만을 따지는 지표는 그래서 탄생한다.
취업률 때문에 예술대학이 겪는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러 분야가 모인 대학에서는 예술대학이나 예술 전공학과들 때문에 대학 전체의 평가 결과가 안 좋아진다며 눈총을 받다가 구조 조정 대상이 되기 일쑤이고, 예술 분야로만 이루어진 대학들은 정부 지원을 못 받게 되는, 그야말로 폐교 위기에 내몰리기까지 한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만 해도 모 예술대학 교수들로부터 여러 차례 전화를 받았다. 내용은 취업률 때문에 너무도 괴로운데 도대체 헤어날 방법은 없느냐는 절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술인 중 예술인이랄 수 있는 그 대학 총장님마저 취업률을 올리라고 교수들을 몰아세우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듣기로는 게시판에 교수 명단을 붙여 놓고 수시로 교수별 취업 성적을 공개한다고 하니 일생 그런 일은 거의 해본 적이 없는 처지에 얼마나 답답할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물론 그 동안 이에 대한 항의와 문제 제기는 꾸준히 있었다. 애초 왜 취업 문제를 대학에 떠넘기는지에 대한 항변은 예술계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으므로 곧 힘을 잃었고, 그보다는 예술의 특성을 근거로 건강보험만을 가지고 통계를 내는 방식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정도였다. 물론 그러니 예술계는 취업률 평가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늘 그렇듯 형평성이라는 논리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국 나온 것이 활동 실적을 반영하는 것이었지만 연극의 경우 등록된 공연장에서 두 번 이상 공연하면 취업으로 인정한다는 지극히 피상적인 방안이었다.
도대체 졸업 후 1년 안에 등록된 공연장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에 두 번이나 참여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이며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등록증 사본이니 계약서니 하는 까다로운 서류들을 어떻게 받아내서 자기 모교에 보내준단 말인가? 게다가 등록 공연장이라는 것에 대학로 소극장은 절반도 포함이 안 돼 있으니 정말 현실과는 거리가 먼 공허한 기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온갖 편법이 난무하게 되었다. 교수가 여기저기 공연 단체에 부탁을 해서 자기 제자들의 이름을 공연 팸플릿에 끼워 넣는 일도 흔히 일어났다. 그러니 대학 운영자들은 어떤 교수들은 저렇게 하는데 왜 당신들은 못 하냐며 무언의 압력을 가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연극 관련학과 중에도 통계상으로는 오히려 다른 분야보다 높은 취업률을 기록하는 경우도 종종 생겨나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문화부에서 조사한 내용은 참으로 의미심장하였다. 그것은 한국예술종합학교나 서울예술대학 등 예술 분야로만 이루어진 학교들의 취업률이 10% 대로 대단히 낮다는 것으로 조금 조심스러운 표현이지만 사회적 지명도나 평판도와 거의 반비례하는 결과라는 것이었다.
몇 주 전 있었던 문화부 자문회의 자리에서 교수들은 이구동성으로 예술계에 대한 취업률 적용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문화부는 반드시 교육부를 설득하여 개선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그 직전에 있었던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이에 대한 지적한 것에 대한 반응으로 생각됐다. 이후 문화부 장관이 페이스북에 그런 얘길 올리는 일이 있었고 그리고 얼마 후 7월 4일 교육부 장관의 인문, 예체능 계열에 대한 취업률 평가지표 제외 발표가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교육부 장관의 발표가 있던 날은 각 분야 예술 관련 교수들이 모여 연대협의체를 구성하기로 약속한 7월 5일의 하루 전이었다. 어쨌든 그래서 모인 교수들은 ‘한국 예술대학 ․ 학회 총연합’을 발족하였고, 이어 교육부 장관의 발표를 환영하면서, 그러나 향후 어떻게 그 발표가 실현되는지 예의주시하겠다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 성명서를 인용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대신하겠다.